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81
380화 황제의 놀라운 진면목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로움이 없다는 고사다.
자고로 정보의 중요성은 전투의 행방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했다.
그랬기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명장들치고 척후를 등한시한 경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는 딱히 전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정보를 다루는 조직은 큰 힘을 가지게 된다.
궁의 눈과 귀가 되는 환관들의 조직인 동창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용린대 또한 같은 경우다.
정보를 다루며, 자체적인 무력을 보유하였고, 황제의 비밀조직이라는 권위까지 있다.
게다가 용린대는 자체적인 자금조달마저 해내며 예산의 압박에서 자유롭기까지 했다.
어느 조직이든 견제할 구석은 마련되어야 하는데 용린대는 목줄이 없다시피 한 수준이다.
유일한 목줄이라고 있는 것이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고작이다.
주변에 적이 가득한 궁에서 모든 것을 의심하며 살아온 황제에게 충성심이란 덕목은 그리 신뢰할만한 것이 못되었다.
용린대의 수장인 연자염에게 감시의 눈을 붙이기 위한 비선을 만들어 붙인 것도 어느 의미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미친 거지.”
하지만 관중연이 볼 때는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은 용린대에 목줄 좀 달아보겠다고 불장난을 할 때가 아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다음이라면 어느 정도 고려해볼 여지가 있으나, 그때가 된다면 연자염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물러날 위인이다.
그런 생각으로 황도에 온 관중연은 만나고자 했던 이를 앞에 두었다.
천하의 지배자인 황제다.
오연하게 내려다보는 황제를 향해 관중연이 오체투지를 하며 예를 보였다.
“폐하를 뵙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예정에 없던 방문이구나.”
“급히 찾아뵈어야 할 듯하여 이리 왔나이다.”
“급한 일이라…….”
느릿한 어조만큼이나 느릿하게 수염을 쓰다듬는 황제의 시선이 관중연의 뒤통수에 머물렀다.
관중연이 재차 입을 열었다.
“폐하.”
“말하여라.”
“말 좀 놔도 되겠습니까?”
“어허! 무엄한…….”
“무엄이고 자시고 말 좀 놓겠습니다.”
관중연이 고개를 치켜들고 황제를 바라보았다.
황제는 위엄을 지키고자 갖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이미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것이 어딘지 불안한 기색이 만연했다.
“하아…….”
관중연은 절로 한숨이 흘렀다.
위엄이란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배어 나와야 하는데, 황제는 그렇지가 못했다.
위엄을 가장하고 있다.
“하! 나 진짜. 호랑이도 개와 함께 기르면 개 흉내를 낸다지만…….”
“……네가 그리 말하면 내가 뭐가 되냐?”
“뭐긴 뭡니까, 개새끼지!”
“야!”
“왜요!”
막장 그 자체다.
옆에서 지켜보던 지승태는 정신이 혼미한지, 이마를 부여잡고 흔들리는 무릎을 지탱하는 데 사력을 다했다.
“이… 이게 군신 간의 대화란 말인가…….”
지승태는 당장이라도 오열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관중연의 눈초리는 여전히 사나웠다.
“내가 방금 호랑이도 개와 함께 기르면 개 흉내를 낸다고 했지요? 그 개가 누굴 것 같습니까?”
“…….”
“알아먹었으면 입 다물고 계십시다. 예?”
지승태의 입을 다물게 만든 관중연이 황제를 노려봤다.
“내가 폐하가 하려는 행동을 듣자마자 진짜 개처럼 달려왔습니다. 그러니까요, 제 말이나 행동이 좀 개 같더라도 참아주시죠. 예?”
“야, 내가 그래도 황제인데…….”
“뭐래. 마음 터놓고 말할 상대가 한 손을 못 넘기는 찐따 같은 양반이. 꼬우면 목 치시든가. 어디 저만큼 일선에서 목숨 걸고 일할 사람 찾을 수 있나 봅시다.”
관중연은 기어이 황제마저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땅에 떨어진 황제의 위엄이 어떤 것인가 보여주는 모습이라 하겠다.
관중연이 다시금 한숨을 토해내며 하소연하듯 물었다.
“제가 연가의 일, 연청운이란 인재에 대해 상세히 장계(狀啓-보고서)를 올린 것은 그를 경계하고 멀리하라는 뜻이 아니라 어떻게든 품에 안으라고 추천한 것이었습니다. 황가의 여식을 안겨서라도 끌어들여야 할 천고의 기재란 말입니다! 그런데 폐하께서 연가를 적대시하고 계시다고요?”
