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75
274화 새로운 질서의 태동(2)
나쁜 새끼가 있다. 그러니 우리까지 뭉치자.
피아(彼我)를 가르고 상대를 깎아내리는 것은 사람들을 뭉치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엿 같은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안휘에서 개고생을 하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이번 고생으로 내가 얻은 것은 없지만, 내버려뒀으면 손해는 확실했다.
그렇기에 이건 설아 누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내 문제이기도 하다.
학은 녹림에도 영향력을 심어두었다.
도적 연맹은 학의 주구나 다름이 없다.
남궁세가를 털어내고 장강이 도적 연맹에 좌우되는 순간, 학의 영향력은 장강을 통해 뻗어나가는 모든 지역에 야금야금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장강을 끼고 있는 지역의 관리들부터 정파 무림 문파들이 모조리 뽑혀 나갔을 것이다.
구파 역시도 상황이 심각하다.
장강이 도적 연맹의 손에 들어간 상황에서, 천마신교에서의 계책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중원 무림 침공이 이뤄졌다면 정파는 산산조각 날 것이다.
게다가 그 사전작업의 일환인지, 화산파 장문인인 자천진인이 암습으로 인해 귀천하는 일도 벌어졌다.
천하십검의 일좌가 암살당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싶었지만, 동릉 포구에서 상대했던 적들이 무당파 무공의 파훼법을 펼친 것을 보고 어느 정도 납득을 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철저하게 준비해온 것이다.
학은 구파를 뿌리 뽑고 싶어 한다.
나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나 올라간(등선) 이후에도 후임은 계속 들어와야 할 거 아냐!’
사부님들처럼 후임 없이 천년만년 막내로 구르는 꼴은 사양이다.
그런 점에서 나와 학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불구대천(不俱戴天)이나 다름없다.
학을 박살 내놓는 것이 내 천상 생활의 만수무강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입 터는 건 전부 정의고 합법이다.
***
아무래도 민감한 이야기들이 나올 수밖에 없기에 수뇌부들만을 모아 설명을 이어나갔다.
자리에 모인 이들이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한 듯싶어 보이자 남궁조 대협이 말문을 열었다.
“학이라 했나?”
“예. 일단 그리 부르고 있습니다. 크고 거대한 힘과 조직을 가지고 있으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은밀함까지 갖춘 자들입니다. 조부님께서 위를 보지 못하는 먹잇감을 지켜보고 있다 잡아먹는 모습이 마치 학 같다 하여 저희끼리는 일단 그리 부르고 있습니다.”
“연 대협의 조부시라면, 내 듣기로 관직에 계셨던 분으로 알고 있소만?”
“맞습니다. 자 자, 염 자를 쓰고 계십니다.”
“혹 관직에 계셨던 분이 그리 말씀하셨다는 건…….”
일이 커진다고 느꼈는지 남궁조 대협의 말끝이 흐려졌다.
이 부분은 확실하게 짚어야 할 부분이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조부께서 학이라 명명한 자들의 실체를 확인한 곳은 황궁입니다.”
“학의 배후가 황궁에 있다는 뜻인가?”
이따금 무림인들끼리 하는 이야기가 있다.
만약 황궁에서 무림을 직접 지배하려고 하면 어쩔 것인가?
허울 좋은 관무불가침이라는 단어가 사라지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그건 아닙니다.”
“어떻게 확신하는가?”
“왜냐하면, 전대 황제가 승하한 요인에 학이 있다는 정황증거를 찾았거든요.”
“뭐라?”
“하…하하?”
놀라는 사람이 반이고, 헛웃음을 짓는 사람이 반이다.
특히 황도가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하북팽가는 참으로 다채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신반의(半信半疑)다.
나에 대한 신뢰는 충분하지만, 본능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이뤄낸 결과들, 그 과정들 속에서 알아낸 것들은 차고도 넘쳤다.
“도적 연맹이 세력을 넓힐 때 군부가 즉각적으로 움직였다면 안휘의 상황이 이리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번에는 남궁세가 측 사람들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직접적인 피해자이기도 하니 당연했다.
그렇기에 내 말에 대한 반응도 그만큼이나 빨랐다.
“설마… 이것도 학이?”
“확실합니다. 더 나아가 도적 연맹의 결성 자체가 학의 힘이 닿은 일입니다.”
남궁세가 측 사람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표출하지 않기 위해 억누르는 모습이다.
