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141
제141화 – 너무 아까워요.
나는 같이 가겠다는 용왕을 떼어놓고 홀로 천전에 들었다. 그를 감당해야 할 소살도가 울상을 지었다.
시비로 부리기엔 지나치게 우아하고 아름다운 미녀 둘의 안내를 받아 황금으로 처바른 대전을 지나 보석으로 치장한 통로에 들어서자 도봉이 나와 나를 맞이했다.
“어서 와요. 정말 보고 싶었어요.”
하아, 이렇게 뻔뻔하다니. 두 달 보름 전 봉화산에서 나를 두 쪽 내려고 칼을 휘둘렀던 일은 까맣게 잊었단 말인가.
도봉이 나를 들인 다실도 호화찬란했다.
그러나 원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여인의 화려함은 그 모든 걸 압도했다. 가히 천상의 우물(尤物)이었다.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현기증이 일 정도였으나 나는 선정에 들지 않고 도봉의 미모를 직시했다. 사내로서의 본능으로 인해 강렬한 정복욕이 치솟았다. 갖고 싶었다. 미치도록 품고 싶었다.
나는 내 속에 휘몰아치는 욕망의 폭풍이 기꺼웠다.
아직 그대로구나, 오선.
***
구 단계에 들어서고 화후가 깊어지면서 나는 내 내면에 심각한 변화가 생겼음을 인지했다. 워낙 서서히 진행된 탓에 긴가민가하다가 최근에야 확실히 깨달았다. 노인네가 말했던 ‘무욕의 늪’에 발을 들여놓았음을.
아르와 연분을 맺으리라 장담할 수 없게 된 것도 이 변화의 여파였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어떤 여인에게도 정욕이 일지 않았다. 천지조화지경에 들어 모든 금제에서 해방되면 지상의 절대자가 되어 일천의 왕비와 궁녀를 두겠다던 호기도 우습게 느껴졌다.
심지어 무소불위의 신통력을 지닌 신선이 되겠다는 필생의 목표조차 시시해 보였다. 된들 어떻고 안 된들 어떻겠는가.
곤란했다. 심히 곤란했다.
내 성장의 원동력은 노인네가 혀를 내둘렀던 강렬한 열망에 있었다. 그 열망이 묽어지면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리돼도 좋고 저리되어도 그만이라면 강해지기 위해 아등바등할 까닭이 없지 않는가.
박차를 가해도 모자를 판에 퍼질러 앉아 자족한다면 결과가 뻔했다. 나는 내가 더 여물기 전에 먹어 치우려 혈안이 될 적들을 막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나를 다잡아야 했다. 그러려면 구 단계의 봉우리에 올라선 이후 거의 상시적으로 들었던 선정을 제한하는 게 선결과제였다. 황당하게도 발전의 결과물을 스스로 버려야 할 상황이었다.
***
나를 유심히 지켜보던 도봉의 눈빛이 야릇해졌다. 살짝 벌린 그녀의 입에서 분홍빛 혀가 빠져나오더니 선홍색 입술을 핥고 들어갔다. 그에 반응해 내 하초가 불끈 성을 냈다.
이대로 가다간 불문곡직 그녀를 덮칠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고 반색한 순간 불같이 타오르던 욕정이 갑자기 소멸되었다. 마치 누군가 찬물을 끼얹은 듯. 내 의지와 무관하게 선정이 일어난 후과였다.
하아, 제길.
나를 지켜보는 나에게 욕설을 내뱉은 나는 양 관주를 흉내 내어 기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도봉이 나를 따라 했다. 짤막한 한숨을 토해내는 모습조차 어질어질하게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나를 흔들지 못했다.
도봉도 나름 예리한 구석이 있었다.
“당신은 참 이상해요. 매번 한순간에 다른 사람이 되곤 하니. 대체 어느 쪽이 진짜 당신이죠?”
괴로운 질문이었다. 노인네에 따르면 선정 상태에서 나를 관조하는 이가 진짜 나였다. 하지만 나는 원초적인 욕구에 충실한 내가 진짜 나이기를 바랐다. 적어도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는.
내면의 갈등을 노출하고 싶지 않아 나는 냉랭하게 대꾸했다.
“그런 시답잖은 얘기를 할 때가 아닌 것 같소만.”
당황한 도봉이 횡설수설했다.
“미안해요. 나는 당신이 내 초대에 응해 나를 용서한 줄 알았어요. 그 못생긴 년도 봐줬잖아요? 나보다 더 심하게 손을 썼는데도. 그날 미쳤나 봐요. 절대로 당신을 해치려던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나는 그 흉악한 연놈들로부터 당신을 지키려고 했어요. 그런데 내가 당신을 공격했더라고요. 마치 귀신에 홀린 것 같았어요. 당신이 떠난 이후 양가의 얼간이가 자진하겠다며 난리를 쳤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는데 나도 죽고 싶더라고요.
