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83
382화 빛을 가져오는 자(2)
갑자기 몸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커다란 숨구멍이 생긴 것 같다.
들숨과 날숨으로 호흡을 시작하며 내가 지금까지 모르던 방향으로 싹을 틔워나갔다.
‘묘하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상식이 깨어지는 느낌이다.
매일 얼굴을 맞대고 지내던 사람의 다른 면모를 보게 된 기분이다.
[네 안에 자리 잡은 힘은 더 이상 내공이 아니다. 그런데 자꾸 평범한(?) 무인들처럼 힘을 쓰려 하니 그 수준에서 노는 거지. 네가 상대해야 할 놈이 어떤 놈인지 생각한다면 그런 버릇은 빨리 버리는 게 좋다.]날개 달린 새가 짧은 두 다리로 뛰어다니고 있다는 소리다.
‘새롭게 나아가라.’
새롭게 열린 숨구멍으로 의지가 실린다.
내가 숨을 쉬니 세상이 숨을 쉰다.
하늘과 땅, 천지와 함께 숨 쉬는 모든 호흡이 내부를 채워 넣는다.
내부를 팽창시키는 호흡이 극에 다다르자, 내 안에 자리 잡은 힘들이 정신없이 돌아가며 아우성친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신경 다발 하나하나에 꽃이 피는 느낌이다.
무수히 만개하는 꽃들 사이에서 상화가 기뻐 춤추는 것이 느껴진다.
내 안에 담겨있는 가능성들이 고개를 드는 순간.
참을 수 없는 고양감이 내 안을 가득 채우자,
나는 더 이상 지상에 발을 붙이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몸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머리 위에는 태양을 놓은 듯 뜨겁다.
그 원동력이 되는 힘은 한계를 모른 채 돌고 돌았다.
공감각이 열린 나는 내 모습을 관조하듯 바라보았다.
몸은 금신.
머리 뒤에는 후광이.
등 뒤에는 광륜이.
‘뭐야, 이거?’
내 안의 가능성을 깨우는 일에 전념한 결과.
앞만 보고 달린 끝에 다다른 모습.
아무리 봐도 사람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
금의위 위사 용금상은 무인이기 이전에 나라의 녹을 먹는 군인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그런 그가 금의위에 몸을 담으며 품은 생각은 단순했다.
상명하복(上命下服).
군인의 검에는 자의(自意)가 없다.
명을 따르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
그렇기에 용금상은 명에 따라 움직였다.
그런 용금상이 가장 먼저 버린 것은 웃음이었다.
용금상이 검을 뽑을 때마다 피가 흘렀다.
검에 묻은 피는 언제나 공통점이 있었다.
장인태감의 눈 밖에 난 자들.
금의위가 황제보다 장인태감의 명령을 우선시하게 된 지는 오래였다.
금의위라는 세 글자에서 자부심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처음 금의위 위사로 배정받았을 때 선배들의 표정들이 모두 하나같다는 위화감의 근원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결국, 금의위 위사들 모두가 그렇듯, 용금상 역시 그들을 닮아갔다.
상명하복(上命下服).
다행히 완벽한 변명거리가 있었다.
불의(不義)임을 알면서도 행하는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주술과도 같은 단어였다.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을 베어 죽일 때마다 마음은 마모되어 갔지만, 명령에 따를 뿐이라는 변명으로 마음과 정신을 지켰다.
형부상서의 장원을 공격해올 자를 죽이라는 지시에도 평소와 같은 마음으로 검을 뽑았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오늘이 내 마지막이구나.”
형부상서의 장원을 공격한 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고수였다.
그 누구도 일초식을 감당하지 못했다.
막힘없이 흐르는 움직임은 하나의 아름다운 선을 그렸다.
칼을 품은 바람 같았다.
자신들은 그 바람에 잘려 나가는 풀잎이었다.
들판을 스치고 지나가는 강한 바람에 들풀이 들썩이며 흩날렸다.
“이것도 업보.”
용금상의 검에는 수없이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피가 흘렀다.
그 업보가 돌아온 것이라 받아들이자, 신기하게도 모든 미련이 사라졌다.
그러자 용금상은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상태로 저 아름다운 선이 자신에게로 향할 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 이게 대체…….”
