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87
286화 밤의 무당산
제갈윤재와 팽철이 연청운을 따라 무당산에 온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연청운이라는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여 관계를 좁혀나가는 것.
다른 하나는 무당파와의 친분을 강화하는 것.
연합은 단순히 오대세가와 표국 그리고 전 녹림의 연계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구파까지 함께하는 거대 조직으로 발전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구파 중 가장 먼저 합류가 유력한 곳이 바로 무당파와 소림이다.
연청운과 가까울뿐더러 구파 내의 영향력 또한 높은 것이 북숭 소림과 남존 무당이었다.
지금도 친분이 있다지만, 이후를 생각한다면 더욱 관계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냐?”
서로에게 딱히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은 두 세계의 직계 혈족이 한자리에서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무척이나 드문 광경이었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제갈윤재는 시작부터 반말을 내뱉은 팽철의 태도에도 몸가짐을 가지런히 했다.
“반말이긴 해도 말씩이나 걸어 주시니 참으로 영광이군요.”
“오냐. 그거 알면 재깍재깍 대답 좀 하자.”
제갈윤재의 굳어진 눈이 팽철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라는 시선이었다.
이내 두통이라도 오는지 관자놀이를 누르며 제갈윤재가 한숨을 내쉬었다.
“제 지혜를 바라신다면 예의 정도는 갖추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냥 공평하게 너도 반말 까.”
“끄응…….”
“먼저 물은 말에는 대답하는 게 예의 아닌가?”
“하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려 해 봐야 본인 속만 썩을 것임을 깨달은 제갈윤재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이상은 사람을 좀먹습니다.”
“그리고 연청운 그 친구는 대단히 이상주의적인 성향이지.”
“‘일반적’으로는 그렇겠죠.”
보통은 실패할 것이다.
부정적인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내용물이 다르다.
“연청운 그 친구는 일반적이지 않으니 성공한다고 보는 거군.”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을 해낸 사람이니까요. 장강에서 직접 목도하기도 했고요. 저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부러울 따름이죠.”
자조 섞인 말을 하며 제갈윤재는 씁쓸한 한숨을 토해냈다.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한다.
아쉬움이 가득한 말에는 동경이 담겨있었다.
“위에 서는 사람은 방향을 제시하면 됩니다. 세세한 건 저 같은 사람이 실행하는 거죠. 연 소협은 덕망이 있고 운이 따르니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것을 채워주는 사람들과 잘 해낼 겁니다.”
무인이면서도 책사인 성향을 품고 있는 제갈윤재가 이만큼 속에 있는 말을 풀어놓는 일은 드물었다.
아무래도 일순간 들끓은 무인으로서의 피와 웅심이 등을 떠민 것인지도 모르겠다.
“너 같은 샌님도 피를 끓게 한단 말이지?”
찰떡같이 말했더니 개떡같이 받아치며 팽철이 피식 웃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같은 말을 계속 입안에서 굴리며 생각을 정리하던 팽철이 고개를 휙 돌려 제갈윤재를 향했다.
“야!”
“뭡니까?”
팽철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
먹잇감을 노려보는 듯한 시선에 제갈윤재가 주춤 물러섰다.
“너 여동생 있다고 했지? 예쁘다고 들은 것 같은데.”
“갑자기 남의 여동생 이야기는 왜……?”
어이가 없는 듯 제갈윤재가 입을 딱 다물며 팽철을 노려봤다.
설마 아니겠지?
“걔 나 주라.”
“……잘 못 들었습니다?”
“네 동생 나 주라고.”
“저녁밥 잘 처먹고 주화입마라도 들었습니까?”
“보아하니 제갈세가는 연합에서 잘 해먹을 것 같거든. 뻔히 보이는 지분을 확보하는 것뿐이야.”
“하아! 미친개라는 세간의 평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군요.”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함에 제갈윤재는 길게 한숨을 토해냈다.
문제는 이게 상당히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점이다.