“제 소문을 들으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저는 백가표국과 함께 녹림 대통합을 위한 회의가 벌어졌던 천자산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학의 손길이 닿아있던 것 역시 직접 확인했습니다.”
“썅! 그 말을 들으니 납득이 가는군.”
백가표국과 함께 이 자리에 참석한 전 녹림 채주들의 얼굴 역시도 남궁세가 측 사람들과 닮아갔다.
“설마…….”
거기까지 이야기가 이어지자 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깨달은 얼굴을 했다.
녹림칠십이채의 연합.
산채 몇몇이 힘을 합치는 경우라면 있었지만, 모든 녹림이 힘을 모은 일은 기나긴 무림 역사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 갑자기 이뤄졌다.
도적들이 대거 산 아래로 내려와 거대한 세력을 이뤘는데 군부가 이를 관망한 일도 일반적이지 않다.
관망 정도가 아니라 호응하기까지 했다.
누군가 암중에서 거대한 힘을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다.
“이 정도면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황제 폐하께선 적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나?”
하북팽가 장로가 무거운 얼굴로 물었다.
황도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만큼 민감한 내용이긴 했다.
물론 설득을 위한 재료는 있다. 하북팽가를 설득할 정황증거가 없었다면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용린대.”
한데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팽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연청운 저 녀석, 용린대와 끈이 닿아있습니다. 용린대에 속해있는 건지, 아니면 필요에 의해 조력 중인 건진 모르겠지만.”
“용린대라면…….”
“황실 직속이죠. 적어도 폐하의 뜻이 저 녀석 편에 서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남궁한이 팽철의 말을 받아 이었다.
“맞습니다. 용린대의 도움으로 송하상단이 도적 연맹과 선이 닿아있음을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팽철과 남궁한이 한목소리를 냈다.
“군부가 한발 물러선 형태를 취한 배후에도 용린대의 움직임이 있었을 겁니다.”
“흐음…….”
“적어도 저희가 당장 역적으로 몰릴 일은 없을 거란 이야기입니다.”
당장 황궁 쪽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일단 무림의 일을 해결하는 것으로 집중시켰다.
“일이 잘 풀려 학을 무너트린다면 황실에 큰 공을 세운 것이 될 수도 있겠군.”
하지만 하북팽가는 한발 더 나아갈 생각이 있는 것 같다.
뭐, 하북팽가가 적극적으로 호응할 동기부여가 된다면 좋은 일이다.
“황궁뿐만이 아닙니다. 구파에도 그들의 힘이 닿아있습니다.”
“……뭐? 대체 뭐야, 거기?”
속세에서 벗어난 산 위의 아홉 문파.
정파의 정체성과 같은 존재가 구파다.
학이 전대 황제마저 죽였다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로 충격적인 일이다.
“숭산에서 죽었던 종남파 제자, 장문제자로 기대받았던 윤승환은 혈교의 대법을 받은 자였습니다. 덕풍 윤가의 문제를 해결할 때 확인된 사실입니다.”
“미친…….”
장문제자로 기대받던 기재가 혈교의 대법을 받았다.
그 의미를 이해한다면 쉬이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구파조차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설마 혈교도?”
“예. 그리고 혈교의 주인인 혈마는 무림삼불기의 하나인 광무존의 후예였습니다. 더불어 이번 장강혈사에서 남궁세가의 패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고수는 흑사신의 후예였습니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인 이야기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해할 수 있다. 나야 차근차근 접해온 일이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내가 받았던 충격을 일거에 몰아서 받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학인가 하는 걔네, 여태껏 무림 정복 안 하고 뭐 했대?”
“안 그래도 이번에 그럴 모양인가 보더라고요.”
“돌겠네.”
슬슬 포석은 다 깔렸다.
여기까지는 적의 존재감을 드러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함이다.
‘이쯤에서 틀어야지.’
진짜 원하는 방향으로 갈 차례다.
“승산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정말인가?”
지금까지 내가 꺼낸 이야기는 모두 절망적인 것들뿐이었다.
누구 말마따나 왜 무림 정복 안 하고 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그러니 이젠 승산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차례다.
내가 원하는 방향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림삼불기 중 소수신마의 후예들은 우리 편에 가깝습니다.”
순간 백무호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응. 세탁질 중이니까 넌 입 다물어.’
나는 은근히 눈빛으로 말을 걸어오는 백무호를 씹었다.
“……아예 천마도 우리 편이라고 하지 그러나?”
‘헉! 어떻게 알았지?’
