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417
416화 격전의 시작
“으아! 진짜 강시 군대네.”
몰려오는 군세를 보며 관중연이 소름 끼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말처럼 질주해오는 것들은 정상이 아닌 몰골을 하고 있었다.
탈곡기에 넣었다 꺼내기라도 했는지 고목처럼 깡마른 몸에 두 눈에는 붉은 혈광이 흐른다.
타고 있는 말들도 평범하지 않다.
어딘가 흰 안개를 두른 듯한 말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했다.
아마도 주술의 일환일 것이다.
하선할 때도 기묘한 안개로 시야를 가리더니, 말에도 비슷한 술수를 부려놓은 듯하다.
실제로 여러 기록을 보면, 강시 제작에는 적잖은 비용이 들어간다고 되어있다.
그저 시체가 있다고 뚝딱 일으켜 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 외에도 온갖 제약들이 있다.
고작 말을 강시로 만들기에는 들어가는 자원이 아깝다는 의미다.
어찌 되었건, 기괴한 말을 인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작자들이 타고 있으니 더욱 기괴해 보였다.
“요격태세를 갖춰라!”
제갈 군사의 명령에 무림맹이 응전할 준비를 했다.
소림을 필두로 구파가 중심에 서고,
제갈세가를 필두로 사천당가가 그 뒤를 받친다.
흑애무천과 삼악도 호걸들이 양 날개가 되어 덮칠 준비를 하고,
천마신교는 자유롭게 포진해 언제라도 튀어 나갈 자세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 선두에 섰다.
“이 정도 상대에게 다치는 분은 없으리라 믿겠습니다.”
“당연하다! 다치는 놈이 나오면 돌아가서 내 손수 조질 것이다!”
신승 어르신이 소리치신다.
거칠지만, 상냥한 말이다.
절대로 살려서 돌려보낼 것이라 선언하신다.
“백무호!”
“어!”
“앞으로 튀어나와, 인마!”
백무호를 불러내자 검은 도복을 입은 이들이 함께 앞으로 나선다.
화산의 흑매검수.
사문에 대한 과오(過誤)를 씻기 위해 언제나 가장 선두에 서서 몸을 던져온 이들이다.
그렇다면 그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 역시 내 역할이다.
“선봉은 화산이 맡는다!”
그 말과 함께 슬쩍 뒤를 돌아본다.
놀라울 정도로 반발이 없다.
그동안 그들의 분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 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실 살짝 걱정하긴 했다.
보통 이런 결전을 앞둔 싸움에서 선봉에 대한 경쟁은 자존심 싸움으로 이어져 균열을 만들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들 훈훈한 얼굴로 흑매검수들을 바라보았다.
입천신마존은 콧방귀를 뀌며 멋 곳을 바라보았지만.
“……고맙…습니다.”
뒤를 돌아 모두를 향해 포권을 쥐며 허리를 숙이는 흑매검수의 목소리가 바르르 떨렸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백무호도 마찬가지였다.
“화산이 선봉이다!”
울컥 쏟아지려는 감정을 억지로 눌러놓기 위함인지 백무호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른다.
“오늘! 우리는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을 것이다!”
채앵!
의도적으로 소리 나게 검을 뽑는 백무호의 손에서 시린 쇠 울음이 흐른다.
뽑아 든 검을 누구나 볼 수 있게 높게 들어 올린다.
“무림맹을 위하여!!”
백무호가 뛴다.
“문주의 뒤를 따르라!”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흑매검수들이 뛴다.
나 역시 그 뒤를 따른다.
그런 우리들의 뒤로 무림맹이 진격하기 시작한다.
“으아아아아아아!!”
앞으로 기울어지다시피 하여 달리는 백무호의 검에서 자색과 황색의 기운이 하나가 되어 뭉쳤다.
유령마처럼 보이는 기괴한 것들의 돌격을 향해 몸을 던지는 백무호의 몸이 일순간 보폭을 늘렸다.
“크아아아아!!”
그 순간 적들이 괴성과 함께 일제히 활을 꺼내 들었다.
강시가 되었어도 몸에 익은 기술은 사라지지 않았는지 말 위에서 화살을 쏜다.
슈슈슈슈슈슈슈슈슉!
일이 열은 직사를 쏘고, 그 후열은 하늘을 향해 곡사로 쏜다.
하늘이 순식간에 화살의 비로 채워진다.
평범한 군대라면 순식간에 전열이 붕괴하였을지도 모를 만큼 위력적인 공격이 펼쳐졌다.
하지만 내가 있는 이상 이런 공격은 무용하다.
‘상화야.’
내 부름에 상화가 호응하자 하늘 위에서 벌떼 우는 소리와 함께 쏟아지던 일 천의 화살비가 그대로 멈춰 선다.
