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24
123화 용린대(龍鱗隊)(1)
명운표국 식구들에게 십육식을 전수할 때 나는 이것이 기초를 잡아 줄 것이라 이야기했었다.
건물을 짓는 것에 비유하자면 터를 다지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하는 것은 기초이되 기초보다 더 나아가야 했다.
뼈대 위에 살과 신경을 만드는 일이었고, 건물을 지탱할 기둥을 세우는 일이었으며, 도시 속 유동성을 원활하게 할 길을 닦는 일이었다.
더 빡세고 더 난해한 일이라는 거다.
하루 만 번이라는 충격적인 횟수에 매몰되었지만, 단순히 수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질도 높여야 한다.
‘미쳤네, 진짜.’
당연한 말이지만 처음에는 꽤나 헤맸다.
몸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 제법 부담이 되었고, 삼재일기공의 숙련도는 바닥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며칠은 정말 잠을 줄여 가면서 목표량을 채워야 했다.
그랬던 것이 어느 날부터 슬슬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내 몸이 미친 게 아닌가 싶었다.
재능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내 몸뚱어리에 사부님들이 대체 무슨 짓을 해 놓은 건지 궁금할 정도다.
[되네?]“……뭘까요? 이 끔찍한 기시감은?”
장삼풍 사부의 말에 갑자기 무당산에 있을 당시 피 나고, 알배기고, 이 갈리던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것들이 있었다.
“흡!”
“합!”
그때와 달리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함께 구슬땀을 흘리는 녀석들이 주변에 있다.
달마 사부의 말처럼 내가 하루 만 번의 수련을 소화하는 것을 보며 다들 자극을 받았는지, 더욱 열성적으로 수련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니까 가령.
“으아! 아직 천팔백십육 번이나 남았어!”
“씹!”
……이런 거 말이지.
막내는 아니지만, 막내의 성격에 까불거리는 기질을 담으면 딱 저렇게 된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는 오성 녀석의 외침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아주 지루하거나, 아주 힘든 일을 할 때 금기시하는 것이 있다.
시간이나 횟수를 자꾸 확인하는 거다.
시간이란 놈은 참 묘한 것이라 확인할수록 길게 늘어진다.
사부님들 반응을 보면 천상에서도 금기에 가까운 일인 모양이다.
오리 오형제의 실질적인 맏형격인 이궁도 얼굴이 굳어져 있다.
오성의 말을 듣고 본인이 실행한 횟수를 떠올린 것이 틀림없다.
문제는 이게 한 번 인식을 하면 계속 반복된다는 점이다.
호흡을 하는 도중에 숨을 쉬는 것을 의식하면 한동안 계속 의식적으로 숨을 쉬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달까.
“저 쉐리 담가 버려.”
“존명!”
“헛둘! 헛둘!”
이어 오리 사형제가 수련을 위해 가르친 십육식으로 오성을 조지기 시작했다.
“악! 아, 진짜!”
“입 다물어 짜샤.”
“닥치고. 엎드려.”
“엎드리세요!”
오리 사형제뿐만이 아니라 함께 수련하던 주소란과 명일서까지 합세했다.
수련을 하면서 입을 잘못 놀린 동료까지 조지는, 실익이 겸비된 효율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나도 슬쩍 끼어들어서 한 대 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참았다.
“좋군.”
최근 십육식의 수련을 함께하고 있는 장문경 선배가 옆에 있어서다.
무공 앞에 수치가 없다는 자평대로 십육식에도 큰 흥미를 보이셨다.
“이걸 정말 네가 만들었나?”
“예, 뭐…….”
장삼풍 사부와 달마 사부가 머리를 합쳐서 만들었다곤 할 수 없지 않은가. 결국, 내가 만들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놀랍군.”
내 수긍에 장문경 선배가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직접 해 보니 알겠다. 만 번을 반복하면 절로 형이 드러나고, 십만 번을 반복하면 스스로 태가 잡히는 수련이다. 그러면서 그 자체가 무공. 소림오권과 비견될 만해. 재능이 얕더라도 이를 반복하는 것만으로 먼 훗날엔 상당한 경지까지 이를 수 있을 거다. 꾸준한 노력과 반복된 수련으로 경지에 다다른다……. 그야말로 정도(正道)의 무공이라 할 수 있겠군.”
