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Repair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주 노조
아무리 추궁을 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이 어쩔 것인가?
비경에 들어가 본 것이 아닌 이상 진위여부를 파악할 수 없을 터.
화련과 천 공자는 미리 생각해둔 대로 답했다.
‘그저 진법의 힘을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노괴들이 분통을 터뜨리며 다른 후기지수들의 증언을 들먹였지만 소용없었다.
마침 우리가 발견한 진법엔 힘이 남아있었다고 할뿐이었다.
* * *
화련과 나는 단문종에 있는 산을 오르고 있었다.
주 노조를 찾아뵙고 정식으로 제자가 되기 위함이었다.
일전에 노조가 붙여주었던 주요 단약사인 주 장로가 인솔자로 나서고 있었다.
“저곳이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자 그곳엔 아름다운 화원이 산맥의 일각을 뒤덮고 있었다.
화원의 면적은 무척 방대했는데 반구의 막에 의해 결계처럼 둘러싸인 채였다.
“노조님의 신역(神域)이다.”
“신역이 무엇입니까?”
내가 묻자 주 장로가 잠시 고민하더니 답했다.
“어차피 너희는 이미 제자의 신분이니 상관없겠지. 원영에 이른 수도자는 저마다 자신만의 신식을 지니게 된다. 가히 전능의 영역에 닿았다 해도 무방할 만큼의 능력이지. 그 능력 중 하나가 저런 결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허락되지 않은 자는 들어올 수도, 인식할 수도 없다.”
나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대로 이해되진 않았지만 얼추 예상되는 개념이 있었다.
정기신(精氣神).
축기에선 기(氣)를 쌓고, 결단에선 정(精)을 단련한다.
그리고 원영의 경지에 올라 신(神)을 연마하는 것이 이 하계의 세상에 존재하는 수련의 전부였다.
내가 화련이에게 큰 기대를 품고 있는 것도 그 이유였다.
신(神) 자체가 의식을 단련하는 것과 진배없었기에 화련이 결단에 오르기만 해도 수련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라질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신역에 다가가 주 장로가 입을 열었다.
“노조님 저 석(惜)입니다.”
우리 앞에 있던 신역의 한 부분이 갈라지며 들어올 공간을 내주었다.
* * *
화원을 걷는 동안은 놀람의 연속이었다.
이곳에는 꽃과 약초, 그리고 나무들이 무수히 많았는데, 하나하나가 인세에서 보기 힘든 기화영초들이었고 책으로도 본 적이 없던 초목들이 여기저기 난립해 있었다.
이것들을 전부 판다면 단문종 전체를 구입하고도 남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영초의 보고(寶庫)인 셈이다.
‘기화초(氣化草)잖아! 저건 영지(靈芝)?!’
적운자 놈이 두이의 목숨 값이라며 내주었던 기화초가 수백, 수천 뿌리. 그리고 이 시대에서 귀하기 짝이 없는 영지버섯까지 영목들의 밑동에 돋아난 것이 보였다.
“녀석아, 품격을 유지해라. 넌 이제 노조님의 제자가 될 신분이다.”
주 장로의 지적에 나도 표정을 바로 했다.
화련이는 아직까지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번엔 주위에 존재하는 수도자들이 보였다.
그들은 화원을 가꾸고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무척 아름다운 여 수사들이었다.
아마 이곳에서 지내지 않고 종문을 돌아다닌다면 금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의 미모였다.
“장철.”
언제 정신을 차렸는지 화련이가 나를 쏘아보고 있다. 서늘한 눈초리다.
“아하하, 나무들을 본 거다. 화련아. 오해하는 거 아니지?”
“진짜야? 순간 눈이 풀리는 걸 봤는데?”
하여간 눈썰미 하나는 기가 막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며 간신히 추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느새 화원의 중심부에 당도했다.
이곳에 오기까지 거의 이백에 달하는 수도자들을 발견했는데 모두가 화원을 관리하는 아름다운 여 수사들이었다.
파악한 바에 따르면 그들 대부분이 축기의 경지였지만, 결단의 경지도 무려 서른이나 존재했다.
