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81
80화 화타의 치료법
간단히 씻고 짧은 휴식을 취하는 사이, 두 사람이 방문했다.
한 사람은 청풍자 장로님이셨다.
“당만옥이라 하네.”
다른 한 사람은 중년 정도의 사내였다. 평균보다 약간 말라 보이는 체형에 어딘가 정제되어 보이는 태도 사이로 날카로운 눈매를 번뜩이는 사람이었다.
“사천당가의 총관이라네. 대뜸 청성파에 찾아와 대라신단을 요구한 녀석이기도 하지. 명문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가끔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착각하는 경우들이 종종 보이네만, 이 녀석은 경중에 어긋남이 없다네. 자네도 안면을 익혀 두면 도움이 될 걸세.”
“친절한 소개 감사합니다.”
당만옥 총관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청풍자 장로님께 어린 후배 취급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청성파에 찾아가 대라신단을 요구해야 했던 상황이 속을 긁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네가 소천룡인가.”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별호에 이번엔 내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연청운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친우인 백무호입니다.”
간단하게 통성명을 하는 자리다. 인사를 함과 동시에 백무호를 소개했다.
당만옥 총관의 눈길이 백무호에게 향했다.
“과연. 소천룡의 곁에 뛰어난 검재(劍才)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 저 친구인 모양이군.”
대체 어디서 그런 근거 없는 소문이?
그런 거 들으면 이 녀석이 보일 반응은 뻔한데.
“허허허! 어디서 그런 정확한 정보가.”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백무호가 선수를 쳤다. 그것도 나이 지긋한 어른 흉내를 내며.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겸양이라는 말이 뭔지는 아냐?”
“소천룡이라는 녀석이 하는 말이라 잘 모르겠는데?”
“…….”
그래, 그건 인정.
니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이 없긴 하지.
‘하아…….’
퍼져 나간 말을 쓸어 담을 수도 없으니 이놈의 별호는 결국 내가 적응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저 녀석 재밌네.]성격이 밝은 분이라서 그런지 편작 선생은 백무호가 꽤 마음에 드는 것 같다.
당만옥 총관이 피식 웃었다.
“젊음이 좋긴 하군.”
어딘가 우리의 대화를 생소하게 받아들이고 있단 느낌이다.
“내 앞에서 세월 이야기인가?”
“이전이면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속이 문드러진 거라면 장로님보단 제가 더할 겁니다.”
슬쩍 찔러오는 청풍자 장로의 말을 절묘하게 받아치는 당만옥 총관이다.
당만옥 총관이 내게 청했다.
“본래라면 오늘 하루 정도는 푹 쉬게 해주고 싶네만, 우리도 사정이 급해서 말이야. 미안하지만 바로 움직여 줬으면 좋겠군.”
“바라던 바입니다.”
놀러 온 자리가 아니다.
해야 할 일이라면 빨리 마주하는 게 나도 좋다.
“안내하지.”
자신 있게 대답하는 내 말에 비로소 완연한 웃음을 짓는 당만옥 총관이 앞장서 걸었다.
***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세력은 자연스럽게 안과 밖을 나눈다. 외부와 공유할 수 있는 자리와 외부와의 공유를 거부하는 자리가 나눠지는 것이다.
백가표국에서도 보았던 그 경계를 사천당가에서도 확인하였다.
단지 문에 불과하지만, 그곳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공기가 무거워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혼자가 되어서 더 그런가?’
어차피 가주를 진료할 사람은 나다. 당연히 나만 따로 사천당가의 가주 만독신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실 자네를 의심했었네.”
불쑥 당만옥 총관이 서늘한 말을 던졌다.
“너무 시기가 좋았거든. 입버릇처럼 의술이 하늘에 닿은 이가 어디서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렸는데, 그런 와중에 자네가 뚝 떨어졌단 말이지. 참 운 좋게도 말이야. 허나 현실의 쓴맛을 봤던 사람이라면 다들 알고 있지. 현실에서 운이 좋은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이 무거운 공기가 익숙하다는 듯, 당만옥 총관의 말이 무거운 공기 속에 녹아든다.
첫 만남에서 보았던 가벼움이 사라진, 사천당가를 움직이는 큰 중심축의 무게감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무림 초출 애송이였다면 오줌을 지렸을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쯤이야.’
하지만 그 정도 압박감에 눌릴 내가 아니다.
직접 대면한 적은 없지만, 평소 내가 마주하고 있는 분들은 무림의 전설들이다.
내 무릎을 떨게 할 거면 이 압박감에 만 배는 더 가져와야 할 거다.
“했었네…라. 지금은 아니라는 거군요.”
“자네가 탐식마군을 죽였다고 들었네. 자네가 동분서주하며 움직이고 있는 이유도 알 것 같고. 그런 협기를 보이는데 계속 의심하기는 힘들지. 솔직히 현재 당가에선 가주의 치료는 고사하고 시간벌이에도 급급한 상황이라는 점도 있다네.”
내가 좋지 않은 의도를 가진 계략의 주체라면 굳이 이렇게 움직일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겠지.
