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4
23화 저건 또라이다
소림으로 가는 길은 평탄한 편이었다.
호북에서 하남으로 이동하는 만큼 난생처음 겪어 보는 먼 여행길에 속했지만, 딱히 불편한 점은 없었다.
중원을 기준으로 정‧사‧마의 세력이 분포한 지역을 설명하자면 북쪽으로는 정파, 남쪽으로는 사파, 서쪽 서장 인근으로는 마도가 자리를 잡고 있다.
하남은 중원에서 살짝 북쪽으로 치우친 위치. 정파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다.
소림의 역사가 워낙 길다 보니 그곳에서 배출된 제자들이 세상에 나와 차린 무관들도 각지에 널리 퍼져 있는 편이라 치안은 좋을 수밖에 없었다.
역설적으로 그런 소림의 존재 때문에 하남이 평온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지만.
소림이라는 이름이 정파에 끼치는 영향력이 워낙 크다 보니 그를 꺾기 위해 사마 세력들의 침략이 적지 않았다.
소림에 의해 지켜지는 동시에, 소림의 이름값 때문에 홍역을 치르기도 했던 거다.
하지만 정‧사‧마의 균형이 자리 잡은 지금은 무림에서 가장 안정적인 곳에 속하는 편이라 할 수 있었다.
설령 안 좋은 생각을 가지고 날뛰는 놈들이라 해도 뻔히 소림승인 것이 분명한 혜원이나 범각을 보고도 덤벼드는 멍청이들은 없다. 만약 있다면 균형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흉계를 품고 움직이는 사마의 무리 정도일 테지만, 이번 여정에서는 마주치지 못했다.
오히려 대접을 거하게 받았지.
소림의 본산제자가 행차하니 가는 곳마다 음식을 시주하고, 잠자리도 안락하게 챙겨 주는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다.
치안이 좋으니 싸울 일도 없고, 먹을 거 알아서 챙겨 주는 사람들이 즐비하고, 여행에 대해서라면 벌써 잔뼈가 굵은 백무호까지 있으니 불편한 게 있을 리 있나.
무공수련에 전념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만 빼면 불만이랄 게 없는 시간들이다.
“귀가할 때도 동행해 주면 안 되겠냐?”
말도 오가고, 주먹도 오가는 그런 시간들을 보내다 보니 범각과도 꽤 친해졌다.
주저 없이 이런 말도 건넬 정도로.
“차라리 혀를 깨물겠다.”
그리고 이런 대답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친하니까 이런 말도 나눌 수 있는 거다.
진짜다.
“그거 낭설이래. 혀 깨문다고 사람 안 죽어.”
“…….”
“멀리까진 안 바라고, 딱 하남 경계선까지만.”
“남의 얼굴 이렇게 만들어 놓고 잘도 그런 말이 나온다?”
손가락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키며 말하는 범각이다.
이전에 없던 퍼런 자국이 눈에 도장처럼 박혀 있긴 하다.
멍 자국이 꼭 사람 주먹이랑 닮아 있는 것도 특이해 보였다.
저렇게 잘 찍히기도 엄청 힘들다.
진짜다.
“그거 내가 한 거 아니야. 저 녀석이 했지.”
“니가 한 거 맞아, 개자식아. 저놈이 한 건 이거고.”
이번에는 바지를 끌어 올려 종아리와 허벅지를 내보이는 범각의 다리 곳곳에 긴 막대기 같은 것에 의해 만들어진 듯한 피멍 자국들이 드러났다.
그 피멍 자국에 백무호가 뺨을 긁적이곤.
“예쁘네. 자랑하고 다녀.”
듣는 사람 복장 긁는 소리를 한다.
범각이 헛웃음 밑바닥에 깔려 있는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 말했다.
“야, 이 개자식들아!”
“어허! 스님이면 고운 말을 써야지.”
“지랄하십니다, 시주님. 멍멍이 똥구멍이나 빨아라, 염병할 축생들아.”
“욕설이 많이 늘었다, 너?”
오는 도중에 줄곧 구타……가 아니라, 대련을 해서 그런지 쌓인 것이 제법 있어 보이는 범각이었다.
그래도 확실히 헛배 들어간 건 다 빠진 모습이다.
대신 혓바닥에 독기가 잔뜩 서렸지만.
따악!
“고운 말 써라.”
그 독기 어린 주둥이에 엄벌이 떨어졌다.
“씨이, 사부!”
“소림이 지척이다, 이 녀석아. 보는 사람도 많은 데서 그런 말 하고 다니면 계율원에서 나설 게다.”
“우씨…….”
혜원 스님에게 한소리 들은 범각이 잔뜩 불만 어린 소리를 냈다.
