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95
194화 천마의 본질
“오랜만에 보는군. 두 사람 모두.”
천마, 아니 그냥 이강무라고 불러야 할까?
아무튼 (가)짜천마가 이화와 종 노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평범한 인사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나름의 교묘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짜천마 입장에서는 이화와 종 노는 무단으로 교를 이탈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정치적이다.
까딱.
이화와 종 노는 고개만 까딱이는 것으로 담백하게 대응했다.
시비를 거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한 대응이다.
“여전히 뻣뻣하군.”
익숙한 일이라는 듯 피식 웃은 짜천마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과장되게 몸을 등받이에 기댔다.
이 정도는 흔한 모양이다.
‘나름 위엄을 세워보려고 노력은 하는 것 같은데, 소용이 없네.’
처지가 궁해서인지 더 초라해 보인다. 안쓰럽기까지 하다.
천마위에 앉아서 은근히 무게를 잡으며 말하는 것을 듣고 있지나 돌연 처음 만났을 무렵의 이경천이 떠올랐다.
이경천은 녹림이라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 왕처럼 군림해왔다.
안하무인 격인 부분만 놓고 본다면 이경천이 더 심했다.
그렇게 달리 생각을 하니 짜천마 이강무도 나름 평가받을 만한 부분이 있었다.
저자의 위치를 고려하면 짜천마 이강무가 받았을, 받고 있을 압박은 상상 이상으로 클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대의 허실(虛實)이 파악되자 더욱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천마라는 위명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불쌍할 정도로 몰려있는 모습이다.
그간 접해 온 마교 내부의 정보를 종합해 보면 저러한 언행을 사용하는 이유도 알 것 같다.
‘하지만 그 이름을 자칭하는 이상 동정의 여지는 없어. ‘천마’라는 이름을 짊어지기엔 부족해. 나라면 이런 식으로 간만 보진 않았을 거야.’
천마는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는 존재다.
절대로 등을 보이지 않는 존재다.
아무래도 진짜라 할 수 있는 천마 사부와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있기에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강무는 천마라는 이름을 사용할 만한 무게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자오경 앞에 천마 사부가 없어서 다행이다.
만약 계셨다면 한동안 머리가 아플 정도로 쌍욕이 쏟아져 내렸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나 역시도 짜천마를 좋게 볼 수가 없다.
‘사천의 일은 이자가 벌인 일일 테지.’
외부에 문제를 터트려 내부의 단합을 꾀한다.
마교 내부의 상황을 알아갈수록 사천에서 일어났었던 일들은 이자가 꾸민 일임에 확신이 생겼다.
“그래, 그대가 신녀와 금강철마존을 붙들어 놓았던 자인가?”
기대했던 반응이 없었는지 이화와 종 노를 향하던 짜천마의 관심이 내게로 쏠렸다.
그에 대답하려는 차에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어? 가만?’
지금 이 자리에는 이경천 역시 함께하고 있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황이라면, 크게 착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경천의 외견은 이화와 무척이나 닮아있기 때문이다. 천마의 적통을 이었다고 하면 누구나 쉽게 수긍할 정도다.
허나 짜천마 이강무는 정확하게 나를 주시했다.
‘나를 안다?’
미리 준비하고, 미리 대비한다.
아무리 봐도 책사나 정치가의 행동이다.
“내 말이 들리지 않았나?”
“들렸소.”
“다행이군. 괜한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으니.”
거듭 인식하게 되는 부분이지만, 말을 무척이나 돌려서 한다.
딱 봐도 입천신마존과는 절대 맞지 않을 성격이다.
마교의 파벌이 갈린 역사는 상당히 오래된 것 같지만, 이번 세대는 유난히도 문제가 많았을 것 같다.
‘그러니 외부에까지 손을 내민 것이겠지만.’
하나씩 하나씩 허실을 파악할 때마다 주변의 시야가 명확해진다.
“쯧!”
그런 나와 달리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이강무가 혀를 차며 방향을 달리한다.
