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64
363화 사람은 성장한다
청조의 덩치가 덩치다 보니 날개를 파닥거리며 땅에 내려앉는 것만으로도 주변이 엉망이 되었다.
당연히 주변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청조를 신기해하면서도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알고 보면 말 잘 듣는 녀석인데, 오해가 큰 것 같다.
인식 개선이 필요했다.
“청조야.”
삑!
“배 좀 까자.”
뺙?
왠지 대답이 익숙했다. 약초를 캐러 천만대산을 날아다닐 때 비슷한 소리를 냈던 기억이 있다.
아마, 대충 ‘잘 못 들었슴다?’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말을 철회하지 않자 청조가 눈을 부라리며 고개를 비틀었다.
조류답게 유연한 목이 가로로 절반이 넘게 돌아갔다.
덩치가 덩치다 보니 제법 위협이 되었다.
내가 그렇게 느낄 정도이니 다른 사람 눈에는 더할 것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퍼덕거리며 항의했다.
이건 ‘아니, 내가 존심이 있지.’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골치 아프네.’
삼양현으로 돌아갈 때는 당 소저를 태우고 돌아가야 하는데, 이러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그때, 서왕모 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의 말을 전하려무나.]아주 좋은 지시가 내려왔다.
“청조야, 서왕모 님이 말 안 들을 거면 당장 선계로 올라오라는데?”
뺘앗!
청조가 그대로 발랑 누워 배를 보였다.
선계에 올라가 구르기는 싫은 모양이다.
확실히 평범한 새대가리가 아니다.
[쳇!]이전부터 청조가 하계에서 놀고먹는 것에 불만이 많으신 장삼풍 사부가 혀를 찼다.
청조는 배를 보이는 것을 넘어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고양이처럼 이쁜 척을 했다.
뺘아!
제 딴엔 애교를 부리는 것 같은데,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분위기다.
너무 자존심을 망가트리는 것도 문제다.
지시에 따른다는 것을 보여줬으니 지켜줄 건 지켜줘야 한다.
“앉아.”
기다렸다는 듯 발딱 일어난 청조가 제 머리를 내 뺨에 비볐다.
“그래그래.”
청조의 얼굴과 목을 쓰다듬어 준 나는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들을 돌아봤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예요.”
“…그, 그래 보이긴… 합니다만…….”
남궁세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뭔가 상식에 심각한 괴리가 온 것 같은 어벙한 얼굴로 나와 청조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연 소협이니까.”
“그건 그러네.”
다행히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을 시간이 없는 상황이니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수뇌부들은 급히 모여주세요.”
우선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공유할 필요가 있어, 수뇌부들을 긴급 소집했다.
***
수뇌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신중하게 이야기를 풀었다.
현 무림의 정세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구파의 일부가 적으로 돌아섰고, 그 배후에 있는 조직이 멸천회라는 것.
사천 정파 연합과 흑애무천, 삼악도, 천마신교가 우군으로 섰다는 건.
혈교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며 호북에 피해가 발생했다는 이야기 등.
거리가 있어 아직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당연한 말이지만, 멸천회주에 대한 이야기는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선계 이야기가 바닥에 깔려야 한다.
상식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이야기다.
다만, 현재 그간 숨죽이며 기회를 노리던 적이 상상 이상으로 위협적인 세력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히 주지시켰다.
“끄응…… 구파가 그리되다니…….”
“풍문으로 이야기가 돌기도 했소이다만, 너무도 터무니가 없는 이야기라 오히려 쉬이 사그라들었는데…….”
“흐음…… 그 정도까지 상황이 안 좋을 줄이야…….”
몇몇의 반응을 보면 어느 정도 소문이 돌긴 했던 모양이다.
그것이 실질적으로 확인된 것이나 다름이 없자, 사뭇 받아들이는 느낌이 달라진 모습이다.
“구파의 영향력이 크게 무너졌군요.”
남궁한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어려운 상황임을 받아들였다.
