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94
393화 언제부터 준비해왔을까?
‘늦으면 저 사람 죽는다…….’
피를 흘리며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는 사람은 무방비나 다름이 없었다.
손으로 배를 누르고 있는 모습을 미뤄볼 때 배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보였다.
자칫 몸을 격하게 움직이기라도 하면 구멍이 쩍 갈라지며 내부의 것들이 모조리 쏟아져 나올 공산이 높다.
그랬다간 화타 어르신이 와도 못 살린다.
가벼운 운신도 쉽지 않다는 의미다.
파팟!
다행히 완전히 늦지 않아 사내를 덮치는 흑의인의 측면을 잡을 수 있었다.
다른 때라면 머리를 날려 일격에 죽였겠지만, 일단 반쯤 쓰러진 이에게 뻗어나가는 흑의인의 팔을 노렸다.
콰직!
천라무결로 상대의 내력을 헤집고, 굳건한 극강격의 요결로 육신을 부순다.
흑의인의 팔이 일격에 박살 나며 비산했다.
“누, 누구……?”
피를 흘린 채 절망에 빠져있던 사내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기사회생의 순간을 기뻐하기보단 순수하게 이 상황에 대해서 놀라는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내의 반응에 대응할 겨를이 없었다.
“뭐지?”
팔을 날렸을 때의 감각이 이상했다.
적지 않은 실전을 거쳐 오며 나름 사람을 부술 때의 감각이 몸에 익었다고 생각했다.
허나 지금 팔을 박살 낼 때의 감각은 극히 생소했다.
“카악!!”
잠시 잡생각이 머리의 한켠을 차지하는 사이에 기괴한 괴성을 내지르는 흑의인들이 반원으로 포위한 채 공격을 뻗어왔다.
갈고리처럼 굽어진 손가락으로 금나수를 펼치는 것이 둘.
팔 하나를 잃은 흑의인은 권격을 뻗어온다.
금나수는 어설프게 쳐내면 오히려 잡혀 제압당하기 십상인 수법이다.
그렇게 양팔이 제압당한 순간, 권격이 일격에 복부를 꿰뚫는 전형적인 합격술이다.
사내가 어떻게 당했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무당파 무공이 뼛속 깊이 새겨져 있는 내게는 무의미한 수법이다.
나는 오히려 반보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먼저 상대의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가며 측면을 장악했다.
동시에 나를 향해 뻗어오는 권격을 낚아채 방향을 틀었다.
두 팔이 멀쩡했다면 좀 더 저항했겠지만, 팔이 하나뿐이라서인지 몸을 좀 더 흔들며 발을 뻗으려는 정도에 불과했다.
당연히 내가 더 빨랐다.
휘릭!
그렇게 균형을 흔들어 제압한 흑의인을 금나수를 펼치며 달려드는 둘에게 던졌다.
콰직! 으직!
나 대신 금나수에 몸이 잡힌 흑의인의 몸에서 단단한 살점이 뜯겨나갔다.
그렇게 방패마냥 하나를 내세워 막은 뒤.
투웅! 펑!!
격산타우의 수법으로 방패처럼 세운 몸 너머의 두 흑의인을 쳤다.
심장 주변이 뚫린 흑의인 둘이 털썩 쓰러졌다.
“너도 가라!”
이내 남은 하나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먼지를 쓸어내듯 휘두른 손짓에 긴 호선을 그리며 날아간 머리통이 바닥을 굴렀다.
“뭐지? 썩은……내?”
아까 팔을 날렸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 심했다.
썩은 고기를 밀폐된 곳에 보름쯤 처박아놓으면 날 법한 냄새다.
그 냄새의 근원은 박살 난 흑의인이다.
그 주변에는 검은 피가 흘렀다.
멀쩡한 사람이라도 썩어나갈 법한 피다.
이자들, 사람이 아니다.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강시였다.
하지만 이를 바로 납득하지 못했다.
내공을 구사하는 강시라니, 듣도 보도 못한 기사(奇事)였기 때문이다.
강시와 직접 싸워본 경험은 없지만, 할아버지의 무림 이야기를 통해서 들어본 것이라면 몇 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강시가 내공을 구사한다는 경우는 없었다.
이러한 상식(?)은 실제로 무공을 배우면서 더욱 견고해졌다.
