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43
242화 정리(2)
짹짹짹!
새소리가 종소리마냥 울려 퍼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맑고 아름다운 새벽의 청아함이 물감처럼 번지고 있다.
내가 서화에 심취했다면 아마 지금 붓을 들고 이 아름다움을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현실 도피는 이 정도면 되려나?”
하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던 눈을 아래로 내렸다.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아니, 진짜로.
파전(?)과 시체(?)들로 가득했다.
보람찬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괭이를 메고 밭으로 가던 마을 사람들이 놀라서 도망칠 정도였다.
“뭐, 신나게 달리긴 했지.”
연회 중간중간 녹림마인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며 술과 고기를 권했다.
어색한 사이를 하나로 묶는 것에 술과 고기만큼 좋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또 다른 목적도 있었기에 할아버지 친구분께 배운 광역 도발도 함께 구사했다.
“술 약하시네요? 아, 괜찮아요. 술이 몸에 좋은 것도 아니고. 적당히 마시는 게 제일 좋긴 하죠. 하하하!”
술 마시는 사내새끼치고 이 도발에서 벗어날 놈은 없다는 어르신의 호언장담(豪言壯談)대로 효과는 끝내줬다.
주량과 뒤를 생각하지 않고 먹고 죽겠다는 각오로 달려들어 장렬하게 산화했다.
마지막에 가서는 나 혼자 이 많은 이들을 상대해야 했다.
날 술로 담그려 했던 백무호가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결말이야 뭐.
“한동안 술자리는 없겠네.”
술이 다 동나 버렸기 때문이다.
처음에야 일반적인 술로 시작했지만, 술이 동나자 창고 구석에 처박아 놓은 독한 화주까지 모조리 꺼내와 마셨다.
불이 붙을 정도로 독한 놈들 말이다.
여기가 이렇게 인세의 주옥(酒獄)으로 변한 것도 그 독한 화주가 끼어든 탓이다.
술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주루 주인장의 입꼬리는 점점 올라갔다.
어제 먹어 치운 술값만 해도 한 달 매상은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지옥에서 유일하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툇마루 한 편에 머리를 꼬라박고 잠들어 있는 주인장은 무척이나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지 잠을 자면서도 헤실헤실 웃고 있다.
딱 봐도 돈방석 위에 앉아 즐기고 있는 꿈을 꾸는 모습이다.
술 냄새를 포함한 온갖 악취가 풍기는 중인데도 용하다 싶을 정도다.
“자, 그럼 회포도 다 풀었으니……. 출발해 볼까.”
다음 일을 시작해야 할 때다.
***
“…….”
어제만 해도 피곤에 절어 있던 이화가 개운한 얼굴을 하고 있다.
지난밤 제대로 숙면을 취한 것 같다.
확실하게 여독을 털어내고 다시 여행 준비를 갖춘 이화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유가 쉬이 짐작된 나는 옷소매를 들어 올리며 킁킁 냄새를 맡았다.
“술 냄새 나?”
“예.”
담담한 대답이지만, 여간해선 내색하는 일이 없는 이화의 성격을 고려하면 그만큼 술 냄새가 심하다는 뜻일 것이다.
“쉬지도 않고 이리 강행군을 계속하시는데, 술까지 그리 드시면 몸이 축나십니다.”
다른 때와 달리 이번에는 따끔한 조언을 담았다.
모두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이화를 머리를 토닥였다.
“조심할게.”
이화는 대답 대신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내게 한 말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서 걱정하는 이화의 모습에 나는 머리카락이 흐트러질 정도로 쓱쓱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렇게 마을 밖으로 향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가운데.
“으음…….”
이화가 한순간 걸음을 멈췄다.
누구라도 멈춰 설 수밖에 없는 참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인세의 주옥도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어째 내가 빠져나왔을 때보다 더 끔찍해진 것 같냐…….’
보름쯤 입고 벗어 던진 속옷이 눈앞에 들이 밀어진 느낌이랄까?
시원하게 몸을 씻고 다시 그 속옷을 입으려고 하니 뭔가 엄두가 안 나는 그런 느낌 말이다.