본능적으로 옳은 길을 택했다고나 할까.
제갈세가 입장에서도 제법 구미가 당기는 일이다.
차기 하북팽가 가주의 안주인 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갈윤재는 고개를 저었다.
“제 여동생은 댁을 안 좋아할 겁니다.”
“그건 두고 보면 알 일이고.”
팽철은 자신만만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던 제갈윤재의 머릿속에 끔찍한 상상이 떠올랐다.
팽철이 ‘처남!’이라 부르며 환하게 웃는 모습.
“그, 그럴 일이 있을 리가…….”
제갈윤재는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
현도당주 신제현.
이제는 앞에 ‘전(前)’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는 신제현은 썩은 동태 눈깔로 어둠이 찾아온 무당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둠 속에 있는 신제현의 모습은 그야말로 산송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무당산 칠십이봉의 하나인 이곳에 유폐되다시피 처박혔을 땐 현실을 부정하며 분노를 했고, 목이 터져라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흐흐흐…… 벼엉신…….”
신제현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신체조차도 온전하지 못했다.
그간 신제현이 저질러온 온갖 악행들이 파헤쳐지면서 수많은 비리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혈교와 얽힌 것으로 드러난 윤시후가 무당산에서 도망친 일 역시 신제현의 책임이 되었다.
그렇게 신제현은 폐맥대법 형벌에 처해졌다.
무공을 펼치는데 필수적인 기혈의 대부분을 막아버린 것이다.
무공을 익힌 사람이 아니라도 기혈에 문제가 생기면 몸에 탈이 난다.
중요 기혈인 기경팔맥이 완전히 막히게 되면 목숨이 위험해지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지금 신제현은 일반인들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일조차 힘겨웠다.
그런 신제현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폐인 다 됐구먼.”
신제현이 썩은 동태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참을 주시하고서야 어둠 속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벽궁도장?”
“쯧쯧쯧! 괜히 온 것 같구먼.”
비아냥거리는 말에 신제현은 머릿속에 불씨가 튀는 것을 느꼈다.
“흐흐흐. 바쁘신 분께서 여긴 어인 일이시오?”
망자 같던 신제현의 눈가에 흐릿한 빛이 감돌았다.
그제야 벽궁도장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이제야 좀 자네 모습이 보이는군.”
“쉰 소릴랑 마시오.”
“내 이름을 거론하지 않은 자네 호의는 잊지 않았네.”
“흐흐흐! 누구 좋으라고 밝히겠소이까.”
허도진인의 칼부림에 이은 장문인 벽하도장의 폭풍 같은 내리갈굼으로 무당파의 부패가 일소되긴 했다.
하지만 부정부패(不正腐敗)라는 것은 그리 쉽게 쓸려나가지 않는다.
신제현과 같은 이들은 숨을 죽인 채 여전히 무당파에 자리하고 있었다.
“과연.”
벽궁도장이 감탄을 터트렸다.
“썩은 과일이란 말이지.”
멀쩡한 과일이 담긴 상자에 썩은 과일을 넣으면 멀쩡한 과일들도 빠르게 썩기 시작한다.
신제현은 궁지에 몰린 상황임에도 핵심적인 썩은 과일들의 존재를 밝히지 않았다.
무당파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스며들어 있었기에 진심으로 무당파가 어긋나기를 바란 것이다.
“괜히 왔다는 말은 취소하지.”
벽궁도장은 비로소 만족할 수 있었다.
아둔했던 무당파 속가제자와 대면할 때와 같은 얼굴로 신제현에게 다가갔다.
신제현 역시 그런 벽궁도장의 표정을 읽었다.
“뭔가 있는 모양이시오?”
“역시 자네와 대화는 편해서 좋군.”
어두운 밤임에도 서로의 얼굴이 훤히 보일 정도까지 다가갔다.
“연청운이란 애송이가 무당파에 왔네.”
“흐흐흐…….”
