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69
168화 얼씨구?
흑룡채주 만산호는 표국과 손을 잡고 물류 유통 사업에 뛰어들자는 강무채주 단야흔의 의견을 미친놈 헛소리 취급을 했지만, 생각보다 단야흔의 의견에 찬동하는 채주들이 많았다.
기호지세인 상황이라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을 뿐, 감당 못 할 만큼 덩치가 불어난 지금 나름 내일에 대한 걱정들을 한 모습이었다.
산 아래로 내려가 패권 세력으로서 자리를 잡으려 한다면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박힌 돌들과의 싸움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최후는 매우 암울할 가능성이 크다.
전투에선 승전할 수 있으나, 전쟁에선 패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보급이 문제다. 현재 녹림은 장기전을 감당할 역량이 없다.
사실 그 역량이 있다면 굳이 박힌 돌들과 칼부림할 필요도 없다.
한데 그에 대한 해결책 비스무리한 것이 제시되었다.
게다가 잘만 하면 제일 위험한 관의 개입도 배제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그 때문인지 이번 녹림 대통합에 부정적이던 채주들의 파벌도 슬그머니 생각을 바꾸는 추세다.
하지만 정작 대진표국으로 초대장을 보낸 만산호는 여전히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것이란 부정적인 생각을 고수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표국 놈들이 미쳤다고 여길 오겠어?”
이 사업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바로 표국이다.
당연하다.
녹림이 설령 패권 세력이 되어 산 아래로 내려간다고 해도 그 근본은 결국 박도와 도끼를 들고 어슬렁거리다 지나가는 상인들을 갈취해서 먹고사는 산적들이다.
그런 산적들이 유통 사업을 개업했으니 물건을 맡기라는데,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미친놈이 과연 있을까?
뭐, 세상은 넓고 미친놈들은 많으니 대진표국 같은 머리에 뭐 하나가 빠진 놈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야말로 백에 하나, 만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희귀종이다.
대다수의 정상적인 작자들은 굶주리기 시작한 맹수 근처로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결국, 녹림에서 이 사업을 개업하기 위해서는 표국을 끼고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거래 실적이 쌓이며 신뢰 관계가 생기면 모를까, 녹림 단독으로 건드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내심 녹림대통합의 주역이자 표국에 초대장을 보내자는 의견을 밀어붙인 천자산 천신채의 채주 건룡대도 벽지심 역시 이 일에 부정적이라 확신했다.
워낙 터무니없는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외의 일이 벌어졌다.
“왔다고?”
“왔네.”
“그놈들 미친 거 아니야?”
“그거야 만나 보면 알 수 있겠지.”
단야흔이 유쾌하게 웃었다.
과연 이 미친놈들과 손을 잡아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생긴 만산호는 더욱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게 단야흔과 천자산에 올랐다는 표국을 보러 간 만산호는 자신이 했던 말을 번복해야 했다.
“……미친놈인데?”
아무리 이쪽에서 잘못을 했다지만, 참지 않고 바로 들이박는다?
어지간히 담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이만한 숫자의 거한들이 노려보면 오줌을 지리고 주저앉는다.
현실은 그와 반대로 이쪽이 지리는 중이다.
상당한 실력이 있더라도 한 손이 열 손을 감당하지 못하는 법이다.
여기 모여 있는 머릿수는 열 손 수준이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싸움을 걸어오는 것이라면 절대로 정상일 수 없다.
“좋은데!”
“안 좋아!”
미친놈이 좋다고 하는 것은 걸러야 하는 것이 만수무강에 이롭다.
새삼 그 이치를 뼈에 새기며 만산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런 만산호조차 표국 깃발 아래서 기세를 피워 올리는 자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산을 오른 표국 일행은 시작부터 강렬한 존재감으로 모든 녹림도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
“산적에게 뭘 바라는 건지 모르겠군.”
산적들 사이에서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아마 채주들 중 하나.’
그것도 꽤나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로 판단되었다.
이죽거리는 낯짝이 마음에 들지 않는 작자였다.
백진성 아저씨가 내 어깨를 짚으며 앞으로 나섰다.
“저 양반하고는 내가 대화하마.”
“아는 작자세요?”