“우와아아아!”
“호오?”
그야말로 장관에 감탄이 이어진다.
그렇게 내가 판을 깔아주자, 그 위에서 백무호가 뛰어놀았다.
“시체는 무덤으로 꺼져라!”
쏘아진다는 느낌으로 보폭을 늘린 백무호가 괴성을 지르는 적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설매검(雪梅劍)!
겨우 개념만을 잡아냈던 미숙하기 그지없던 검.
그 검이 탄생하는 순간에 함께했던 것이 바로 나다.
그 미숙했던 검이 이제 완숙한 초식을 펼친다.
퍼걱!
무거우면서도 빠른 쾌검이 기마 강시 군단의 선봉을 베었다.
검날의 길이라고 해봐야 석 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검을 통해 뻗어 나온 기운은 삼 장에 달했다.
충분히 말 하나와 사람까지 통째로 베어낼 수 있다.
적의 선봉이 반으로 갈라졌다.
무거우면서도 빠른 검이 날렵하게 변화하며 순식간에 다섯 기마를 베어낸다.
그렇게 갈라진 균열로 흑매검수들이 파고들었다.
백무호와 꼭 닮은 보폭으로 시원하게 들어가 균열을 벌린다.
그 뒤를 무림맹의 본진이 치고 들어갔다.
콰가가각! 퍼컥!
콰드득!
쿠쿵!
명멸하는 파육음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누구 대가리가 더 단단한지 부딪치는 짐승 같다.
물론 그 격돌에서 깨져나간 것은 강시 군대다.
기병 돌격에 있어 가장 위협적인 것은 선봉의 돌파력이다.
그 선봉의 돌파를 막아낸 것을 넘어 찢어낸 시점에서 백무호와 매화검수는 그 역할을 다했다고 평할 수 있다.
“좋았어!”
나는 온몸에 두른 내공을 회전시키며 앞으로 나아갔다.
직진하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적진을 붕괴시킨다.
콰드드드드!
말과 사람… 아니, 강시라 불러야 할 것들이 톱밥처럼 갈려 나간다.
“쯧! 강시는 강시군.”
두려움을 모른다.
일반적인 군대라면 이는 대단한 이점이다.
하지만 실제로 맞붙어보니 단점이 더 컸다.
생전의 전투기술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은 놀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전략적인 면에서는 짐승 이하다.
맹수도 사냥전략을 세울 줄 안다.
특히 늑대의 경우는 무척이나 교활하게 사냥감을 몰아간다.
그와 비교한다면, 저들의 움직임은 낙제점이다.
차라리, 인간이었을 때가 더 위협적이었을 것 같다.
만약 내가 기묘한 주술을 이용한 말을 탄 궁기병을 운용해 무림인들과 싸워야 한다면, 최대한 거리를 둔 채로 기동력을 살려 외각부터 갉아나가는 전략을 썼을 것이다.
경공에 따라잡힌다면 교전을 치러야겠지만, 가진바 무기를 최대한으로 사용해 최상의 결과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이 전략이 최선이다.
저들의 지휘관이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전쟁에서 잔뼈가 굵은 자라면 분명히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멍청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정면에서 돌격해온다는 것은 이 부대를 지휘할 지휘자가 없거나, 있어도 제 역할을 못 하는 상태란 소리다.
그렇다고 이들이 허깨비는 아니다.
말을 탄 기마의 돌격은 그 자체로 무기다.
신승 어르신은 다치는 사람이 나올 경우 지옥 수련을 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놨지만, 이만한 숫자의 돌격이라면 피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가릴 부셔!”
“칼침 놨다고 안심하지 마! 이 새끼들, 어설프게 손을 쓰면 역으로 당한다!”
게다가 완전한 불사의 군대까진 아니지만, 몸통에 구멍이 나고도 태연하게 움직이는 놈들이다.
방어를 도외시한 동귀어진의 수법으로 나온다면 피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맞찌르는 것만으로도 일방적인 손실을 강요당하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이런 불리한 상황에도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는 이들이 있다.
우익에 자리해 밀어붙이는 이들.
콰드득! 우지끈! 쿠웅!
“우워어어어어어어!!”
천근의 쇳덩이조차 공깃돌처럼 다루는 호걸들!
삼악도 호걸들이 공처럼 가지고 놀던 쇳덩이를 던지며 날뛰니, 적진의 좌익이 붕괴된다.
역시 기대했던 대로 대인전에서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든든하지만, 피해가 없진 않아. 한 사람이라도 더 피해를 줄이려면…….’
내가 좀 더 능동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내가 적 하나를 더 격살할수록, 아군의 피해는 줄어든다.
결심을 내림과 동시에 몸을 움직였다.
빠악!
말 머리를 짓밟으며 그 위에 타고 있던 강시의 머리를 부쉈다.
