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80
379화 복마전(伏魔殿)
한밤중 황도에서 일어난 암살사건은 순식간에 세간으로 퍼져 나갔다.
황제의 권위마저 눌러낸 권력의 정점에 있던 이들 중 하나의 죽음이란 점도 그렇지만, 그 암살 방식 또한 화제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살수들과 달리 대놓고 장원으로 쳐들어가 막아서는 자들을 모두 죽이고 이부상서의 목을 잘랐다.
황도의 치안을 담당하는 금군의 책임자들은 궁으로 불려가 치도곤을 당했고, 폭풍 같은 내리갈굼이 시작된 금군은 바싹 독이 올라 사방을 들쑤시고 다녔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이는 권력의 중추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흑살대야. 놈들이 분명해.”
회동을 가진 궁의 고관대작들은 범인을 단언했다.
물론 반박하는 이도 있었다.
“아직 단언할 때가 아니라고 보네만.”
“그 새끼들 수법 한두 번 봐? 우리만큼 그 새끼들 잘 써먹는 게 누가 있다고!”
“흑살대가 살행을 벌이는 방식이 늘 지금처럼 정면에서 깨부수는 방식만 쓰진 않았네. 은밀하게 처리할 때도…….”
“그러니까 더 문제지! 이건 아예 대놓고 저지른 수준이잖아! 우리랑 척을 지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소리를 지르는 관리는 이성을 내려놓은 모습이었다.
마치 목에 칼이 겨눠진 것처럼 불안감에 날뛰었다.
강한 목소리에는 강한 감정이 실린다.
공포라는 원초적 감정이 실린 고성은 주변으로 전염되었다.
설득당한 건지, 아니면 내심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인지 그에 동조하는 이들이 생겼다.
“하여간 무림 놈들, 믿을 게 못 된다니까.”
“칼 들고 설치는 무뢰배 놈들이니 오죽하겠는가.”
누군가는 흉을 보며, 뱃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감정을 어떻게든 떨쳐내려 몸부림쳤다.
이부상서처럼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너무도 컸다.
그리고 공포는 또 다른 공포를 불러들였다.
“헌데, 우리 호위를 맡는 이들 중에 흑영이 많지 않나?”
“그것도 문제야. 놈들이 칼을 거꾸로 쥐었다면?”
흑사신의 무맥을 이은 자들로 오랜 공조 속에 협력해왔다.
하지만 그들 또한 무림의 무뢰배들에 불과했다.
그동안 자신들을 겨냥하는 의뢰는 받지 않았던 흑살대가 칼을 돌린 모습에 불안감을 느낀 이들은 다른 부분까지 의심하며 경각심을 드러냈다.
전례가 없던 일에 다들 바싹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그런 가운데 한 노인이 자리에 들어왔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지만, 마주치기 힘들 만큼 형형한 눈을 하고 있는 노인의 등장에 모여있던 고관대작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이 자리에서 가장 큰 권세를 쥐고 있는지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장인태감! 잘 오셨습니다!”
“뭔가 알아낸 것이 있으십니까?”
장인태감.
동창의 우두머리다.
고관대작들이 환관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이다.
“일단, 다들 앉으시게.”
“예!”
자연스럽게 지시를 내리고, 고관대작들이 당연하게 따른다.
마치 황제를 대하는 듯한 모습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있을 수 없다.
환관이 황제의 눈과 귀라면, 관리는 황제의 의지를 행하는 팔과 다리다.
본래 환관의 권세는 황제의 눈과 귀를 맡고 있다는 신임에서 나온다.
당연히 황제의 총애와 신뢰를 잃으면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된다.
장인태감 풍보현은 그것이 싫어 스스로 권력을 움켜쥐었다.
전대 황제를 죽여 없앤 주범인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황제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팔다리를 잘라내 고립시켰다.
“다들 이번 사태를 염려하고 있는 것 같구먼.”
“어찌 아니 그러겠습니까. 다들 불안에 떨며 태감만을 기다렸습니다.”
“흐음.”
풍보현은 고관대작들의 호들갑에 잠시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이 잠겼다.
