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20
319화 매복
하늘을 걷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특별한 느낌이다.
묘한 부유감이 다리 사이를 받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사실 허공답보라는 것은 무른 발판을 밟으며 달리는 느낌이다.
힘껏 달리면서 한 걸음 한 걸음을 신경 써야 하는 느낌이랄까.
지형에 신경을 쓰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가는 만큼 빠르기는 하지만, 발걸음에 신경을 기울여야 하기에 피로감이 커졌다.
단거리라면 몰라도 장거리는 그리 추천하고 싶지 않다.
문제는 내가 달려야 하는 것이 장거리라는 점이다.
장애물이 많은 곳을 지날 때는 허공답보로 동선을 최소화하고, 평탄한 지역에서는 땅이나 나무를 밟고 달렸다.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거리를 순식간에 주파했다.
이 속도라면 해가 뜨기 전에 화산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화산이라…….”
백무호가 내 조언대로 삼양현에 있는 백가의 전력을 움직였다면 난항은 있을지언정 직접적인 위험은 적을 것이다.
백가에는 그만한 힘이 숨어있으니까.
문제는 뒷감당이다.
그걸 어떻게 해내는 것이 내 역할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화산에 가서 돌아가는 상황을 살펴야 한다.
그렇게 밤하늘을 가르며 움직이는 가운데, 시야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응?”
밝은 달 아래 있는 도인들.
승려들이 입는 옷은 대부분 비슷하다.
하지만 도인들이 입는 도복은 비슷하면서도 색이나 모양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종남파?”
구파는 더욱 그 특징이 뚜렷하다.
그렇기에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반대로 그들은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고개를 위로 들어 올리기만 하면 나를 발견할 수 있겠지만, 뭔가 목표라도 있는지 서쪽을 바라보며 숨을 죽이고 있다.
명백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매복(埋伏)의 형세다.
하물며 나는 저들이 바라보는 반대편, 동쪽에서 나타났다.
게다가 매복하고 있는 종남파 도인들은 매복 경험이 없는지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둠 속에서 가만히 한 점을 바라보면 묘한 현상이 일어난다.
시야는 좁아지고 시야의 중심을 제외한 나머지는 흐릿하게 일렁이기도 한다.
야간매복에 경험이 없다면 그런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일하시던 관청을 지키는 신병들은 야간경계를 위한 훈련을 따로 받았다.
저들에게서는 딱 그런 초보자들의 분위기가 났다.
그렇다면 훤히 드러나 있는 뒤통수를 노려주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나는 저들의 시야가 닿지 않는 배후로 내려섰다.
이어 기척을 죽이고 살며시 접근했다.
동화의 법.
처음 사부님들께 경신법에 대해 배울 때 자연에 섞여들어 가는 법에 대해서 배운 바가 있다.
세상을 느끼고, 그 세상 속에 나를 섞는 법.
이를 알면 태연하게 절벽을 걸어 올라갈 수 있다.
허공답보를 펼치기 위한 기초이기도 하다.
이제는 익숙해진 그 방법으로 세상 속으로 스며들자 내 기척은 주변의 흐름에 녹아 사라졌다.
그리고 흑살대의 살수에게서 회수한 기형암기를 꺼내 역수로 쥐었다.
조용히 종남파 제자들의 뒤로 접근하니 저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빌어먹을.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놈들인지 원.”
“그래도 멍청한 놈들이라 다행이야. 그 부상자들을 다 챙겨서 움직이는 중이니까.”
저들은 적대하는 자들을 비하하며 스스로의 긴장을 누르려 하고 있었다.
단편적인 대화였지만,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건질 수 있었다.
‘누군가가 저들의 적을 구했다. 부상자가 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부인이 그들을 거뒀다.’
종남파가 현재 노리는 표적은 화산파다.
부상자를 챙겨서 움직인다는 이야기를 유추하면 현재 화산파의 상태를 알 수 있다.
