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76
275화 아직(?) 사람입니다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을 강조함은 세가 수뇌부만이 아닌 호북 표국 연합과 전 녹림들까지 모두에게 한 말이다.
다행히 뜻이 통한 것 같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전투를 한 영향도 없지는 않겠지만, 다들 소속과 관계없이 상당히 끈끈해졌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아예 무공을 교류하기 시작했다.
물론 비전까지 모조리 꺼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알려진 기초 무공을 기본으로 한 학습회를 시작으로 각자 무공을 익히며 느낀 경험과 의견교환, 조언 등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게 자연스러운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절대로, 절대로 일부러 이러는 거야.’
이상하리만치 내가 지나가는 곳에서 화기애애한 교류의 현장이 나타난다.
무공 하나씩 봐주겠다던 내기가 실패하니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가 싶을 정도다.
그렇다고 마냥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오히려 나에게도 상당한 이익이었다.
여러 방면을 통해 쌓인 경험은 성장 방식이 일반적인 무림인들과 달랐던 내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교류를 아예 정기적으로 개최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함께 협력하고, 선의의 경쟁을 한다면 더 빠르고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이 작은 수고가 훗날 단 한 명이라도 더 천상에 오를 수 있는 여건이 되어준다면 못할 것도 없다.
앞으로 이 사람들이 단합해나간다면 좋은 전통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개인적인 조언을 몇 가지 해줬다.
물론 핵심적인 부분까지 파고들 수는 없으니 주로 무공을 펼칠 때 보이는 허점에 대해 지적해줬다.
장삼풍 사부의 청경에 천마 사부의 공감각이 합쳐지면 어지간한 움직임들은 죄다 파악이 된다.
사실상 해부해서 속을 들여다볼 정도로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깊숙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안 된다.
무공의 절기가 파악되었다고 오해하게 된다면 자칫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는지 다들 만족해했다.
신기하게 몇몇은 내 조언에 뭔가 느끼는 것이 있었는지 성취가 크게 올라갔다고 했다.
덕분에 다음날부터 무공 교류가 더욱 활발해졌다.
이런 걸 자승자박이라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좋은 전통 하나 만들기가 이렇게 힘들다.
***
사람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몇몇 있다.
단언하건대 깊은 숙면 후에 일어날 때의 느낌은 그중 하나로 손꼽힐 것이다.
아무런 방해 없이 스스로 조용히 눈을 뜨며 일어날 때의 기분은 가히 아름답기까지 하다.
“하아아아암…….”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난 나는 주변을 휘휘 둘러봤다.
좋게 말하면 고풍스러움이 느껴졌고, 나쁘게 말하면 집을 다시 짓는 게 어떠냐는 조언을 하고 싶어지는 방이다.
도적놈들답게 집 참 더럽게 썼다.
점거하는 동안 뭔 지랄을 하고 지냈는지 무척이나 지저분하다.
그나마 제일 나은 방 중 하나가 이 정도라니 다른 곳은 어떤지 알만하다.
아무래도 남궁세가가 할 첫 번째 일은 본가의 건물을 새로 올리는 일이 될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앞으로 있을 고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본가를 탈환했지만, 과거의 그 남궁세가가 아니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다시 과거의 성세를 찾을 순 있겠지만, 그 사이가 문제다.
그래도 연합체 간에 끈끈한 인연이 생긴 만큼 남궁세가가 다시 성장하기까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냉정하게 힘의 논리와 당장의 이익만을 생각한다면 남궁세가를 뽑아먹을 생각으로 굴리겠지만, 내가 고려하는 미래를 위해서는 장래성이라는 요소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신선들이 나올 수 있는 기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쩝! 가볍게 아침 수련 좀 하고 밥이나 먹으러 갈까.”
빌어먹을 학 놈들의 짓거리를 막기 위해서는 조만간 구파 쪽으로도 움직여봐야 한다.
이 작은 평온함을 즐기고 싶다.
그러고 싶었는데…….
“모시겠습니다.”
엄청나게 얼굴에 힘을 준 이화가 따라붙는다.
따로 방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어린 소녀랑 같은 건물을 쓰는 것은 외부의 시선에도 좋지 않았기에 숙소는 떨어진 곳에 잡았다.