관중연이 다급히 황도로 복귀한 이유였다.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면 알아서 걸리적거릴 것들을 치워줄 연가의 사람들을 왜 황제가 나서서 적대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따져 묻는 관중연의 태도에 황제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했다.
놀란 표정이 첫 번째였고, 그다음은 질투, 마지막은 호기심이었다.
“대단하다고는 들었지만… 그 정도인가?”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게 없는 괴물입니다. 아마 결심만 한다면 나라도 뚝딱 만들어낼 겁니다.”
“……위험하단 소리잖아!”
“야심이 있다면 그렇겠죠. 근데, 신기할 정도로 야망은 적습니다. 이름 앞에 거창한 별호가 하나씩 붙을 때마다 낯간지럽다며 불판 위 오징어마냥 몸부림치는 작자가 위험하긴 개뿔!.”
“그렇게 공명심이 없다고?”
“그래서 최고지요. 능력은 있는데 야망이 없어요. 딱 황사(皇師) 손자예요. 핏줄 어디 안 간다고요. 내버려두면 알아서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을 쳐내 줄 거고, 쳐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인재의 발목을 잡으려 듭니까? 진짜 부탁드리는데요, 폐하. 그가 새로운 나라를 만들 계기를 던져주지 마십쇼. 부탁입니다. 진짜로요. 예?”
관중연의 말에 황제에 대한 존중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존중은 없어도 충심은 차고도 넘칠 만큼 가득했다.
황제는 이를 분명히 인식했다.
“잘 알았다. 내 연가의 사람들을 적대하지 않으마.”
진지하게 마음을 부딪쳐온 관중연에게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마음을 고쳐먹은 황제의 모습에 관중연은 다시 한번 오체투지를 했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처지가 딱해 모자람이 많지만, 관중연은 황제의 이런 모습을 높게 평가했다.
사실 성품이 조금만 더럽더라도 관중연의 이런 무례를 절대 참고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아무 문제 없이 황위를 이었다면 능히 성군이 되었을 재목이다.
그렇게 다시 한번 관중연의 가슴에 충성심이 차오르며 아름답게 마무리가…….
“깜짝 놀랐지 뭔가. 잔뜩 열이 뻗친 얼굴이기에 나는 또 ‘그 일’ 때문에 온 줄 알았지 뭔가. 하하하!”
“‘그 일’이라뇨?”
……지어지지 않았다.
충심으로 가득하던 관중연의 눈빛이 살벌해졌다.
“아하하하…….”
“또 뭔 지랄을 하신 겁니까?”
다시금 관중연의 똘끼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 똘기 앞에서 황제와 지승태는 ‘그 일’에 대해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관중연은 다시금 한숨을 토해냈다.
폐 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진짜배기 한숨이었다.
“……반란 마렵다, 진짜.”
이 인간의 뚝배기를 깨버리는 것이 사실은 세상을 위한 일이 아닐까?
잠깐이지만 관중연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상념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으음?”
수년간 사지나 다름없는 곳들을 다니며 단련된 감각이 경고음을 보냈다.
무언가 있다.
절대 좋은 의도가 아닌 무언가다.
칼날 위에 올라선 듯한 느낌을 관중연은 분명히 자각했다.
위험한 것이 다가오고 있다.
“여기 무기 있습니까?”
“상방보검이라면… 아니, 그런데 검은 왜?”
“왜긴요. 제가 잘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지요.”
갑자기 무기를 찾는 관중연의 행동에 황제와 지승태는 당황했다.
“자, 잘하는 일?”
“폐하를 위해 목숨을 거는 일.”
관중연은 황제가 충신에게 내리는 보검인 상방보검을 손에 들고 바싹 긴장했다.
“이곳은 위험합니다.”
천하에서 가장 안전해야 하는 곳이 갑자기 사지(死地)로 변했다.
***
이부가 관리들의 인사를 담당하는 곳이라면, 형부는 법률과 죄인들을 다루는 곳이다.
법의 집행과 관리는 권력자에게 중요한 영역이다.
당연히 황제에 반하는 이들의 손아귀에 넘어간 지 오래되었다.
“이번엔 우리가 따는 거예요.”
“최대한 시끄럽게?”
설아 누나가 핵심을 짚어냈다.
“예, 그래야 시선을 끌 테니까요.”
