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38
137화 일위도강 전설의 실체란
‘이게 뭔 소리야?’
안휘성 서부에 위치한 악서(岳西) 분타주 용풍개는 당황스러웠다. 남궁세가의 인물이 뜬금없이 찾아와 감사 인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남궁조 대협 이야기는…… 객잔에서 함정을 파고 기다리던 수적 놈들이 남궁한 소협을 노릴 때 우리 개방 식구가 도왔다, 이 말이지요?”
“맞소이다. 보지 못했다면 모르되, 본 일이 있으니 그냥 넘길 수가 없더구려. 소소하게나마 감사를 표하고자 하오.”
남궁조는 용풍개에게 정중하게 예를 갖췄다.
남궁세가가 안휘의 패자(霸者)이긴 하지만, 개방 역시 무림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다.
나이와 배분도 비슷했기에 서로 존중하며 예의를 갖추는 모습은 험한 무림에서 보기 드문 미담이라 할 수 있었다.
“식구들이 워낙 많다 보니 찾으려면 시간이 조금 필요할 듯싶습니다. 악서는 언제쯤 떠나십니까?”
“다친 사람들도 수습하고 해야 하니, 한 이틀쯤 후일 것 같소이다.”
“이틀이면 넉넉하겠습니다. 그전에 제가 찾아뵙죠.”
남궁조와 용풍개는 훈훈하게 자리를 파했다.
물론 용풍개의 남은 하루는 전혀 훈훈하지 못했다.
해가 저물고 모닥불이 밤을 밝힐 즘 되었을 때 용풍개가 분타에 모인 거지들을 향해 노기를 뿜어냈다.
“대낮에 객잔 가서 음식 사 먹은 새끼, 나와!”
거지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왁자지껄하던 평소 모습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일 때문에 개방 분타 몇 곳이 뒤집힌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개방이 거지 방파라 하지만, 무림 세력이기도 하다. 알뜰살뜰하게 운영비를 관리하다 보면 은근히 재산이 쌓이는 분타도 있다.
당연히 개방 거지들도 사람이다 보니 제대로 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일부 개방 거지들이 흥청망청(?) 돈을 썼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사람들이 거지에게 적선하는 이유는, 그들이 못 먹고 못 입기 때문이다. 불쌍하니까 동냥을 주는 거다.
흥청망청 돈을 쓰는 거지는 적선의 대상이 아니다.
적선이 사라지자 개방은 생존을 걱정할 정도로 재정이 쪼그라들었다.
이후, 개방에서는 절대 남들이 보는 앞에서 돈을 써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생겼다.
물론 알음알음 몰래 간식을 사 먹거나 하는 일들이 아주 없어지진 않았다. 그래도 대놓고 하지만 않으면 못 본 척 눈감아줬다.
다만, 이렇게 공론화된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빨리 자수해서 광명 찾자. 밤새 돌아가면서 처맞기 싫으면 빨랑빨랑 나와라.”
흉흉한 용풍개의 모습에 개방도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갑자기, 그건 왜…… 찾으십니까?”
“남궁세가의 대단하신 분이 찾으신다.”
“아니, 갑자기 남궁세가 놈들은 또 왜…….”
사태를 파악한 개방도가 구시렁거리며 투덜댔다. 그리고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의심하고, 행적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쳤음에도 범인(?)은 나오지 않았다.
“못 찾았으면 찾아내. 내일 이 시간까지 확실하게 찾아내서 보고 올려. 아니면 내 직접 똥구멍으로 밥 처먹는 법을 가르쳐준다.”
“아하하하…….”
“농담 같냐?”
설마 하던, 개방도들이 숙연해졌다.
그리고 번들거리는 용풍개의 눈빛을 보고 확신했다.
저 새끼, 진짜다.
***
약조대로 용풍개는 떠날 채비를 갖춘 남궁조를 찾아갔다.
어딘가 피곤해 보이는 용풍개를 보며 남궁조가 말했다.
“혼자 오셨구려.”
“그렇게 됐습니다.”
“허면…….”
용풍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남궁 대협께서 보신 그 인물은 개방 식구가 아닌 것 같습니다.”
딱딱 끊어지는 말투가 뭔가 짜증 나는 민원을 처리하는 관원 같다. 왜 사람 귀찮게 만드느냐는 무언의 항의가 섞여 있는 것이 확실했다.
“흐음……. 분명하오?”
“분명합니다. 꼼꼼하게 확인을 마쳤으니까요. 개방 식구였으면 분명 어젯밤에 자수…… 아니, 시인한 녀석이 있었을 겁니다.”
“내가 잘못 보았다……라.”