“아하하…….”
이제는 무안할 지경이다.
얼굴이 뜨끈뜨끈해지는 느낌에 볼을 문질렀다.
“……거슬린다.”
“그러네요.”
갑작스럽게 분위기가 바뀌었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재능 있는 후기지수가 눈에 거슬리니 밟아 버리겠다, 같은 말이 아니라, 정말로 거슬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장문경 선배가 바라보는 곳을 보았다.
담장 너머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것이 있다.
“어제부터였죠?”
“정확하게 잡아냈구나.”
누군가 명운표국을 주시하고 있다.
홍무문에 당한 참사 이후 망해 가던 표국이 갑자기 활기를 띠니 주변에서 관심을 가지는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무림의 유명인사인 장문경 선배가 있어 이목이 쏠리는 것이라 해도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방금 내가 본 것은 그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이쪽을 염탐하듯 바라보는 인물, 눈만 빼꼼 내밀고 있어 얼굴 전체 윤곽은 보이지 않았으나 쓰고 있는 모자는 분명 보였다.
“……관아의 포졸이 이곳을 염탐한다?”
염탐이란 몰래 남의 사정을 살피고 조사한다는 의미다. 대놓고 하지 못하는 행동이다.
‘관이 무림의 존재를 성가셔하는 것이야 일상적이지만, 표국은 이야기가 다를 텐데?’
삼양현에서 백가표국의 존재를 보아왔기에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 있다.
건실한 표국이 있는 마을이 얼마나 좋은지.
돈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그런 돈과 사람을 따라 상인들이 움직인다.
당연히 물류의 유통이 필요하다.
문제는 험한 세상인 만큼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길잡이와 물류를 지켜 줄 지킴이들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즉, 좋은 표국이 자리 잡고 있는 곳에는 상인들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승진을 위해 높은 근무 평점이 필요한 관리 입장에서는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장문경 선배가 원인이어도 이상하긴 매한가지다.
장문경 선배와 친분을 원한다고 한다면 당사자가 직접 방문을 해야 한다. 아무리 관과 무림이 서로 관여하지 않는다지만, 장문경 선배쯤 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지간한 명사(名士)는 비벼 보지도 못할 힘과 명성을 지니고 있다.
아예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는 것이라면 모를까, 부하를 보내 뻔히 보이게(?) 염탐을 한다? 시비 거는 것이라고 오해해도 할 말이 없는 일이다.
‘켕기는 게 있어서 지레 경계하는 거라면?’
그러자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종인걸.
명운표국을 이용해 먹고 끝내 무너지게 만들었던 욕심 많은 늙은이.
호북에서만 관직 생활을 이어 나갔던 자인만큼 이 부근에서 그 늙은이가 가진 인맥은 상당할 것이다.
‘가만히만 있진 않을 거라 생각했었지만, 관을 이용해 뭔가 수작질을 꾸밀 생각인가?’
대인인 척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음험함이 가득했던 늙은이의 얼굴을 떠올리니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서윤건 대인의 견제에 힘이 제법 꺾여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좀 흘렀다고 요즘은 조금 느슨해진 건가 싶다.
여러 가지 가정으로 머리가 복잡해지는 가운데, 장문경 선배가 조용히 조언을 했다.
“관과 문제가 있다면 상당히 귀찮을 거다. 그쪽은 우리와 셈법이 다르니까.”
“예.”
무림의 문제는 힘으로 해결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관은 국법(國法)으로 움직인다.
부당하더라도 관을 건드릴 땐 법을 통해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니면 드러나지 않게 손을 쓰든가.’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할아버지께 도움을 청해 보든가, 아니면 서윤건 대인에게 청을 넣어 보는 것이지만, 정황만으로 움직일 수는 없다.
‘일단 알아봐야겠어.’
“이화야.”
“예.”
내 부름을 듣고는 순식간에 곁으로 다가온 이화가 다소곳이 답했다.
