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45
44화 쎄~하네
자부라는 노도인의 검을 피하기 위해선 모든 감각과 정신을 저 검 하나에 몰두해야 했다.
그래야 종이 한 장 차이로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고오맙다, 친구 놈아아아아아!’
얄궂게도 백무호와 비무를 하며 얻은 경험들도 제법 도움이 되었다.
백무호의 검에 있던 화산파 검법의 기질을 겪었던 것이 익숙함을 부여해 준 것이다.
노도인의 검은 하나하나가 보고 판단하여 대응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그저 본능 자체가 반응하여 피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이미 겪어 보았다는 익숙함은 적지 않은 이득이 되어 주었다.
[쑥쑥 크는구나. 벌써 성취가 몇 단계는 오른 것 같은데?] [허허. 기연이 따로 있는 게 아니지.]사부님들은 신나게 즐기시는 중이시다.
사부님들께는 참 불경한 일이지만.
‘욕 박을 뻔했습니다! 진짜로!!’
아니, 종이 한 장 차이로 검 끝이 지나갈 때마다 산 채로 회 떠지는 느낌이 드는데 그걸 보면서 손뼉을 치고 계신다 하시면 욕 좀 할 수 있는 거 아니……!
“흡!”
“이놈 봐라?”
다시 한번 뻗어온 검 끝을 간신히 피하는데, 되는대로 뻗어나간 발이 아무렇게나 주변에 밟을 수 있는 것들을 밟으며 움직였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제법 멋있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땅에서 발을 뗀 후 간단한 발재간 몇 번으로 도약 도중 방향을 다섯 번이나 비틀어 움직였으니까.
집요하게 검을 휘두르던 자부 노도인의 눈빛이 번뜩였다.
“제운종? 아니, 금강부동신법인가?”
알아본다?
장삼풍 사부와 달마 사부가 제운종과 금강부동신법을 바탕으로 만든 경신법이 능운금광보이니 닮아있는 기질을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아닌가?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 같기도…….”
그런데 이걸 수긍해도 되는 건가?
그렇다고 했다간 어디서 배웠냐는 말이 나올 건데.
“아하! 귀신이 소림이나 무당파 무공을 펼치면 그런 느낌으로 펼쳐지는가 보구나.”
“…….”
쓸데없는 걱정이었던 것 같다.
내가 귀신이라 생각하는 동안은 말이다.
……그게 제일 문제잖아!
“아무튼, 자네가 구파와 연이 있는 귀신이라면 화산파의 장로인 노도와도 무관하다 할 수 없을 터. 내 진심을 다해 성불시켜 줌세!”
내 귀에는 저 말이 진지하게 멱을 따준다는 소리로 들렸다.
진짜 죽게 생겼다.
‘여기 화산파잖아! 아무도 없어요!?’
요즘 산 아래가 혼란스럽다고 해서 화산파 고수들이 죄다 밖으로 돌아다니기라도 하는 모양이다!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는 말이 입안에서 요동치며 들끓었다.
소리는 치고 싶은데, 그렇게 입을 열어 소리칠 여유조차 없다. 입을 열어 소리치는 것만으로 신경이 분산돼서 저 노인네의 검을 못 피할 것 같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떠올리는 것조차…….
‘늦었……!’
아주 잠깐 생각이 나뉜 사이, 흐트러진 틈새로 검이 방향을 잡았다.
검보다 아직 뻗어오지 않은 검세가 몸에 먼저 닿아온다.
몸이 갈라지는 강렬한 감각. 한순간 미래를 보고 온 것처럼 몸이 두 동강 나는 환상이 보였다.
생사가 나뉘는 순간.
‘썅!’
본능이 최고 속도로 움직이는 순간이다.
비로소 무인이 한계를 깨고 한 걸음 나아가는 순간.
[하하하하! 드디어 깨었구나!] [좋구먼.]사부님들이 뭐라고 하시는 것 같은데, 솔직히 못 들었다.
일일이 그런 거 듣고 인지할 여유 같은 건 지금 내게 없었으니까.
그저 살기 위해 날뛰는 본능이 무언가를 개방했다는 거다.