하지만 계율원을 언급한 것 때문인지 빠르게 꼬리를 말았다.
계율원이라면 보통 기강을 다잡는 곳. 소림 정도 되는 곳에서 운영하는 계율원이라면 보통 엄한 것이 아닐 테니 입조심할 만하다.
토라지는 범각의 모습을 보며 혜원 스님은 빙그레 웃으셨다.
제자가 갈굼 당하는 걸 보고 좋아하는 건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웃으실 만하다.
여정 중 범각에게 늘어난 건 욕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공도 제법 늘었다. 건방짐을 쏟아내던 헛배는 쑥 빠지고, 실력은 늘었으니 사부 된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결과라 생각할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소림까지 왔다.
***
소림은 무당과 달랐다.
무당파는 들어가고 나올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게 해검지다. 무당파에 대한 예우로서 무기를 걸어두고 가는 나무가 있다. 시작부터 무림문파라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반면 소림은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객당이라고 해서 향화객을 받는 곳이 따로 있다 할 정도니 뭐.
[무의 전당은 얼어 죽을. 이게 시장바닥이지 무슨.] [흐음. 좋은 가르침을 널리 전한 증거라 생각하면 되지 않겠나.]장삼풍 사부가 비꼬니 달마 사부가 달래신다. 그런데 말을 시작할 때 얕은 침음으로 시작했던 걸 보면 달마 사부 역시 썩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것 같다.
그런 인파를 넘어 안으로 들어가니 점차 사람들이 북적이는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경건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하는 지점이 존재했다.
진짜 소림의 영역.
무림에서 말하는 무의 전당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흔적들은 지나는 길 곳곳에서 보였다.
“수리비가 제법 깨지겠습니다.”
“하하, 사실 소림에서 향화객을 많이 받는 이유 중 하나라네.”
내 물음을 혜원 스님이 유쾌하게 받았다.
진각(발구름)을 수련한 여파인지 바닥에 깔려 있는 돌들이 박살 나 있었다. 돌을 부수다 못해 바닥이 움푹 패여 있을 정도니 수리비가 제법 들 거다.
“핫!”
그리고 귀를 아프게 만들 만큼 쩌렁쩌렁한 기합 소리가 울려 퍼졌다.
“휘유! 짜릿한데?”
소름이 돋을 정도로 큰 기합 소리다. 백무호가 감탄을 자아냈다.
“이게 소림의 일기가성(一氣呵成)인가?”
본래 뜻은 거침없이 몰아쳐 단숨에 일을 해낸다는 의미지만, 소림 무공을 이야기할 때 그 강맹한 기백과 더불어 힘찬 기합을 내지르는 걸 두고 하는 말이기도 했다.
“원래 소림 무공이 기합을 좀 세게 지른…….”
……라고 들었었다.
저기요? 달마 사부?
원조이신 분이 대뜸 그렇게 부정해 버리시면 제가 어찌 들어야 하나요?
[기합을 지른다는 게 힘을 집중시키는 효용이 있긴 하지만, 입으로 발하는 것이 있으면 내기(內氣)를 흩트리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운기조식을 할 때는 입을 벌리지 말라는 거고. 적어도 내가 추구한 소림 무공은 내외합일(內外合一) 일신일공일체(一身一功一體)다. 외가에만 치중하는 거라면 모를까, 내가를 함께 다룬다면 굳이 기합이 필요할까?]그러시다 한다.
뭐, 소림 무공이 외가에 치중하는 면이 있긴 해도 내공 역시 못지않게 중시하는데, 그런 소림권을 두고 외가권이라는 평하는 경우도 있긴 하니까.
이것도 후대로 내려오면서 바뀐 부분인가?
“허험! 뭐, 소림 무공이 좀 위맹하긴 하지. 기합도 대단하고.”
뭣도 모르는 범각 녀석은 백무호가 놀라는 거나 내가 도중에 말끝을 흐리는 걸 보고 득의양양한 얼굴이다.
야, 달마 사부가 너네 가라래.
“그래서 네가 처맞을 때 그렇게 비명 소리가 찰졌구나?”
“아오, ㅆ…….”
그다음 이어질 말은 분명 욕이다.
순간 혜원 스님의 시선이 사나워졌다. 어디 한번 해 보라는 시선이다. 저기에서 한 끗만 더 넘어가면 바로 계율원 행이다.
“ㅆ…… 씨앗을 뿌려 밭을 일구는 농부의 마음……. 다음 뭐지?”
“몰라.”
“나도 모르겠다.”
얘, 왜 이렇게 귀엽냐.
덩치 있는 사내놈보고 귀엽다고 하면 좀 이상하려나?