“어디 사는 자인지 알아봐.”
“예.”
짧은 답변으로 끝내는 이화의 모습이 그 순간 스르륵 사라졌다.
딱 봐도 무공이 아닌 수법으로 움직이는데 그 모습이 신묘하기 그지없다.
‘내 주변에 있기 때문인가?’
술수들을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
내 주변에 있을 때 힘이 안정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것과도 연관이 있는가 싶다.
써 봐서 알지만, 확실히 불의 신력은 제어에 까다로운 부분이 있긴 하다.
장문경 선배도 그것이 신기했는지 잠시 이화의 모습을 쫓아 눈을 움직였다.
‘검법도 아닌데, 신경 끄세요.’
마교의 신녀인 이화가 장문경 선배의 이목을 끌었다는 게 좀 걸리긴 했지만, 어차피 저쪽은 술가(術家)의 영역이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 하더라도 장문경 선배의 성향을 파악한 지금이라면 사부님들께 도움을 얻는 것으로 얼마든지 고삐를 잡을 수 있다.
‘일단 급한 건 이쪽.’
막연한 추측에 불과하지만, 확신이 있었다.
‘쳐내야겠어.’
명운표국과 연을 맺은 이상 종인걸은 성가신 암초 같은 존재다.
질질 끌 것 없이 이참에 아주 정리를 해버려야겠다.
***
해가 저물고 어둠이 깊어진 시간.
사람들이 정신없이 자고 있을 시간에 밤거리를 나서는 내 얼굴에는 딱 봐도 수상쩍은 복면이 씌워져 있었다.
관에 속한 사람을 건드리러 가는 길이다. 얼굴이 드러나서 좋을 게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복면으로 가린 내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관에 속한 사람을 건드리는 것에 긴장한 건 아니다.
“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큿!”
[어허!]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는 건 좋은 버릇이 아니란다.]오늘 수련을 못 째서 그렇다.
한밤중에 움직여야 할 것 같다는 점을 들어 적당히 타협해 보려 했는데 돌아온 장삼풍 사부님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오늘 째는 만큼 다음 날에 얹어서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것도 이자까지 더해서!
‘고리대금업자세요?’
듣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말은 그것이었지만, 나도 그걸 입 밖에 낼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그저 아쉬울 뿐이다.
“내 수면 시간…….”
결국, 오늘 밤 움직이는 시간만큼 손해가 나는 건 내 수면 시간이라는 거다.
그냥 이화에게 다 맡겨 버리고 편히 쉬는 것도 고민했지만, 이내 기각되었다.
자칫 이화가 실수라도 하면 그땐 수습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 억울함은 반드시 이번 일의 배후들에게 풀어 버릴 거다.
내 수면 시간의 대가는 절대 싸지 않다.
앞장서서 안내를 하던 이화가 어느 민가 앞에 멈춰 섰다.
“음?”
그런데 목적지인 민가의 기색이 수상하다.
한밤중에 느껴질 기척이 아니다. 단순히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기척과는 거리가 멀다.
“선객이 있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문가로 다가가 보는데.
피익! 피피픽!
문을 뚫고 나오는 암기들이 정확하게 내 요혈들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따다다당!
독이 발라져 있을 수도 있기에 천마 사부의 권갑으로 암기들을 쳐냈다.
“다짜고짜?!”
콰각!
그 순간 문을 부수고 튀어나오는 그림자가 매섭게 나를 덮쳐 왔다.
장삼풍 사부의 청경과 천마 사부의 공감각이 나를 덮쳐 오는 기습을 명확히 파악했다.
“와! 씹!”
그것은 온몸의 감각이 경종을 울리는 광경이었다.
밀림의 뱀은 높은 곳에서 몸을 날려 먹잇감에게 쇄도한다고 하던가?
지금 눈앞의 광경이 그와 같았다.
수십 마리의 독사(암기)가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며 일순간에 쇄도해 온다.
그 중심에 있는 자. 살기 가득한 칼 두 자루를 쥔 자가 어두운 밤을 가르며 가장 크고 두터운 독니를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