탁!
한순간 아무것도 없는 빈 허공을 밟았다.
세상의 흐름을 밟았다.
[어이쿠! 천마 그 양반이 없는 것이 아쉽구나. 저걸 직접 봤어야 하는데! 본능적으로 문제가 없을 만큼만 천마무겁수의 공간력 일부를 차환해 가져와 발판 삼는다? 독존의 무공이 생존의 발버둥으로 바뀌는 순간이구나. 하하하하!]다시 장삼풍 사부가 뭐라 하는 것 같은데, 이번에도 안 들렸다.
어쨌거나 허공에서 몸의 방향을 비튼 결과.
사악!
간신히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으로 피해낼 수 있었다.
“허어?!”
회심의 일격이라 생각했는지 눈이 동그랗게 커지는 자부 노도인이 보인다.
하긴, 내가 빈 허공을 밟을 수 있을 거라 생각이나 했겠어?
덕분에 자부 노도인의 검세에 틈이 생겼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절대 못 뚫고 들어갔을 테지만, 회심의 일격이 빗나가며 만들어진 빈틈과 놀란 와중에 흐트러진 틈새는 내가 들어가기 충분할 만큼 벌려져 있었다.
아무리 노인 공경에 투철한 의식이 있는 나라지만 이 정도 당한 게 있으면 죽빵 한 대 정도는 괜찮잖아!?
빠악!
발끝에 아주 마음에 드는 감촉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한 차례 바닥을 구르며 나가떨어졌다.
제법 얼얼했는지 맞은 턱을 이리저리 매만지며 일어나는 자부 노도인이 어이가 없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허! 귀신이 대낮에 사람 치네?”
“사람이라니까요.”
“무슨 사람이 그런 움직임…… 너 왜 그림자가 있어?”
“진짜 사람 얘길 안 듣네.”
이제야 좀 내 말이 들리고, 모습이 보이나 보다.
“피도 나네?”
“하아…….”
어깨의 살가죽을 벤 검격에 흘린 피가 옷을 적셨다. 스치듯 베인 정도라 흘린 피는 많지 않았지만, 흔적이 드러날 만큼은 됐다.
그림자도 있고, 피도 흘리고.
그리하여 자부라는 노도인이 내리는 종합적인 결론은.
“얘길 하지 그랬나.”
“…….”
뻔뻔했다.
지금이라면 사람 죽여도 무죄 판결받을 자신이 있을 것 같은데.
***
결론적으로 그 이후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다행스럽게도 큰 문제 없이 다 해결이 되었다.
나도 찔리는 부분이 아예 없는 건 또 아니었기 때문이다.
멀쩡한 입구를 내버려두고 이상한 곳으로 올라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보니, 화산파에서 그 부분을 걸고넘어지면 나도 할 말이 없었다.
대문이라는 것을 만든 이유는, 그곳으로 출입을 하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내가 들어온 방향은 과거 몇몇 고수들이 마실 다닐 때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뒷길이라고 한다. 물론 지금은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런 곳으로 불쑥 올라왔으니 화산파 입장에서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불법 침입자 취급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행히 화산파는 상식적인 곳이네요.”
“허허. 뭐…… 당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이해는 가네.”
자허진인이 내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나를 귀신이라 생각해 다짜고짜 베어 죽이려고 했다는 이야기에서 화산파 제자들 모두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한 입에서 나왔다고 느낄 만큼 완벽하게 일치했다.
새삼 그들의 고충이 느껴질 정도였다.
“해서 자네에게 선택권을 주도록 함세.”
“선택권이요?”
“자부 사제에게는 무슨 벌을 주면 좋겠나?”
“어어…….”
이거 요즘 새로 생긴 농담인가?
분명 방금 자허진인이 사제라고 했다. 자부라는 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자 자 배분인 것을 보면 장로급 인사가 분명하다.
구파 장로급 인사의 처분을 외인에게 맡긴다?
이거 겁나서 말할 수 있겠냐 싶지만.
“의견을 내기 싫은가?”
