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419
418화 인외(人外)의 격돌
당황한 멸천회주가 흑사신을 언급한다.
서문대성.
남궁세가의 주력을 몰살시킨 고수.
적대적인 관계에 있음에도 과거의 우정을 잊지 않고 한산월 아주머니와 백진성 아저씨에게 조심하라는 경고와 조언을 남겼던 인물이라고 들었다.
멸천회주를 위해 일하고 있는 만큼 악인이라 해야 할 것이지만, 멸천회주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머리를 숙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한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태산의 제단을 가격한 두 번의 타격은 저 잡놈이 구축한 방향성을 미세하게 흔들었다.] [작은 범주 안에서 작은 비틀림은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영향을 끼쳐야 할 거리가 멀다면 이야기가 크게 달라지지.] [저 모질이가 준비한 것은 방향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걸 알아차렸으니 저리 당황하는 게지.]선계에서 활기차게 분석한 바를 알려주신다.
확실히 납득이 된다.
봉신대결계 같은 크고 거대한 결계라면 사소한 오류만으로도 그 결과물이 크게 뒤틀릴 수 있다.
한데, 시작부터 힘의 방향성이 비틀린다?
사소한 비틀림일지라도 종국에 가서는 아예 다른 길이 되어버릴 것이라는 의미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기회다.
천운이 가져다준 다시없는 기회.
‘아니. 아니지. 이건 천운 따위가 아니야.’
이만큼 멀리서도 그 여파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것도 연거푸 두 번이나.
멸천회주가 그동안 애지중지 모아온 인과를 쏟아부은 필생의 역작이니 얼마나 큰 힘이 굴러가고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아마 저 폭발을 일으킨 주체는 뼛조각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을 것이다.
그야말로 목숨을 던진 각오가 만들어낸 의지다.
그러니 절대로 놓칠 수 없다.
멸천회주는 극도로 초조해하는 것이 당장에라도 태산으로 돌아가 어긋남을 바로잡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멸천회주를 여기에 붙들어놓는다면 최악은 면할 수 있다.
나는 몸을 물리려는 멸천회주를 향해 몸을 날렸다.
“어딜 내빼려고!!”
건방을 떨어대는 저 아가리를 찢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던가.
저 재수 없는 낯짝에 한 방 먹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의념이 되어 몸을 움직였다.
태산에 정신이 팔려있던 멸천회주는 이제야 내 움직임을 알아차렸지만, 반응이 한 박자 늦었다.
퍼억!
주먹에 묵직한 느낌이 남았다.
드디어 내 주먹이 저 빌어먹을 자식에게 닿았다.
누나가 내 등에 업혔을 때 느꼈던 짜릿함보다 더 강렬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쳇!”
박살 내지 못했다.
대가리를 부숴버릴 생각으로 뻗은 일격이었다.
타격을 입힌 것은 분명하나, 멸천회주의 머리는 멀쩡했다.
[아까비!] [아이고, 거기서 끝냈어야지!] [그게 쉽겠냐. 그래도 굴러먹은 짬이 있는데.]선계에서도 아쉬워하는 탄성이 줄을 이었다.
빈틈을 파고든 것은 좋았으나,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놈의 대응이 내 움직임을 저지했다.
타격이 이뤄지는 순간 무형의 힘이 나를 옥죄었던 것이다.
그 힘만큼 내가 뻗은 일격의 위력이 반감되었다.
[이중으로 의념을 운용했구나. 반감(半減)과 불괴(不壞). 네게 부하를 걸어서 위력을 감소하고, 자신의 몸은 단단하게 강화해 버텨낸 거다.]장삼풍 사부의 설명에 상황이 정확하게 파악되었다.
내 움직임을 저지한 것뿐만이 아니라 자체적인 방어도 강화한 모양이다.
의념은 의지를 구현하는 힘이니, 어떻게 활용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
턱을 어루만지던 멸천회주가 눈에 힘을 주며 나를 노려봤다.
“네놈과 엮이면 이상할 정도로 비틀리는구나. 천리라도 된다는 건가?”
멸천회주의 주변이 끓는 물의 표면처럼 일렁인다.
멸천회주의 의지가 실체화되어 주변을 장악한다.
“그딴 천리 인정할까 보냐!”
해일처럼 의념이 힘이 덮쳐온다.
휩쓸리는 순간 갈가리 찢겨질 것 같은 압력이다.
‘의념에는 의념으로!’
의지를 세워 맞선다.
나를 갈가리 찢어발기려는 멸천회주의 의념에 내 의념을 걸친다.
파아아아아!
나를 덮쳐오던 멸천회주의 의념이 흐트러진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역에서 나의 의념과 멸천회주의 의념이 맞부딪치며 출렁인다.
이것이 바로 의념의 싸움이다.
피와 살로 이뤄진 육체가 아니라 마음이, 혼이 부딪치는 느낌이다.
단순히 물리적인 힘의 부딪침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의 격돌!