“무식하게 큰 구환도에 벼락 맞은 꼴인 수염을 보면 뻔하지. 건룡대도 벽지심일 거다. 여기 천자산에 자리 잡은 천신채의 채주지. 이번 녹림칠십이채의 소집을 주도한 자라고 보면 되려나?”
현재 천자산의 분위기를 보면 녹림왕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백진성 아저씨의 설명대로라면 저자가 녹림왕에 가까운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은 알겠다.
본인을 알아본 백진성 아저씨의 말에 벼락 맞은 꼴의 수염을 한 산적 놈 벽지심이 여유롭게 웃었다.
“내 소개는 할 필요가 없겠군. 그쪽은?”
“백진성. 백가표국의 국주요. 호북 표국들을 대표해서 왔소.”
“백가표국이라…….”
지역이 다른 탓인지 바로 떠올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산 아래로 내려갈 일이 드문 녹림 도적 입장에서 굳이 타 지역 표국 이름을 일일이 알 필요가 없긴 하다.
하지만 곧 눈가에 이채를 띄며 백진성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호북에 그런 표국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군. 흐음……. 호북의 백가표국이라…….”
여전히 생소해 하는 반응을 보면 조금 전 들어봤다는 말은 거짓말 같다.
아무래도 누가 전음으로 알려준 것이 아닌가 싶다.
허나 나름 관심은 생기는지 눈을 굴리며 이쪽을 탐색했다.
“하나뿐이지만, 그래도 오긴 왔군.”
마음을 정한 사람이 품는 방향성이랄까, 대답하는 목소리 속에는 전에 없던 심지가 서 있는 것이 느껴진다.
“좋아. 받아들이지. 초청해놓고 손님 대접이 미흡했다는 것은 사실이니.”
그 순간 무언가가 번뜩이며 허공을 갈랐다.
퍼억! 퍼억! 퍼억!
우리가 박살 내놓은 산적들 머리에 손도끼가 하나씩 날아와 박혔다.
“됐나?”
지금부터는 제대로 손님 대접을 해주겠다는 의미로 봐도 좋을 거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이전의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소주를 다녀오며 부딪쳤던 거록채주가 손도끼를 참 매섭게 썼던 기억이 났다.
‘성깔깨나 있던 작자였는데. 여기서 나를 보면 다짜고짜 달려들…….’
“너 이 새끼! 잘 만났다!”
흉흉한 기세의 거한, 거록채주 악군패가 자기 체구만큼이나 거대한 도끼로 내 머리통을 쪼개겠다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흉흉한 시도는 미수에 그쳐졌다.
“나도 잘 만났다! 이 망할 중생 놈아!”
여기가 어딘지 아랑곳없는 신승 어르신의 일장이 악군패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빠악!!
“……꾸엑!!”
딱 내 머릿속에 그려졌던 모습 그대로 날아간 악군패가 바닥을 굴렀다.
‘저 양반도 운이 없지.’
어지간한 고수는 이름도 내밀지 못할 강자이긴 하지만, 신승 어르신은 급이 다르다.
“이놈! 이놈! 이놈!”
“크악! 악! ……소, 소림? 어억!”
“손에 사정을 두었다 하나 단번에 뭉개지지 않는 걸 보니 잡탕인 주제에 연금강 성취가 제법이구나!”
반쯤은 정말 죽일 생각이셨던 모양이다.
순식간에 피박살이 나 쓰러진 악군패를 신승 어르신이 가차 없이 짓밟았다.
어찌나 흉흉한지 무게감 있게 근엄 떨던 벽지심도 당황하며 뭘 어찌 손을 써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느낌이다.
백진성 아저씨가 재빨리 선수를 쳤다.
“우릴 손님 대접해 주겠다고 했소이다. 저쪽이 먼저 달려든 건 그 이후였소.”
“그렇긴 한데…….”
“거 어르신께 개겼는데 살아 있으면 다행인 거 아니오. 쪼잔하게 굴지 맙시다. 그렇다고 저 잡놈들 처리하듯 대가릴 쪼갤 것도 아니잖소?”
“으음…….”
벽지심이 침음을 삼키며 뭔가 꺼내려던 말을 꿀꺽 삼켰다.
대충 뭔 말을 하려 했는지 짐작은 갔다.
‘오히려 신승 어르신이 대가리 깨는 거 아니냐고 물으려는 거겠지.’