화산파 제자가 부상을 입었고, 화산 밖으로 도주 중이라면 현재 화산파의 상태가 어떤지는 뻔하다.
당한 것이다.
소림이나 무당처럼 내부의 적을 걸러내는 것에 실패한 모양이다.
‘백가에서 화산파 제자들을 구한 모양인데…… 발 빠르게 움직이지는 못하고 있는 모양이네.’
부상 정도에 따라서 운신이 어려운 이들이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백가가 전력을 다했다면 굳이 위험을 무릅쓴 퇴각전을 벌일 이유가 없다.
설아 누나가 작정하고 힘을 쓴다면 반쪽짜리 화산파 정도는 충분히 호각으로 겨룰 수 있다.
거기에 한산월 아주머니가 힘을 더한다면 설령 종남파가 합세한다고 해도 밀리지는 않을 터.
그럼에도 일전을 피했다는 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사람은 중요한 순간, 보수적으로 판단하기 마련이다.
백가의 숨겨진 힘, 소수신마의 후예들은 오랜 세월 쌓아온 은원 때문에 스스로의 존재를 숨기는 것을 선택했다.
지금이 모습을 드러낼 적기라는 확신이 없다면 그런 판단을 내리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당연하다.
하물며 이화와 녹림마인들까지 합류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답답하긴 하지만, 탓할 일은 아니다.
화산파가 건재한 상황 속에서 힘을 보태는 것을 상정했었는데, 현장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되었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화산파의 상황이 그만큼 안 좋다는 점이다.
일단 합류한 다음에 알아봐야겠다.
‘그 전에 저놈들부터 처리하고.’
종남파 제자들의 배후에서 서른 걸음 정도 거리만큼 들어갔을 때쯤, 나는 발끝에 힘을 주고 몸을 날렸다.
어깻바람이 일으키는 파장보다 한발 먼저 나아간 내 몸이 순식간의 그들의 배후를 점했다.
동화의 법이 효과가 컸는지 지척까지 다가갔음에도 그들은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역수로 든 암기를 한 놈의 몸에 박아 넣었다.
푸욱!
“커……!”
목과 어깨 사이로 박힌 칼날 끝에서 단단한 뼈가 쪼개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비수의 칼날은 정확하게 척추로 이어지는 뼈를 끊었다.
“누구……!”
다른 하나가 뒤늦게 내 존재를 알아차리고 허리춤의 검을 뽑으려 했지만, 한참 늦었다.
쥐고 있던 암기를 놓는다.
자유로워진 손으로 검을 뽑으려는 종남파 제자의 아혈을 짚었다.
그것으로 입을 막은 뒤 다른 손으로 검을 뽑으려는 팔을 낚아챘다.
우득!
검을 쥐었던 종남파 제자의 팔꿈치가 뜯겨졌다.
다 뽑히지 못한 검이 땅에 떨어지며 그 위로 뜯겨나간 팔꿈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피가 뿌려졌다.
“……!!”
비명을 지르고 싶은지 입을 쩍 벌렸지만, 아혈이 제압당한 상태인지라 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나는 그런 상대의 오금을 찍어 차 넘어트리고 가슴 위에 발을 올렸다.
나를 올려다보는 종남파 제자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있었다.
고통 때문에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하지만 나를 노려보는 독기어린 시선에는 아직 힘이 있었다.
“매복이 더 있나?”
나는 종남파 제자에게 조용히 물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아혈을 짚어 말을 할 수 없다지만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대답할 수 있음에도 고집스러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기만 한다.
하지만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있군.”
복수를 해 줄 수 있는 다른 일행이 없었다면 이렇게 결연한 태도를 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짐작이 맞았는지 종남파 제자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나는 종남파 제자를 차갑게 내려다봤다.
“억울할 거 없잖아. 피해자처럼 굴지 마.”
