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416
415화 태산행(3)
설아 누나가 잡아 온 놈은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상태였다.
손목을 잡고 몸의 내부를 훑어보니 지상의 의술로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놈이다.
내가 없었다면.
내 의념의 힘이라면 망가진 몸이라도 수복이 가능하다.
의념을 사용하는 힘이니 당연히 인과가 소모되겠지만, 일단 살리는 쪽으로 결정했다.
이 정도 기맥을 가진 고수라면 절대 낮은 직책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즉, 살려만 놓으면 뽑아낼 정보는 상당할 것이다.
이 정도 무위를 지니고도 서슴없이 자진하는 것을 보면 굴복시키기가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나는 이자의 숨이 끊어지기 전에 찢긴 기혈과 기맥을 복구했다.
탁한 색으로 물들어가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혼란이 가득한 것이 크게 당황한 것 같다.
“죽고 싶으면 허락받고 죽어.”
다 죽어가던 시체가 살아났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어, 그러고 보니 황도에서 벽을 넘은 이후 내가 제대로 의념을 활용한 걸 보여준 적이 없었네?’
입천신마존을 밀어내는 힘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걸 의념으로 이해한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고철이 된 철노를 새것처럼 만들어내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지만, 다 죽어가는 사람을 멀쩡히 살려내는 것과는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긴 할 거다.
뒤통수가 따가웠지만 일단 무시한 채 눈앞에 있는 놈에게 집중했다.
놈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경악했다.
“어… 어떻게… 어떻게 그분과 같은 힘을…….”
이놈은 내 뒤통수에 시선을 꽂아 넣는 분들과 달리 이런 식으로 의념을 구사하는 걸 본 적이 있는 모양이다.
“뭐, 이런 거?”
서걱!
손날을 세워 놈의 팔을 잘라냈다.
수복된 혈맥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지만, 허공에 나부끼는 팔을 낚아채 붙이자 다시 멀쩡해졌다.
“멸천회주가 이런 거 보여주면서, 지가 신이라디?”
“그, 그분은… 태산부군의 화신으로…….”
“그럼 나도 태산부군의 화신이겠네?”
나는 놈을 향해 이죽거렸다.
“의념의 경지가 극에 다다르면 천지간의 기후조차 다스릴 수 있다. 왜 신선들이 호풍환우를 다스린다고 하잖아? 그게 다 이런 거야. 그에 비하면 사람 몸뚱이 수복하는 일쯤이야 우습지.”
삼악도 호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때마침 쏟아지던 비바람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납득한 모습이다.
뭐, 엄밀히 말하자면 멸천회주는 사람으로 분류할 수 없는 존재다.
육체만큼은 신선이라고 하니까.
하지만 정신적인 부분은 인간의 수준에 머물러있다.
사부님들의 평가에 의하면 고작해야 반쪽짜리.
신이라니, 가당치 않다.
“그…… 어…… 으아…….”
많이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말을 잇지 못하는 입에서 진득한 타액이 흘러나왔다.
그렇기도 할 것이다.
서슴없이 자진(自盡)을 택할 만큼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광신(狂信)이라도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그 믿음의 근간이 흔들리니, 혼란을 넘어 자신의 모든 것이 부정당한 기분일 것이다.
생각보다 쉽게 무너졌다.
약점을 보여주면 찔러주는 게 예의다.
-[멸천회주는 신이 아니야. 신은 고사하고 말단 신선조차 되지 못한 반푼이에 불과해. 관직으로 치면 입신(立身)조차 못 한 낙제생이란 소리지. 지금 벌이고 있는 일들도 낙제한 일에 앙심을 품은 너절한 놈의 징징거림에 불과한 거야.]
“꺼…… 어어어…….”
나는 슬쩍 전음을 날려 멸천회주의 본질에 대해 말해주었다.
더할 나위 없이 커진 그의 눈동자는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혹한의 추위 속에 맨몸으로 내던져진 꼴로 몸을 떨어대는 그를 한 번 더 쑤셨다.
-[나는 네가 믿는 너절한 놈 막으라고 보내진 천상의 사도 같은 거야. 지금 위에 계신 분들이 크게 화가 나셨거든.]