모두가 주 노조를 선망하여 자발적으로 이곳에 몸담은 자들이었지만 제자의 신분을 얻은 자는 한 명도 없다고 하였다.
노조를 뵈러 들어가기 직전, 주 장로가 말했다.
“너희는 천재들이니 잘 할 테지. 다만, 한 가지 당부를 남기고자 한다. 부디… 허튼 소리를 하여 노조가 근심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알겠느냐.”
그는 주 노조를 걱정하는 듯 했다.
성씨가 같은 것으로 보아 같은 주씨 가문의 일원일 것이다. 그가 말하는 허튼 소리가 무엇인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평소에도 주 노조가 근심이 많은 사람일 것이라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 * *
나와 화련이 바닥에 엎드려 노조를 향해 절을 올렸다.
“노조님을 뵙습니다.”
“노조님을 뵙습니다.”
노조를 본 내 머릿속은 오직 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예, 예쁘다……!!’
정말 예뻤다.
노조는 연한 붉은 빛의 의복을 입고 있었다.
새하얀 피부에 은은한 광채가 흐르는 듯했고, 검은 머리칼이 허리까지 내려와 있었으며 보여지는 용모가 고작 스물은 될까 싶을 정도로 어려 보였다.
하나, 표정에 웃음기가 전혀 없이 굳어있었기에 약간 아쉬웠다.
“너희들이 그…….”
노조가 우리의 이름을 고민할 때 내가 재빨리 나섰다.
“예!, 저는 장철입니다!”
“저, 저는 이화련… 입니다.”
씩씩하게 답하는 나를 화련이가 흘깃 한번 째려본다.
주 노조가 알겠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년석비에 신인(新人)이 둘이나 탄생하여 놀랐었지. 반려와 함께하는 수행이 효과가 좋았나 보구나.”
이번엔 내가 당황했다.
이젠 노조까지 오해를 하다니.
그때 화련이가 잽싸게 나섰다.
“네, 맞습니다! 반년이나 같이 지냈더니 조, 좋았습니다.”
얘가 왜 이러지?
필요 이상으로 나서는 느낌이다.
노조가 한 걸음 다가와 우리 곁에 섰다.
그러곤 화련이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더니 머리를 쓰다듬었다.
화아아악─!
순간 노조의 손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뻗어 나와 화련이에게 스며들었고 순식간에 되돌아갔다.
‘신식이군.’
제자로 받아들이기 전 확실히 파악할 심산인 듯 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들켜버린 화련은 덜컥 겁을 먹은 상태였다.
그녀에겐 들켜선 안 되는 비밀이 있지 않은가?
바로 만역종의 비술인 전인금뢰술을 익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이전 삶에서 적운공을 들켰을 때에도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넘겨주었다.
노조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뜬 채 화련이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그녀의 표정에 변화가 일었다.
“식(識)…….”
역시 그녀도 알아챘다.
화련이의 의식이 방대하다는 것을.
노조가 곧바로 내게 손을 뻗어왔다.
순간 화련이가 인상을 쓰는 것이 보였다.
이와중에 노조를 경계하는 것이었다.
‘아이구, 화련아.’
곧 나에 대한 정보까지 파악해낸 노조가 다시 상석으로 돌아와 앉았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그녀가 이윽고 말했다.
“너희들은… 정녕 천재들이로구나.”
“가, 감사합니다. 노조님.”
한데, 노조의 시선은 오로지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 * *
노조의 거처에서 나온 후 우리는 화원을 거닐고 있었다.
새로운 의복도 지급받았다.
원영 노조의 제자가 된 덕에 장로들이나 입을 수 있는 자색의 도포를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 근처의 동부도 배정받았다. 물론 수련 반려라는 명목 하에 하나를 배정받았지만, 그동안 계속 같이 살아왔기에 별달리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한데, 지금 화련의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아보였다.
꼭 노조를 같은 여자로써 경계하는 것 같다.
미친.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뭐가 그리 기분이 안 좋냐?”
