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82
381화 빛을 가져오는 자(1)
철이 만들어내는 불꽃이 만개하고 피가 사방을 수놓는다.
어두운 밤에 피어나는 난전이, 다시 한번 황도의 밤을 뒤흔드는 소란이, 요란스럽게 정적을 깨트렸다.
그런 가운데 바삐 다리를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미친놈드으으으으을!!”
형부상서는 순식간에 전쟁터 한복판이 되어버린 장원에서 달아났다.
공포를 털어내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순식간에 파묻힐 정도로 주변은 굉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수천의 기마병이라도 달리는 듯 땅이 울리고 공기가 떨렸다.
담장의 기와나 작은 돌멩이들처럼 피가 흐르지 않는 것들이 생명의 숨결이라도 얻은 듯 들썩였다.
어지간한 담력일지라도 혼비백산할 상황에서 형부상서는 다시 한번 악다구니를 토해냈다.
“개잡놈들! 염병할 새끼들!! 내 반드시 네놈들을 쳐 죽일 것이야!!! 절대로 쉽게 죽이지 않을 것이야!!!”
당연히 그를 호위하는 자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두운 밤에 눈에 잘 띄는 황금색 갑주를 입은 자들.
황제의 직속 친위대인 금의위다.
이 자리에 있는 것을 보면 이미 고관대작들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모습이지만.
하지만 그들은 형부상서를 제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분노를 표출할 힘을 품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형부상서가 얼간이마냥 다리가 풀려 주저앉는다면 거추장스러운 짐 덩어리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놈들…….”
다행히도 형부상서의 악다구니는 잦아들었다.
함정을 파기 위해서는 미끼가 필요하다는 건 형부상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미끼가 자신이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어떻게든 빠져나가고자 대역을 맡을 자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확실한 미끼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떠밀려버렸다.
법과 범죄자들을 다루는 직책에 있기에 의식적으로 근엄하고 강직한 면모를 보여 왔었던 형부상서였다.
체면이 걸려있는 만큼 자존심을 긁어대는 다른 고관대작들의 도발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다른 노림수도 있었다.
위기(危機)는 위험(危險) 뒤에 기회(機會)라고 했다.
이번 일을 잘해 낸다면, 굵직한 실적이 될 것이다.
“두고 봐라! 내 반드시 네놈들보다 높게 올라갈 것이다!”
형부상서는 다시 한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황도 저잣거리에 흑살대 의뢰서가 깔리자 장인태감은 갑자기 태도를 전환했다.
느긋하게 때를 기다리던 여유를 거두었다.
이는 분명한 황제의 실책이다.
황제가 저지른 일은 도화선에 불을 붙인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장인태감이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은 명약관화다.
“……그때는 네놈들이 날 부러워할 것이야!”
이것이 형부상서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비루먹은 개처럼 헐떡이고, 평소의 근엄함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꼴임에도 희미한 웃음을 지우지 못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형부상서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콰아아아아앙!
성벽을 부수는 투석기의 돌이 코앞에 떨어진 것 같았다.
굉음이 코앞에서 터지며 그 여파에 휩쓸린 형부상서가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았다.
“으헉!”
발라당 넘어진 형부상서의 다리 사이에서 뜨끈한 물줄기가 바지를 적셨다.
“주, 주주주주주, 죽었, 죽었어?!!”
호위를 맡고 있던 금의위 무사 중 일부가 찢겨나갔는지 육편이 된 핏덩어리가 사방으로 뿌려졌다.
그 일부를 뒤집어쓴 형부상서가 발광하며 몸부림쳤다.
“피… 피! 피다! 피!! 피이이이!!”
정신줄을 놓은 듯 허우적거리는 꼴에 칼을 뽑아 든 금의위 무사들이 혀를 찼다.
“업어.”
“……예.”
드디어 짐 덩이로 전락한 형부상서를 금의위 무사 중 하나가 어깨에 걸쳤다.
“으아아아아아!”
금의위 무사의 어깨 위에 올려진 형부상서가 몸부림치며 소리를 질렀다.
한 대 후려갈기고 싶다는 듯 금의위 무사들의 시선이 잠시 형부상서의 뒤통수에 머물렀다.
추한 꼴도 추한 꼴이지만, 주변의 시선을 끄는 소란도 문제였다.
악다구니를 쓸 때는 그래도 자기 발로 뛰어다니기라도 했으니 어느 정도 감수할 여지가 있었지만, 짐 덩이가 된 지금 상황에서는 주변의 주의를 끌기만 할 뿐이다.
