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418
417화 내 이름을 기억해다오
태산으로 향하는 첫걸음.
첫 교전이 끝났다.
몸이 두 동강이 나도 끈질기게 꿈틀거리며 창칼을 휘두르는 강시들의 머리통을 확실하게 부숴 마무리를 한 뒤 제갈 군사가 소리쳤다.
“전열을 정비하라!”
제갈 군사의 외침에 무림맹 무인들이 각자 무구와 몸 상태를 점검하고, 주변의 동료들을 챙겼다.
다들 온몸에서 열기를 뿜어냈다.
하지만, 그 열기에 휩싸여있는 그들에게선 승리의 여운을 즐기는 모습은 없었다.
“피해는?”
“……있습니다.”
강시의 머리를 부수고 다니는 가운데 수습한, 숨이 끊어진 시신들을 한곳에 별도로 모았다.
어깨높이에서 떨어트린 수박처럼 몸의 일부가 뭉개져 있다.
“첫 돌격 때 당한 건가?”
“검을 휘둘렀지만…… 얕았습니다.”
바로 옆에서 그것을 보았는지, 시신 옆에서 오열하던 이가 이를 악물며 보고했다.
그 말을 듣고 시신에 남겨진 흔적을 보니 어떻게 당했는지 알겠다.
보통 검의 길이는 석 자 정도다.
긴 패검이라 해도 넉 자 정도가 보통이다.
검으로 말의 단단한 근육과 뼈를 베었지만, 완전하게 저지하지 못하며 돌격한 말에게 들이받힌 것이다.
“이놈 이름은 광덕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 넓게 덕을 쌓으라 지어주신 이름이었…… 크흑!”
말을 다 마치지 못한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반드시 기억해두겠습니다. 반드시!”
“감사합니다…… 맹주님.”
둘러보니 그와 같은 상태의 시신들이 여럿 보였다.
그 외에도 창칼에 당한 이들도 있었다.
보통 교전 중에 당한 것이라면 팔다리에 상처가 많기 마련인데, 시신들의 상흔은 그대로 몸통이 꿰뚫렸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는 강시들이 동귀어진으로 맞찌른 상흔이다.
“아미타불.”
“원시천존.”
구파의 장로들이 나지막하게 불호와 도호를 읊었다.
그중에는 침통한 얼굴을 한 신승 어르신도 있었다.
그렇게 전사자들이 이십 명 가까이 됐다.
일천에 달하는 적을 격파한 것을 생각한다면 대승이라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누구도 이를 즐기기보단, 어깨 위에 짐 하나씩을 짊어진 표정이 되었다.
그들 사이사이에는 피를 흘리는 이들이 있었다.
교전 도중 부상을 입은 이들이다.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함인지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고 있다.
죽은 이들 대부분이 교전 초기에 허를 찔린 이들이 많았던 탓인지 부상자의 수는 전사자보다 적었다.
이쪽은 손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죽은 사람이라면 몰라도, 살아있다면 회복시킬 수 있다.
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부상자에게 다가갔다.
말의 뒷발질에 어깨가 박살 난 듯 한쪽 팔을 축 늘어트리고 있는 어깨에는 선명한 말발굽 자국이 있었다.
이미 내가 한 일이 소문이 났는지,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눈가를 파르르 떤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눈치다.
내가 손을 내밀자, 결심을 했는지 두 눈에 힘을 주며 묻는다.
“맹주님의 그 힘… 무한한 것은 아니지요?”
그가 무엇을 고민했는지 알 것 같다.
[쯧!]선계에서도 혀 차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바로 대답하지 못하자 부상자는 어깨가 부서진 고통에도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그럴 것 같았습니다. 하늘과 땅이 크고 넓게 펼쳐져 있다 한들 하늘 아래 무한한 것이 있을 리가 없지요. 그렇다면 그 힘은 아껴두십시오. 이미 맹주님께서 짊어지신 것은 많습니다. 제 짐은 제가 짊어질 것이니 맹주님께선 해야 할 일을 해주십시오.”
이미 결심한 사람의 눈이다.
“치료 시기가 늦으면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몰라요.”
“사내에게 상처는 훈장과도 같습니다. 천하의 명운을 판가름할 대전에서 입은 부상이라면 다시 없을 훈장이지요.”
억지로 회복시켰다간 오히려 절망할 것 같은 의기다.
그 숭고한 의기에 재를 뿌릴 수가 없었다.