“임아형.”
“예, 천마시여.”
“내 뜻을 분명히 전달한 것인가?”
내가 아닌, 나와 함께 온 임아형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한다.
“예. 분명히 전달했습니다.”
“그럼 이곳에 왔다는 건 내 뜻을 받아들이겠다는 소리겠군.”
나를 앞에 둔 채 임아형과의 대화를 통해서 지 멋대로 결론을 내려버린다.
그 이유는 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이강무도 나도, 천마라는 명칭은 단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지.’
필요에 의해 부르긴 했지만, 이강무 입장에서 나란 존재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 그래도 부족한 정통성을 더욱 망가트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를 부르자는 계책을 낸 건 저자가 아닐지도 모르겠는데.’
생각한 것과 좀 달랐다.
사실 내가 머릿속에 그렸던 마교의 현 천마는 소리장도(笑裏藏刀)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웃음 속에 칼을 감춘 자.
웃으며 손을 잡고 있어도 절대 안심해서는 안 될 자.
허나 지금 보이는 반응들은 내가 그렸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짜천마 이강무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거만하게 턱을 괴며 비로소 본론을 꺼냈다.
“내가 천마다. 인정하는가?”
나는 가까스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천자산에서 내가 선포했던 그 말이다.
타인을 통해 저 말을 들으니 피부가 간질거렸다.
여기 있는 내 일행들은 모두가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웃음을 참고 있으려나?’
반응이 궁금해 슬쩍 이화나 종 노, 그리고 나를 따라온 천마수신위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은 웃음과는 거리가 있었다.
웃음은커녕 당장 폭발하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 얼굴들이다.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 더럽혀지는 현장을 지켜보는 얼굴들이다.
그들의 반응은 명백했다.
‘썩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그들을 보며 나는 머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눈 앞에 펼쳐지는 정치놀음에 동조하는 나 스스로의 모습에 역겨움이 치솟았다.
‘연청운, 이 얼간이야!’
분명 삼양현에서 이번 마교행을 결심했을 때 천마다운 행보를 보일 것이라 다짐했었다.
어디에서부터 어긋났을까?
‘곤륜파에서 무뎌졌지.’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무뎌진 결심을 눌러놓은 일이 연이어 일어났다.
입천신마존.
순천파와 힘을 합치지 않고서는 감당할 수 없을 괴물.
그 괴물을 상대할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논리적으로, 계산적으로, 정치적으로.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길을 찾으려 안간힘을 썼다.
겁이라도 먹은 것처럼.
‘지금 내 꼴을 천마 사부가 봤다면 뭐라 하셨을까?’
어쩌면 지금 자오경 앞에 계실지도 모르겠다.
자오경 앞에서 내 꼬라지를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잔뜩 실망한 얼굴로.
그 천마 사부가 질색할 인간이 눈앞에 있다.
마치 반면교사(反面敎師)처럼.
어쩌면 조금 전의 내 모습일지도 모르는 꼴로.
‘날을 세우자.’
무뎌진 마음을 벼려야 한다.
여기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다.
‘천마 사부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답은 간단했다.
이루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어려운 길이지만, 천마 사부가 바라는 형태의 전개가 무엇인지 떠올리는 것 자체는 무척 쉬웠다.
“……그래, 마음에 안 드는 건 부숴야지.”
“방금…… 뭐라고?”
마교행을 결정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논리적으로 쌓아 왔던 계획들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진다.
모조리 허물어진 잔해 속에는 보다 순수한 것이 남아있었다.
“이화.”
“예.”
“내가 누구지?”
“본교의 영원하고 영원하신 분입니다.”
이화가 오체투지를 하며 나를 경배했다.
마교의 신녀가 나를 천마로 인정했다.
“가, 감히?!”
이강무가 눈에 불꽃을 튀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화가 나를 인정했다는 것은, 반대로 이강무를 부정했다는 의미다.
“종 노.”
