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232
마탄의 사수 (1232)
그러나 눈을 감고 고민하는 연기까지 하는 이하를 보면서도 사스케의 얼굴은 흔들리지 않았다.
‘으음, 역시 이 정도의 단순한 도발은 먹히지 않나. 하지만 흔들어 놔야 해. 치요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더 건드려서 동요하게 만들어야―’
〈신성 연합〉의 두뇌들을 일깨울 수 있다.
치요와 한 번이라도 ‘수 싸움’을 했던 유저들은 그녀의 질문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어떤 의도로 저러한 말을 하는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 이 모든 것이 거대한 함정은 아닌가.
람화연과 라르크, 신나라가 치요를 바라보는 눈빛만 봐도 이하는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평소 거시적인 안목을 자랑하는 그들도 치요를 상대할 때는 언제나 최고의 집중을 하기 마련이었고, 최고의 집중이란 결국 좁은 안목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하가 본능적으로 선택한 방법은 최적이라고 봐도 좋은 것이었다.
치요의 질문에 집중하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을 하는 것.
무엇보다 치요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있다는 점까지도.
빨려들어갈 것 같은 그녀의 눈을 보는 순간, 웬만한 유저들은 자신이 어떤 대화를 해야하는지도 잊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어디 보자아……그런 식이라면― 음!?’
눈을 감은 채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하의 눈이 트였다.
이하는 사스케를 보며 웃었다. 치요가 어째서 여길 왔을까?
그것만 생각하면 아주 간단하게 도출되는 답이 있었다.
“아, 근데 마탄의 사수를 데리고 있으면서 나한테 그걸 묻는 걸 보니까…… 《마탄》으로는 마왕을 죽일 수 없나 보네?”
“뭐?”
마침내 사스케의 얼굴에 틈이 생겼다.
이하는 여세를 몰았다.
“아니, 그렇잖아. 마탄으로 마왕을 죽일 수 있었다면 당연히 이런 짓을 안 하겠지. 게다가 마탄의 사수 관련된 정보를 얻으려고 날 지목한 거 아냐? 허허, 이거야 원. 내가 마탄의 사수가 딱! 되어서 마왕한테 한 발 콱! 쏘려고 했는데…… 이거, 치요 선생님 덕분에 그럴 일이 없어졌습니다, 그래. 고맙구만, 고마워. 낄낄.”
이하의 과장된 웃음소리를 들으며, 마침내 〈신성 연합〉의 두뇌들이 깨어났다.
‘그래, 치요가 여기까지 왔다는 의미 자체가―.’
‘마탄이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야. 적어도 치요는 마탄의 사수의 입을 통해서든, 마왕의 입을 통해서든 해당 사항을 ‘확실하게’ 들었던 거야. 그래서 그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에게 접근을― 하지만 이상한데?’
‘분명― 분명 아흘로는…… 마를 제압할 수 있는 것은 마밖에 없다고 했는데! 마탄으로 마왕을 죽일 수 없다고?’
깨어난 것은 라르크, 람화연, 신나라뿐만이 아니었다.
마탄의 사수에 대해 알고 있는 키드와 루거도 새로운 관점을 떠올렸다.
‘우리가 생각하는 마탄이 아니라는 의미입니까.’
‘시발.’
지금까지 마탄의 사수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키워드라고 여기고 있었건만, 어째서 일이 이렇게 흘러가게 된 걸까.
다섯 사람은 동요했다. 그러나 사스케=치요는 그들의 동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오직 이하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동시에 다섯 사람은 생각했다.
하이하가 이런 생각을 못 했을 리 없다.
그런데 사스케의 눈앞에 있으면서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는다는 뜻인가.
부르르 떨던 사스케는 겨우 입을 열고자 했다.
“너―.”
“꺼져, 치요. 우린 너한테서 듣고 싶은 거 하나도 없어. 정보를 미끼로 살랑살랑 흔들어 대면 내가 물 줄 알았나?”
그러나 이하가 한발 빨랐다. 이하는 거리낌 없이 돌아섰다.
동요를 보이지 않았던 그 태도, 마탄이 통하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배짱을 보인 태도.
“하지만! 반드시 나에게서 듣고자 하는 게 있을 거다! 교황은 마왕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 그 마왕에 대해서 듣고 싶은 게 분명히 있을 거야! 그리고…….”
“없으니까 그냥 꺼지라고요. 뭐, 어차피 사스케는 우리가 처리―.”
그것이 치요의 마음을 급하게 만든 것만은 분명했다.
“기브리드가 간다.”
그녀가 스스로 정보를 하나 더 제시했다는 게 그 방증이었다.
“음?”
“뭣?”
이번엔 유저들도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바닥에 처박히듯 제압당한 사스케는 고개를 비틀어 겨우 이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마왕의 조각들은, 푸른 수염은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바라고 있어. 그래서― 기브리드가, 마나 중계탑을 처리하러, 갈 거다. 아니, 정확히는 오염시키기 위해서―.”