취하지도 않았으면서 대체 저 지옥에서 어떻게 뒹굴었는지 모르겠다.
“저 무절제한 무리 중에 오……라버니를 따르는 마인들도 있겠지요?”
여전히 오라버니라는 말을 어려워하는 이화다.
물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이 시국에 연회라…….”
이화의 눈빛이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간밤에 뭔가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눈초리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뜬금없이 연회가 벌어질 리는 없기 때문이다.
‘상후, 미안. 진짜로 미안.’
상후가 이화에게 탈탈 털리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인 모양이다.
뭐, 그나마 안휘의 일을 끝마치고 나서 일어날 일일 테니, 그 전에 어떻게든 빠져나갈 길을 마련해놓길 바랄 따름이다.
그렇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그 지옥 같은 장소를 지나가는데, 백무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지 엎어진 백무호의 손가락 끝에는 무언가를 휘갈겨 쓴 흔적이 묻어 있었다.
범인 은 연 처ㅇ ㅇ ㅜ ㄴ
ㄱ ㅐ ㅅ ㅐ
죽기 직전에 남긴 글귀 같다.
의식이 흐려지는 가운데 어떻게든 마지막 의지를 전하고자 하는 집념 같은 것이 느껴질 정도다.
처절하기 그지없을 정도다.
“수고해라…….”
속 버리니까 술 너무 마시지 말고.
담가 버린 내가 할 말은 아닌지라 나는 말을 아꼈다.
다음에 다시 볼 때 진지하게 충고해 주면 되겠지.
나는 이 주옥도(?)마저도 추억으로 담아 놓았다.
안휘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지옥도가 펼쳐질 공산이 높다.
손에 피도 엄청나게 묻혀야 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각오를 강하게 다지며 걸음을 옮겼다.
***
“…….”
이 지옥 같은 곳을 지나가면서 이화는 심히 불편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지독한 술 냄새와 파전(?)이 만들어낸 냄새, 그리고 수상한 악취들까지.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 온갖 참혹한 현장도 목도했던 만큼 이런 사소한 것은 넘어갈 수 있다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기강이 흐트러졌어.”
기분이 좋으면 술 한잔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천마님께서 하사하신 술이니 흥겹게 즐긴 것도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인이라는 것들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퍼마신다는 것은 무척이나 거슬렸다.
아직 녹림 산적으로서의 성향이 남아 있다는 의미였다.
“돌아와서 보도록 하죠. 빠드득!”
마인이라면 갖춰야 할 예의범절을 뼈에 새겨 줄 생각이다.
세밀히.
면밀히.
확실히.
절대로, 간밤에 자신만 빼놓고 자기들끼리 천마님 앞에서 활약한 게 거슬려서 이러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어디까지나 마인으로서 응당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세를 가르치려는 것뿐이다.
‘게다가…….’
눈에 거슬리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천마님의 죽마고우(竹馬故友)라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글귀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터이지만, 오늘따라 무척이나 신경이 거슬린 이화는 백무호가 써 놓은 문구를 쓱쓱 지우고 새롭게 글을 썼다.
술도 못 하는 게 너무 무리하지 마라.
적당히 정중하면서도 남자의 자존심을 긁어대는 글귀다.
이걸 보면 꽤나 속이 쓰릴 것이다.
상당히 만족한 이화가 살짝 턱 끝을 치켜올렸다.
하지만 곧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너무 정중하달까?
감히 천마님께 불경한 말을 한 것에 대한 대가로는 너무 약하다.
이화의 명석한 두뇌가 빠르게 돌아갔다.
외당 업무를 맡는 입이 거친 하급 마인들의 어투를 떠올려봤다.
오늘부터 개 ○ 뺑이 칠 테니, 엿 돼 봐라.
완벽하다.
이후 삼양현이 돌아갈 상황이야 뻔했다.
적당히 천박하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글귀다.
“흥흥흥!”
조금 기분이 풀린 이화가 슬며시 웃으며 연청운의 옆으로 다가갔다.
“……풉!”