당가의 가주가 죽고, 마교는 계속 정파와 사파 사이를 이간질하면서 정파를 자극해 인내심을 줄인다. 사파의 성질 급한 자들이 움직이면 인내심이 짧아진 정파도 참지 않을 거고, 눈이 뒤집혀 모두가 전쟁 속으로 뛰어든다.
내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을 때 일어날 것으로 짐작되는 참사다.
그리고 누군가의 음모로 가주를 잃은 사천당가라면 그 전쟁 속에서 미쳐 날뛸 것이 분명하다.
“운이 좋았다……. 현실에 좀처럼 없는 행운으로 자네와 연을 맺었으니 마지막까지 그랬으면 좋겠어. 운명처럼. 어느 동화 속 영웅담의 이야기처럼. 좋게 끝났으면 좋겠어. 정말로.”
감정이 과다하게 들어가서일까. 말이 뚝뚝 끊어진다.
당만옥 총관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무겁게 느껴졌던 이 안쪽의 공기가 느낌을 달리해 나갔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이 안의 공기는 더 이상 무겁지 않았다.
“그렇게 될 겁니다.”
아마 가장 현실적인 대답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였을 거다. 실제로 그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이것이었다.
[크으! 좋다.] [그래, 그거지!]막 지른 경향이 없진 않지만, 편작과 화타 두 신의는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잘…… 부탁하네…….”
기대 이상의 대답이었는지 당만옥 총관이 먹먹한 목소리로 답했다.
가장 깊숙한 곳에 다다르자 문을 열고 나를 들였다.
문을 열자 진한 약재 냄새가 풍겨 나오는 곳, 그 안에 반백의 머리를 한 중년인이 미동도 없이 누워있었다.
아마 이 사람이 현 사천당가의 가주 만독신군일 것이다.
제법 오랫동안 의식이 없었는지 얼굴에서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내일이라도 당장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노인처럼 검버섯 같은 것도 피어 있었다.
당만옥 총관은 약간 떨어진 곳에서 멈춰선 채 나를 지켜보았다.
[상태 안 좋네.] [손목을 잡아 봐.]진맥할 줄은 모르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만독신군의 손목을 잡았다.
‘어? 이건…….’
맥을 잡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진맥에 대해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이 맥박이 정상이 아니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격렬하고 폭발적이야. 당장이라도 피부를 찢고 터져 나올 것처럼.’
생기가 빠져나가고 있는 환자처럼 보였지만, 피부 아래에서는 어마어마한 힘이 요동치고 있었다.
“맥이 정상이 아니네요. 기운이, 혈맥에 독기가 들끓고 있다고 할지…….”
이 정도 힘이 통제 없이 막무가내로 움직이는 것이라면 만독신군은 지금 당장 핏물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의식은 없지만, 내면에서는 격렬하게 이 들끓는 독기와 싸우고 있다는 소리다.
[네 말대로 독기가 그렇게 들끓고 있는 거라면, 독공을 수련하다가 뭔가 잘못된 거라고 봐야겠는데.] [만독신군이라는 별호를 가진 아해가 그런 실수를 한다고?]“거의 없다고 봐야겠죠.”
독의 대가가 독공 수련 중에 실수를 저질러 이 지경이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누군가 수작질을 부렸다고 보는 것이 맞다.
“만독신군이라 불릴 정도의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 독이라…….”
나는 나대로 생각한 것을 가능한 한 중얼거리며 위로 정보를 보내는 데 주력했다.
[짚이는 게 있다.]역시 화타 선생. 벌써 짐작되는 것이 있으신 모양이다.
[너 땅의 신력이 있다고 했지?]“예.”
[살짝 손에 기운을 집중하고 얼굴에 손을 대 봐.]나는 시키는 대로 이번엔 안구 쪽에 손을 대 봤다.
“응?”
순간 손끝에 짜릿한 것이 느껴졌다.
정전기라도 인 것처럼 손끝에 자극이 전해져 왔다.
‘땅의 신력이?’
신력이 반응하여 부딪친다.
내가 독을 먹었을 때 반응하는 것보다 더 격렬하게 반응한다. 뭔가 싫은 것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굴었다.
“안구에 손을 대는 순간 땅의 신력이 반응하네요.”
[그렇겠지. 만독신군이란 별호를 받을 정도로 독에 정통해 있는 녀석이 이 꼴이면, 예상하지 못한 독에 당했다고 봐야 할 테니까. 이를 고려하면 무척이나 범위가 줄어들어. 그리고 네가 가진 땅의 신력이 그 정도로 반발하는 것이라면 뻔할 정도로 좁아지고.] [그렇군, 주독(呪毒)인가.]화타 선생이 추론의 근거를 늘어놓자, 편작 선생 또한 바로 알아차리며 그 정체를 이야기한다.
“주독?”
[저주에 독을 섞었다고 보면 되려나? 굳이 분류를 나누자면 주술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사천당가의 전신이 의가였다고 했지? 의술 쪽만 파고든 녀석들이면 모를 수도 있겠어. 이쪽은 분류가 많이 다르거든.]주술이라니. 부적 같은 것으로 기문둔갑 같은 것을 일으키는, 뭔가 기기묘묘한 초현실적인 술수들을 말하는 건가?