종횡무진(縱橫無盡)으로 장원을 휘젓던 습격자의 모습이 일순간 바뀌었다.
땅 위를 달리던 존재가 두둥실 떠오르더니 하늘에 자리를 잡았다.
몸에는 금색의 서광이 일어났고, 머리 위에는 부처님처럼 후광이 뻗었으며, 등에는 오색으로 빛나는 빛이 륜(輪)을 이루며 번뜩였다.
황도의 어둠을 거둬내는 존재에 금의위 무사들은 무기를 들이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대체…… 대체…….”
사람을 거품마냥 터트리고 다니는 존재에게는 검을 들이밀 수 있었지만,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모습에는 두려움을 느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용금상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죽는 순간까지 내려놓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던 검이 툭 하고 떨어졌다.
떨그렁!
처량한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용금상은 떨어진 검을 주워들을 생각도 못 했다.
이는 용금상만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비슷한 소리들이 연이었다.
그런 가운데 누군가 무릎을 꿇었다.
“대일여래(大日如來)이시다…….”
비로자나불. 세상에 널리 비추는 부처다.
왜 살수처럼 보이던 자가 저런 모습을 드러냈는지에 대한 의문 따윈 없었다.
죄 깊은 자들이 가장 먼저 머리를 조아렸다.
“용서를…….”
황도의 밤을 밝히는 빛 아래, 변명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진 자들이 추악한 과거를 돌아보며 눈물로 참회했다.
겁먹은 아이처럼 두려움에 떠는 금의위 위사들이 머리를 땅에 박았다.
금의위 위사만이 아니었다.
“나무아미타불…….”
떨그렁! 떠렁! 떠더덩!
눈에 불을 켜고 황도를 이 잡듯 뒤지던 금군들이 일제히 창을 던지고 금의위들처럼 오체투지했다.
그런 이들이 점차 늘어갔다.
하늘에 떠올라 빛을 발하는 연청운의 모습은 황도에 거하는 모두가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빛은 금의위와 금군을 넘어 민가의 사람에게까지 뻗어나갔다.
황도가 연청운을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
서걱!
“크아악!”
덤벼오는 자의 손목을 베어버린 관중연이 상처를 움켜쥔 채 주춤거리는 적에게 달려들어 목에 검을 꽂아 넣었다.
하지만 적은 하나가 아니었다.
관중연은 쓰러진 자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휘둘렀다.
챙! 촤아악!
“돈 많은 놈들답게 칼도 좋은 거 쓰는구만!”
좌검우도.
양손에 검과 도를 쥔 관중연이 야차처럼 날뛰었다.
관중연이 지나간 길목 뒤로 시체들이 줄을 이었다.
황궁 내부에 피의 길을 만들어낸 관중연은 기어이 습격자들을 모조리 베어냈다.
“가시죠.”
크게 호흡을 가다듬은 관중연이 뒤를 돌아보며 재촉했다.
황제와 지승태.
피로 얼룩진 길을 뒤따르는 그들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관중연이 열어낸 길을 뒤따르는 것도 쉽지 않은지 숨을 헐떡였다.
체력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사람이 실제로 죽어 나가는 곳에 있다는 심적 부담의 영향이 커 보였다.
“후우… 후… 이, 이자들은?”
“동창이겠죠. 쥐꼬리만 하던 인내심이 마침내 한계를 보인 모양입니다.”
“장인태감…….”
이 사태의 흉수를 언급하는 황제의 얼굴에는 온갖 감정이 뒤섞였다.
피가 낭자한 곳에 있다는 두려움과 겁을 먹은 것에 대한 창피함. 숨을 헐떡이며 약한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 것에 대한 수치심.
그리고 이 사태를 만든 흉수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
시시각각 변하는 황제의 얼굴이 혼탁해졌다.
“숨 다 골랐으면 다시 뛰십쇼.”
“으으…….”
“서둘러야 합니다. 이것들이 단번에 몰아치지 않는 것을 보면 청류파에서도 어떻게든 상황을 인지하고 시간벌이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이 버티는 사이에 이 엿같이 커다란 황궁을 벗어나려면 갈 길이 멉니다.”
동창이 작정하고 역모를 일으킨 것이라면 지금 상대하는 머릿수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역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황제를 치는 것에 전력을 다하지 못함은, 이를 누군가가 막고 있음이고, 상황의 흐름을 살펴보면 그 누군가가 청류파임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청류파의 힘으로는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한다.