그리고 그 망설임의 대가는 곧장 그들에게로 돌아갔다.
후확!
투석기가 날린 돌처럼 날아든 인물.
여파로 흩날리는 돌의 파편들이 다 가라앉기 전에 움직인 복면인이 자욱하게 일어난 먼지구름을 찢으며 쇄도했다.
바람과 한 몸이 된 듯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달려드는 백설아의 일장이 가장 앞에 있는 자를 후려갈겼다.
쩌엉! 퍼걱!
일격에 칼을 부수고, 머리를 으깬다.
쇠망치로 계란을 깨도 저보다 더 간단할 것 같지가 않았다.
연이은 장력에 전열에 있던 금의위 둘이 뭉개졌다.
“허억!”
상상을 뛰어넘는 무위에 금의위 무사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물러나!”
전진을 멈춘 자들이 자리에 멈춰서며 전열을 정비했다.
그것을 본 백설아가 실소를 지었다.
“우릴 얼마나 우습게 봤는지 알겠네.”
맞서 싸우기보다 도주를 택한 점에서 역량의 차이를 어느 정도 가늠할 줄 알았다고 여겼는데, 직접 얼굴을 맞댄 백설아는 그것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격차가 있음은 인정하지만, 최소한 시간벌이쯤은 할 수 있다 여기고 있었다.
막연히 흑살대 살수라고 판단한 것 같다.
‘살수들쯤이야’라는 안일한 생각과 금의위 무사로서의 자존심이 오판을 끌어낸 것이다.
“실제 흑살대가 왔어도 니네들로는 턱도 없어.”
“……뭐라?”
습격자들이 흑살대 살수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자들이 백설아의 말에 반응했다.
“흑살대가 아니라고?”
금의위 무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속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과 함정에 빠졌다는 당혹감.
거기에 생겨나는 백설아와 습격자들의 정체에 대한 의문.
하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었기에 혼란은 더욱 커졌다.
이들은 누구이고, 왜 흑살대로 위장했는가!
거사를 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기에 더욱 민감해진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그 본능이 분명한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챙기라고 외쳤다.
“형부상서는 포기한다. 누구든 빠져나가 이 일을 알려라! 나머지는 목숨을 걸고 저 괴한을 막는다!”
“충!”
금의위 무사들이 사방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이미 늦은 상태였다.
콰콰콰콰!!!
“으악!”
“어억!”
몸을 날린 금의위 무사들이 백설아가 날린 장력에 으깨진 채 패대기쳐졌다.
뒤쪽 담장 너머로 몸을 날린 금의위 무사가 도주에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
콰득!
단단한 두개골이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머리가 사라져버렸다.
이화의 작은 손이 담장을 넘으려는 금의위 무사의 머리를 후려친 결과였다.
“못 갑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괴력이었지만, 이화가 올라선 담장이 유일한 생로인 것처럼 금의위 무사들이 괴성과 함께 달려들었다.
“어린년이!”
“비켜라!”
단번에 이화를 찢어발길 것만 같은 살기가 일었다.
그 순간 이화의 손에서 뭔가가 솟아났다.
화르르르르!
허공에서 누군가 불꽃을 정련하듯 타오르며 일어난 거대한 불꽃이 뚜렷한 형상을 갖춰나갔다.
창처럼 긴 자루가 있고, 그 끝에는 이화가 완전히 몸을 숨기고도 남을법한 크기의 도끼날이 달렸다.
거대한 도끼창이 어두운 밤을 밝혔다.
“……허?”
단번에 이화를 찢으려던 금의위들이 멍청한 소리를 냈다.
손바닥만 한 주머니를 여니 그 안에서 집채만 한 무언가가 튀어나온 꼴이다.
어딘가 현실감 없는 광경이다.
하지만 그 괴리감 뒤에 숨겨진 위험을 읽어내지 못했다.
그들을 향해 입을 꾹 닫은 이화가 몸을 움직였다.
다리가 나아가고, 무릎이 담아낸 회전을 허리와 어깨가 돌렸다.
전신을 회전시켜 휘두르는 일격!
그 속도는 비현실적인 도끼창의 크기에 비해 너무나 빨랐다.
후화화화화확!
단순무식한 파괴력이 땅을 할퀴었다.
사실, 초식이라는 개념으로 본다면 이화의 자세에는 지적할 부분이 무척이나 많았지만, 압도적인 크기와 질량 그리고 이를 무시하는 속도가 그 모든 허점을 빈틈없이 채워 넣었다.