종남파 제자에게선 혈교의 대법을 받은 자들에게 느껴지는 특유의 냄새가 난다.
선을 넘은 놈이란 의미다.
“모조리 뒤를 따르게 해줄 테니,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나는 기형암기 하나를 꺼내 그의 목에 박아 넣었다.
그리고 몸 곳곳에 몇 개의 상흔을 더 남겼다.
시체는 말이 없지만, 시체에 남겨진 흔적은 여러 가지 것들을 말해준다.
그렇게 위장을 모두 끝낸 다음 주변을 훑었다.
“바쁜 밤이 되겠어.”
***
아직 매복이 더 있다는 것을 파악했으니 주의 깊게 주변을 살폈다.
종남파 제자들이 응시하던 방향을 중심으로 주변 지형을 파악하니 매복과 기습에 용이한 위치가 몇 군데 보였다.
동화의 법으로 기척을 죽이고 가까이 다가가니 매복 중이던 종남파 제자들을 찾을 수 있었다.
역시나 선을 넘은 그들의 명줄을 모조리 끊어놓았다.
기형암기를 이용해 확실하게 상흔도 남겼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미숙한 점을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다.
전문적으로 암습과 살법을 배운 것이 아니다 보니 기척이 드러나고 소리를 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마지막 종남파 제자는 도주를 감행했다.
결국, 그놈은 기습이 아니라 뒤를 쫓아 목덜미에 암기를 박아 넣어야 했다.
“쯧! 살수 노릇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
흑살대 살수의 기형암기와 청원독을 챙긴 이유는 이를 이용해서 분탕질을 해보려는 목적이었다.
문제는 이를 위해서는 암살(暗殺)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아무래도 지금처럼 어설퍼서는 목적을 이루기가 어려울 것 같다.
내가 노려야 할 표적은 이들과 비할 바가 아닌 수준의 고수여야 할 테니까.
예를 들면 종남파 장문인이라든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기량으로는 부족하다.
“사부님 계세요?”
[오냐.]장삼풍 사부님이시다.
밤늦은 시간이지만 역시나 보고 계셨다.
“혹시 살수 무공에 대해서 조언받을 만한 것이 있을까요?”
[있겠냐?]“예, 뭐…….”
뭐, 대충 예상은 했다.
살수의 살법(殺法)은 사람을 죽이는 방법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사부님들은 언제나 강조하셨다.
무공이란 수련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부산물일 뿐이지, 그 자체를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고.
수련은 자기완성이 목표이지, 사람을 죽이는 법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대충 상황은 알겠으니 천마 그 양반과 머리를 맞대보마. 그 양반도 살수 무공 따위엔 관심이 없겠지만, 그나마 우리 셋 중에선 제일 나을 테니까.]괜히 사부님들께 수고를 끼치는 것 같아 죄송스럽다.
“아하하…….”
섭섭하게 굴지 말라는 장삼풍 사부의 타박에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종남파의 매복을 완전히 치워버리고 앞으로 나아가자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잘 아는 얼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청운아!”
“주인님!”
“얀마!”
반가워하는 반응들에, 왜 이제 왔냐는 띠꺼운 반응도 있고, 감격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각양각색의 반응 중 가장 격하게 반응한 것은 설아 누나였다.
한걸음에 달려와 와락 끌어안는 설아 누나 때문에 나는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누나?”
생각지도 못한 격한 반응에 나도 모르게 눈치를 살폈다.
‘응?’
이쯤이면 튀어나와야 할 타박이 없다?
한산월 아주머니가 곱지 않은 눈으로 한소리 할 줄 알았는데 조용하다.
아니, 반응이 없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없다.
설마 같이 움직이지 않은 건가?
내가 잘못 파악한 것인가 싶어 주변을 다시 한번 살피는 가운데 설아 누나가 내 가슴에 머리를 파묻은 채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고 계셔.”
“……어?”
설아 누나의 말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