“그, 그걸 믿으라고?”
“크후후훗…… 겪어 봐. 그러면― 너도 반드시 날 찾게 될 테니까!”
“잠깐―.”
“꺽.”
사스케는 그대로 자신의 혀를 잘라 냈다.
미들 어스에서 자살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이하는 섬뜩하여 그를 되살리려 했으나, 이미 잿빛으로 변하기 시작한 이상 손 쓸 방도는 없었다.
팔라딘들이 사스케의 사체를 처리하러 움직이는 와중에도, 교황의 알현실에선 거의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곳에 모여 있던 유저들 모두가 치요의 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왕은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까.
마왕의 이름까지 알려진 이상, 에즈웬에서만 알 수 있는 정보는 또 무엇이 있을까.
마탄의 사수로 마왕을 죽일 수 없다면, 아흘로의 말을 처음부터 다시 해석해 봐야 하는 게 아닐까.
모두의 생각은 마왕에게로 꽂혀 있었다.
한 사람, 람화연을 제외하고.
“다들 정신없는 거 알지만, 마나 중계탑부터 지켜야 해요.”
멀리 있는 목표에 집중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눈앞의 일부터 처리해 나가지 않는다면, 먼 곳에는 결코 닿을 수 없다.
“아, 그렇지. 람화연 씨 말이 맞습니다. 마나 중계탑이 오염된다면― 아마도 마기로 오염시킨다는 표현 같습니다만―.”
“우리는 신대륙으로 텔레포트할 수 없게 되죠. 그…… 기나긴 항해로만 신대륙에 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마기라는 표현상, 마왕의 조각들은 신대륙에서 구대륙으로 텔레포트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의미처럼 보이고요.”
“킷킷, 어떤 해석이 되었든, 쉽게 말하자면― 신대륙은 당분간 끝장이라는 거겠죠.”
“성하.”
비예미의 뒤를 이어 에윈이 교황에게 무릎을 꿇었다.
교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브리드가 움직인다는 말을 거짓으로 하지는 않았을 터. 저는 이곳에서 여러분들이 목숨 걸고 입수한 정보의 해독에 힘을 쓸 테니……”
교황 또한 알현실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는 공손히 두 손을 모았다.
“부디 에리카 대륙의 생명을 지켜 주시길.”
분위기는 바뀌었다. 지금껏 공세 일변도를 펼쳤던 〈신성 연합〉은 이제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기브리드가 오는 걸 막을 수 있을까.
마왕의 조각을 상대할 수 있을까.
이하는 잠시 입술을 씹다 유저들에게 말했다.
“우선, 9명씩 4개 팀. 음, 그러니까 36명부터 추려야 해요. 그것도 우리가 역대 상대해 본 가장 강력한 몬스터를 상대할 만한 사람들로.”
“무슨 뜻입니까.”
“또 뭔 짓거리를 하려고 그러지?”
“권장 레벨 370짜리 인스턴스 던전을 클리어해야 하니까. 아참, 35명이면 되겠네. 한 자리는 프레아 씨의 몫이거든요.”
유저들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이하를 바라보았으나 이하는 그들에게 일일이 답하지 않았다.
기브리드가 온다.
그전에 준비를 마쳐야 한다. 오직 그 생각 하나뿐이었다.
* * *
이하는 초췌한 눈으로 미들 어스 접속기에서 빠져나왔다. 팔에 힘이 제대로 안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랜 접속 시간이었다.
“무식한 인간들…… 아주 뽕을 빼라, 뽕을 빼.”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몸을 지탱하며 일어서 기지개를 켜는 동안에도 이하는 투덜거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권장 레벨 370짜리 인스턴스 던젼은 몇 번이나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남은 기회는 고작 네 번뿐이며 한 번에 갈 수 있는 인원은 이하를 포함하여 10명밖에 되지 않는다.
36명의 엄선된 인원에게 초월적 존재에 대한 저항력을 부여한 후, 기브리드가 혹여 마왕과 함께 움직일 때를 대비하기 위한 작전을 짜고자 했던 게 이하의 생각이었다.
물론, 권장 레벨 370에 달하는 인스턴스 던젼 입장 기회를 받는 유저들이 그렇게 생각할 리 없었다.
“왜 바로바로 클리어해야 하지? 거기서 15일간 있을 수 있다면― 최대한 많은 사냥으로 레벨 업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킷킷, 100마리에게 노출 시 실패라지만― 바꿔 말하면 한 마리씩 풀링Pulling해서 걸리지 않도록 하면 될 것 같은데.”
“기둥의 파괴에 대해서는 충분한 아이템 정비만 있어도 될 겁니다. 화약이라면 시티 가즈아에 이미 많지 않습니까.”
“하, 하이하 님! 이번에는 저도 데려가 주시는 거죠!? 거기서 연구할 거리는― 15일로는 턱없이 부족할 거라고요!”