기울어져 넘어지는 강시를 밟고 몸을 띄운 순간, 넓어진 시야가 전장의 상황을 명확하게 잡아낸다.
수백 근이나 나가는 기마의 돌격에 다쳤는지 쓰러져있는 무림맹 무인들의 일부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상념의 시간은 짧았다.
주변의 상황을 살필 수 있는 시야를 확보했다는 의미는, 주변에서도 나를 인식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수백의 강시가 고개를 치켜들며 붉은 안광을 뿜어냈다.
노린 대로다.
전략 없이 몸에 익은 전투기술로만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 속에 나라는 우선순위가 높은 과녁판을 던져놓으니 확실하게 시선을 끌었다.
슈슈슈슈슈슉!
다시 한번 화살의 비가 쏟아졌다.
물론 이번에도 통하지 않았다.
상화가 멈춰 세운 화살의 비 사이를 파고들며, 적진 한가운데로 떨어져 내린다.
기운을 끌어올리며 힘차게 짓밟았다.
천마군림보.
쿠우우우우웅!!
군림의 일보가 밀집해있는 적진 한가운데에서 폭발했다.
“카아아아아!!”
콰르르르! 콰콰!
내가 떨어져 내린 곳을 중심으로 찍어 누른 힘에 주변에 있는 적들이 모조리 무너져 내렸다.
적진 한가운데가 텅 비었다.
일방적으로 박살이 나고 있는 가운데, 좌익과 중앙이 붕괴되었다.
진형은 완전히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다.
어떻게 박살을 낼지는 내 마음대로다.
“어?”
그런데 눈에 띄는 자가 하나 있었다.
천마군림보의 영역 외곽에 있어 겨우 영향력에서 벗어났는지 비틀거리고 있는 그놈은, 헐렁한 가죽옷을 입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 피 묻은 무복을 걸치고 있어 쉽게 눈에 띄었다.
북방 기마병들과 같이 강시 꼴을 하고 있지만, 얼굴이 기억에 있었다.
“왜 여기에?”
지난번 화산에서 벌였던 전투.
흑룡회에서도 손꼽히는 고수인 거룡제와 맞부딪친 뒤 손을 섞었던 자다.
당시 멍청한 짓을 하며 위험한 순간을 겪었기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내 손으로 직접 목을 꺾어 죽였다.
확실히 확인하기 위해 그자에게 다가갔다.
“카악!”
반사적으로 손끝을 세워 찔러오는 공격을 화경으로 흘려낸 뒤 목을 움켜쥐었다.
우득!
그날처럼 목을 꺾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머리까지 뽑아내 엉망인 얼굴을 확인했다.
그자가 맞다.
피가 모조리 뽑혀서인지 당시와는 다른 부분도 일부 있지만, 그 간사한 인상의 특징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자의 시체도 가져가서 활용했다면…….’
어쩌면 거룡제도 강시가 되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흑련, 흑룡회와 연합을 맺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짓이라니!
극악사도라는 놈들이 진짜로 막 나가는 놈들임이 분명하다.
그런 가운데,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윤시후.
멸천회주에게 털렸던 그날, 내 손으로 윤시후의 목을 잘라 그 머리를 멸천회주에게 집어던졌었다.
만약, 그 시신을 멸천회주가 수거했다면?
놈의 몸뚱이는 단기간에 혈교의 대법을 받아들여 혈마위에 올랐을 정도로 혈교와 궁합이 잘 맞았다.
만약 멸천회주가 그 자질을 아까워했다면?
“설마…….”
***
이경천은 대라마, 곤륜파 도인들과 함께 말을 타고 태산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서북 관문으로 밀고 들어온 북방 유목민 군세를 쓰러트리고 얻은 말들이 많았기에 그 많은 인원이 교대로 타고 달릴 수 있을 정도였다.
질주하는 그들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들이 목도한 것은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갑자기 나타나 서북 북방 유목민 군세를 찢어버리던 자!
피에 굶주린 것처럼 혈겁을 일으키는 모습에 이경천은 사연 있는 은거고수인 줄 알았다.
하지만 대라마가 그를 보자마자 가슴을 움켜쥐고 피를 토하는 모습에 바로 알아차렸다.
이 자가 대라마가 말하던 그 마왕임을!
지고하신 천마의 대적자임을!
이경천은 죽음을 각오했으나, 그자는 이경천과 곤륜파 고수들을 내버려둔 채 떠났다.
마치 언제라도 밟아 죽일 수 있는 벌레를 보는 듯한 그 눈은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안개처럼 사라지는 그자가 남긴 말은 깊은 불안을 일으켰다.
“대라마…… 그자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좋은 의미는 아닐 것이오.”
그자, 멸천회주는 말했다.
“이걸로 모든 준비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