“어쩌면 이번 일, 폐하께서 꾸미신 것일지도 모르겠네.”
“예?”
“아니, 그게 무슨…….”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는 고관대작들에게 풍보현이 설명을 이었다.
“궁에 내 눈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음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야.”
“물론이지요.”
“한데, 이번에 이부상서의 자리가 비자 폐하께서 곧바로 대응을 하시더군. 벌써 내정자까지 잡아두었어. 마치 작금의 상황을 기다리기라도 하셨다는 듯이.”
“허어!”
이부라는 조직의 최고직은 상서다.
그 밑으로 업무를 보좌하는 좌우시랑이 있다.
상서의 자리가 빈다면 좌우시랑에서 승진자가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별도의 내정자를 미리 잡아두었다면, 꽤나 의미심장한 일이다.
“하면…….”
“이번 일, 용린대가 움직인 것일지도 모르겠네.”
궁 내부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동창의 우두머리가 하는 말이다.
이를 간과할 자는 여기 없었다.
“폐하께서 무리수를 너무 크게 두시는군요.”
“허허허. 우리가 이를 그냥 두고 볼 것이라 생각하시는 건가?”
“맞네. 태감께서 이리 정정하시거늘.”
“폐하께 다시 한번 스스로의 입장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태감!”
어디로 적의를 드러내야 할지 파악한 고관대작들에게선 두려움이 사라졌고, 눈빛에는 스산한 기색이 어렸다.
장인태감은 그런 그들의 반응을 보며 가타부타 없이 조용히 웃음을 머금었다.
‘혼란은 많은 것을 바꾸지.’
멸천회의 행보가 이전과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사실, 풍보현의 입장에선 좀 더 편한 방법이 있었다.
귀찮게 거치적거리는 청류파를 쓸어버리고 황제를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몰아넣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멸천회의 주인이라는 자는 이를 반기지 않았다.
대부분 실권이 없는 명예직으로 밀어버렸지만, 최소한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배려(?)했다.
이제 그 배려를 거둘 때가 다가왔다.
‘북방이 무너지면 황도가 지척이다. 폐하께서 파천(播遷)하여 몸을 피하는 도중이라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한 일은 없지. 슬슬 준비를 해둬야겠어.’
풍보현은 야망이 들끓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나라는 혼란스러워지겠지만, 풍보현이 신경 쓸 바가 아니다.
어차피 민초들이란 들풀 같은 것들이다. 설령 일부가 뽑혀 죽더라도 곧 다른 들풀이 채우게 마련이다.
그렇게 모두가 단꿈을 꾸는 가운데,
“큰일 났습니다!”
환관 하나가 다급히 문을 열고 뛰어들었다.
“무슨 일인가?”
“저잣거리에……!”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지난 며칠 동안 황도는 그야말로 충격과 혼돈 그 자체였다.
용린대의 비밀거점조차 금군이 들쑤시고 갈 정도였다.
자칫 난감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새롭게 자각한 능력으로 이를 벗어날 수 있었다.
땅의 신력과 쇠의 신력을 합쳐 사물의 형태를 변환시키는 능력.
이 능력으로 비밀거점 지하에 밀실(密室)을 만들어 숨고, 금군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이 능력을 드러내자 할아버지조차 놀라셨다.
특히 권왕 진천패 어르신은 숫제 괴물 보듯 하셨다.
“너 솔직히 말해봐. 신선이냐? 도술도 익힌 거야?”
술법이나 다름없는 이능의 발휘했으니 그런 오해도 할 법했다.
다른 어르신들은 농담을 너무 진지하게 한다며 웃어넘겼지만, 솔직히 나는 뜨끔한 기분이었다.
진천패 어르신도 확신에 의한 물음이라기보단 그저 머리에 떠오른 것을 불쑥 내뱉은 것이었는지 딱히 물고 늘어지진 않았다.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폐하를 뵙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 것 같구나.”
“예…….”
본래 할아버지는 황제와 독대할 생각이 없으셨다.
해야 할 일만 딱 끝내고 다시 북방으로 복귀할 계획이셨으나, 나와 만난 이후로 생각을 바꾸신 것이다.