그 결과가 바닥에 남았다.
산화한 금의위 무사들은 재만 남았다.
끔찍한 재앙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셋에 불과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화의 공격을 받아낸 것이 아니다.
그저 백설아의 발목을 잡고자 도주하지 않은 자들일 뿐이다.
“다행이네.”
백설아가 그런 생존자들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아직 셋이나 남았어.”
그들의 죽음은 결정되어있지만, 그 전에 뽑아낼 정보가 있다면 뽑아내는 게 연청운에게도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히이이이이익!!”
그런 백설아의 미소에서 죽음을 본 것인지 바닥에 팽개쳐져 있던 형부상서가 다시 한번 바지를 축축이 적셨다.
***
‘잡았나 보네.’
장원 외각에서 폭발적인 힘의 여파가 느껴진다.
피부에 닿아오는 후끈한 열기로 미뤄보아 이화가 힘을 쓴 것 같다.
술법은 쓰지 말라고 당부했으니 술법은 아닐 것인데, 느껴지는 여파를 보면 그에 버금가는 뭔가를 꺼낸 것은 분명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설아 누나와 이화가 있는 곳은 정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남은 것은 눈앞에 있는 놈들 뿐.
그 구성을 보면 대부분 금의위로 보였고, 중간중간 동창 소속으로 보이는 자들이 끼어있었다.
굳이 머리 아프게 상대할 것 없이 힘으로 찍어 누르면 될 일이다.
나는 감각을 끌어올렸다.
갑자기 세상이 느리게 흐른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느릿하게 움직이는 자들이 필사적으로 도검을 휘두르며 덮쳐오는 가운데 나 홀로 자유롭게 세상을 활보했다.
손을 뻗으면 사람이 갈라지고.
발을 내디디면 사람이 뭉개진다.
찢기고 터진다.
내가 느끼는 세상에 속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몇 차원 높은 영역에서 굽어보는 탓인지 주변의 모든 것이 가짜처럼 느껴졌다.
나와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 아닌, 사람인 척하는 무언가 같았다.
위험한 감각이다.
도를 넘는 전능감이 가져다주는 감각에 몸과 정신의 영역이 점점 사람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들에서 위험성을 인식했다.
사람이 사람 같지 않다니!
긴장감이 완전히 사라진 전투라는 건 이런 것인가 싶었다.
동시에 멸천회주가 왜 그리 미쳐버렸는지도 약간이지만 이해가 되었다.
[건방진 놈! 천지만물이 우습게 보인다고? 아직 한참 멀었다. 제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놈이 무슨!]그런 내 기색을 알아차리셨는지, 장삼풍 사부의 꾸지람이 내려온다.
따끔한 일침이 아프게 꽂힌다.
‘그러네. 지금 누구 앞에서 힘자랑을 하고 있는 건지 원.’
사부님들, 더 나아가 선계의 신선들 앞에서 나란 존재는 아직 갓난아이나 다름없다.
아니, 그보다 못하다.
그런 내가 자만을 품다니, 웃기는 노릇이다.
[그래도 다행히 제 주제는 아는구나.] [상으로 힘쓰는 법을 가르쳐주마.] [극에 다다른 의념은 한순간에 세상을 넘어 삼천세계를 관통하고 이치에 닿는다.] [네 안에 존재하는 영역들은 단순한 힘의 덩어리가 아니다.] [오행이 오행인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태극이 돌고 도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날뛰는 혼돈 속에서 너를 찾아라.]말.
말.
말.
말이 쏟아진다.
일찍이 사부님들의 가르침을 접했을 때의 그 혼몽함.
[그 본질에 닿아라!]질퍽하게 나를 담가 물들이는 말들의 향연이 이끌어나간다.
내 안의 힘과 영역들을 흐리게 만든다.
과거 소천룡이라 불리던 시절, 각성 이전 일개 무인으로서 추구하던 형과 식이 무너지는 가운데 몸 안으로 새로운 길을 연다.
오행이 움직이고, 태극이 돌며, 혼돈이 요동치는 가운데.
삼천세계를 관통하는 길이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는 길을 연다.
빨려 들어가는 감각이 모든 것을 하나로 응집하려 한다.
본능이다.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려는 듯, 내 안의 모든 것이 원하고 있다.
[깨어나라!]껍데기를 깨고, 알에서 부화하는 무언가가 머릿속을 관통하며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