“나는. 괜찮아. 그러니. 아르젠마트.”
최대한 많은 것을 뽑아내야 한다.
말라 버린 오징어에서도 즙을 짜낼 정도로 미들 어스에 닳고 닳은 유저들이 15일이라는 기한을 대충 보낼 리가 없는 것이다.
“이지원, 너도 갈 건가. 지금도 입을 다물고 있군.”
“당근 감. 370이면 심연보다 낮음.”
“으, 음?”
하물며 이지원의 답변을 통해 유저들은 해당 인스턴스 던젼에서 충분한 팀 플레이로 버텨 낼 수 있다는 단서까지 들은 바 있다.
랭킹 2위 홀로 370레벨 이상의 몬스터를 처치했다.
이미 정평 난 ‘피지컬’과 ‘미들 어스 이해도’ 덕분에 가능한 것이겠지만, 그보다 조금 부족할지라도 10명이 힘을 합하면 충분히 그 이상의 위력은 낼 수 있다는 게 그들의 판단이었다.
“그렇다고 진짜 15일을 꽉 채우냐, 미치광이들 같으니…… 그것도 두 팀 연속으로―!”
이하는 울분을 터뜨렸다.
만약 미들 어스 접속기가 아무런 회복 효과도 없었다면, 말 그대로 현실의 6일 밤낮 동안 눈 한 번 제대로 못 붙인 셈이 되었으리라.
그러고도 이하에게 주어진 건 고작 하루의 휴식이었다.
24시간 후, 다시 한 번 ‘두 팀 연속’으로 인스턴스 던젼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배도 안 고프고…… 자자.’
침대에 덜컥 누워 버린 이하에게 생각나는 건 역시나 프레아였다.
다른 유저들도 고대의 괴물들, 크툴루에게 감염된 변이 생명체와 싸우며 각종 업적이나 스킬 등을 획득했다고 했으나, 프레아만 한 수혜자는 없었다.
‘하지만 진짜로 정령왕을 소환해 낼 줄이야. 하다못해 구석이라도 가서 할 줄 알았는데…….’
프레아와 함께 들어갔던 7명의 유저와 한 기의 드래곤조차도 놀랄 만한 일이었다.
그녀는 인스턴스 던젼에 접속하여 르뤼에의 첫 번째 기둥에 도착하자마자 정령왕을 불러냈던 것이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불러냈던 건 바람의 정령 여왕, 실피드였다.
‘심지어 생각을 해서 불러낸 거였어. 인스턴스 던젼은 일종의 ‘가상 공간’ 취급이다. 정령계의 열쇠는 정령들의 새로운 진화 가능성을 입증해야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녀는 바람의 정령 여왕을 불러낸 것이다.
이하에게조차 특별히 말하진 않았으나, 실피드와 프레아의 대화를 들으며 이하는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우주에서 다가온 생명체니까…… 일반적인 바람은 닿을 수 없지만 당신께서는 그곳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생략된 말이 무엇인가.
[다른 정령들은 닿지 못하더라도]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만약 그렇다면 다른 정령왕들도 불러낼 수는 있지만, 환경 때문에 바람의 정령 여왕을 불러냈다는 식의 해석이 가능하지. 도대체 어디까지 계약했을까.’
혹시 기본적인 4대 원소 정령은 모두 정령왕급의 계약을 마친 건 아닐까?
적어도 실피드와의 친밀도 또한 높아 보였으니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2개, 높게 잡으면 4개 원소 모두 ‘정복’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제는…….’
더 나아갈지도 모른다.
실피드는 프레아의 말을 인정했고 바람의 정령이 새롭게 나아갈 길을 모색하게 만들어 준 대가로 〈정령계의 열쇠〉를 그녀에게 주었으니까.
다른 유저들은 프레아가 받았을 감동과 기쁨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는 유추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하는 볼을 만지며 피식 웃었다.
‘그 와중에 볼에 뽀뽀를…… 화연이가 있었으면 난 죽었을지도.’
프레아가 〈정령계의 열쇠〉를 가방에 꼭꼭 넣자마자 이하에게 달려와 이하의 볼에 키스를 퍼부었기 때문이다.
헤벌쭉 웃던 이하는 황급히 표정을 바로 했다. 어쨌든 〈신성 연합〉은 적잖은 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초기 2팀에 포함되지 않은 유저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기브리드의 신대륙 서부 침공’에 대한 글을 쓰며 유저들의 참여를 독려했고, 에즈웬의 교황 또한 마왕이 깨어났으며 그것을 막기 위해 로페 대륙 각국의 총력을 더해야 한다는 선언까지 한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적들도 만만치 않겠지.’
치요가 찾아온 이래 미들 어스 시간으로 30일이 지난 셈이다.
기브리드가 움직이지 않고 있던 30일, 그 사이, 교황은 에얼쾨니히와 마왕의 조각에 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신성 연합〉에 기쁘기만 한 소식들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