하지만 황도가 뒤집힌 상황이기에 황궁으로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궁인과 환관의 눈을 피해 독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경계가 삼엄해지며 더욱 난해해진 것이다.
결국, 그 경계를 흔들 필요가 있었다.
마침 써먹을 만한 것도 있었다.
바로 흑살대에서 구한 의뢰서들이다.
황실의 의뢰서 외에도 정적이나 눈에 거슬리는 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흑살대에 의뢰를 넣은 고관대작들은 상당했다.
그걸 필사해서 저잣거리 한가운데에 쫘악 붙였다.
“반응이 뜨거운 것 같구나.”
덕분에 지금 황도는 다른 의미로 뒤집혔다.
암살을 당했던 이들의 친족이나 지기들이 진상을 밝힐 것을 요구했고, 서슬 퍼런 금군으로 인해 시달리던 황도의 주민들도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금군의 책임자는 또다시 치도곤을 당해야 했고, 내리갈굼에 시달린 금군이 무력으로 이를 수습하려 했지만, 오히려 평생 먹을 욕을 한 끼에 처먹으며 털려야 했다.
덕분에 사납게 날뛰던 금군들의 기세도 한풀 꺾였다.
기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흑살대의 의뢰서가 퍼지며 혼란이 더욱 가중되었고, 그로 인해 금군은 흔들리는 중이다.
금군으로서는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범인(?)이 모습을 드러내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꼬리에 불이 붙은 소떼처럼 달려들 것이다.
그 빈틈을 노린다면 황제와 독대도 가능하다.
사실상 동릉에서 써먹은 성동격서(聲東擊西)의 계다.
다만 걱정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다.
할아버지는 황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 생각하시는 것 같지만, 나는 솔직히 비관적이다.
궁에는 아직 할아버지와 같은 청류파가 존재했다.
하지만 황제는 그들도 암살 명단에 올렸다.
그것이 말하는 바는 명백하다.
황제를 따르는 관리들조차 믿지 않는 것이다.
불신이 극에 다다라 있다.
소통을 끊고 아집에 빠져있는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
차라리 백 명이든 천 명이든 계도하는 일이 훨씬 쉬울 것 같다.
하물며 그게 황제라면.
‘그래도 할아버지가 해 보겠다고 하시니까.’
믿을 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도 간단하다.
“결행은 오늘로 하죠.”
“그래, 나도 준비를 하마.”
나는 설아 누나와 이화, 할아버지의 친우분들과 용린대원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밤, 형부상서의 목을 치겠습니다.”
***
지승태.
황제를 측근에서 모시는 관리이자 청류파의 거두.
그는 근래 들려오는 소식과 황도가 뒤집히는 모습에 초조함을 숨기지 못했다.
“큰일이군, 큰일이야.”
황제의 폭주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보고 있는 만큼 지승태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황제를 말리고 싶었지만, 힘도 능력도 모자랐다.
“황사조차 의심하고 계시니 이를 어찌할꼬.”
얼마 전, 황사였던 연자염의 손자에 대한 이야기가 황제에게 들어갔다.
천하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며 용의 화신이라 불린다는 소문이었다.
그 소문이 황제를 자극했다.
용은 천자, 황제를 상징하는 영물이었기 때문이다.
용린대가 올린 장계를 보았을 때 황제는 이성을 내려놓은 수준으로 불신과 불안을 쏟아냈다.
안 그래도 용린대에 대해서도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연자염이 황제와 독대하지 못한 지도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이 사실이다.
그런 탓에 용린대 내부에 비선을 심어 연자염을 감시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그러던 찰나에 전해진 소문은 그동안 쌓여 있던 불안감을 터트리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그 폭주가 작금의 사태로 이어졌으니 지승태로서는 평정을 찾기가 힘들 만큼 불안했다.
“꽤나 거한 사고를 치신 모양입니다.”
그때, 지승태에게 말을 거는 이가 있었다.
황제가 총애하는 용린대원.
황실 외척인 현 황후의 먼 핏줄.
더불어 연자염을 감시하는 밀명을 맡고 있기도 한 인물.
“관중연!”
그가 지승태의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