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93
192화 하늘에 든 마
말을 타고 한나절을 달렸지만, 아직 청해를 벗어나지 못했다.
곤륜파가 세심하게 관리할 힘은 없겠지만, 그래도 곤륜파의 영향력 아래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마인이 튀어나왔다?
“반천파인가?”
“그럴 겁니다. 아무래도 저희 움직임이…… 새어나간 모양입니다.”
임아형은 수치심에 얼굴이 시뻘게졌다.
반대로 이화를 비롯한 나를 따르는 이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단순하게 본다면 순천파에서 내부 단속을 하지 못했다는 정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중립파의 수뇌인 종 노를 반천파와 충돌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린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천파라…….”
상당히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자들 같다.
‘아니면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거나?’
계획을 수정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내용이다.
“이자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 있나?”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마교가 삼양현처럼 쪼끄만 동네도 아니고, 마교 정도의 규모라면 자기 소속이 아닌 다음에야 안면을 익히지 못한 경우도 수두룩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가 좀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다만, 달리 확인이 가능하다는 듯 종 노인이 나섰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신음을 흘리는 마인에게 다가가 소매를 어깨까지 걷었다.
그러자 검은색으로 문신이 된 꽃 모양이 드러났다.
“마화단(魔花團)이군요. 반천파 쪽이 맞는 모양입니다.”
“맞습니다. 마화단은 모두 반천파에 소속되어있습니다.”
임아형 역시 종 노인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럼 다음 문제는 이자가 왜 여기 있느냐는 건데…….”
크게 두 가지로 추정이 가능하다.
이쪽의 정보를 확보하기 위한 척후(斥候)이거나, 기습을 위한 매복(埋伏)이거나.
만약 후자라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이든 임아형을 비롯한 세 사람의 행적이 드러났다면, 이들이 움직인 이유 역시 알려졌을 터다.
종 노를 데려오는 것이 임무임을 알면서도 기습을 계획했다면 무척이나 위험한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저들 중에 종 노를 상대할 만한 전력이 있다는 의미…….’
종 노는 마교에서도 ‘손꼽히는’ 고수라고 했다.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지만, 달리 말하자면 종 노 수준의 고수가 아주 없지는 않다는 소리다.
“천마 사부.”
나는 혼잣말로 천마 사부를 불렀다.
작게 중얼거린 소릴 들었는지 종 노가 흠칫하는 모습을 보였다.
“혼잣말입니다.”
“……예.”
혼잣말을 할 때는 관여하지 말라는 지시를 떠올렸는지 종 노는 고개를 숙인 뒤 한 걸음 물러났다.
[눈치챘을 거다. 아니, 이 경우는 확신이라고 해야겠군.]“종 노라면 상관없잖습니까.”
[하긴, 저 녀석이라면 그렇기야 하지.]천마 사부가 기묘한 웃음을 지으셨다.
[그래, 뭘 묻고 싶은 거냐?]“청조를 함부로 부리지 말라고 하셨었지요. 천상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존재라 인과로 인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요.”
[그랬지.]“이건 문제가 없을까요?”
청조에게 잡혀 온 마인은 사지의 힘줄이 끊어지고, 주요 경혈을 정확하게 파괴당했다. 이래선 오래 살긴 글렀다.
내 속내를 읽기라도 하신 듯 천마 사부의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청조는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그렇군요.”
생각보다 청조에게 걸려있는 제약은 큰 것 같다.
그 제약을 감수할 정도의 일을 한 것이다.
“……청조가 경계해야 할 정도의 강자가 온 거군요.”
삐이익!
청조가 날개를 퍼덕이며 내가 내놓은 추론을 긍정했다.
‘후자였나?’
곧 만나게 될 존재는 종 노조차 버거울 정도의 강자일 것이다.
그만한 강자가 단순히 산책이나 하러 왔을까?
“종 노.”
“예.”
“교에 종 노보다 확실히 강하다고 할 만한 사람이 누가 있지요?”