이화는 그게 서운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화는 혼자가 아니었다.
“잘 잤어요?”
삼양현에서 꽤나 달라진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눴던 그날 이후부터 묘하게 서슴없어진 당사연 소저가 나를 반긴다.
이쪽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얼굴이다.
‘나 지금 물어볼 거 있어!’라는 글귀가 보이는 것 같다.
“뭔가 물어볼 게 있나요?”
“진짜예요?”
“……제가 다재다능한 편이긴 하지만, 독심술까지 터득하진 못했어요.”
뭘 물어보고 싶으면 제대로 묻든가.
그런데 내 대답에 당사연 소저가 실망했다.
“못해요?”
“못하죠.”
못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대체 뭔 소리를 들었길래?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건가요?”
“연 소협은 사람이 아니라, 뭔가 하늘의 신이나 용이 현신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거든요.”
“……예?”
“연 소협에게 소원을 빌면 다 이뤄진다던가?”
이 무슨 신박한 개소린지?
아직(?) 사람인 나를 신격화하고 있다.
그간 경험으로 볼 때 가장 유력한 용의자를 향해 나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너냐?’
살짝 눈에 힘을 주며 노려봤을지도 모르겠다.
안 그래도 도적 연맹과의 전투 이후 광신도들 특유의 느낌이 강해지긴 했다.
타당한 이유에 의한 합리적인 의심이다.
이화가 고개를 휙휙 저었다.
“……저 아닙니다.”
“정말?”
“거짓말은 제가 천… 오라버니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이화는 아니다.
‘이화가 아니라면 녹림마인들인가?’
내 희망은 건전하고 신성한 배움의 전당인데, 누군가가 거기서 마라탕을 끓이고 있는 느낌이다.
찝찝함을 떨쳐내지 못하는 나를 보며 당사연 소저가 웃었다.
“그냥 생겨난 거예요. 솔직히 연 소협이랑 엮여서 잘 된 게 많았잖아요. 명운표국의 부흥이라든가, 도적 연맹과의 싸움에서 사상자가 거의 없다시피 한 기적의 승리라든가. 얼마 전에는 연 소협 조언에 무공 성취가 껑충 뛴 사람도 있다죠?”
“나와 관계된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린다?”
“그런 거죠.”
어이가 가출하니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혀버렸다.
“좋은 일이잖아요. 내버려둬요.”
“……그러게요.”
사기진작에는 유용해 보였다.
언젠가는 깨질 환상이지만, 굳이 내가 나서서 깰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말이죠.”
“또 뭐가 남았나요?”
“……소월 언니가 수련하고 쉬는 시간에 뭔가 기도 같은 걸 하고 있어요.”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장소월 소저가 그런다니, 믿기가 어렵다.
이쯤 되면 그냥 종교 하나 만들어도 바로 설립될 것 같다.
이름을 따서 청운교라고 지으면 되려나?
무척이나 화창할 것 같은 종교명이다.
‘진짜 만들어지는 건 아니겠지?’
불안감이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히힛!”
그 큰 이유 중 하나인 이화가 무슨 망상을 한 것인지 어울리지 않는 웃음을 흘렸다.
불안한 마음이 한층 더 커졌다.
“안 된다.”
“……칫!”
딱 잘라낸 내 말에 이화가 작게 혀를 찼다.
그러면서도 정작 알았다는 말은 안 한다.
“하아…….”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말 종교 하나가 만들어질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이화나 녹림마인들을 철저히 단속해야 할 것 같다.
***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당사연 소저의 말을 듣고 난 다음이라 그런지 보다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상상 이상이네…….”
그저 남궁세가 내부를 거닐고 있을 뿐인데 사방에서 시선이 날아든다.
영웅에 대한 존중이라 생각했던 시선들 언저리에는 이화나 녹림마인들에게서 보이던 감정이 은연중에 묻어있다.
이쯤 되니 안 찾아볼 수가 없다.
“녹림마인들은 어디 있니?”
“모르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그들이 입을 놀리고 다닐 것을 기대하는 것 같다.
“화낸다?”
내 목소리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이화가 흠칫했다.
“찾아보겠습니다.”