“장철 넌 몰라.”
“모르긴? 노조를 경계하는 거잖아. 하하하. 걱정하지 마. 나에겐 한 사람뿐이야.”
비경을 다녀온 뒤로 내 마음도 확고해졌다.
색마 놈이 화련이를 넘보려 한 덕분에.
이젠 나도 그녀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말?”
“그래.”
화련이 못 믿겠다는 듯 말했다.
“그럼 여기서 말해봐.”
“으응? 여긴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알았다, 알았어. 크흠… 조, 좋아한다. 화련아. 됐지?”
창피한 마음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내 고백을 들은 화련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기분이 좋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표정을 뒤바꾸곤 마음에 안 든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더 크게.”
“뭐?”
“크게 해보라고. 여기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이런 미친.
여긴 아직 노조의 화원이지 않은가.
큰 목소리로 고백을 해보라니.
노조가 듣는다면 이런 미친놈을 제자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며 곧바로 파문시킬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화련은 양보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 그게…….”
“왜, 못하겠어? 역시 장철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가봐.”
화련의 눈썹이 점점 하늘로 치솟고 있다.
그리고 그때 천운이 내려와 나를 구해주었다.
[장철은 잠시 와 보거라.]주 노조의 호출이었다.
나는 살았다는 생각에 얼른 대답했다.
“예, 옛! 제자 장철 지금 갑니다!”
“어? 야! 너 어디 가!!”
뒤에서 화련이가 소리치는 게 들렸지만 오늘만 무시하기로 했다.
* * *
“휴우. 살았다. 하마터면 모두의 앞에서 공개 청혼할 뻔했어.”
거처에 들어가자 면경을 바라보며 머리칼을 빗고 있는 노조가 보였다.
참 아름답다.
방금 고백을 하고 온 나조차 마음이 흔들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노조는 무심하게 머리를 정돈할 뿐이었다.
긴 흑발을 뒤로 그러모아 둥글게 말고 중간에 비녀를 꽂아 고정시켰다.
그 일련의 과정이 마치 남자를 유혹하려는 모양새로 보일 정도였다.
왜 천가 놈이 그토록 사랑에 눈이 멀었는지 알겠다.
“크, 크흠. 스승님. 저 왔습니다.”
“잠시 앉아있거라.”
“예…….”
잠시 후 노조는 상석에 자리했다.
내가 앉은 다탁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릴 때였다.
노조가 한손을 들었다.
허공을 어루만지듯 느릿하게 뻗는 것이 보인다.
보이지 않는 식(識)이 뻗어 나와 그녀와 나를 중심으로 둔 채 사방의 공간을 점유하기 시작했다.
──!
감히 항거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저 기운을 무어라 표현해야 될까.
그 자체론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지만 만약 술법과 조화된다면 끔찍한 위력을 발휘할 것 같았다.
이전 삶에서 노조는 신식을 일으켜 만년봉에 있던 연기기 제자들을 무더기로 쓰러뜨린 바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별다른 해를 입지 않았었다.
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상상했다.
결단의 경지를 넘보고 있는 지금.
정(精)에 대해선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 신식.
나에게도 방대한 의식이 있건만 저 기운은 명확히 손에 잡히지 않는 느낌이다.
그때 노조의 말이 들렸다.
[생각이 많은가 보구나.]“아, 아닙니다. 스승님. 부르신 연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신식을 펼쳐 둘이 있는 공간을 완전히 격리했다.
분명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 터.
내 물음에 노조가 재미있다는 듯 희미하게 웃었다.
아마 그녀가 웃는 것은 화원에 있던 자들도 쉬이 보지 못했을 터.
노조가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말문이 막혔다.
무표정을 고수하던 그녀가 왜 나에게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뭐지? 설마 노조가 나를……?’
온갖 망상이 머릿속을 스친다.
화련이는 어떡하지?
노조와 나는 나이 차이가…….
‘아니 내 주제에 둘을 감당하는 건 어렵지 않을까?’
망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어진 노조의 말 때문.
[적(赤) 도우가 너를 보낸 것이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