처음 느꼈던 비호감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이래서 교육이 중요하다는 건가. 앞으로 얼마나 같이 있게 될진 모르겠지만 잘 가르쳐 봐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는데.
“어?”
“야, 왜 안 따라와?”
내가 중간에 멈춰 서자 눈을 찌푸리며 짜증을 내는 범각이다.
저쪽, 소림 제자들의 기합 소리가 들려온 방향. 그 방향에서 보인 사람 때문이다.
내가 아는 누구랑 정말 닮았다.
세상에는 똑같은 얼굴이 세 개는 있다고 하더니. 그럼 저렇게 재수 없는 얼굴이 어딘가 하나 더 있다는 건가?
[걔 맞다.]아, 그러십니까.
아니, 저도 그럴 것 같더라고요. 저런 재수 없는 얼굴이 또 있을 리가.
윤시후.
내가 무당파에서 쫓겨나게 한 원흉.
그놈이 저기 있었다.
한 무리를 이루고 있는 비슷한 또래의 남녀들이 모인 자리에.
구파의 제자들끼리는 간혹 모임을 가지면서 만나기도 한다던데, 그래서 모여 있는 건가?
그런데 속가제자에 불과한 녀석이 그럴 만한 깜냥이 되나? 그렇다면 뭔가 다른 연줄이 있다는 뜻인데.
“아는 얼굴이라도 있어?”
뒤늦게 내 시선이 향하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린 범각이다. 어딜 보는지 알아차렸는지 그쪽의 면면을 살피곤 묻는다.
“있긴 한데, 별로……. 넌 왜 얼굴이 썩어 가냐?”
범각의 말에 대답을 하는 중 나는 옆에 있는 백무호의 얼굴에 당황했다.
백무호의 얼굴도 못 볼 거라도 본 듯 썩어 가는 중이다.
딱 내 얼굴처럼.
이 녀석 혹시?
“너 윤시후라고 알아?”
“몰라. 누군데?”
“아니, 모르면 됐다.”
날 쫓아낸 원흉이 누구인지 알고 얼굴이 썩어 가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러는 넌 매경풍이라고 아냐?”
“모르지.”
“모르면 됐다.”
내 말을 고스란히 따라 하는 언사다.
이 녀석도 매경풍이란 놈과 뭔가가 있나?
저기 윤시후랑 짝짜꿍하고 있는 애들 중 한 명 같은데.
“쯧.”
부딪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저딴 거랑 시비 붙으려고 소림에 온 건 아니니까.
그런 마음으로 나는 앞서가고 있는 혜원 스님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한 번 걸리기만 해 봐라. 빠득!”
같이 발걸음을 맞추고 있는 백무호 이 녀석 마음은 좀 다른 것 같지만.
***
“자넬 소림에 초대한 건, 말했다시피 소림의 문하로 들일 마음이 있어서였네. 하지만 그것 외에도 하나 더 있었어.”
목적지에 다 와 가는지 혜원 스님이 나를 초대한 이유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소개해 주고 싶은 분이 계시다는 거였지요?”
“맞네.”
내가 배운 소림 무공은 달마 사부 직전(直傳)이다. 소림 무공의 원형에 가깝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소림의 무공은 다양한 유파와 파벌이 있다. 그 과정에서 발전하는 것도 생기고, 퇴화하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파벌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셈이다.
분명한 건 얼마나 발전했든, 발전했다고 생각했든.
달마 사부의 원류는 위대하다는 거다.
“소림 무공의 원류…… 아니, 원류에 가까운 무공을 추구하시는 분이지.”
“대단한 분이시네요.”
내 말은 정말 진심을 담은 평가였다.
“얻는 게 있길 바라네.”
혜원 스님은 진심을 담아 그리 말했다.
다시 봐도 참 좋은 분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 다르게 딱히 기대가 되진 않았다.
이미 그 원류의 정점이 나와 함께 한다.
애초에 내가 소림에 온 것은 소림 무공의 조언을 들으려는 게 아니었다. 달마 사부가 말한, 소림에 남겼다는 무언가를 얻으러 온 거다.
그렇기에 혜원 스님의 말을 적당히 받아넘겼다. 그러면서 부디 곁다리로 만날 그분이 피곤하지 않을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
그곳에서 마주친 사람은 참 인상적이었다.
한없이 깊은 눈동자. 깊이가 있는 눈동자를 담은 눈매에서는 짙은 고집이 느껴졌다.
평생 외길만 걸어온 장인들에게서 느껴지는 그런 거 있지 않은가.
깊이 있는 대가들이 풍길 법한 그런 분위기.
그 눈과 분위기를 보자마자 직감할 수 있었다.
저건 또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