내공을 펼치기 위해서는 기를 담는 그릇이 필요하고, 그 그릇에 담겨있는 것을 흘려보낼 기맥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체에는 그런 것이 있을 수가 없다.
강시(僵尸)라는 단어 자체가 뻣뻣한, 굳어있는 시체라는 뜻이다.
애당초 강시가 무공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관절을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다.
‘강시가 아니면 뭐지?’
강시는 아니지만, 강시에 가까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알겠다.
이건 위험하다.
알 수 없는 것.
내가 모르는 위험한 가능성.
극악사도에서 괜히 이런 것을 만들진 않았을 것이다.
‘사부님들과 상담해봐야겠네.’
모르는 것을 홀로 고민하기보단 잘 아는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것이 빠르고 현명한 방법이다.
다만, 지금은 이 사람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때, 쓰러져있던 사내에게서 흐릿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을… 동료가…….”
작고 흐릿했지만,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아직도 이런 놈들이 더 있다는 소리다.
그쪽에도 이 사내의 동료들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배에 구멍이 난 치명상이지만, 회복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
청조를 회복시키는 건 막대한 인과를 지불해야 했기에 피했지만, 고작 사람 하나 살리는 데는 인과가 소모되어 봤자다.
‘회복되어라.’
의념을 일으켜 세상의 흐름에 내 의지를 개입시킨다.
강한 의지로 현실을 뒤바꾼 결과가 내 눈앞에 드러났다.
쿠르르르르.
배에 난 상처에 한하여 시간이 거꾸로 되돌아가는 듯한 모습이다.
구멍이 뚫렸던 상처가 메워지며 사라져간다.
“어…… 어어?”
통증이 줄어드는 것을 넘어 살이 메워지는 모습에 사내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이게… 무슨……. 꿈인가?”
통증이 줄었으니 정신도 어느 정도 명료해졌을 텐데 받아들이질 못한다.
배에 구멍이 난 데다 정신도 혼미했을 텐데도 동료를 먼저 생각한 사람치곤 반응이 좀 심심하다.
지독한 고통에 먹혀버린 사람은 대부분 그 고통에 잠식당한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할 상황에선 다른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동료를 먼저 생각한 사람이다.
이름조차 모르지만, 호감이 느껴지기엔 충분했다.
“여기서 잠시 쉬고 계세요. 댁 동료라면 찾아볼 테니까요.”
“어, 어어, 예?”
말을 남기고 바로 몸을 움직였다.
그런 내 앞에는 이화가 있었다.
이미 내가 가야 할 길을 미리 알고 앞장선다.
그 옆에는 설아 누나가 함께하고 있다.
마치 내 앞길을 밝혀주는 등불 같았다.
그 길을 따라 달리자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불어 들려오는 외침이 귓가에 닿는다.
“저리 가, 이 새끼들아!”
“이 사람들은 못 데리고 간다!”
한창 전투 중인지 악을 쓰는 외침과 둔탁한 소리가 연이어지고 있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니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무인 둘이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을 등진 채 싸우고 있었다.
한 명은 창을, 다른 한 명은 검을 휘두르며 접근해오는 흑의인들을 밀어냈다.
나름 기량이 있어 보이지만, 흑의인들의 힘을 감당하지 못했는지 온몸이 피투성이다.
그 전투에 이화가 가장 먼저 개입했다.
따악!
이화가 손가락을 튕기자 창을 든 무인과 맞서던 흑의인이 그대로 굳어졌다.
“후흑…….”
흑의인, 강시로 의심되는 몸을 하고 있는 주제에 숨을 내쉬는 소리가 선명하다.
그 숨결에는 불길이 흘러나왔다.
“커허…….”
뱃속에서 불길을 토해내며 흑의인의 몸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촛농처럼 그 자리에 녹아내린다.
언제 봐도 살벌하다.
손을 대지 않고도 사람의 몸속에 저만한 불길을 일으킬 수 있다니, 무서운 힘이다.
멸천회주가 격돌 당시 이화를 먼저 제압한 이유가 납득이 되었다.
주술에도 정통하였다면 그 무서움 역시 익히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화의 힘에 감탄하는 찰나.
콰직!
설아 누나가 흑의인의 후열을 뭉갰다.
