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43
342화 강물 위에서
적어도 십 년쯤 못 본 가족과 다시 만나는 기분이다.
마음에도 그릇이 있다면 지금 그 그릇은 빈자리가 없을 만큼 꽉 들어찬 상태일 것이다.
나는 기쁘게 웃었다.
“많이 바쁘셨어요?”
[바빴다고 해야 할까? 바빴다고 해야겠구나. 너 때문에.]“예?”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어째 장삼풍 사부의 밝은(?) 목소리에선 피로에 찌든 관료의 쉰내가 풀풀 풍겼다.
뭔가 만족스러운 피로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무척이나 기묘했다.
비유가 좀 심하긴 했지만,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었다.
‘내가 사부님들을 바쁘게 만들 만한 일이 뭐가 있었나?’
머리를 굴려 보니 아주 없지는 않았다.
“에헤헤. 사부, 공무에 바쁘시면서 뭘 또 무공을 그리 공들여 만드십니까. 받는 제자 무안하게. 헤헤헤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장삼풍 사부가 콧방귀를 뀌셨다.
[염병한다.]순간 백무호가 몰래 밀항을 했나 싶었다.
아니, 진짜로.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며 백무호를 찾았을 정도다.
딱 백무호 놈 특유의 띠꺼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 아니에요?”
[이미 너한테 넘어간 무공이 몇 개인데 무공타령이냐? 가르쳐준 것들을 다 소화하긴 했고?]저리 말씀하시면 또 할 말이 없긴 하다.
다른 사람들이야 내가 펼치는 무공을 볼 때마다 감탄을 하며 엄지를 세우지만, 완성도를 본다면 낯부끄러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달마 사부께 초창기에 배운 극강격만 해도 그렇다.
그저 단순히 몸에 익은 정도니 완성(完成)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정말로 극강격을 완성의 경지까지 단련했다면 입천신마존도 정면에서 박살 내지 않았을까?
달마 사부라면 일격으로 산을 무너트리셨을 것이다.
확실히 지금은 새로운 무공을 익히기보단, 익힌 무공을 수습하고 가다듬는 것이 맞다.
허면, 궁금한 점이 생겼다.
나 때문에 사부님이 바쁘실 일이 대체 뭐지?
[내가 너 때문에 휴가 중임에도 출근해서 똥지게를 맸어.]“…….”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이유를 납득할 수 없음에도 일단 고개를 숙여야 할 때가 생긴다.
아마 지금이 그때인 것 같다.
하물며 휴가 중에 출근이라니!
그 어떤 말로도 위로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부님의 말씀 사이에 끼어있는 단어는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 그… 휴가 중에도 출근을 하셔야 하는 건가요?”
이걸 휴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그 정도로 천상은 어둡단 말인가?!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다만, 이번에는 좀 특별했다고 해야겠구나.]“특별… 이요?”
[꼰대들이 낭패 보는 꼴을 놓칠 수는 없지.] [암! 중대 사항이지.]천마 사부가 달마 사부에 동조를 하신다.
무척이나 드문 일이다.
놀랍게도 두 분 사부님들의 목소리에도 피로감이 가득한 흥이 넘치셨다.
세 분 사부님이 다 모여 계신 모양이다.
세 분 사부가 동시에 자리를 지키고 계신 일은 꽤 드문 일이라 의외다.
그러고 보니 장삼풍 사부가 휴가 운운하셨던 것 같은데, 세 분이 다 휴가를 받으신 모양이다. 뭔 일이 있긴 한 모양이다.
“무슨 일 있었어요?”
[무슨 일이긴…… 읍! 읍읍!!]뭔가 이야기하시려던 장삼풍 사부가 갑자기 입을 딱 닫았다.
누군가가 입을 틀어막기라도 한 것 같다.
그러더니 잠시 후.
[……올라오면 알려주마.]다른 말씀을 하신다.
갑자기 말을 돌리시는 것이 뭔가 수상쩍다.
‘아니, 그보다 올라오면 알려주신다니?’
몇십 년 뒤에나 가르쳐주신다는 소리다.
