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20
12. 재대결(2)
비무 시작 전만 해도 소종천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건 분위기가 격렬해지며 싸움이 결말을 향해 넘어가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
“누가 이길 것 같아?”
“그래도 역시 모용설호겠지.”
“음…… 하지만 속단할 순 없으니 지켜보자고.”
그렇지만 이제는 소종천이 무조건 패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도, 역시 사라지고 없었다.
“실력이 듣던 것처럼 형편없지는 않잖아?”
“수업에서 봤을 때하고는 완전 딴판이야. 그땐 분명 저런 무공을 쓰지 않았는데…….”
“어느 문파의 권법인지 아는 사람? 꽤 심오해 보이는 무공인데?”
관중들은 낮은 목소리로 저희들끼리 대화를 주고받는다.
하나같이 소종천과 모용설호의 비무에 몰입하느라 시선을 떼지 못하며 수군거리는 모습.
나름대로 칭찬 일색이었지만, 소종천은 그런 소리들을 전혀 인지할 수 없을 만큼 목전의 검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빡세네…… 역시 쉽지 않아.’
비무를 시작한 지 어느덧 이 각을 넘어 반 시진을 향해 가는 시간.
살기가 깃든 모용설호의 검과 맞서는 것은 상당히 벅찬 일이었다.
기력이 빠지고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수갑으로 방어한다 해도 보호대가 충격을 완전히 해소시킬 순 없기에, 필시 팔 전체가 성한 곳 없이 멍들어 퉁퉁 부어오르고 있을 것이었다.
그나마 금속부에 보호받는 부위들은 멍으로 끝날 테니 다행.
옆구리와 허벅지 주변에는 검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생긴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큰 상처는 아직 없지만 갈라진 무복이 조금씩 새어 나온 피로 붉게 물들고 있어, 그냥 방치해도 괜찮을 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으으, 쓰라리네. 더 다치면 정말 위험하겠는데.’
모용설호의 살기가 짙어진 이후로 수차례 이어진 공방.
소종천은 제법 분전했으나 더욱 매서워진 검초들을 상대로 초반처럼 이득을 챙기질 못했다.
닷새의 지도만으로는 비려십오검의 대처법을 완전히 숙지하지 못한 탓도 있고, 드문드문 섞여 나오는 모용세가의 절기인 현문구검을 상대하느라 애를 먹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제 밑천이 다 떨어진 모양이군. 슬슬 결판을 내도록 하지.”
스산함이 담긴 목소리로 모용설호가 말을 걸어왔다.
소종천의 무복을 만신창이로 만들었지만, 아직 확실한 타격을 입히지 못했기에, 짜증이 가득 스며든 목소리이기도 했다.
그 갈라진 목소리에 담긴 불편한 감정 속에서, 소종천은 적지 않은 피로감 또한 감지해 낼 수 있었다.
“벌써 지치셨나? 모용세가의 검이 꽤 따끔하긴 하네. 그래도 난 아직 버틸 만한데 말이지.”
“빌어먹을 놈! 여전히 입만 살았구나!”
그 말에 역정을 내지만 초반처럼 흥분해서 검을 흩뿌리진 않는 모용설호을 보며, 소종천은 상대의 마음속에 깃든 머뭇거림을 눈치챌 수 있었다.
‘저 녀석도 분명 지치긴 했구나. 날 빨리 제압하고 싶어서 연달아 위력적인 초식들을 사용했으니, 당연히 내공 소모가 상당했겠지.’
또래 중에선 뛰어난 내공을 지녔다지만 결국은 15살.
아직 고수라 칭할 수준인 것도 아니니 내력의 한계가 빨리 찾아올 수밖에 없다.
특히 쉼 없이 계속 깐족거리며 큰 공격을 이어가게 만든 것이 꽤나 주효했으리라.
소종천은 여기가 승부를 걸어야 할 시점임을 직감했다.
오권 중 표권의 형.
기수식을 취한 소종천이 표자천애(豹子穿崖)의 초식으로 모용설호을 향해 다가갔다.
절벽을 타고 내달리는 표범과도 같은 역동적이고 기민한 동작.
덮쳐오는 소종천을 향해, 모용설호 역시 한껏 내기를 운용하며 검을 휘둘렀다.
“끝을 내주마!”
위잉.
작은 떨림과 함께 움직인 모용설호의 검이, 쾌속하게 소종천의 가슴 부분을 찔러 들어갔다.
“하앗!”
기합과 함께 소종천의 양팔이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왼팔로 검을 쳐내며 오른팔은 주먹을 뻗으려 한 판단.
그런데 팔에 닿는 감각이 뭔가 이상했다.
‘가볍다?’
후려친 검이 생각 이상으로 가볍게 튕겨진다.
‘분명 허초는 아니었는데?’