“오대마존 사이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만…… 굳이 꼽자면 입천신마존(入天神魔尊)이 있습니다.”
“입천(入天)에 신마(神魔)라…….”
거슬리는 단어가 한가득 들어 있는 별호다.
천마 사부를 신으로 모시는 마교에서 별호에 신(神)이라는 글자를 넣고, 하늘에 든다는 입천(入天)이라는 단어를 쓴다?
[아, 그놈.]얼굴을 굳히는 종 노의 반응과 더불어 천마 사부가 알은척을 하신다.
그런데 반응이 예상과 다르다?
마교의 마인들이 짜증 난다며 똥물에 튀기는 것으로 화풀이를 한다고 하셨다.
별호를 들어보면 그 자체로 천마 사부에 대한 도전처럼 느껴지는데, 그걸 기꺼워하신다.
[그놈이 온 거면 청조가 경계할 만하지.]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시는 눈치다.
“싸우면 질까요?”
[그놈 손에 삼 초식을 견뎌내면 칭찬해주마.]“후우…….”
그 정도 격차라는 것이다.
하지만 울컥 속이 뒤집혔다.
‘삼 초식은 너무한 거 아닙니까?’
오행신력까지 끌어낸다면 삼 초식쯤 못 버틸까.
목구멍까지 반발이 치솟았지만, 내뱉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마음이 떠올랐다.
“얼굴 한번 보고 싶네요.”
치기 어린 결정이 아니다.
청조는 위험하니 피하라는 의미로 나선 모양이지만, 이 상황에서 등을 돌리고 도망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애초에 마교에서 내 무공이 대세를 뒤엎을 만한 힘을 발휘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번 마교행에서 내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내가 천마 사부의 적통이라는 것이다.
그런 내가 마교 최강자로 짐작되는 이가 등장했다는 정황에 도망쳐 버린다면?
천마 사부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꼴이다.
천마임을 자칭해 본들 아무도 나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노신이 지키겠습니다.”
종 노인이 내 마음을 헤아려주었다.
“믿습니다.”
***
한밤중, 초원의 마력이 감도는 밤의 장막을 가로질러 나아가자 걸터앉기 좋아 보이는 바위 위에 한 사람이 있었다.
놀랍게도 겉으로 보기에는 기껏해야 서른을 넘겨 보이는 정도였다.
저자가 입천신마존이라면 절대로 보이는 대로의 나이일 리가 없다.
‘반로환동.’
극에 다다라 다시 젊어진다는 노화순청의 경지.
가만히 앉아있을 뿐인데 주변의 공기가 흔들린다.
그 중심에 앉아있는 강자가 시선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흐음! 적어도 하룻강아지는 아닌 듯한데…….”
지루함을 달래기 위함인지 손에 차돌 두 개를 쥐고 굴리던 그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콰직!
단번에 부서진 돌의 파편이 떨어져 내렸다.
먼지를 털어내려는 듯 손을 젓자 눈앞으로 광풍이 불었다.
콰아아아아!
내력이 실린 돌의 파편이 일순간 세상에 다시 없을 흉기가 되어 쏟아졌다.
콰앙!
힘을 끌어올린 나는 즉각 발을 굴렀다.
내가 일으킨 힘의 역장이 공기를 굴절시키며 광풍에 맞섰다.
퍽! 퍼퍽!
폭우처럼 쏟아지는 돌조각이 영역에 닿음과 동시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천마군림보?”
입천신마존의 눈가에 이채가 어렸다.
“종극이 돌아오지 않은 이유가 있었군. 거기에 천산의 신조까지 따르니 천마의 적통이라 할 만하다.”
시험이라도 당한 기분이다.
입안이 껄끄럽다.
내 옆에서 종 노가 물었다.
“그래서 직접 나서신 게요?”
“맞아. 그대를 움직이게 한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버러지들이 득실거리는 교에서도 그대는 내가 인정한 몇 안 되는 이이기 때문이다.”
마교의 마인이 마교를 버러지 소굴이라 평한다.