이화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연청운이 이화의 머리를 부비부비 쓰다듬었다.
이화는 기분 좋게 연청운의 손길을 즐겼다.
***
사람의 발길을 거부하는 천혜의 험지.
확연한 목적이 없는 이상 절대 사람이 접근할 것 같지 않은 어느 험산 기슭에는 내부로 이어지는 거대한 동굴이 존재했다.
동굴은 본래부터 습한 음기가 가득한 곳이지만 이 장소는 도를 넘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크게 숨을 들이쉬는 것만으로도 폐가 썩어버릴 것 같다고 느낄 정도다.
어쩌면 당연했다.
이 냄새는 피와 시체가 썩을 때 나는 사취(死臭)였기 때문이다.
이곳은 다음 세대의 혈마를 키워내는 수련장이었다.
그 혈마의 수련장이 다시금 악취를 풍기기 시작했다.
새로운 혈마의 태동을 알리는 악취가 만들어내는 존재감에 오랫동안 이 장소를 관리해 오던 노인도 동굴 언저리에서 잠시 발을 멈출 정도였다.
“이 정도로 진한 혈기(血氣)라니…….”
노인은 오랜 세월 혈교에 몸을 담아 왔다. 지금은 사망한 전대 혈마가 수련할 때도 이곳에 있었다.
그런 노인이 지금 느끼는 피와 죽음의 냄새는 전대 혈마를 만들 때보다 강했다.
사람에게는 그릇이 있다.
인간의 본질적인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혈교의 비의라 하더라도 한계는 존재했다.
새롭게 키워지는 혈마의 그릇이 전대 혈마보다 크다는 의미였다.
질린 얼굴로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광장이 드러났다.
그 중앙에 피로 만들어진 웅덩이가 있었다.
사람을 몇 명이나 죽여 짜내야 저만한 피 웅덩이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 궁금할 만큼 커다란 피 웅덩이 가운데 한 청년이 가만히 누워 있었다.
노인의 기척을 느꼈는지 청년이 눈을 뜨자, 그 많던 핏물이 파도처럼 출렁이며 청년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무슨 일이지?”
청년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는 방해받은 것에 대한 불쾌함이 뚜렷하게 담겨 있었다.
아직 어리고 미약하지만 무서우리만큼 큰 그릇을 증명한 청년의 존재감은 오랜 세월 혈교에 몸담아온 노인을 압도했다.
몸을 숙인 노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혈마께서 귀천하셨습니다.”
“……사부가?”
“예.”
“대계가 일그러졌군.”
“그렇게 결론 내리기도 애매한 것이, 그 일이 있었던 직후 마교가 사천을 침공했습니다.”
“그래?”
청년의 입꼬리에 비웃음이 걸렸다.
머릿속으로 상황을 그리는지 뭔가를 고심하던 청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분’께선?”
“아직 아무런 말씀이 없으십니다.”
“그럼 내버려둬. 뭔가 생각이 있으시겠지.”
“……예.”
“용건이 그게 다면 물러나라. 아직 수련이 끝나지 않았다.”
“예, 혈마시여.”
새로운 혈마로 인정하는 노인의 말에 청년이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렇게 노인이 자리를 떠난 후.
“하하하하하!”
동굴 전체가 부서져라 웃음을 터트리는 청년, 윤시후가 어둠 속에서 눈빛을 번뜩였다.
“잘 됐군. 대계대로 흘러갔다면 내가 나설 자리가 없었을 텐데.”
죽은 혈마, 전대의 혈마는 강했다.
그가 살아 있는 이상 윤시후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무당파만큼은 내가 직접 불태울 수 있겠어.”
조금 전까지 피 웅덩이가 있던 빈자리를 쓸어 만지며 윤시후는 고통과 비명으로 가득한 피를 쏟아내던 이들을 떠올렸다.
고고한 척하는 무당파 위선자들의 피를 직접 쥐어짜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짜릿했는지 윤시후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네놈만큼은 산채로 뜯어먹어 주마.”
그 상상의 끝에서 한 사람을 떠올린 윤시후의 몸에서 살기가 흘러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