핑그르르 회전하는 모용설호와 그에 따라 한 바퀴를 돌아 휘둘러지는 검의 날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하나가 고절한 이치를 담고 초식간의 연계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현문구검의 연환식이 펼쳐진 것.
물론 아직 성취가 낮은 모용설호의 검에 제대로 된 묘리가 실려 있진 않았으나, 그 신속하게 전환된 연계초식은 소종천의 권식을 파고들기 충분했다.
소종천은 눈을 부릅뜨고 다가오는 검날을 주시했다.
‘검이…… 느리다?’
위기의 순간에 감각이 최고조로 활성화되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감각의 끈에 극한의 집중력이 더해져 사고가 가속한다.
‘피할 수 있다.’
처음 맞이하는 초식이었으나 어렴풋이 검로가 예측이 되었다.
‘하지만…… 피한 다음에는?’
처음 겪는 현상.
그렇지만 이 시간이 오래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한 번은 피한다 해도 이대로 물러난다면, 이어질 다음의 부딪힘에서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아니, 지금이 가장 적기다!’
소종천은 몸을 빼는 대신 자세를 바꾸는 것을 선택했다.
호권의 형, 백호추산(白虎推山)의 초식.
몸을 앞으로 내밀며 주먹을 뒤로 당긴다.
영물, 백호가 산을 밀어내는 강맹한 힘을 담은 일격.
위력적인 권격을 내지를 수 있는 권형이었으나, 동시에 다가오는 검을 향해 얼굴을 들이미는 행동이기도 했다.
“저, 저!”
“무슨 짓을!?”
“위험해!”
끔찍한 결과가 이어질 것을 상상한 관중들이 깜짝 놀라 절로 소리를 높였다.
모용설호 역시 표정이 기묘하게 변해갔다.
살기를 담았다지만 진심으로 소종천을 죽이겠다는 마음을 품은 것은 아니다.
그저 우열이 확실히 가려지도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몸에 하나 새겨주는 정도로 그칠 생각이었다.
‘이런 멍청한 놈이!’
내기가 가득 실린 검이 소종천의 눈가를 향한다.
멈추기엔 이미 늦었다.
이대로라면 검날이 소종천의 양쪽 눈을 전부 가르고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우려처럼, 소종천이 갑자기 정신을 놓거나 자포자기해 버린 것은 아니었다.
‘좀 더 아래로, 여기다!’
자세를 낮춤에 따라 천천히 내려가는 머리.
검이 아슬아슬하게 눈썹 위로 지나가도록 각도를 조절한 소종천은, 단전에 남아 있는 내공을 몽땅 밀어 넣어 권을 내질렀다.
‘믿는다! 철면피!’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부위 중 하나인 두개골.
거기에 특수한 외공인 철면피가 더해졌으니, 이마로 검격 한 번 정도는 받아낼 수 있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상당히 과감한, 더 정확히 말하면 미친 사람 같은 행동.
나름 냉철하게 의식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긴 했지만, 혈향이 풍기는 전투의 흥분에 취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의도한 대로의 상황이 만들어지기는 하였다.
기기긱!
철면피로 강화된 피부 때문인지, 인간의 살갗을 베는 것이라 여기기는 어려운 소리가 발생했다.
‘씨아아앙! 아프다아아악!’
화끈한 통증에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어서 잠시 일그러졌던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오자, 경악으로 물든 모용설호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당혹감을 가득 담은 채 격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아프다고 이새꺄아아앗!’
소종천은 속으로 비명을 내뱉으며 진각(震脚)을 밟았다.
다리에서 허리, 허리에서 어깨를 지나 손으로 향하는 응축된 반탄력.
거기에 더해진 내공의 힘이 주먹을 통해 방출되어 나간다.
곧게 뻗어진 주먹이 모용설호의 명치 어림에 닿았다.
백호추산의 초식이 제대로 들어갔다.
퍼억!
커다란 소리가 주변으로 퍼졌다.
허리가 접힌 모용설호의 신형이 속절없이 뒤로 튕겨 나갔다.
잠시간의 정적.
그리고.
“와아앗!”
“저거 완전 미친 녀석이잖아!?”
“끔찍한 꼴을 보게 되는 줄 알았다고!”
관중들의 함성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끄응…….”
내력을 거의 다 소진해 버린 소종천이 신음을 흘렸다.
주먹을 내지른 자세 그대로 멈춰 있던 육신이 허물어지듯 바닥으로 향했다.
“죽겠네…….”
무릎을 꿇고 엎드리다시피 몸을 숙인 소종천이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갈라진 이마에서 질질 흘러내리는 피가 눈을 적셔 시야가 불그스름하다.
비틀거리며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는 모용설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 이러고도 못 이기는 건가. 거 명문세가 똥 한번 더럽게 굵은가 보네.’
할 수 있는 수단은 다 동원했다.
이제는 더 싸울 여력이 없었다.