멸천회주보다 훨씬 더 거대한 존재들이 잔뜩 화가 나 있는 상태란 이야기다.
이만큼 무서운 협박도 없을 것이다.
-[안 믿겨?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고작 약관에 불과한 내가 네놈이 믿는 멸천회주와 비슷한 수준으로 의념을 다루고 있다고. 이게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일일 것 같아?]
이전 황도에서 할아버지의 친우분들이 했던 말을 인용했다.
“우웩!”
꽤나 그럴싸했는지 놈은 갑판 위에 토악질을 하며 허물어졌다.
나는 거기에 쐐기를 박았다.
-[놈은 지옥시왕의 윗줄인 대신격 태산부군의 화신이 아니야. 당연히 죽음으로 네 영혼이 안식 받을 일은 없어. 네놈들은 그저 이용당했을 뿐이야.]
“으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발작하려는 놈의 머리를 발로 짓밟았다.
끝났다.
저항할 마음이 모조리 사라졌는지 놈은 시체처럼 축 늘어졌다.
“태산에는 뭐가 있지?”
“극악사도의… 모든 것…….”
놈은 모든 것을 놓아버린 듯 입을 열었다.
“태산의 용맥에 닿아있는 금주에 대해 알고 있나?”
“용맥…… 그런 건… 몰라…….”
극악사도의 모든 것이 태산에 있다 말하면서도 용맥에 대한 것은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은, 결국 극악사도 역시 하수인에 불과한 모양이다.
그저 강시를 제작, 관리하는 정도였나 보다.
“북방을 무너트린 유목민 군세가 태산으로 향한 이유는?”
“그들도… 흐흐… 그들도 믿었으니까… 흐으…….”
“믿었다?”
“불사… 불사의 군대… 멍청이들… 흐흐… 죄다 멍청이야… 흐흐흐…….”
죽지 않는 존재.
불사의 군대.
아무래도 내가 흘려 넘겼던 그 생각이 맞았던 모양이다.
설마 그렇게 멍청하겠냐고 웃어넘겼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니 그렇게 믿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 죽어가는 사람을 멀쩡하게 되살리고, 잘린 팔도 척척 붙여버린다.
그걸 눈앞에서 보여주면서 태산에서 그 힘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눈이 뒤집힐 만도 하다.
“그럼 유목민 군세는 지금 죄다 강시가 되었겠군.”
“흐… 직접 가서 보시구려…….”
콰직!
혼란과 허무함을 더 참기 힘들었는지 극악사도는 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부쉈다.
막을 수 있었지만, 막지 않았다.
용맥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굳이 살려둘 필요도 없다.
알아서 머리를 깨부쉈으니 손을 쓸 수고도 덜었다.
‘건진 정보라곤 극악사도의 본거지가 태산이라는 정도인가…….’
멸천회주가 가장 공을 들여 만든 세력.
그들이 태산으로 가는 길을 막아설 주력일 것이다.
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보아하니 강시들과 한 판 붙어야겠네요.”
“무림인이건, 강시건 대가리를 날려버리면 그만이지.”
입천신마존이 콧방귀를 뀌었다.
강시라고 해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식이다.
뭐, 입천신마존 정도 고수라면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다.
하지만 입천신마존은 다른 쪽에 더 관심이 있는 눈치였다.
“그보다, 정말 의념이 극에 다다르면 그런 것이 가능해지나?”
“그쪽입니까?”
“당연하지! 다들 지금 눈이 벌게진 게 안 보여?”
안 그래도 쏟아지는 눈빛이 따가울 정도다.
무극을 통해 의념을 구현할 수 있는 경지에 닿아있는 분들이 특히 심했다.
신승 어르신의 팔비신.
입천신마존의 벽파접무.
장문경 선배의 천의무봉.
모두 스스로의 의지로 현실의 법칙을 무너트리는 수법들이다.
내가 보인 것은 그 너머의 경지.
일생을 무에 바쳤다 싶은 사람들에겐 명확한 목표를 보게 된 것 자체가 기연이나 다름이 없을 터였다.
“그 이상도 가능해집니다.”
“으하하하하하!”
입천신마존이 만족스러운 듯 파안대소했다.
그와 비슷한 표정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좋아!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단 말이지. 알게 된 이상 반드시 그 너머에 도달하고야 말겠다!”