다들 표정이 심각해졌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사파 역시 세를 크게 잃었습니다. 흑룡회의 고수와 전투대를 척살했고, 흑애무천과 삼악도는 우리와 함께할 것을 천명했으니 세력 구도는 얼추 맞췄다고 볼 수 있겠죠.”
“그렇군요.”
남궁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둡던 표정을 다소나마 풀어냈다.
그에 호응하듯 다른 이들도 분위기를 밝게 이끌었다.
“게다가 우리에겐 연 대인이 있소이다.”
“맞아요. 저런 대단한 영물도 부리는데, 뭔들 못 할까!”
아주 내 얼굴에 금칠을 하며 사기를 끌어올린다.
나쁘진 않다.
문제는 여전히 불리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멸천회주.
인과의 문제가 없다면 홀로 무림 전체를 상대할 수 있는 괴물.
게다가 그자가 한 말을 되짚어보면 그 인과의 굴레에서 빠져나오려는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 손으로 분위기를 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적당히 호응하고 다독였다.
그런 가운데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던 남궁한이 입을 열었다.
“허면, 연 대인은 저희가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도 지금까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현재 나와 함께하고 있는 세력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사천에서 힘을 모을 것을 결정하고 움직이기 시작한 정사마 연합.
무당파와 소림을 중심으로 정비 중인 구파.
마지막으로 여기에 있는 오대세가와 녹림, 표국의 연계 세력.
문제는 이들을 하나로 모으면 덩치가 너무 커진다. 자칫 유연한 대처가 어려워질 수 있다.
전략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차라리 세 힘이 각자의 영역에서 능동적으로 적을 공략하는 편이 낫다.
‘멸천회주의 존재를 몰랐다면.’
장삼풍 사부가 말씀하셨다.
멸천회주가 직접 움직이지 않고, 내부에서 붕괴하도록 판을 짠 이유는, 그동안 구파가 쌓아온 인과를 직접 무너트리는 것이 부담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즉, 멸천회주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은 인과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구파가 아닌 세력의 활동은 자칫 멸천회주의 족쇄를 풀어놓는 결과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비슷한 이유로 녹림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줄을 바꿔 타긴 했지만, 녹림 역시 타인의 재물을 탐한 도적집단이었다.
남궁세가도 애매하다.
공격(功格)을 쌓기도 했지만, 세속적인 가문이다 보니 과율(過律)도 많이 쌓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죽은 전대 가주의 경우, 안휘로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을 키워 장강을 중심으로 세를 넓히려 했다.
만약 이들이 엄청난 고수에 의해 쓸려나갔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싸우기도 전에 기세가 꺾이게 될 것이다.
게다가 멸천회에는 흑사신의 후예라는 칼도 남아있다.
‘차라리 멸천회주가 움직일 선택지를 줄이는 편이… 낫겠지.’
이들을 구파에 합류시킨다면, 멸천회주의 선택지 하나를 삭제시킬 수 있다.
“일단 무당파로 ‘모든’ 세를 모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입니까?”
무척이나 극단적인 선택지라 생각했는지 남궁한이 재차 확인했다.
“예! 모두, 입니다.”
“알겠습니다.”
내 결정에 뭔가 알 수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해한 남궁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그간 내가 쌓아온 신뢰가 힘을 발한 것 같다.
“그리고, 당 소저.”
“예?”
“지금 바로 저와 삼양현으로 가주셔야겠습니다.”
“지금? 바로?”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던 당사연 소저가 마당을 슬쩍 돌아보며 물었다.
“저걸 타고?”
“예. 해주셔야 할 일이 있어요.”
“어어…….”
“급한 일입니다.”
단도직입적인 말에 당사연 소저의 얼굴에서 붉은빛이 감돌았다.
어쩌면 내 언행을 오해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갈게요.”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려나 싶은데, 당사연 소저가 결심한 듯 앞으로 나왔다.
[쯧쯧, 쟤 어쩌냐?]장삼풍 사부가 혀를 차셨다.
가슴이 따끔했다.
