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37
136화 신진 개방 고수?
건물 중심부가 뚫려 있는 구조라, 객잔 내부를 내려다 볼 수 있어 객잔 주인의 굳은 얼굴이 잘 보였다.
‘주인장이 뭔 죄람.’
말이 씨가 된다고, 뭔가 내 잘못 같다.
[카카카! 좋구나!]인성에 문제가 있는 돌원숭이는 신난 것 같지만.
‘에휴!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니, 귀를 닫을 수도 없고…….’
그러는 사이 소란의 주역이 안으로 들어섰다.
“젊네.”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뒤로 넘겨 하나로 묶은 외견에, 건장한 체격. 구김 없이 넓은 어깨는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는 듯 당당해 보였다.
선이 굵은 남성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호남형 사내가 호방하게 외쳤다.
“누구냐! 감히 창천 상단의 사람을 건드린 녀석들이!”
“창천 상단?”
들어본 적이 있는 곳이다.
무림에 발을 담그고 있다면 당연히 들어봤어야 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남궁세가.
의검천세(義劍千世)를 기치로 하는 거대 세가로, 사천당가와 함께 오대세가의 일좌를 차지하는 명문세가다.
그 명성과 힘은 구대 문파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된다.
‘아무리 외각이라지만, 안휘에서 남궁세가를 건드릴 만한 곳이라면…….’
하나 있었다.
장강수로십팔채.
장강을 터전으로 하는 수적 집단으로 그 악명은 녹림과 쌍벽을 이룬다.
사람은 숨만 쉬고 살아도 물자를 소모한다. 사람이 먹는 음식과 생활비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세가라 불릴 정도로 덩치가 크면 그만큼 소모되는 재화도 많다. 때문에 나름대로 소득원을 만들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사천당가의 경우 약과 약초를 통한 수익이 중심이라면, 남궁세가의 경우는 상단을 운영하여 수익을 벌어들인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남궁세가가 자리한 안휘는 물이 많고 수로와 운하가 잘 닦여 있어 배를 통한 물류의 소통이 편리했다.
운하와 수로를 바탕으로 세를 키우는 남궁세가 입장에서 안휘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장강을 그냥 놀려 둘 리 만무하다.
때문에 장강을 중심으로 상단을 꾸린 남궁세가와 장강을 중심으로 영업(?)을 하는 장강수로채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들었다.
‘얼핏 듣기론 최근 수로채 상황이 좀 안 좋다고 했지?’
장강수로채는 장강을 통해 물건을 운반하는 상선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한다.
다만, 녹림과 마찬가지로 나름 선을 지키는 편이다.
배를 전복시키고 물건을 모조리 강탈했다간 상인들이 수로를 포기하거나 관의 개입이 있을 수 있기에 적당히 통행세를 받는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최근 남궁세가가 안휘 바깥으로 영향력을 넓히면서 상인들을 흡수하자, 장강수로채의 입장이 곤란해졌다.
남궁세가의 그늘로 들어가는 상인들이 많아지면서, 영업제한으로 인한 수익감소(?)가 일어난 것이다.
장강수로채의 입장에서는 멀쩡한 밥그릇을 빼앗긴 억울한 상황이지만, 도적놈들에게 공감해줄 사람은 같은 사파뿐이다.
명분은 남궁세가에 있었다.
‘이제 수로가 아닌 곳에서도 부딪칠 만큼 관계가 격해졌나?’
들었던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궁세가의 후기지수로 보이는 청년이 호기롭게 외쳤다.
“어디 사내답게 나서 보거라!”
“크하하하! 어린 것이 주제도 모르고 까부는구나!”
청년의 도발에 열댓 명의 거한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눈을 부라렸다.
불쌍한 객잔 주인만 울상이 됐다.
남궁세가의 후기지수가 객잔 주인에게 전낭을 던졌다.
“그 정도면 충분할 게요.”
전낭 안을 살핀 객잔 주인이 감격한 얼굴로 물러났다. 제법 액수가 되었나 보다.
값도 치렀겠다, 제대로 날뛸 준비를 하는 남궁세가의 후기지수가 옆에 놓인 양초를 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잘라놓곤 불을 붙였다.