정말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다 그 연놈들 잘못이에요. 나는 그치들 작당에 놀아나 엉겁결에 손을 쓴 것 같아요. 어쩌면 용궁의 못생긴 년이나 검림의 말라깽이가 내 차에 미약(迷藥) 같은 걸 탔을지도 몰라요. 맞아요, 틀림없이 그랬을 거예요. 그날 왠지 차 맛이 이상했어요.”
도봉의 증언을 토대로 판단컨대 검룡의 주장보다는 아르의 의혹 쪽에 훨씬 무게감이 실렸다.
아르는 ‘단순하고 어리석은’ 도봉에겐 간교한 혓바닥만 있으면 충분할 뿐, 마음을 조종하는 사술 따위가 필요치 않았을 거라 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말로 도봉을 꼬드길 자신이 없었는지, 아니면 확실히 해두기 위해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검룡은 그녀에게도 손을 썼음이 틀림없었다.
나는 검룡의 사망과 더불어 환상환 등을 포함한 모든 의문이 함께 땅에 묻히게 되어 아쉬웠다.
별로 덥지도 않은데, 그리고 설사 보름 전과 같은 기록적인 폭염일지라도 얼마든지 내공으로 더위를 차단할 수 있을 터임에도, 도봉이 그녀에게 착 달라붙어 뇌쇄적인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경장의 앞섶을 벌리더니 칼잡이의 손답지 않은 섬섬옥수로 부채질을 했다. 그에 따라 그녀의 탄탄하면서도 풍만한 젖가슴이 춤을 췄다.
꼴깍.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필설로 형용할 수준을 넘어선 도봉의 아름다운 얼굴에 만족을 담은 미소가 떠올랐다. 아찔했다.
훼방꾼이 초를 치기 전에 나는 강제로 선정을 차단하고는 초극의 미태를 자랑하는 여인의 교태를 코앞에서 감상하는 쾌락을 즐겼다. 이러자고 사는 게 아니겠는가.
“그 연놈들의 농간임이 분명하지만, 아무튼 미안해요.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예요. 나, 용서해 줄 거죠?”
도봉의 음성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나는 그녀에게 답을 주는 대신 되물었다.
“도봉은 어쩔 거요? 조만간 당신 사부가 나에게 진 빚을 받아낼 작정인데 그때도 나와 이렇게 태평하게 담소를 나눌 수 있겠소?”
일고의 고민도 없이 도봉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건 사부의 자업자득이에요. 그러지 말라고 내가 그렇게 말렸는데 말을 듣지 않더니. 당신이 사부를 절단 낸다고 해도 우리 관계엔 영향을 주지 못할 거예요. 오히려 나는 당신을 응원해요. 명색이 사부지만 그는 내게 학대를 일삼은 악한이었어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언젠가 내 손으로 처단했을 거예요.”
이런 답이 나오리라 예상했으면서도 기가 막혔다. 인세의 미를 초월한 껍질을 지녔지만 도저히 마음을 줄 수 없는 여인이었다.
나는 화제를 돌렸다.
“모친이 도제의 부인들 중 한 명이라 들었는데 도봉은 어째서 그의 성을 따르지 않은 거요? 부친이 따로 있소?”
궁금했다. 도봉이 친부인 진덕근에 대해서 알까.
“당연히 따로 있죠. 사부가 내 아버지일 리가 없으니. 그렇다면 그는 그야말로 인면수심의, 어맛!”
무심코 내뱉다가 제 말에 지레 놀란 도봉이 손바닥으로 입을 막더니 어색한 웃음을 머금었다. 아르가 옳았다. 정말로 단순한 여자였다.
“아무튼 내 아버지는 다른 분이에요.”
“누군지 아오?”
“그럼요. 학림의 명망 높은 학자예요. 다만 젊은 날 병이 들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서거하셨대요. 불쌍해라. 나처럼 예쁜 딸도 못 보고 가다니.”
“……선친에 대해선 모친에게 들었소?”
“당연하죠. 달리 누구에게 듣겠어요?”
“모친은 이곳에 있소?”
일순 도봉의 봉목에 기이한 경계심이 어렸다.
“그건 왜 묻죠?”
나는 반문했다.
“물어선 안 될 이유라도 있소?”
“그건 아니지만……. 혹시 내 어머니에 대해서 들은 게 있나요?”
나는 시치미를 뗐다.
“그다지. 다만 도봉의 미모가 모친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는 풍문을 접한 적은 있소. 혹자는 모친 쪽이 반 뼘이라도 우위라고…….”