이미 그런 신들이나 다름없는 초자연적인 존재들과 태연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황이라 부정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좀 뜬금없었다.
[저주와 독은 궁합이 잘 맞거든.] [살아 있는 것은 음양의 조화를 이룰 때 평온한 상태를 유지한다. 독이란 건 그 조화를 흩트려 한쪽으로 과하게 치우치게 만드는 성질이 있지. 주로 음의 음. 탁한 것들이야. 악의의 덩어리라 할 수 있는 저주와는 궁합이 잘 맞을 수밖에 없다는 거지.] [고독(蠱毒)이라고 들어 봤느냐? 그게 저주와 독이 어울려 만들어진 대표적인 종류라고 볼 수 있겠구나.]대화를 따라가기 어렵지만, 어쨌거나 만독신군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답을 내리신 것 같다.
비교적 잘 알려진 술수인 고독에 비유하며 설명을 해주시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해법은 뭐가 있을까요?”
[맥의 흐름을 보면 내면에서 꽤나 분투 중인 것 같아. 뚜렷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몸의 이상에 맞서 싸울 의식은 있다는 소리야. 그러니 독기를 폭주하게 만든 주독을 제거하면 저 스스로 수습할 수 있겠지.]“그럼 주독을 제거하는 건…….”
[저주라고 했잖아. 약만으로는 될 게 아니야.] [게다가 위치도 좋지 않아. 하필 머리라서. 어설프게 손대면 뇌가 녹거나 뭉개질 거다.] [가장 좋은 방법은 주술에 능한 자를 찾는 거다. 주력을 눌러 줄 자가 있다면 독기를 다스리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그런데 마교 놈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을 정도면 어지간한 주력으론 힘들 테니, 모산파 같은 곳에서 오랫동안 수행한 녀석들 정도가 아니면 힘들걸?]모산파라면 강소성 모산에 위치한 문파라고 들은 적이 있다. 신묘한 능력을 지닌 술사들이 있는 곳이라 알려져 있다.
‘강소성 모산이라면……. 글렀네.’
강소성이라면 동쪽으로 바다가 보일 때까지 가야 하는 곳이다. 여기는 서쪽으로 조금만 더 움직이면 서역의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자리고.
대륙을 가로질러야 한다는 소린데, 그사이 만독신군은 숨이 넘어갈 거다.
사천은 전쟁터가 될 거고.
[방법이 아예 없진 않은데.]다행히 화타 선생에게 방법이 있는 것 같다.
믿고 있었다고!
[네가 가진 신력이면 웬만한 주력을 누르는 건 일도 아니야. 다만, 무턱대고 주력을 누르다간 뇌가 뭉개질 거다.]죽거나 죽는 게 나은 꼴이 되거나.
어느 쪽이든 최악이다.
그렇게 되면 나도 좋은 꼴은 못 볼 것이고.
“하지만 방법이 있으신 거죠?”
[그러니까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뇌가 뭉개지는 걸 피할 방법은 있다.]“그럼 문제 없…….”
[그런데 이걸 하려면 머리를 쪼개야 하는 거라.]“…….”
저기요?
화타 선생이 위왕에게 머리를 쪼개고 병원(病原)을 없애자고 건의했다가 옥중에 갇혀 죽었다고 했다던데…….
그거 진짜였어요?
도끼를 들고 가주의 머리통을 쪼개려다가 암기에 벌집이 되는 상상이 한순간 떠올랐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오해 없이 무탈할 수 있으려나?
아무리 고민을 해 봐도 답이 없었다.
“그………….”
“뭔가 알아냈는가?”
뭔가 말을 꺼내려는 내 기색을 읽고 당만옥 총관이 쏜살같이 다가왔다.
잔뜩 기대감을 품고 묻는 그에게 일단 서두를 뗐다.
“원인은…… 알았습니다. 치료법도…… 있고요.”
“오오오!”
당만옥 총관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치료의 과정에서 일어날 일에 대해 듣고도 저렇게 웃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당장은 세상을 다 얻은 듯 환하게 웃었다.
“화타의 진전을 이었다더니 대단하군. 역시 화타는 신의였어! 하하하하하!”
대단하긴 하지요.
치료법도 참 끝내준답니다.
“그래, 어떤 치료법인가? 화타 선생의 치료법이라면 위왕에게 권했던 것처럼 머리라도 쪼개려나? 하하하!”
“…………예.”
“아, 미안하네.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말이야. 자네도 농담이 제법이구먼.”
“………….”
“…………응?”
혼자 좋아서 웃고 떠들던 당만옥 총관이 고개를 갸웃했다.
“자네 방금 ‘예’라고 한 것 같은데…… 그건 수긍이지, 농담에 대한 대꾸가 아니잖나.”
“예.”
“아니, 그러니까 나는 자네가 농담이 지나치다는 말을 해주길 기다리고…….”
“………….”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