“이 초가 다 탈 때까지 두 다리로 서 있는 놈은 그냥 보내 준다.”
멋이란 멋은 다 잡고 있다.
“주인공이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흘렀다.
나중에 나이 좀 들어 떠올리면 이불깨나 걷어찰 언행이다.
“어떻게 생각해? 이게 네가 읽었던 소설 속 상황이라면?”
이화가 소란 속에 엉망이 되어 가는 객잔을 주시했다.
입을 놀릴 만큼의 기량은 있는지 남궁세가의 후기지수는 나름 수월하게 우위를 점해 갔다.
“식상합니다.”
“너도 어지간히 읽었나 보구나.”
놀렸다고 느낀 건지 이화의 입술이 살짝 튀어나왔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지는 귀여움이지만, 내 신경은 다른 쪽으로 움직였다.
“장강수로채도 엉성하게 손을 쓴 건 아니었네.”
객잔 손님으로 위장해 은밀하게 기운을 가다듬는 자가 있었다.
시선을 돌리는 광대들을 앞에 뿌려 놓고, 진짜 비수를 숨겨 두었다.
창천 상단을 건드린 것부터, 미끼에 낚여 온 자의 방심을 유도하는 설계까지.
우발적 충돌이 아니다. 누가 걸리든 진짜 죽일 생각으로 파 둔 함정이다.
[깨닫는 것이 늦다.]장삼풍 사부는 진즉에 파악하셨는지 타박이 날아왔다.
‘죄송함다.’
반성과 함께 젓가락 하나를 들었다.
쇠의 신력을 싣자 약하고 무른 나무가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주인공이 죽으면 쓰나.”
당가내란에서 봤던 당가 고수들의 모습들을 떠올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퍽!
“……!”
소란스러운 와중이었기에 당사자를 제외하고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을 소리가 얕게 울려 퍼졌다. 젓가락이 누군가의 손등을 꿰뚫는 소리다.
손등이 뚫린 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린 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제법이네.”
손등은 신경이 많이 몰려 있는 곳이다. 고통이 적지 않을 텐데, 나름 수련이 깊은 것 같다.
그자를 향해 한 구절의 말을 준비했다.
‘이렇게 하는 거였던가?’
얼마 전 신승 어르신을 참고하며 따라 해봤다.
입이 아니라, 의지로 말을 전하는 언어.
[움직이면 죽인다.]경악한 사내는 황급히 손등에서 젓가락을 뽑았다. 그리고 동상이라도 된 것처럼 바른 자세로 앉아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잘 전해졌나 보네.’
입이 아니라 생각으로 말을 전하는 전음 수법.
혜광심어라 불리는 초상승의 수법이라 잘될지는 반신반의였는데, 생각보다 잘된 느낌이다.
사부님들과 대화하며 느낀 감각을 최대한 살려 봤는데, 이렇게 잘 먹힐 줄은 몰랐다.
그렇게 숨겨진 칼을 무력화시키니 남궁세가의 후기지수를 막을 자가 없었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으면서 간혹 뒤를 힐끔거리는 자가 있었지만, 한눈을 판 대가는 비쌌다.
“흥! 목숨은 거두지 않겠다. 남궁의 자비에 감사하도록!”
날 선 검으로 열댓 명의 수적을 상대했음에도 죽인 자는 없다. 큰소리칠 만한 기량이다.
남궁세가 후기지수는 어깨를 당당히 펴며 들어왔던 모습 그대로 객잔을 나갔다.
때마침 촛불이 연기를 피워 올리며 허리를 흔들었다.
“고전적이네.”
연기 너머로 사라지는 남궁세가 후기지수의 모습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나는 어땠을까?’
답은 쉽게 나왔다.
내가 손을 썼다면 이 정도로 끝내지는 않았을 것 같다.
도시 한복판이니 죽이지는 않더라도, 평생 도적질 못 하게 반병신으로 만들어 놨을 것 같다.
손을 쓸 때 확실하게 싹을 잘라놓는 편이 나중을 위해서도 좋으니까.
‘손을 쓸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털어냈다.
이건 남궁세가와 장강수로십팔채 사이의 일이다. 이 이상 끼어들 명분도 없고, 이유도 없다. 무턱대고 제삼자가 남의 일에 개입해 봐야 좋은 소리 못 듣는다.