아니면 빨리 올라와 일을 도우라는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궁금증이 돌았지만 애써 참았다.
그런 가운데 장삼풍 사부가 다시 물으셨다.
[그런데 왜 장강이냐? 아직 처리 못 한 수적들이라도 남아 있디?]태연하게 던지는 물음에 한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진짜 바쁘셨던 모양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오랜만에 들린 사부님의 목소리만으로도 반가워 떠올리지 못했지만, 내 상황을 쭉 지켜보셨다면 하지 않으셨을 물음이기 때문이다.
‘천상에 모종의 일이 있었고, 세 분 사부님은 내 상황을 지켜보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 그리고 그건 나와 얽힌 문제다. 뭘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와 얽혀있다고 하시니 궁금해졌다.
하지만 사부님들이 이야기를 안 하신다는 것은 내게 불필요한 것이다.
내가 알아야 할 내용이라면 사부님들은 이를 숨길 리가 없기에 궁금증을 눌렀다.
“중경에 삼악도라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는 중입니다.”
[삼악도?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뭐, 이름만으로도 어느 쪽 놈들인지는 알겠다만. 거기 조지러 가는 거냐?]뭔가 흥미진진한 볼거리가 생겼다는 듯 이야기하신다.
애석하게도 반대다.
“손잡으러 가는 중입니다.”
[뭐?] [호오?]깜짝 놀라는 장삼풍 사부와 달리 천마 사부는 무척이나 흥미로워하셨다.
[너 깃발 바꿨냐?]“예?”
[주변에 있는 녀석들 때깔이 영 거무튀튀하구나?]갑자기 흥분해서 으르렁대시는 장삼풍 사부의 말을 들어보니 왜 그런 이야기를 하셨는지 알겠다.
이화랑 종노 둘 다 천마신교 소속이다.
게다가 지금 찾아가는 곳도 뭔가 검은색이 어울리는 느낌이다.
[마교천하라! 좋군!! 으하하하하! 그래, 사내로 태어났으면 한 번쯤 천하를 평정해봐야지!] [너 이놈!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무당파에 검은 깃발이 휘날리는 꼴은 못 본다!] [허!허!허! 제자야, 소림과 검은 깃발은 어울리지 않는구나!]세 사부님이 한꺼번에 목소리를 내니 감당이 안 된다.
아무래도 그간 있었던 일을 요약 정리해서 설명해드려야 할 것 같다.
***
종남파의 생존자들과 이를 도우러 보낸 장문경 선배 등과 합류한 이후, 사천에서 벌어졌던 일들.
이미 멸천회의 산하로 들어갔던 점창파의 음모와 이를 역이용하여 내부의 간자를 잡아낸 건.
이를 통해 멸천회를 적으로 부각시킨 건.
그리고 정사마가 하나로 힘을 모아 무림맹을 결성한 건.
사부님들도 놀라셨는지 말씀이 없으셨다.
그렇게 평화가 찾아왔다.
머릿속이 고요해지니 그제야 주변의 풍경이 눈에 밟혔다.
장강.
장강의 원류는 저 멀리 서장 너머에서 시작하여 사천 남서부를 지나 중경을 넘어 호북으로 이어진다.
즉, 중경은 장강의 물줄기를 잡고 있는 요지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중경은 삼악도의 영역이다.
다시 말해 삼악도와 손을 잡게 되면 완벽하게 장강을 먹을 수 있게 된다.
서천부터 중경, 호북, 안휘로 이어지는 물줄기를 틀어쥐게 되면 이로운 점이 많다.
장강을 이용한다면 다양한 방면으로 전력을 집중할 수도, 파견할 수도 있다.
또한, 물자를 완벽하게 보급할 때도 도움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림맹이 세워진 뒤다.
사람이 모이면 돈이 필요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육로의 역참 방식과 연계한다면 무림맹이 돈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계산이 서니 다른 부분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사마의 완전한 통합이라…….’
멸천회와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기는 해야 하겠지만, 이번 싸움이 끝나게 되면 무림 구도는 크게 변할 수밖에 없다.