우리 쪽에서 사건을 키워 시선을 끌고, 할아버지는 친우분들의 도움을 받아 궁으로 들어가 황제와 독대한다.
황제의 폭주를 막는 것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멸천회주가 먹으려고 준비 중인 밥상만 걷어차도 황도에서의 일은 성공이다.
“응. 알았어. 최대한 시끄럽게.”
설아 누나가 주먹을 불끈 쥐며 의욕을 높였다.
내겐 마냥 예쁘고 귀엽게 보이지만, 살짝 불안한 기분도 들었다.
오행신력을 다루게 된 설아 누나의 힘은 규격이 남달라졌기 때문이다.
“이화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설아 누나를 따라 하는지 이화 역시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의욕을 내보였다.
[쟤 기준에서 최선이면 황도에 미친 방화범을 풀어놓은 게 아닐까?]장삼풍 사부의 지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부정할 수 없다는 게 무섭다.
갑자기 불안감이 배로 늘어났다.
“이화는 덜 최선으로.”
기준을 낮추라는 내 말에 이화의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딱 잘라서 싫다고 대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바로 납득하지도 않았는지 큰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요즘 활약이 뜸해서 그런가 싶다.
“흑살대 행세를 해야 하는데 불을 일으키는 술법은 좀 이상하지 않겠니?”
“……알겠습니다.”
납득했는지 이화가 작은 손을 빤히 내려다봤다.
그리곤 다시 불끈 주먹을 쥐는데 그 손에서 뭔가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뭔가 새로운 것에 눈을 뜨게 만든 기분이 드는데, 착각인가? 착각이겠지?
“움직이자.”
복면을 단단히 여미며, 하늘에 떠 있는 달의 위치로 약조한 시각이 되었음을 확인한 나는 설아 누나, 이화와 함께 밤하늘을 달렸다.
용린대를 통해 미리 전해 들은 형부상서의 거처로 향하는 동안 수많은 기척이 느껴졌다.
해가 저물고 달이 떴음에도 밤거리를 서성이는 금군의 경계가 느껴졌다.
위아래로 시달린 탓인지 어깨가 축 처진 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이들의 눈과 귀를 피해 움직였음에도 금방 목적한 곳에 다다랐다.
형부상서의 장원이다.
“예상대로네.”
널찍한 장원에는 불빛이 거의 없었다.
경계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 감각에는 어둠 사이사이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자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궁에 틀어박혀 있던 작자가 갑자기 귀가했다더니.”
뻔히 보이는 유인책이다.
“아무래도 우리를 상당히 호전적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저들 입장에선 우리가 대놓고 이부상서의 장원을 습격해 목을 따버렸다고 여길 테니 억측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이상한 애들이네. 우리 운이가 얼마나 상냥한데.”
설아 누나의 손길이 내 머리 위로 올라왔다.
아니, 나쁘진 않은데 이 상황에서 쓰담쓰담은 좀…….
[하! 이 상황에서 염장질을 한다고?] [퉷!]뭔가 윗동네의 여론이 안 좋다.
후딱 들이받아야겠다.
“한번 휘저어 놓을게요. 도망치는 놈이 있으면 잡아줘요.”
나는 빠르게 몸을 날렸다.
넓게 트인 시야가 단번에 장원 내부를 훑었다.
건물 중에 가장 크고 중심에 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허공에서 방향을 바꿔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아아아아!
일격에 박살 난 건물 파편이 요란하게 사방으로 뿌려졌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핏기는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부순 건 빈 건물이었다.
이것도 예상했던 대로다.
이부상서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있는데, 형부상서가 이런 곳에 어슬렁거릴 리가 없다.
반면 주변에서 시끄러운 소리들이 이어졌다.
“걸렸구나!”
“잡아라!”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사방에서 불빛이 일며 살기가 난무한다.
쇠그물과 노가 요란스럽게 날아들었다.
나를 함정에 빠진 맹수로 취급한다.
웃긴 노릇이다.
“내가 함정에 빠진 게 아니야.”
손에 모은 내력을 사방으로 뿌렸다.
눈 깜빡할 사이에 뿌려진 장력이 사방을 꿰뚫는다.
촤라라라라라!
화르륵! 화륵!
허공을 날던 쇠그물과 노가 부서져 날아가고, 터져나간 화로에서는 불꽃이 꽃처럼 피어나며 불똥을 날린다.
“니들이 내 앞으로 던져진 거지.”
날 잡으려면 백만 대군쯤은 동원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