도봉이 발끈했다.
“흥, 개소리! 얼토당토않은 헛소문이에요. 맨날 면사로 가리고 다니는데 누가 그 여자의 얼굴을 알겠어요? 괜히 자기들 멋대로 수군거리는 거지.”
그 여자?
나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모친하고 사이가 안 좋소?”
“좋고 나쁘고 할 것도 없어요. 안 본 지 오래됐으니까.”
나는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여기에 있소?”
“왜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는 거죠? 당신도 늙은 여자한테 관심이 있나요?”
어럽쇼? 설마 질투에서 비롯된 경계심이었단 말인가.
“관심이라기보다, 한번 보고 싶소만.”
“왜요?”
진실을 밝혀도 상관이 없겠다고 판단한 나는 솔직히 말했다.
“그녀를 처단하기 위해서요.”
충격이 작지 않았던지 도봉의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
“무슨 소리죠? 처단이라뇨? 그 여자가 당신에게 뭘 잘못했나요? 둘이 만난 적도 없을 텐데.”
“그녀는 내 친인들의 원수요.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그 여자를 잡아 원한을 갚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소.”
도봉이 눈을 빛냈다.
“사연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전에 그녀의 소재부터 알려주는 게 어떻소?”
“몰라요.”
“…….”
“정말이에요. 면사로 낯짝을 가리고 있음에도 그 여자 근처에 있는 인간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침을 흘리는 통에 사부가 어딘가로 몰래 빼돌렸어요. 벌써 십팔 년 전이네요. 어디 있는지는 물론이고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지 못해요. 그 여자의 소재와 생사를 아는 이는 사부뿐이에요.”
도봉은 은연중 자신의 나이대가 드러났음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십 년 가까이 모친의 행방을 모르는데 걱정되지도 않았소?”
“그야 사부에게 지나가는 말로 몇 번 물어보았죠. 하지만 안위를 염려해서 그런 건 아니에요. 내밀한 집안 사정이지만 당신에겐 말해주죠. 그 여자는 나를 낳기만 했을 뿐 철천지원수나 진배없어요. 세 번이나 내 얼굴을 망가뜨리려고 했다고요. 그때마다 정말 운 좋게 횡액을 면했어요.
그 여자가 나한테 왜 그런 짓을 하려고 했는지 알아요? 내가 자기보다 더 예쁘니까. 더 예뻐질 것 같으니까. 좀 전에 그 여자의 미모가 나보다 낫다고 떠드는 작자들이 있다고 했죠?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그랬다면 그 여자가 나한테 그랬을 리가 없잖아요. 안 그래요?”
“혹시 도제가 그녀를 빼돌린 이유가 도봉에게서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었소? 무공을 익히고 힘이 생긴 도봉이 그녀의 호위무사들을 박살 내고 그녀마저 짓이길까 봐서, 아니 실제로 그와 유사한 사건이 벌어져서…….”
내 추론을 마저 듣지 않고 도봉이 악을 썼다.
“그러면 안 돼요? 안 되냐고요?”
“…….”
내가 짐짓 싸늘한 표정을 짓자 뜨끔했던지 도봉이 학처럼 가늘고 긴 목을 움츠렸다.
“그 여자를 죽이려던 게 아니었어요. 그냥 받은 대로 갚아주려 했을 뿐이라고요.”
“어떻게 말이오?”
“그야 면상에 칼자국을 새기려 했죠. 딱 세 줄기만. 사부가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성공했을 거예요. 너무 아까워요.”
나는 문득 문상이 떠올랐다. 도봉의 모친과 쌍둥이였다니 그녀도 굉장한 미모의 소유자였을 터였다. 누구보다도 가까웠을 쌍둥이 자매를 그 꼴로 만들었다니 도봉의 모친은 실로 독살스러운 여자가 아닐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의 딸에게 같은 짓을 당했다면 도봉의 말마따나 자업자득이 아니었을까.
나는 도봉에게 진덕근의 변사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지 않았다. 도봉을 배려해서가 아니라 고인을 위해서였다. 그의 넋이 있어 저승에서 이 대화를 지켜본다면 얼마나 황망하고 비통하겠는가.
도봉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제 모친을 추적해 붙잡아서는 내게 바치겠다고 설레발쳤다. 그러면서 원한다면 도제가 돌아올 시 몰래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녀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나는 좋을 대로 하라고 싸늘하게 대꾸하고는 그녀를 떠났다.
천전 밖에서 기다리던 소살도와 간략하게 마원과 도산의 관계 설정에 대한 협의를 한 나는 용왕과 함께 마지막 행선지로 떠났다. 나는 거기서 내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실험을 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