사파는 삼악도를 끌어들인다는 가정하에 제육천이라는 사파거두 중 넷이 날아가게 된다.
정파 역시 구파의 절반이 날아가게 되니 꽤 약체화된 상황이 될 것이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느낌으로 사천에 모인 세력들을 중심으로 정사마를 하나로 묶긴 했지만, 이 상황을 잘 이용하면 제대로 섞어볼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림일통(武林一統)!
무림을 하나로 묶고 사부님들의 가르침을 때려 박는다.
확실히 구미가 당긴다.
절반만 먹는 것보단 다 먹는 것이 좋다.
장삼풍 사부와 달마 사부는 무당과 소림에 흑색 깃발이 휘날리는 꼴은 못 본다고 하셨는데, 흑색 깃발이 아니라 제자가 만드는 깃발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좋네.”
적어도 싫어하실 것 같진 않다.
***
배를 타고 장강을 가로지르니 습한 공기가 뺨을 스친다.
하지만 딱히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바람이 좋네.”
습기를 머금고 있는 바람이지만, 차갑지 않다.
딱 좋은 날씨다.
“중경의 날씨는 온화한 편입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겨울이 없는 곳도 있다더군요.”
“잘 아시네요?”
천마신교 출신인 종노가 중경에 대해 잘 아는 듯 설명하니 뭔가 새삼스럽다.
의외라는 기색으로 물으니 중노가 조용히 웃으며 답했다.
“이전에 한 번 와본 적이 있습니다.”
“아하…….”
그러고 보니 종노는 정사마 협약이 맺어지기 전 세대다.
당시 신승 어르신과도 제법 손속을 나눴던 호적수였다고 했었다.
중경에 발을 들였던 경험이 있는 모양이다.
대단하다.
백 년이라니.
그 반의반도 살지 못했기에 까마득한 역사처럼 느껴진다.
“기억나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기억해 둘 만한 자였지요.”
“강했나 보네요.”
“강하기도 했습니다만, 좀 특이한 자였습니다.”
백 년을 넘길 세월 동안 다양한 경험을 했을 종노가 기억에 담아둘 만한 특이함이라니 흥미가 생겼다.
하지만 그걸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보다 먼저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저기…….”
배를 움직이는 선원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깃발을 내릴까요?”
선원은 돛대 기둥에 달린 깃발을 불안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작은 소선 계열의 어선이라면 모를까,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크기가 있는 배에는 깃발을 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를 통해 선박의 소속을 밝히는 것이다.
깃발이 달리지 않은 배는 수적으로 취급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선원은 깃발을 내릴지를 물었다.
여기가 정파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달고 가죠. 어차피 숨길 것도 아닌데.”
“예에…….”
선원이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선원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히익!?”
“도망칠 일이 있다면 하늘을 날아서라도 데려갈 테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예! 옙!!!”
손도 안 대고 사람을 고양이 들 듯 하는 내 능력에 선원이 황망함을 담아 소리쳤다.
크게 당황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경외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선원은 이내 동료들을 안심시켰다.
그렇게 잠시 뒤 배가 정박할 포구가 보였다.
“관심 집중이네.”
배에 달린 깃발을 봤는지 다들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호기심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위험한 시선도 더러 있었다.
그런 가운데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크다.
위아래로 크고, 좌우로는 넓다.
“깃발을 안 내린 보람이 있네.”
포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에게 범접지 못했다.
그 모습에서 저 거구의 사내가 어디 소속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삼악도.
손님을 맞으러 온 모양이다.
“후예인 모양입니다.”
“응?”
그런데 갑자기 저 거구를 본 종노가 후예라는 말을 했다.
종노가 말한 그 특이했다는 강자의 후예인 모양이다.
‘이걸 좋게 봐야 하나, 나쁘게 봐야 하나…….’
과거의 인연이란 오래된 것일수록 애매해진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물러날 수도 없기에 나는 그 고민을 안고 포구에 내려섰다.
그렇게 거구의 사내 앞에 선 순간, 상대가 입을 열었다.
“좋은 근육이군.”
“…….”
종노의 말대로 특이함이 넘쳐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