“전쟁이 마무리된 뒤에 나를 찾아오세요. 그때, 당신의 훈장을 거두겠습니다.”
“하하…… 영광입니다.”
괴리감이 느껴지는 말에 사내가 웃었다.
다른 부상자들 역시 이를 지켜보며 결심을 굳힌 얼굴을 했다.
결국, 치료를 받아들인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사망자와 부상자를 조처한 뒤 진격할 준비를 했다.
길잡이 역할을 맡은 관중연이 목적지를 설명했다.
“여기에서 태산까지는 얼추 삼백 리 길입니다.”
멀다면 멀고, 짧다면 짧은 길이다.
무공을 익힌 무인이라면 충분히 달릴 수 있다.
하지만 부상자들에게는 가혹한 거리다.
결국, 부상자들은 남아서 시신의 뒷수습을 맡기로 했다.
그렇게 전진을 시작하는 가운데, 장문경 선배가 뒤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전우… 같군.”
어딘가 낯설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뭔 소린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시신을 수습하는 부상자들이 보였다.
부상에 비척거리는 그들은 서로서로 부족한 부분을 도왔다.
정파, 사파, 천마신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죽이고 죽는 것이 당연했던 이들이 서로에게 기대며 죽은 동료를 위해 움직였다.
“전우(戰友)네요.”
이제 무림맹 내에선 정사마의 구분을 따로 나누는 게 어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태산을 향해 달리는 중 마을 몇 개를 지나쳤다.
그렇게 마을을 지날 때마다 참혹한 광경을 보았다.
“개자식들! 싹 다 죽였군!”
마을은 대부분 피투성이였다.
어떤 마을은 말발굽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음산하리만치 사람의 인기척이 사라진 마을도 있었다.
“쯧! 몸도 불편한 녀석들이 고생하겠구나. 아미타불.”
신승 어르신이 불호를 외우며 혀를 차셨다.
아무래도 남겨진 부상자들이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고 뒤를 따르다가, 마을의 참상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이라 걱정하시는 것 같다.
‘태산 인근이 죄다 이런 상황이라면…….’
배가 내릴 지점을 노리고 강시 군대를 보냈을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하게 되자 가슴이 울렁거렸다.
청명심법의 호흡이 가슴을 다독였지만, 막상 멸천회주를 눈앞에 두었을 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동시에 짙은 불안감이 일었다.
강시 군대를 선봉으로 내세운 노림수가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강시 군대가 성가신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위협적이지는 않다.
실제로 사상자를 합쳐도 서른 남짓에 불과했다.
진짜 전력이라 할 수 있는 고수 층은 흠집도 안 났다.
무림맹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미끼로 던졌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하지만 전투 결과를 따져보면, 다른 면을 확인할 수 있다.
발목잡기.
시간을 끌 생각으로 던진 것이라면?
최악이다.
시간벌이가 필요하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이미 뭔가가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태산의 금주가 이미 발동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 한구석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멀리 웅장한 산의 자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평탄한 평야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만큼 도드라진 거대한 산[泰山].
평온하기만 한 그 산의 모습에 스멀스멀 일어나던 불안감이 가라앉았다.
그때였다.
태산을 배경으로 다가오는 자가 있었다.
느긋하게 하늘을 밟으며 간격을 좁혀온다.
가볍게 흔든 손짓에 둥근 구체가 유성처럼 낙하한다.
“강환?!”
이미 한차례 겪어본 힘의 덩어리가 요란하게 날아든다.
나는 반사적으로 뛰쳐나가며 주먹에 힘을 모았다.
극강격.
콰아아아아앙!!
달마 사부가 전수한 극강의 일격이 떨어지는 강환을 깨부쉈다.
힘이 격돌하는 여파로 땅이 가볍게 흔들린다.
그렇게 강환을 막아내자 머리 위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온다.
짝! 짝! 짝!
“많이 늘었군. 솔직히 몰라볼 정도야.”
“멸천회주!”
머릿속 한구석에 달라붙어 있던 불안감이 현실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황도에서 내 대계의 일부를 망가트린 것을 보고 네 행적을 조사해봤다. 그동안 많이도 방해했더구나.”
멸천회주의 모습에는 여유가 넘쳤다.
마치 모든 준비를 끝마친 것 같은 모습이다.