남궁조는 남궁조대로 심히 불편했다.
안목을 의심받는 형국이니 속이 거북한 것이 사실이었다.
턱수염을 매만지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남궁조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럼 ‘그런 것’으로 해 둡시다.”
뭔가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남궁조는 미리 준비한 물건인 듯 품에서 전낭을 꺼내 용풍개에게 건넸다.
‘그런 것’으로 해 두자.
이게 또 듣는 입장에서는 기분을 묘하게 하는 말이었다.
“우리가 받을 돈 같진 않지만, 뭐 거지답게 적선이라 생각하고 잘 받겠소이다.”
잠깐 눈을 찡그린 용풍개가 전낭을 챙겨 몸을 돌렸다.
남궁조가 머문 객잔에서 한참을 멀어진 용풍개가 불평을 토해냈다.
“아, 개방엔 그런 놈 없다니까. 하여간 오대세가 새끼들, 의심을 더럽게 많아 가지고.”
쌓였던 짜증이 용풍개의 등을 떠밀었다.
“쓰벌. 진짜 뒤를 한번 캐 봐?”
***
“허! 나 이거야 원. 감사를 표하겠다는데, 너무하는군. 누가 봐도 개방 제자로밖에 볼 수 없는 고수들이었는데.”
하지만 내심 이해가 되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흐음…… 그 정도로 숨기고 싶은 제자라는 건가?”
가능성 있는 추론이 물꼬를 틀자, 그를 뒷받침하는 주변의 정황과 소문들이 끼워 맞춰졌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풍문으로 들은 소식도 그랬지. 무당과 소림이 손을 잡고 비밀리에 제자를 길렀다던가?”
안휘는 약간 동쪽으로 치우쳐 있다. 반면, 풍문의 주인공은 서쪽 끝에서 활약하며 이름을 날렸다.
대륙을 가로질러 넘어올 정도로 그 기재에 대한 소문은 남달랐다. 소문을 들으면서도 쉬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사천당가와 청성파가 연관되어 있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
주어진 정보들을 종합하자 남궁조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도 구파 공동 제자를 만들려 시도한 일이 있었지. 개방의 태도를 보니 이번에는 개방까지 발을 담근 걸지도 모르겠군.”
거하게 엇나가고 있었다.
주어진 정보만으로 종합해 본다면 일견 타당한 추론이라 볼 수도 있지만.
“흐음…… 어째 오대세가를 따돌리는 형세인데……. 이렇게 된 거 어디 한번 파 볼까?”
어느 순간 개방의 용풍개와 비슷한 결론에 다다랐다.
***
악서에서 출발해 부지런히 움직이니, 어느덧 눈앞에는 수평선이 보일 만큼 거대한 폭의 강이 앞을 가로막았다.
“장강(長江)인가.”
깊고 넓어 배를 타야만 건널 수 있는 강이다.
물론 장강의 모든 물줄기가 이토록 깊고 넓진 않을 것이나,
하지만, 이곳을 넘어가려면 배를 타는 것은 필수다.
[그래 봐야 한 걸음이지. 카카카카!]“예예, 대단한 건 잘 알고요.”
손오공의 자랑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구름을 타고 놀았다는 이야기가 있는 양반이다. 진지하게 대해 봐야 나만 손해다.
그보다 오히려 다른 쪽이 더 궁금했다.
“달마 사부는 정말 갈댓잎 하나에 몸을 실어 건넜대요?”
달마 사부의 일화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이야기. 바로 일위도강(一葦渡江)에 대한 전설이다.
일설에 따르면 달마 사부는 갈댓잎을 배 삼아 이 거대한 물줄기를 건넜다고 한다.
워낙 가슴이 웅장해지는 이야기라 나도 모르게 강가 주변에 갈댓잎 하나를 뜯어 만지작거리는 중이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동화(同化)의 법을 깨우친 너도 충분히 가능한 일일걸?] [캬캬캬캬! 난 한 걸음이면 족하다니까.]하지만 달마 사부께서 계시지 않아 그런지 돌아오는 반응들이 시큰둥하다.
“너무들 하시네요.”
[너무하기는 무슨. 너, 그 전설의 진실이 뭔지는 알고 있냐?]“예?”
전설의 진실이라니?
[강가에서 갈댓잎을 띄우면 잎이 강을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넘어가디? 아니면 외곽 부근에서 촐싹거리다 다시 잎이 띄워진 강기슭으로 밀려나디?]장삼풍 사부의 말을 들어보니 그랬다.
“어…… 그럼…… 설마?”