이내 이화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어느새 내 앞을 걷고 있다.
뒤에서 이화의 모습을 살펴보니 평상시와 다른 모습을 찾았다.
‘술법인가?’
걸음이 빨라졌음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는 거침이 없다.
누군가를 찾아 움직일 때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있어야 하지만 이화에게선 찾아볼 수 없다.
마치 어디에 녹림마인들이 있는지 감지하며 움직이는 것 같다.
‘어?’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는데 기감에 걸리는 특유의 기질이 느껴졌다.
장소월 소저다.
뭔가 낯부끄럽다.
지난번 일도 그렇고, 방금 들은 당사연 소저의 말도 있다 보니 마주하기가 묘하게 껄끄럽다.
그때였다.
“……거기에서 장문경 선배가 그러더란 말이지!”
뭔가 경극을 하는 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는 경이롭다!”
“오오!”
“심지어 내 기준에서도!”
“오오오오!”
잘 알고 있는 목소리다.
‘댁이었수?’
명일서 표두다.
이화 못지않게 빨라지는 걸음에 목소리 주변도 잘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앞에 관객이 되어 호응하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는 것이 상후와 녹림마인들이다.
게다가 녹림 채주들이나 오대세가 무인들도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백무호 넌 뭐가 그리 재미있다고 쪼개냐?’
아무리 봐도 저놈 하나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웃긴 농담을 듣고 포복절도(抱腹絶倒)하기 직전인 꼬라지다.
“허!허!허!”
이런 걸 보고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이화야. 너 그거 아니?”
“예?”
“삼양현에 도적 연맹 놈들이 쳐들어왔을 때 너 안 깨우기로 판단한 게 상후라는 녀석이더라. 그 녀석이 저기서 쪼개고 있네?”
“……그랬습니까?”
이화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딱 봐도 당장 녹림마인들을 조질 태세다.
명운표국은 내가 담당해야 할 것이다.
그간 수련을 열심히 했는지 좀 조져봐야겠다.
좋은 말 참 많이 하고 다니는 것 같은데, 오래오래 좋은 말 하며 살게 해줘야 한다.
“다들 고수 됩시다. 그래야 험난한 무림에서 살아남지. 클클클.”
영웅이고 나발이고.
나를 용이니 신이니 부르건 말건.
오늘부턴 마귀가 될 것이다.
***
남궁세가가 안휘에서 가문을 복구하는 사이, 구대문파는 구파 나름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가장 먼저 구파의 회동이 열렸다.
사천의 경계를 넘어온 마교가 흑애무천을 공격하면서 비상사태에 돌입한 청성파와 아미파는 참석하지 못했으나 남은 일곱 문파는 모두 참여한 대회동이다.
“다들 안색이 좋지 않구려.”
무당파 장문인 벽하도장과 함께 참석한 허도진인의 말에 구파 인물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굳혔다.
당연했다.
“구파를 노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놈들이 파훼법을 알고 있더군요.”
구파가 공격당했다.
게다가 각 문파의 파훼법을 알고 있었다.
물론 구파의 무공은 파훼법을 알고 있다 해서 쉽사리 공략당할 만큼 가볍진 않다.
그 정도로 공략당할 정도면 구파라는 이름을 내세우지도 못한다.
정파 무공 대부분이 그러하듯 정종무공의 위력은 깊이에서 나온다.
하지만 파훼법이 노출된 상황이라면 불리함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은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화산파 장문인의 경우 그 불리함을 넘지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위기인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천마신교의 움직임보다 이에 대한 이야기가 더 비중 있게 다뤄질 정도다.
“한데, 무당파는 피해가 전무하다 들었습니다만.”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뾰족한 물음에 허도진인이 무거운 시선을 보냈다.
종남파.
신경 쓰이는 곳이다.
하지만 애써 그런 기색을 누르며 허도진인이 담담히 대답했다.
“도움을 좀 받았네.”
“도움이라니…….”
무당제일검이자 천하십검의 필두.
그런 고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믿기 어려운지, 자리에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놀라움과 의아함을 드러냈다.
허도진인이 그런 이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안 그래도 곧 부르려던 참이네.”
종남파를 바라보는 허도진인의 웃음이 유독 짙어졌다.
“자네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