누구의 의지가 더 강한가의 싸움!
그 격돌의 틈새로 몸을 욱여넣는다.
앞으로 나아간다.
허공을 박차는 발끝이 자연스럽게 능운금광보의 묘리를 따른다.
거기에 의념을 섞는다.
보다 빠르게!
보다 정교하게!
그것만으로 멸천회주와의 거리를 빠르게 좁힌다.
쿠우우웅!
멸천회주에게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기시감을 일으키는 묵직한 압력이 몸을 내리누른다.
“부러져라.”
“큭!”
우득!
알 수 없는 힘이 무릎을 후려치는 것 같다.
무릎의 관절에서 느껴지는 시큰함이 발끝을 저리게 만든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기세가 주춤한 사이, 다시 거리를 벌린 멸천회주가 나를 향해 비웃음을 짓는다.
“의념을 쓰는 방법이 단순하군.”
내 부족한 점을 단번에 알아본 멸천회주가 다시 한번 의념을 일으킨다.
쾅! 콰쾅!
어깨와 허리.
멸천회주의 의념이 뼈를 부술 듯 내 몸을 두들긴다.
손끝 하나 닿지 않았음에도 폐가 수축할 정도의 충격이 내부를 뒤흔든다.
만다라의 힘이 아니었으면 그대로 박살 났을 위력이다.
“크읍!”
입가로 흘러나오는 피를 닦으며 장삼풍 사부가 내려주셨던 조언을 상기한다.
분명 장삼풍 사부는 저놈이 의념을 이중으로 활용했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가정해야 한다.
“무공에도 초식이 있듯, 의념 역시 제대로 다루기 위한 방법이 있지.”
멸천회주가 이죽이며 힘을 전개한다.
제대로 집중하니 움직이는 각각의 의념이 인식된다.
무려 일곱에 달하는 의념이 살의를 담은 채 덮쳐온다.
“젠장!”
쾅! 콰쾅! 콰콰쾅!!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거리를 좁힐 작은 틈조차 잡아낼 수 없다.
“부서져라! 터져라! 으깨져라! 박살 나라! 으하하하하하하!”
콰쾅! 퍼걱! 콰앙!
경험의 깊이가 다르다.
같은 근간의 힘을 지녔음에도 사용하는 방법에서 차원이 다르다.
고수 앞에 선 힘만 강한 애송이가 된 느낌이다.
그야말로 속수무책(束手無策)!
“죽어라! 사라져라! 천리여!!”
심즉살(心卽殺)!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살의만으로 사람을 죽이는 경지.
의념이 담긴 살의가 죽음이 되어 덮쳐온다.
“크읏!”
일단 버티기라도 해야 한다.
내 안에 머무르고 있는 모든 힘을 풀어낸다.
화악!
등에는 서광을 비추는 광륜이.
몸은 만다라의 금색으로 물든다.
황도에서 드러냈던 그 모습, 내 안의 영역을 외부로 드러낸 힘의 형태가 갑옷이 되어 의념이 담긴 살의로부터 몸을 지킨다.
“오행, 태극… 혼돈?”
멸천회주조차 놀라 나를 바라본다.
“허! 그만한 힘을 가지고도 그것밖에 안 되더냐! 마치 남이 쥐여 준 힘이라 사용할 줄 모르는 애송이 같구나!”
멸천회주의 말이 창처럼 날아와 뇌리를 꿰뚫는 기분이다.
남이 쥐여 준 힘.
육신을 다루는 무공은 나름대로 수습을 했다지만, 그 위 단계인 의념의 영역은 미숙한 것이 사실이다.
“고작 그따위로 나를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면 착각이다!”
어딘가 열등감이 느껴지는 노성과 함께 멸천회주의 주변에서 무수히 많은 힘의 덩어리가 만들어진다.
파멸적인 힘을 담은 강환이 으르렁거리며 내 목숨을 노린다.
의념으로 내부를 뒤흔들 뿐 아니라, 강환을 통해 직접적으로 격살하고자 한다.
천 년 이상 쌓아온 노련함이 허세는 아니다.
확실히 무림에서 쌓아온 경험과 본능이 강환을 위협으로 인식하며 집중력을 앗아간다.
“이젠 끝이다!”
멸천회주의 모든 힘이 나를 죽이고자 한다.
그때, 내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파앗!
쇠사슬처럼 몸을 옥죄고 두들기던 멸천회주의 의념이 얕은 살얼음처럼 깨진다.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의지가 고개를 든다.
“상화?”
지금까지 스스로의 의지를 드러냈던 적이 없던 상화가 의지를 발하며 나를 돕는다.
꿈틀거리는 신경 속의 움직임이 상화가 자아내는 분노인 것처럼 존재감을 발한다.
상화가 내게 소리친다.
싸우라고!
싸워서 이기라고!
“큭! 이번엔 또 뭐냐!”
나를 몰아치던 의념이 파묻히는 걸 느낀 멸천회주가 위협을 느낀 맹수마냥 으르렁거린다.