[한쪽 발로는 갈댓잎에 몸을 싣고 다른 한쪽 발로는 오리마냥 신나게 발길질했다더라. 남들이 보고 있어 근엄은 떨어야 하니 몸은 꼿꼿하게 세워 놓고, 티 안 나게 발등만 깔짝거리면서. 강 못 건너갈까 봐 식은땀까지 흘려가면서 발등을 깔짝거렸다는 것이 그 전설의 실체란다, 제자야.]“노력……하셨네요.”
현실의 잔혹함이란!
그냥 듣지 말 걸 그랬다. 그랬다면 멋들어진 전설로 영원히 남았을 텐데!
‘이렇게 듣고 보니, 확실히 달마 사부도 지상에 있을 때는 많이 사람다우셨구나.’
물론 지금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인간미가 철철 넘치시기는 하지만 지금 들은 이야기는 뭔가 좀 신기했다.
철없던 시절을 듣는 느낌이랄까.
생각해 보면 소림에 남겨 놨었다는 중토신공의 구절도 그런 느낌이긴 했다.
뭔가 좀 더 가까워지는 느낌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웃었네? 카카카카! 달마한테 일러야지! 카카카카!!]“철 좀 듭시다, 제발.”
‘확실히 저 양반들보단 인간미가 넘치시지.’
갑자기 자리를 비우고 계신 달마 사부가 그리워졌다.
또 갑자기 일거리가 늘어서 자리를 비우신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서장 쪽에 뭔가 사건이라도 터진 건가?’
걱정은 여기까지.
내가 여기서 걱정한다고 달마 사부의 일거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니까.
마침 기다리던 배가 도착했다.
출렁!
배에 올라타자 묘한 느낌이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단단한 육지를 밟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애매하네.”
무공 수련을 할 때 귀에 박히도록 듣는 소리 중 하나가 힘은 하체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힘을 지탱하고, 끌어올려, 박차고 나가는 것까지. 모든 것이 하체의 힘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이런 불안정한 곳에서는 힘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내 고개를 휘휘 저었다.
‘별생각을 다 한다.’
뼛속까지 무림인이 되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배에 올라탔을 뿐인데, 어떻게 싸워야 할지부터 생각하고 있다.
“으음…….”
이화 역시 몸이 출렁거리는 이 느낌이 낯선지 묘한 신음을 흘렸다.
“아따, 어린 아가씨는 배가 처음인갑네. 그람 배 난간 쪽으로 가서 서소. 가운데 있다가 속 뒤집어지면 대참사인께.”
배를 모는 사공이 능숙하게 사람들을 살피며 지시를 내렸다.
배에 탄 사람들이 아빠 미소를 지으며 이화를 위해 자리를 비켜줬다.
“…….”
정작 배려를 받은 이화는 어린애 취급ㅁ받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무표정하게 입을 다물고 있다. 묘하게 삐진 아이처럼 보였다.
머리를 쓱쓱 다듬어주는 것으로 이화를 달랬다.
“…….”
여전히 이런 대우를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
배를 타고 장강을 가로지르는 일은 특별하다고 할 정도의 경험은 아니었다.
하지만 배가 장강 중심쯤에 왔을 때 문제가 생겼다.
“저거…… 수적 같은디…….”
사공이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강물의 흐름을 타고 빠르게 내려오는 배가 보란 듯 깃발을 펼쳤다.
“수룡채(水龍寨)……. 맙소사. 아이고, 용왕님.”
장강수로십팔채의 하나.
수룡채의 해적선이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카카카카!]이 인성이 결여된 돌원숭이는 신나서 웃고 있다.
[카카카! 저놈들 재미있는 짓거리를 하려고 하네. 카카카카!]왜 그런가 했더니 저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기라도 한 모양이다.
“……그게 들려요?”
[입술을 읽었지. 카카카! 이게 독순술이라는 거다. 넌 못 하냐?]‘거, 못해서 죄송합니다.’
소리가 들리지는 않지만, 입술을 볼 정도의 거리는 되나 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뭐라는데요?”
[배에 탄 사람들을 인질로 삼아 남궁세가를 끌어들일 생각이라는데? 카카카. 정파 놈들 체면 따지는 걸 생각하면 무시는 못 할 거란다. 카카카카카!]결국, 남궁세가와의 문제에 민간인을 끌어들이겠다는 소리다.
병신 같은 짓거리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지만.
“아! 수적 새끼들이지.”
저것들은 원래부터 민간인들을 털어먹는 작자들이었다.
“어휴!”
한숨부터 나왔다.
‘조용히 도화 좀 챙기겠다는데, 왜 이리 걸리적거리는 것들이 많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