“이 금강철마존의 주인이십니다.”
종 노 역시 이화와 마찬가지로 오체투지를 하며 몸을 숙였다.
마교의 기둥들이 내게 앙복(仰伏) 한다.
머리를 굴리고 정치를 논하던 이강무의 눈이 뒤집혔다.
“천마수신위!”
사방에서 고수들이 튀어나오며 나를 포위했다.
천마를 호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마교 최정예 무력집단.
종 노를 따라 내게 오지 않은, 순천파에 속해 있는 천마수신위들이다.
허나 천마수신위라면 내게도 있다.
“천마수신위.”
“천마강림!”
“영세무궁!”
“영세! 영세! 영영세!”
내 부름에 응답한 천마수신위들이 몸을 날린다.
감히 내게 칼날을 드러낸 이들을 향해 분노를 쏟아냈다.
나를 위해 싸운다는 사실에 환희하며 날뛰었다.
쾅! 콰쾅!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자 짜천마가 소리쳤다.
“현암마존!!”
오대마존의 하나, 마교 최고수 중 한 명이 튀어나왔다.
몸을 부복하고 있던 종 노가 마존의 등장에 힘을 드러냈다.
절대 강자 간의 격돌!
콰아아앙앙!!
힘이 하늘에 닿는 이들의 싸움이다.
아무리 튼튼하게 지었다고 한들,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건물 따위가 버틸 만한 힘이 아니다.
벼락이라도 떨어져 내린 듯 사방이 박살 나서 비산하는 가운데 내 발걸음이 앞으로 향했다.
콰르르르!
그 길목에 불길이 치솟았다.
내 발걸음을 따라 번지는 불길이 대관식을 치르는 왕의 길을 닦는 것처럼 앞으로 향했다.
부서진 잔해와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을 불태운 불길이 하늘에 닿을 만큼 연기를 피워 올렸다.
불과 연기.
홍련의 세계 속을 걷는 내 앞으로 짜천마 이강무가 보였다.
천마라 불리지만, 천마로서 행동하지 않는 자.
나의 반면교사.
“미친 거냐!”
짜천마가 절규하듯 소리 질렀다.
“너를 부른 건 나다! 내가 불렀단 말이다! 시건방진 반천파 놈들을 치우기 위해서!”
마교에 문제가 생긴 것은 천마 사부의 올곧은 무맥이 끊어졌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제대로 된 천마가 없는 것이다.
반천파에게 있어 이강무는 천마가 아니다.
진짜 천마를 찾아 나섰다는 이화와 종 노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진짜 올곧은 무맥이 이어져 있는 존재가 있음을 눈치챘을 거다.
‘그런 나를 포섭하면, 내부의 문제도 수습할 수 있을 거라 믿었겠지.’
천마답지 않은 행동을 거듭하며.
천마 사부의 유산을 더럽히며.
“너와 내가 싸우면 입천신마존이, 반천파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게 된다! 그 괴물이 다 해 먹게 될 거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솔직히 그 괴물은 지금도 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순천파와 손을 잡건, 힘을 흡수하건, 방도를 찾고자 했다.
어떻게든 계산과 논리로 접근해 정치적으로 움직이려 한 것이다.
“알게 뭐냐.”
“미친놈! 네가 그러고도 천마의 맥을 이었다 할 수 있느냐!!”
“천마니까 이러는 거야, 병신아.”
당당하고 오만하게.
천마 사부라면 분명 그리했을 것이다.
나는 확신과 함께 땅을 박찼다.
“이 망할 새끼가아아아!!”
어떻게든 나를 설득하려던 짜천마 이강무의 등 뒤로 흐릿한 마신상이 피어올랐다.
그의 정체성만큼이나 희미한 마신상이 검은 기운을 뿌린다.
반면.
콰아아아아아아!!
“부서져라, 가짜.”
“어, 어떻게!!”
천마신공을 운용하는 내 뒤로 선명하게 떠오른 마신상이 강한 존재감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