명확한 목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
벌써부터 고정관념과 상식을 깨부순 고수들의 기운이 요란스럽게 출렁이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그 경지에 도달할 것처럼 의지를 불태웠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뿌듯함을 느꼈지만.
[흐흐흐…….] [그래, 빨리 좀 와라. 빨리!] [묵묵. 히히히! 묵묵이다! 묵묵!]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싸해진다.
‘저분들이 등선하시면 한동안 시끄러울 것 같은데…….’
이 정신 나간 신선분들 목소리 사이에서 신승 어르신이나 입천신마존의 목소리가 섞인다면 기분이 참 미묘할 것 같다.
사기당했다며 고래고래 소리 지를 것이 분명하다.
‘내가 살아남을 길은 윗분들에게 잘 보이는 것뿐이겠구나…….’
서왕모 님이나 곤륜십이선 같은 높으신 분들께 잘 보일 수 있도록 기름칠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
그 뒤로는 어떤 방해도 없었다.
그 여유시간 동안 무림맹 고수들과 무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쓰였다.
대화 한 번 나눠보지 못한 누군가의 죽음과 동경 어린 눈을 빛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본 동료의 죽음은 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는 길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황하는 분명 크고 긴 강이 맞다.
하지만 도로처럼 딱딱 규격화가 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는 넓고, 어디는 좁다.
어디는 물길의 흐름이 세차지만, 어디는 물길의 흐름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평탄하게 흐른다.
강의 폭이 좁은 구간이 있긴 했지만, 순서대로 지나가면 됐다.
문제는 깊이였다.
지금 타고 있는 배는 수군에서 쓰는 군선이라 덩치가 큰 편이었는데, 강물의 깊이가 얕아지는 곳에 이르니 배가 강바닥과 부딪혀 하마터면 좌초될 뻔했다.
어떻게 어떻게 노질로 배를 띄우고, 정 안 되겠다 싶은 곳에서는 아예 배를 직접 들어 옮겨 넘어갔다.
당연히 관중연에게로 시선이 모이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어… 음… 제가 알기론 여기도 군선이 지나가는 자리긴 하거든요? 어어… 아무래도 이 시기엔 비가 잘 오지 않아 수면이 낮아진 모양입니다.”
“작은 배라면 몰라도 큰 배는 이 시기에 운용하기 힘들다는 겁니까?”
“제가 물개 출신은 아니라서 자세하게는 모르겠습니다만… 어… 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요…….”
“배의 원주인인 수군에선 알고 있었겠죠?”
“……그렇겠죠?”
“그러고도 일언반구도 없었다……. 엿 먹인 건가?”
수군 측에선 강제로 배를 징집당한 것에 화가 나 어디 한번 엿 먹어 보라는 의도였을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시간을 제법 손해 보았다.
이후로 관중연은 나를 슬슬 피했다.
남몰래 이빨을 뿌득뿌득 갈아대는 것을 보니, 아마도 조만간 수군 쪽에서 곡소리가 날지도 모르겠다.
구석 벽에 이마를 댄 채 중얼거리는 것을 들어보면, 검열과 감사를 총동원해서 합법적으로 털어버리려는 모양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곳.
물길이 직접적으로 이어져 있진 않지만, 멀리 수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은 담수호가 보였다.
그리고 우리를 반기는 또 다른 것이 있었다.
“안개치곤 과한데.”
조금 전까지 선명하게 보이던 담수호, 동평호의 수평선이 흐릿해졌다.
먹구름처럼 밀려오는 검은 안개가 몸을 불리며 다가온다.
“주술입니다.”
“인사가 빠르네.”
배에서 내리자마자 습격하려는 모양이다.
“깰 수 있지?”
“예.”
따악!
화르르르!
담담하게 답한 이화가 손가락을 튕기자, 한 줄기 불꽃이 화살처럼 뻗어나갔다.
화악!
폭풍의 먹구름처럼 몰려오던 검은 안개가 쩌억! 갈라지더니,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덩치만큼이나 큰 불길이 한순간 화악! 하고 일어났다.
한순간에 불타 없어진 검은 안개 사이로 돌격해오는 한 무리의 군세가 보인다.
태산으로 가는 길.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