그 이질적인 모습에 절로 천마 사부가 떠올랐다.
천마 사부가 왜 이자를 기꺼워하는지 알 것 같다.
‘천마 사부가 지상에 있을 때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막연한 상상이지만 직접 뵌 적이 없는 천마 사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돌연 입천신마존이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흡?!”
돌연 어마어마한 압력이 몰아쳤다.
물리적인 힘이 아니다.
이는 마치 영혼을 꿰뚫는 듯한 충격이다.
‘이경천이 쓰던 그것과 비슷하지만…… 차원이 달라.’
이경천이 수작질을 부렸을 땐 묵직하단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내 중단전에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건 심장을 직접 두들겨 맞는 것 같은 충격이다.
심장이 부서질 것 같다.
‘청명심법이 아니었다면 험한 꼴을 봤겠어…….’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것 같은 압박에 청명한 호흡이 내 중단을 보호하며 힘을 일으켰다.
“과연.”
입천신마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주제도 모르고 탐식마군이란 별호를 쓰던 버러지가 있었지. 남의 내공이나 강탈하며 힘을 키운 놈이라 그런지 심기가 종잇장 같은 놈이었다. 적어도 그 버러지보다는 낫구나. 그놈은 오줌을 지리며 살려 달라 빌었었단다.”
내 손으로 죽였었기에 알고 있다.
내 특성 덕분에 이기긴 했지만, 본신의 기량은 구파 장로조차 농락할 정도로 강한 무인이었다.
‘그런 자를 눈빛만으로 제압했다니…….’
새삼 얼마나 엄청난 괴물인지가 가늠이 되었다.
삼 초식을 언급했던 천마 사부의 평가가 온전히 이해되었다.
힘으로는 공략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거기까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종극이 전면으로 나섰다.
쿠웅!
거대한 존재감이 앞을 막아서자 나를 누르던 압박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더 이상의 무례는 참지 않겠습니다.”
화르륵!
더불어 노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주변의 어둠이 사라졌다.
넘실거리는 불꽃.
이화의 몸 안에서 넘쳐나던 불의 신력이 인세에 화마의 세상을 열었다.
“그래, 신녀 그대도 있었지.”
세상을 불태울 듯 일어난 불길을 피해 한 걸음 뒤로 물러선 입천신마존이 피식 웃었다.
“좋아, 살려 주지. 종극과 신녀의 비호에 신조가 따르는 점까지 감안한다면 교에 있는 그 허울 좋은 애송이보단 자격이 있어 보이는군.”
갑자기 목이 서늘해진다.
본래라면 이 자리에서 모두 죽일 생각이었다는 선언이다.
하지만 그 말에 담겨 있는 다른 의미도 잡아낼 수 있었다.
“나를 천마로 인정하겠다는 겁니까?”
“억측이 심하구나. 같잖은 자리 놀음이라면 교에 가서 널 부른 한심한 애송이랑 하거라. 권위에 머리를 조아리는 건 내 방식이 아니다.”
그럼 무엇이 입천신마존의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 수 있을까.
답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강자존…….”
“하하하! 과연 적통(嫡統)답구나. 그래, 그거다. 나는 나보다 약한 놈 말은 안 들어. 그러니 나를 굴복시키고자 한다면 나보다 더 강해졌을 때 하는 게 좋을 거다. 같잖게 천마의 권위 따위를 들먹였다간 그 아가리를 찢어버릴 테니까.”
사나운 대답이 폐부를 찌르듯 날아든다.
‘자리 놀음이라…….’
어째 그 말에 담겨 있는 의미가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새삼 마교에서의 생활이 무척이나 고달플 거란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들었다.
입신천마존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스르륵 사라질 즘 천마 사부의 웃음소리가 닿아왔다.
[어떠냐? 마음에 들지?]천마 사부의 웃음소리가 조롱처럼 들렸다.
아니, 조롱이 맞을 거다.
“……돌겠네.”
마교의 일을 제대로 봉합하려면 저자를 넘어서야 한다.
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이건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