그와 함께 수백에 달하는 강환이 유성우가 되어 쏟아졌다.
콰콰콰콰콰콰콰콰!!
하지만, 그에 대응하는 몸은 지금까지와 달리 가벼웠다.
의념의 영역을 상화가 맡아주면서 내가 신경 써야 할 영역이 단순화되었다.
“비겁하다고 하지 말자. 수련한 지 이 년밖에 안 된 초보자가 천 년 이상 묵은 고인물을 상대하는 거니까, 이 정도 이득은 누려도 되잖아!”
꼬우면 너도 우리 귀여운 상화 같은 애 하나 어서 구해 오든가.
나는 한결 편해진 상황에서 쏟아지는 강환을 요격할 생각으로 힘을 끌어올렸다.
‘나는 지금까지 어검을 편법으로 활용해왔다.’
대라조화심결의 소통과 천마무겁수의 구현, 중토신공의 굳건함을 이용해 억지로 어검을 구현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상화와는 다른 길로 의념을 끌어올려 하나의 형태를 만든다.
내 앞에 빛나는 검 한 자루가 생겼다.
심검(心劍)!
무공 고수는 한낱 풀잎에도 강기를 씌울 수 있다.
비록 연약하지만, 풀잎이라는 매개체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심검의 구현이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오로지 마음의 심지(心地)만이 매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멸천회주에 대한 내 대답이다!
‘멸천회주 너는 내 힘이 누군가가 쥐여 준 것이라 평했지만, 나 역시 사부님들의 가르침을 내 안에 녹여내 왔다!’
마음으로 벼려낸 검.
심검!
억지로 구색을 갖춘 유사 어검이 아닌 진짜 어검.
마음으로 벼려낸 검이 내 앞에 초현되었다.
부족할지언정 굳세고 강인한 모습으로!
나는 그 심검 위에 몸을 올렸다.
그러자 내 전신이 강기화가 된 것처럼 활활 타올랐다.
“가자!”
진정한 어검비행이 펼쳐진다.
유성우처럼 쏟아지는 수백의 강환을 향해 심검과 하나 되어 한 줄기 선을 그렸다.
***
“허!”
“저것이 진정한 고수…….”
머리 위에서 펼쳐지는 천외천의 격돌에 무림맹 무인들은 할 말을 잊었다.
태어날 때부터 땅 위에 발을 딛지 않고 살아온 듯한 존재들이다.
별을 만들고 유성을 낙하시키는가 하면, 두려움 따윈 모르겠다는 듯 그 별을 부수고 나아간다.
사람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난 격전!
신화시대 신들의 싸움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의지를 불태우는 자들이 있다.
입천신마존이 혀를 차며 지상으로 눈을 내렸다.
“쯧! 자존심 상하네.”
머리 위에서 벌어지는 싸움과 달리, 입천신마존이 맡아야 할 것은 두 발을 땅에 딛고 살아가는 자들의 전투다.
“이 시대의… 강자인가.”
처음 봤을 때부터 만만치 않은 놈이라 생각했던 강시가 목소리를 낸다.
극악사도에서는 귀황급으로 분류하는 강시다.
“나는 남조… 봉월이다.”
하지만 입천신마존은 시큰둥했다.
머리 위에서 벌어지는 신화 급의 격돌을 목도한 이후여서인지 흥이 돋지 않았다.
“어쩌라고? 나는 입천의 신마인데.”
“허… 대체 세월이… 얼마나 흐른 건가.”
이름과 별호를 밝혔는데도 심드렁한 입천신마존에게 시간의 흐름을 묻는다.
“그딴 거 알아서 뭐 하게?”
하지만 입천신마존은 몸을 풀며 싸울 준비를 했다.
비록 머리 위에서 펼쳐지는 싸움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나름 즐길 수 있는 강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쪽에서는 무당파와 함께 남궁세가를 비롯한 연합 무인들이 달려오고 있었고, 서북 쪽에서는 천마신교 무사들과 곤륜의 제자들, 그리고 홍색 가사를 입은 라마승들이 말을 타고 질주해오고 있었다.
이에 질세라 남쪽에서는 사파 연합의 무리가 몰려오고 있었다.
“판은 근사하게 갖춰졌군.”
그렇다면 그 판 위에서 나름대로 즐기면 그만이다.
식었던 흥이 다시 달궈지는 것을 느끼며 입천신마존이 이죽였다.
“과거의 망령 따위, 천마신교의 이름 아래 사라져라.”
콰콰쾅!! 콰쾅!
입천신마존의 벽파접무가 세월의 흐름 속에 밀려난 과거의 강자가 펼치는 잊혀진 절세무학과 격돌했다.
위에서는 별들이 전쟁을 벌이고, 아래에서는 인간들이 자웅을 겨룬다.
천상천하!
힘과 힘의 격돌은 어느 한 곳도 빈자리를 두지 않고 채워나갔다.
천지가 요동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