신기제갈이라 불리는 제갈세가 측에서 나온 말에 살짝 가슴이 뜨끔했지만, 천마신교에 관한 이야기는 추후에 꺼내야 한다.
지금은 일단 소수신마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한다.
“소수신마의 후예들은 가문의 천형으로 태어날 때부터 지독한 고통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혈족에 생지옥을 내린 학을 오랫동안 증오해왔고, 암중에서 누구보다 격렬하게 학의 세력과 싸워왔습니다.”
소수신마의 후예들이 정사마를 구분 짓지 않고 날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설아 누나와의 대화를 통해 확인했듯 가문에 천형을 안긴 세력을 증오하고, 그들의 세력을 포착할 때마다 움직인 것 또한 사실이다.
사람들은 장강에서 벌어진 그 어마어마한 신위의 주인이 당대 소수신마임을 눈치챘다.
“이번에 장강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 때문이라는 건가?”
“생각하신 대로입니다.”
“흐음…….”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빠르게 변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 힘이 더해진 덕분이긴 하지만, 한순간에 장강을 얼려버린 엄청난 힘의 주인이 아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희망적인 내용이다.
“게다가…….”
워낙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연거푸 이어지다 보니 사람들이 다시 내 말에 주목했다.
“얼마 전 곤륜 쪽을 통해 들은 소식입니다만, 이번에 천마신교가 준동하여 사천을 친 배후에는 혈마 광무존의 후예가 얽혀있다고 하더군요. 듣자 하니 천마신교를 평정하러 온 광무존의 후예를 찢어 죽였고, 건방을 떤 혈교에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하더군요.”
“사실인가?”
“청해 쪽에 퍼진 소문이라 출처는 명확하지 않습니다만, 그놈들 하는 짓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애써 규합해놓은 사람들이 천마신교와 상잔해버리면 그것도 문제다.
갑작스럽게 천마신교 역시 아군이라고 털어놓을 때는 아니다.
오히려 혼란만 커진다. 차근차근 물꼬를 틔워놓아야 한다.
“광무존의 후예가 죽었단 말이지… 마교는 혈교를 박살 내겠다며 중원에 들어왔고…….”
“이리 들으니 정황이 좀 맞는 것 같군요.”
“적의 적은 친구이니… 잘만 유도한다면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겠소.”
이번엔 이화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너도 좀 자중하자. 나도 혓바닥 놀리느라 힘들다.’
흑사신의 후예가 남아있지만, 우리에겐 소수신마의 후예가 있다.
잘만 굴리면 천마신교의 힘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절망스럽던 사람들의 눈빛에 힘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희망의 빛을 발견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상당히 자세히 아는 것이 하나같이 자네가 개입한 일들인 겐가?”
“예.”
“이 많은 일들을 자네가 해결했다고?”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하아…….”
좌중의 시선이 달라졌다.
이건 뭐, 제 몸 하나 불살라 세상을 구하려고 발악하는 영웅을 보는 눈빛들이다.
영웅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궁한이 제 한 몸 던져 불리했던 흐름을 뒤집을 수 있는 단초를 만든 것처럼.
명예를 탐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뒤집어 써준다.
“대대로 천하제일도를 배출해온 하북팽가. 칠종칠검 선배들을 보내올 만큼 여력이 풍부한 제갈세가. 집단전에서 무쌍의 힘을 발휘하는 사천당가. 한마음으로 뭉친 남궁세가. 나아가 녹림과 표국의 연합을 이뤄낸 호북연맹. 이 모두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혈교를 쫓고 계신 아버지도 함께하실 겁니다!”
장소월 소저가 천하십검의 일인인 천의무봉 장문경 선배를 언급한다.
동시에 한 치가량 뽑아 든 검을 힘차게 납검한다.
차앙!
쇠 울음 소리와 함께 열기가 퍼져나간다.
“남궁세가는 연 대협과 함께하겠습니다!”
분노에서 절망으로.
하지만 끝끝내 희망으로 피어나는 열기가!
들불처럼 일어난 열기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사천당가도 함께요!”
“제갈세가도 함께합니다!”
“하북팽가도 함께하고 있소!”
모두의 의지가 하나로 모인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그 열기를 받아들였다.
“우리가 분열을 막고 단합할 수 있다면! 이 싸움, 이길 수 있습니다!”
모두가 바라는 모습으로!
영웅의 모습으로!
그와 함께 일어나는 모두의 기세가 사방을 흔든다.
땀이 날 것 같은 열기로 가득한 가운데 후련함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