안 그래도 좀 걱정되는 부분이긴 하다.
선 넘기 전에 말리긴 해야겠다.
***
다행히(?) 악군패는 죽지 않았다.
일단은.
천신채주 벽지심 역시 악군패를 박살 낸 신승 어르신이나 우리에게 책임을 추궁하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대수롭지 않은 듯 일을 넘기며 우리를 산채 내 적당한 장소에 자리 잡게 안내까지 해주었다.
누구나 자기 새끼가 처맞고 오면 화를 내는 법인데 벽지심에게서는 그런 감정적인 반응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악군패가 아군이 아니라는 것처럼.’
아직 대통합이 이뤄지기 전의 상황인 만큼 서로 파벌이 다른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묘한 말까지 남겼다.
“흥미로운 조합이라고 했지?”
어떤 의도가 느껴지는 기색이 종 노인을 향했다.
소림 고승과 절정의 마인이 한자리에 있는 기묘한 상황을 주목한 것 같다.
‘소문이 퍼진다고 해도 종 노인이 적이 아니라는 걸 주지시키면 대처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주목을 피하긴 어렵겠네.’
“생각이 많은 얼굴이구나.”
“아!”
어느새 신승 어르신이 다가와 있었다.
“종극을 걱정하는 거라면 그럴 필요 없다. 정 문제가 된다면 내가 붙잡아두고 교화시키는 중이라면 그만이다.”
“감사합니다.”
정파 무림에서 신승 어르신의 이름값은 크다. 신승 어르신의 보장이라면 마냥 무시할 수 없을 거다.
“한데, 종극 그 친구에게 마치 네가 주인인 것처럼 말하더구나.”
“……예?”
새로운 짐이 떨어져 내리기 전까지는.
어떻게 보면 무척이나 위험한 내용이다.
신승 어르신은 종 노인이 할아버지에게 의탁한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뭐, 이제 와선 굳이 따질 일도 아닌가.”
하지만 대답이 궁한 내 모습을 보셨음에도 신승 어르신은 굳이 깊게 따지고 들지 않으셨다.
“믿고 있으마.”
오히려 내 어깨를 툭툭 치곤 다른 곳으로 쓰윽 가버리셨다.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을 하시는 건지.
신승 어르신은 연륜이란 말과 거리가 먼 분이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한시름 놨네.’
그간 고심하고 있던 부분 하나를 넘겨도 되겠다.
그럼 이제 고민해야 할 부분은 세 가지다.
녹림이 정말 대통합을 이룰 수 있는 것인지.
우릴 초대한 이유는 무엇인지.
정보 좀 달라는 정신 나간 요구에 대한 대응으로 생각 없이 초대한 것 같지는 않다.
우리를 대하는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적어도 누군가 독단적으로 행한 행동이 아니라, 어느 정도 의견을 합치하여 초대장을 보낸 것이다.
목적이 있다는 의미이다.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멀쩡한 정신으로 다시 보자고 하였으니 그때 본론이 나올 거다.
그리고 어쩌면 내게 있어서는 더 중요한 것.
“내가 이곳에서 얻어야 할 게 있다는 건 뭘 말하는 거려나?”
내가 진짜 이곳으로 발걸음을 하게 된 이유.
천마 사부가 여길 와서 얻어야 할 것이 있다고 콕 집어 지시했기 때문이다.
“물의 신력이면 좋겠는데.”
오행신력 중 넷을 얻었다. 남은 것은 물의 신력뿐이다.
오행상성이 완전해지면 상생상극의 조화가 이뤄지게 될 것이다.
힘의 조화가 완벽해짐은 곧 내 역량이 크게 상승하는 것을 의미한다.
완성된 오행신력의 힘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해보자 절로 가슴이 떨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 밤이 찾아왔을 때 나는 천마 사부가 말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
“말해라. 낮에 천자산을 뒤흔든 마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
혹시 부친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화를 쏙 닮은 중년 사내가 한밤중에 찾아와 거만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 안의 기운이 네게 반응하는군. 설마 너도 마인인가?”
설마 얻어야 한다는 것이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저기, 천마 사부?
잠깐 좀 나와 보시죠?
“그렇다면 영광으로 알아라. 이는 진짜 천마를 따를 기회를 주는 것이니.”
얼씨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