‘그래도.’
부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부여잡고 힘겹게 몸을 세웠다.
‘정신 줄 붙잡고 있는 동안은 뭐라도 해야지.’
주먹질 한 번이라도 할 수나 있을까 싶긴 하지만, 소종천은 천천히 다리를 벌리고 팔을 들어 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모용설호가 핏발 선 눈으로 이쪽을 향해 검을 내밀며 다가온다.
한 발, 또 한 발.
“끄륵…….”
거기까지였다.
모용설호의 입가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내력을 한껏 운용해 검초를 펼치던 순간에 소종천의 공격을 허용하며, 적지 않은 내상을 입은 것이었다.
기혈이 손상되어 진기가 역류하려 하는 모용설호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쓰러지는 모용설호의 신형을, 빠른 신법으로 다가온 누군가가 붙잡아 들었다.
“으음. 아주 심한 내상은 아니지만, 빨리 치료받지 않으면 내력에 손실을 입겠군.”
입관 첫날 한번 말을 섞어본 뒤로는 딱히 접점이 없었던 인물.
남궁건이었다.
“축하하오, 소종천 학우. 그대가 승리했소.”
“아…….”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대결에서 이겼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이겼구나. 흐, 흐흐…….’
너무 힘들어서 그런지 승리가 확 와닿지 않아 속으로만 실소를 흘렸다.
[임무 : 혈전을 완료했습니다.] [80금 획득.]‘……알림을 보니 끝났다는 실감이 나네.’
떠오르는 알림을 보고 있자니, 남궁건이 계속 말을 걸어왔다.
“비무는 끝났으니 이쪽 학우를 의방으로 옮기려 하오만. 늦어져서 좋을 것이 없으니, 혹시 더 용무가 있어도 승자로서 아량을 베푸는 것이 어떻겠소?”
소종천은 앞으로 고꾸라지지 않도록 간신히 다리에 힘을 주어 버티면서 남궁건의 말을 받았다.
“생사결도 아니고 딱히 더 할 건 없어. 잘 데려다주라고. 아, 근데 그 녀석뿐만 아니라 나도 의방에 가야 하는데…….”
그렇게 말하고 있자니, 양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팔을 붙잡는 감각이 느껴졌다.
“내가 부축하지!”
“내가 도와줄게!”
“잉?”
한쪽은 익숙한 남성의 목소리.
장자군이었다.
“보고 있었구나.”
“나름대로 열심히 응원했는데 못 들었구나?”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거든. 그런데…….”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이쪽 역시 아는 얼굴이긴 했다.
“너 제법 하더라? 못 본 사이에 어떻게 그리 달라진 거야?”
모용설호와의 첫 대결에서 자신을 의방으로 옮겨주었던 생도.
‘분명 조영이라는 이름이었지?’
좌우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는데 남궁건이 다시 말을 꺼냈다.
“도움을 줄 손은 충분한 것 같구려. 그럼 이만.”
가볍게 목례한 남궁건은 모용설호를 어깨에 걸치고 신법을 펼치며 멀어져갔다.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소종천은 뭐 좋은 거라도 먹은 거냐, 그건 언제부터 익힌 권법이냐며 옆에서 재잘거리는 조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어…… 근데 나 계속 이러고 있으면 뒤질 것 같으니까, 일단 좀 의룡전으로 데려다줄래?”
내기를 조절해 출혈을 잡고 있긴 하지만, 완전히 멎게 할 순 없어 치료를 받아야 한다.
소종천의 말에 시끄럽게 떠들던 조영은 쾌활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 내 위에 올라타겠다고? 까짓것 처음도 아니니까 그러지 뭐!”
“거, 말! 말 좀 이상하게 하지 맙시다!”
“푸하핫!”
빽 소리를 지르는데, 장자군이 팔을 잡아당기며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니, 부축은 내가 할 테니 그쪽은 힘쓸 필요 없는데.”
“응? 아니, 내가 데려갈 건데?”
“내가 하면 된다니까.”
“뭐야! 내가 하겠대도?”
“난 이 친구와 같은 조야.”
“난 전에 얘가 개떡같이 뭉개졌을 때도 업어줬어! 이런 건 경험자한테 맡겨야지!”
양쪽에서 팔을 붙잡고 이상한 다툼을 벌인다.
그 와중에 이마에선 계속 피가 흘러, 점점 머리가 어지러워져 갔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어 다급해진 소종천은 다시 한번 크게 소리를 질렀다.
“미친 것들아! 누가 됐던 빨리 의원에게 데려가 달라고!”
결국, 같이 들면 더 빨리 가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오게 되고, 두 사람이 양쪽에서 다리와 팔을 붙잡은 이상한 운반 자세를 취한 후에야, 소종천은 의룡전으로 향할 수 있었다.
뽑기로 무림최강 2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