자칫 나중에 덤터기나 쓰지 않으면 다행이다.
‘조용히 가자, 조용히.’
같은 것을 고민하고 있었는지 지시를 기다리는 듯 빤히 바라보고 있는 이화가 눈에 들어오자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객잔 꼴이 엉망이라 오리탕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네.”
“……예.”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었는지 이화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
남궁세가의 후기지수 남궁한은 흐트러진 의관을 정제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함을 가장했다.
그렇게 짐이 가득 실려 있는 마차에 몸을 실으려는 찰나, 낭랑한 목소리가 남궁한을 불렀다.
“볼 일은 잘 보고 왔느냐?”
“아……. 예, 숙부님!”
서생처럼 수염을 곱게 기른 마흔 언저리의 사내였다.
남궁조. 이번 창천 상단의 책임자다.
“오래 걸렸구나.”
“하하! 뭐, 타지다 보니 속에 안 맞는 음식도 있고 하니까요.”
“그럼 객잔은 왜 뒤집었느냐?”
“예? 아…… 아하하…….”
남궁한은 당혹감을 감추기 위해 큰 웃음을 지으며, 예리하게 파고든 물음을 흘려내려 시도했다.
허나 이를 흘려듣지 않은 이들이 도처에 있었다.
“그놈들 손봐 주고 오신 겁니까?”
일꾼으로 보이는 이들이 눈을 반짝였다.
들뜨는 주변 분위기에 남궁한은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뭐, 사람들이 많은 객잔에서 목을 베는 건, 그곳 주인에게도 못 할 짓이니까. 그냥 몇 달 정도 기어 다니게 해주고 왔지!”
“이야! 역시 도련님이십니다!”
“야, 이 자식들아! 너희들 뒤처리, 도련님이 다 하고 오셨다!”
“와하하하하!!”
일꾼들이 소리치는 곳에는 팔다리가 부러져 부목을 대고 있는 이들이 모여 있었다.
통증에 인상을 쓰고 있던 그들은 동료들이 하는 말에 환히 웃으며 남궁한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남궁한은 한껏 들뜬 얼굴로 사람들의 환호와 지지를 즐겼다.
딱!
남궁조가 뒤통수를 후려치기 전까지는.
“함정이면 어쩌려고 혼자 그렇게 날뛴 게냐?”
“그깟 거 함정이랄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함정이었으면 어떻게 됐을 것 같냐고 묻는 거다.”
“뭐…… 설령 그딴 게 있었다고 해도 정면으로 깨부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깨부수기는. ‘결과만 좋았을 뿐인 게’ 말은 잘한다, 이 녀석아.”
딱!
남궁조는 혀를 차며 남궁한의 머리를 한 번 더 쥐어박았다.
“넌 더 맞아야 해, 이 멍청한 놈아.”
딱!
그렇게 세 번을 때리고 나서야 남궁조는 꾸중을 멈췄다.
이내 휙 고개를 돌려 멀어지는 남궁조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남궁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이번에는 짧게 끝났네.”
사고를 친 것에 비하면 조용히 넘어갔다 여겼기에 남궁한은 히죽 웃었다.
방금까지 이어지던 주변의 환호가 몸 어딘가에 남아있는지 자꾸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음? ……결과만 좋았을 뿐?”
뒤늦게야 뭔가 숙부의 말에 걸리는 부분이 있음을 깨달은 남궁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
조카인 남궁한의 성향을 알고 있던 남궁조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객잔 밖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위험할 정도로 기척을 죽이고 날을 세우던 자가 객잔 내부에 있었음을.
그리고 그런 자를 제압한 이가 있었다는 것도.
젓가락 하나로 제압한 자를 떠올리며 남궁조는 마을 바깥에 있는 다리로 시선을 돌렸다.
“분명 거지였지.”
허름한 거지 차림으로 객잔 이 층에 있던 이인조.
그 암기술은 사천당가의 고수라 해도 믿을 정도로 은밀하고 정교했다. 상당한 고수였다.
“떠나기 전 이곳 개방 분타주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고 가야겠군.”
뭔가 이상한 오해가 쌓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