“아뇨, 있습니다. 방금은 뭐랄까, 갑자기 삭신이 쑤셔서.”
자부 도인의 검을 피하기 위해서 그야말로 극한까지 몸을 움직여야 했다. 그 여파가 뒤늦게 올라와 온몸이 쑤셨다.
이 기회를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그럼 뭐가 좋을까?
‘어차피 곤장 친다든가 하는 일은 못 할 게 분명하니까.’
의견을 낸다고 해도 모두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물리적인 방식이라든가.
그렇다면 상대가 싫어할 만한 일을 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그분 평소에도 말이 좀 많으시죠?”
“그렇긴 하지.”
말이 많은 사람.
성향이 그런 사람이면 면벽수련 같은 것이 최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이내 접었다. 현재 화산파 입장을 생각하면 저만한 무력을 가진 무인을 구석에 처박아 두는 건 좋지 않다.
“그럼 이번 기회에 묵언 수행 좀 해보시는 것도 좋겠네요.”
“호오?!”
내 대답을 들은 자허진인이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이 고상해 보이는 분도 저렇게 웃을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활짝 웃으셨다.
“잠시 기다리게.”
자허진인이 돌연 화산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가 무언가를 말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꽃밭이구만.]장삼풍 사부가 피식 웃으셨다.
실제로 모여 있는 사람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그중 몇몇이 내게로 다가왔다.
찌릿!
‘음?’
그런데 그들이 다가오는 중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을 때 뭔가 묘한 감각이 등골을 훑고 지나갔다.
먹어본 맛이긴 한데 어디서 먹어봤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랄까.
뭔가 찜찜함을 불러일으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스스로도 뭔지 모를 것을 가지고 왈가불가할 수 없어 입을 다물었다.
그사이 나를 둘러싼 화산파 사람들로부터 무척이나 호의적인 감사를 받았다.
대충 뭉뚱그려 요약하자면 이거였다.
“고맙네. 복 받을 걸세.”
역시 자부 도인에 대해서는 그냥 인과응보라고 생각하자.
***
“그 양반 성격에 묵언 수행이면…… 으아! 고생깨나 하시겠구만.”
재미있는 것을 봤다는 듯 백무호가 피식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쪽도 해결해야 할 게 있었다.
나는 조금 전 자허진인이 지었던 미소만큼이나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너도 하자, 묵언 수행.”
“뭐? 야! 내가 왜…….”
“내기. 원하는 거 하나 들어주기.”
“어? 어어?”
“기한은 화산파에 머물고 있을 때까지. 단, 말 한마디 할 때마다 밖에 나가서도 하루씩 늘어나는 거다?”
“…….”
백무호가 넋이 나간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반발은 없었다.
“잘 알아들은 것 같아 다행이네.”
아, 권력의 단맛이란.
***
다음 날.
화산파에서 무난한 하루를 보낸 나는 오랜만에 단잠을 취할 수 있었다.
뭐, 화산파야 여러 가지 논의를 나누는지라 바쁜 느낌이었지만, 어차피 외인인 내가 끼어들 일은 없었다.
그간 여로가 제법 피곤했던 데다, 백무호도 묵언 수행 중이라 조용한 상황이니 편히 쉴 수 있었다.
[오래 자는구나.]머릿속에 사부님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응?
‘이 목소리?’
“혹시…….”
[나 맞다.]“아, 옙!”
천마 사부시다.
그러고 보니 앞으로는 사부님들이 돌아가면서 나와 있을 거라고 했었다.
천상에서 공무에 바쁘신 사부님들의 일정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긴 하지만.
[화산파라고?]“예.”
[그리운 곳이군. 그러고 보니 이전에도 몇 번 온 적이 있었지.]“그러십니까?”
어째 자세히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그나저나 이거 괜찮은 건가?
따지고 보면 천마 사부가 화산파에 와 계시는 셈이다.
이거 합법이야?
아니, 그것보다도.
“그런데 오늘 같이 계신…… 분은?”
[나구나.]달마 사부시다.
달마 사부와 천마 사부의 조합이라.
‘쎄~하네.’
뭔가 느낌이 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