황궁을 장악하다시피 한 동창의 힘은 막강했다.
그들과 적대적인 위치에 있던 관중연이기에 동창이 가진 힘을 잘 알고 있다.
“어서요!”
“아, 알았다.”
숨을 고르던 황제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어떻게든 다시 움직였다.
하지만 지승태는 움직이지 않았다.
발을 멈춘 지승태의 행동에 관중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눈을 한 사람은 제 명에 못 살던데…….”
관중연의 말에 지승태는 빙그레 웃었다.
“관 조장은 본관을 개에 비유했었지.”
“그건…….”
“관 조장의 말이 맞네. 실제로 관 조장이 본관을 개에 비유했을 때 할 말이 없었어. 하지만 이건 알아주게나. 개는 주인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진다네.”
지승태와 눈을 마주하고 있는 관중연은 그의 마음을 읽었다.
발목을 잡지 않겠다는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관중연이 알기로 이런 눈을 한 사람 중 아직까지 살아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 지승태 또한 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안 된다! 허락하지 않아!”
이야기의 흐름을 눈치챈 황제가 소리쳤다.
하지만 황제의 오열에도 지승태는 결심을 꺾지 않았다.
“폐하를 부탁하네.”
“안 된다! 아니 된다고!!”
“성군이 되시옵소서!”
마지막으로 황제에게 예를 올린 지승태가 몸을 돌렸다.
“지승태가 여기 있다!!”
다른 방향으로 달리며 목소리를 높인다.
황제의 최측근이라는 점을 이용해 조금이라도 신경을 분산시킬 생각인 듯 노구임에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달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사이 관중연이 황제를 들쳐업고 지승태와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관중연의 어깨 위에서 버둥거리던 황제는 곧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곤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 학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미끼가 되기 위해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며 달리던 지승태였다.
관중연이 빠르게 달렸기에 거리가 멀어진 탓에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까?
아니면 벌써 누군가에게 목숨을 잃었기 때문일까?
관중연이나 황제나 모두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이런 짐을 짊어지고 싶지 않았다.”
황제는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황제 따위가 뭐라고…… 내가 뭐라고…….”
관중연은 혀를 찼다.
황제가 할 말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이는 황제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의 가치를 땅바닥에 처박는 말이다.
관중연이 이를 갈았다.
관중연은 지승태와 달리 오냐오냐하는 성정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된 겁니다.”
“……중연.”
“왜 이런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지 불평 마시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분노하셔야 합니다.”
“그딴 거 알 게 뭐냐! 나는… 나는…….”
“그걸 알지 못하면 지금처럼 옆에 있는 사람을 잃게 될 겁니다. 몇이나 더 잃으셔야 성에 차시렵니까?”
관중연의 직설적인 말에 황제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 황제를 들쳐업고 달리던 관중연은 눈앞의 군세에 입술을 깨물었다.
“니기미, 어쩐지 수가 적다 했다…….”
황궁 내부에 동창들이 득시글댔다면, 황궁 외각에는 금군과 시위상직군 그리고 그들을 지휘하는 동창의 당두와 당역들이 깔려있었다.
절대 황제를 황궁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이렇게 또 한 놈 갑니다, 폐하.”
“저, 정말 저기를 돌파할 생각이냐?”
“그렇게 쓰라고 있는 목숨입니다.”
양손에 검과 도를 움켜쥐고 숨을 고르던 관중연이 문뜩 검날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관중연은 그 눈이 조금 전 지승태와 닮아있음을 알았다.
그렇게 자신의 미래를 짐작하는 관중연의 귓가로 황제의 불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락하지 않겠다면?”
“아 거, 저보다 나이도 많으면서 애처럼 굴지 마십쇼. 이거 유언입니다. 절대 잊지 말고 잘 좀 새겨들으세요.”
관중연은 웃었다.
목이 터져라 소리치던 지승태처럼.
“하하하하하하! 어디 한번 막아봐라!!”
목숨을 걸고 달리는 관중연의 존재를 알아차린 자들이 저마다 무기를 꺼내 겨눴다.
퍼걱!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창 하나가 사람들의 몸을 꼬치처럼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