직접 손을 썼기에 알고 있지만, 저놈들의 몸뚱이는 외문기공을 정통으로 익힌 외가고수들보다 단단했다.
그걸 그냥 뛰어올라 내려찍는 것으로 부쉈다.
그 모습에 나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점점 더 오행신력에 익숙해지는 모습이다.
사부님들의 가르침을 통해 천천히 단련해온 나와 달리, 설아 누나는 갑자기 힘의 근원이 뒤바뀌었다.
운용하는 모든 힘의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은 도의 고수에게 창을 주고 익숙해지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설아 누나는 그걸 해내고 있는 것이다.
무(武)에 대한 재능이 남달랐다.
아니, 어쩌면 신력이라는 힘 자체에 대한 적응력이 높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굳이 내가 나설 것도 없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설아 누나만 해도 현 무림에서 적수가 드문 고수다.
힘의 근원이 바뀌면서 적응 기간이 필요해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역량의 한계는 크게 높아졌다.
그렇게 설아 누나와 이화가 흑의인을 정리하는 사이 나는 창과 검을 든 두 무인에게로 다가갔다.
“누구… 십니까?”
적이 아니라는 건 인식한 듯했지만, 극한까지 몰린 상황이다 보니 처음 보는 외부인의 존재에 경각심을 드러냈다.
들고 있는 무기를 겨누는 무례를 범하지는 않았지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이 훤히 보였다.
다행히 복부를 다쳤던 사내보단 상태가 양호했다.
어렵지 않게 의념을 일으켜 두 사람을 치료했다.
“……어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사내는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느끼곤 멍청한 얼굴이 되었다.
방금까지 매서웠던 눈동자가 있어야 할 곳을 찾지 못한 채 떠돌았다.
“……꿈인가?”
“이상한 꿈이네?”
끼리끼리 논다더니 처음 보았던 그 사내와 비슷한 반응이다.
“댁들의 동료는 무사합니다. 오는 길에 치료해주고 왔어요.”
“아아…….”
“역시 꿈이네…….”
동료가 무사하다는 말에 경계를 풀며 그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한계였던 모양이다.
“한계야 이제…….”
“꿈인데 졸려…….”
긴장이 풀린 듯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누가 보면 내가 기절시킨 줄 알겠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찾아온 한 명.
쉬고 있으라 했는데 기어이 동료들을 확인한 다음에야 엎어지는 기척이 느껴진다.
진짜 닮은꼴들이다.
“신선하네.”
[응? 내가 뭘 한다고?]“재미없지 말입니다?”
세대가 달라서인지 이상한 농담을 시도하시는 분들이 많다.
아무튼, 묻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잘 되었다.
“그보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강시 말이지?]“예.”
[뭐, 확실히 일반적인 놈은 아니더라. 뭔가 여러 가질 접목시켰달까?] [흘흘흘. 무공 외골수인 네 사부들은 모르는 영역이지.] [엣헴!]거드름 피우는 목소리가 참 얄밉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예? 아니, 저기 그…… 예. 예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예.]누군가에게 혼나는 반응이다.
사부님들은 급수가 낮다고 하셨으니, 아마도 서왕모 님이나 곤륜십이선분들이 나선 것이 아닌가 싶다.
황제에게 그분들을 모시는 사당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에 무척이나 좋아들 하셨으니까.
“예.”
[그럼 그 피는 그놈들 피가 아니겠구나. 상태를 보면 그놈들 몸에 흐르는 피는 아예 다 썩어 문드러졌어야 할 테니까.]“그러네요.”
생각해보니 그렇다.
산패라 함은 썩어가는 도중이라는 거다.
반면 저들의 육신은 강시에 가까웠다.
[피와 관련된 부분이라면 뭔가 짚이는 게 있지 않냐?]있다.
아주 짜증 나는 곳이.
“혈교…….”
극악사도가 멸천회주과 관련된 곳이라면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
즉, 극악사도의 술수와 혈교의 술수가 합쳐진 결과인 것이다.
이는 생각 이상으로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단순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예?”
[저놈들 꽤 오랜 세월 준비를 해온 놈들이잖냐?]달마 사부 이전부터 이 땅에 존재해왔을 테니 오래되기는 했다.
[저놈들이 언제부터 강시를 준비해왔을까?]“X팔?”
무서운 상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