“대계의 핵심에 이만큼 접근한 것은 칭찬해주마. 하지만 너무 거시적인 것만을 보다가 작은 문제가 눈 뭉치처럼 커지는 것을 간과했더구나. 서북 관문을 뚫고 나온 자들을 무시하고 넘긴 것이 바로 네 패착이다. 뭐, 그걸 수습하겠다고 남아있었다면 다른 방면에서 또 다른 문제가 터질 것이었으니, 청조가 거동하지 못하게 된 순간 외통수나 다름없었지만 말이다.”
이경천과 대라마, 곤륜에 맡긴 일을 이야기한다.
그들이 정리하기 전에 기어이 멸천회주가 그 인과를 먹은 모양이다.
그로 인해 지상의 봉신대결계를 가동시킬 인과를 확보한 것 같다.
“이전에는 너를 죽이지 못했지. 지금에 와서는 황제의 실정을 막으며 더 큰 인과를 쌓았고. 하지만, 그 건방도 이젠 끝이다. 지상의 봉신대결계가 완성된다면 네놈이 얼마나 거대한 인과를 쌓았건 내 손속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나를 죽이겠다 선언한 멸천회주의 발아래로 강시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 격돌했던 강시 군대와는 격이 다른 존재감을 흘린다.
그중 몇몇은 설아 누나나 입천신마존에 필적하는 기운을 가지고 있다.
역대 혈마와 흑사신의 후예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강시들이다.
그들이 멸천회주와 함께 태산으로 가는 길목을 막아섰다.
‘……막아섰다?’
모든 게 다 끝났다고 말하면서 길목을 막는다?
“아직, 아직 아니야!”
[맞다! 봉신대결계는 아직 완전하지 않다!] [과거 선계에서 봉신대결계를 펼칠 때도 단번에 전 구역을 덮진 못했다고!]묵묵은 집어치우셨는지 요란하게 훈수가 내려온다.
확실히 그 넓은 천하를 다 뒤덮으려 한다면 아직 시간은 있다.
“맹주!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제갈 군사도 상황을 파악했는지 다급히 외쳤다.
그리고 검을 뽑아 전면을 향해 휘둘렀다.
“태산으로 간다! 맹주님을 위해 길을 열어라!!”
최악인 것은 맞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회는 남아있다.
하지만 멸천회주는 코웃음을 쳤다.
“건방지구나. 버러지들 주제에 길을 열겠다?”
순식간에 멸천회주를 중심으로 거대한 존재감이 퍼져나갔다.
마치 온 세상이 적으로 돌아선 것 같은 위압감이 짓눌러온다.
“좌절해라. 굴복해라. 증인이 되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죽는 것이 네가 할 일이다. 나의 시대가 열…….”
콰아아아아앙!!
그때 저 멀리 태산에서 웅장한 폭음이 일었다.
발을 딛고 있는 땅이 요동치듯 흔들렸다.
용맥의 흐름을 타고 지상에 봉신대결계가 펼쳐지는 여파인 것일까?
길을 열어야 한다고 독려하는 제갈 군사조차 얼굴을 굳혔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흑사신이 지키고 있었을 것인데?”
멸천회주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오르는 것을.
***
수천 개의 계단 끝.
천상에 닿은 것 같은 아득한 계단의 정점에는 피와 시체가 가득했다.
극악사도의 사도들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유일하게 두 발로 서있는 인물.
벽력탄의 폭심지 한가운데 있었던 것처럼 피투성이인 사내가 자신이 후려친 제단을 노려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래, 한땐… 그랬… 지…….”
한 호흡이 간절한 듯 사내는 힘겹게 폐까지 숨을 불어 넣었다.
“무림제일의 기재… 서문대성…….”
피투성이의 사내, 서문대성이 태산의 정상에서 하늘을 올려보았다.
“너희가 기억하는 그 이름… 그날 그대로…….”
외롭게 탄생한 영웅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너희가 포기…하지 않았으니… 나도 포기하지 않겠다…….”
장삼풍이 주장한 인간에 대한 신뢰.
최악의 순간에 그 가능성을 보인 인간으로서 머나먼 추억을 되새겼다.
“친우여… 그리고 사랑했던 그대여…….”
아름다웠던 과거를 돌아보던 서문대성이 눈앞의 제단을 향해 안광을 불태웠다.
“……내 이름을… 기억해다오!”
콰아아아아아앙!
푸화아아아아아!!
한계에 다다른 몸으로 다시 한번 제단을 내려친 서문대성의 몸이 산산이 부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