음침하게 웃는 신제현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이내 썩은 동태눈깔을 벗어던진 신제현의 안광이 어둠 속에서도 훤히 보일 정도로 불타올랐다.
“소식이나 전하러 오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자네에게 걸린 폐맥대법을 풀어주지. 더불어 더 좋은 몸도 제공해주고.”
“흐흐흐… 으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신제현에게서 그간 쌓아온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습니까?”
“듣고 싶군. 자넨 내 말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무당파를 뒤집어버리겠단 말로 들었습니다.”
신제현은 죄인이다.
실제로 폐맥대법은 사문에 큰 죄를 지은 파문제자에게나 취해지는 형벌이다.
그런 신제현의 폐맥대법을 거두겠다는 것은 무당파에 반기를 들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또한, 도장께서 혈교와 연관이 있단 소리겠지요.”
윤시후가 왜 도망쳤는지 모든 무당파 제자들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윤시후를 도망치게 도운 용의자가 된 신제현은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엄ㅆ다.
벽궁도장이 말한 더 좋은 몸을 제공하겠다는 말의 의미가 분명 그것과 연관이 있을 것임을 신제현은 확신했다.
짝! 짝! 짝!
“훌륭하군.”
벽궁도장이 손뼉을 쳤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잠시 들어갔다 나온 벽궁도장의 손아귀에는 의식을 잃은 사람이 들려있었다.
“아는 얼굴이지?”
“윤시후와 어울리던 녀석이군요.”
“제물로는 남수라는 녀석이 더 쓸 만해 보였네만, 그 녀석은 따로 시킬 일이 있어서 말이야. 뭐, 이 녀석도 나쁘진 않을 걸세.”
벽궁도장은 의식이 없는 속가제자를 신제현 앞에 내려놓으며, 구결을 일러주었다.
“처음은 좀 역겨울 걸세. 몸에 좋은 약을 먹는다 생각하시게.”
“흐흐흐. 바라던 바입니다.”
더 이상 폐인처럼 썩은 동태눈을 하고 있던 신제현은 어디에도 없었다.
“자네가 준비되었을 때면 무당파는 안팎으로 공격당할 걸세. 묵힌 감정을 풀 좋은 기회겠지.”
신제현은 벽궁도장이 이번 일에 많은 준비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의 인기척이 없는 장소에서 피비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
“흡?!”
단잠에 빠져 있던 나는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꿈인가?”
잠깐이지만 이화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아무래도 착각인 모양이다.
“쩝! 이화를 두고 온 게 마음에 걸렸나.”
꿈에서 이화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라니.
생각보다 미안함이 컸던 모양이다.
다시 자기 위해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산책이나 갈까.”
나는 과거의 기억이 향수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침상을 벗어났다.
거처에서 나와 밤의 무당파를 거닐었다.
“와아…….”
밤의 무당파는 확실히 낮과 달랐다.
“더럽게 어둡네.”
밤의 달빛은 생각보다 밝다.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그래도 사물의 윤곽이 보일 정도는 된다.
하지만 딱 그 정도다.
아주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지만, 이래서야 밤에 나온 의미가 있나 싶다.
“그래도 별은 아름답네.”
유일한 볼거리는 하늘에 있었다.
천마신교로 향하던 중 초원에서 보던 별무리와는 다른 아름다움이 밤하늘을 가득 수놓았다.
그 별무리의 흐름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가운데.
“응?”
인기척이 느껴져 뭔가 싶어 살피니 누군가의 모습이 달빛에 흐릿하게 드러났다.
‘저 사람은…….”
과거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현도당에서 신제현과 어울리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했지만, 신제현과 어울리는 것만으로도 그리 인식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피 냄새…….”
흐릿하지만 피 냄새가 났다.
한밤중에 돌아다니는 사람의 몸에서 피 냄새가 난다?
“저쪽에서 왔지?”
알아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발걸음이 그가 온 방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