***
올 때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지는 청조의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그제야 제대로 실감하며 감탄했다.
사천당가 고수이자 당사연과 함께 삼양현에 자리를 잡았던 당조양은 유독 웃음을 띤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좋은 징조려나?”
뭔가를 기대하는 웃음이다.
하지만 남궁한은 심각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다른 걸 걱정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만…….”
연청운이 보인 모습에서 뭔가를 느낀 남궁한은 강한 경각심을 드러냈다.
***
최대 속력으로 날아가는 청조의 등은 기승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험했기에 당사연 소저를 보호하는 데 집중했다.
그래도 적응하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절반쯤 날았을 즘에야 그럭저럭 대화가 통할 상황이 되어서 해야 할 일을 설명하니 당사연 소저가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반도?”
“예.”
“그러니까… 그게… 그 옛날이야기 같은 것에 나오는 그거요? 서왕모 님의 반도원에서 얻는다는, 신선들이 먹는 복숭아?”
“그거 맞아요.”
“말도 안…….”
반사적으로 부정을 하려던 당사연 소저는 지금 자신이 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이미 이 청조라는 영물부터가 상식을 벗어난 존재다.
“한 번도 다뤄 보지 못한 영약이라 약효를 다 끌어낼 수 있을지 장담 못 해요.”
“비율이나 제조법 자체는 알고 있어요. 제 지시대로 만들어주시기만 하면 돼요.”
반도 외에 필요한 영약은 이미 사부님들이 모두 준비해주셨다.
제조법도 당연히 준비되었다.
정답지를 확보한 채 만드는 것이라는 말에 안도하던 당사연 소저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직접 만들어도 되는 거 아니에요?”
“이론적으로 아는 것하고, 직접 제조하는 것하고는 다르죠.”
“……어쩐지 그놈의 영약제조법을 후하게 풀더라니.”
삼양현에 머무는 동안 내가 건네준 보급형 영약을 줄곧 제조했을 것이다.
그럼 그런 당사연 소저가 안휘에서 한 일은 무엇일까?
앞으로 있을 전투에서 조금이라도 역량을 높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서 당사연 소저가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반도라니…… 하!”
당사연 소저의 표정이 결전을 앞둔 무인처럼 다부져졌다.
약을 제조하는 입장에서 흥분하지 않는 게 이상할 재료이긴 하다.
“거기서 얼마나 더 강해지려고 이런 영약을…….”
“설아 누나에게 필요해서요.”
“게엑…….”
딱 잘라 말하는 대답에 당사연 소저가 기괴한 소리를 냈다.
방금까지 흥분했던 게 거짓말처럼, 잔뜩 굳어진 당사연 소저가 몇 번을 망설이다 물었다.
“정말 이걸 나한테 맡겨도 괜찮겠어요?”
당사연 소저는 담담히 물었다.
차분해진 눈이 나를 주시했다.
눈을 마주하자 그 속마음이 보였다.
‘연적(戀敵)…….’
나도, 당사연 소저도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다.
설아 누나는 당사연 소저에게 연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묻는 것이다.
일에 감정이 섞이면 문제가 발생하기 딱 좋다.
하지만, 내가 할 말은 하나뿐이다.
“당사연 소저는 스스로의 능력에 자부심이 있으니까요. 분명 잘 해낼 겁니다. 내가 감탄할 만큼.”
“……당신, 순진하게 생긴 주제에 은근히 말 잘하는 거 알아요?”
재수 없다.
당사연 소저의 대답과 눈에서 전해져오는 기색은 일괄됐다.
이건 내가 생각해도 아니다 싶었다.
“미안합니다.”
“……사과받으려고 한 말이긴 한데, 막상 받고 나니 짜증 나네요. 쳇!”
당사연 소저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실컷 감탄하세요! 엄청 대단하게 만들 거니까!”
당사연 소저는 거친 바람에 맞서듯 당당하게 허리를 폈다.
하지만 나와는 더 이상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나쁜 남자로구나.]서왕모 님의 핀잔을 부정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