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939
마탄의 사수 외전 (588)
―혜인 형님, 혜인 형님! 대답―.
“―좀 해 주세요! !”
오염체 한 기의 공격을 방패로 막아 내며 기정은 외쳤다.
“뭐라고요, 기정 씨?”
“아, 아뇨! 귓속말하다가, 그, 당황해서 입으로 튀어나왔는데―.”
“지금 장난칠 때가 아니잖아요! , !”
그것이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 오해한 보배는 재빨리 물었지만, 어차피 기정이 실수했을 거라는 것 정도는 ‘연인’으로서 당연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한마디 쏘아붙이는 것은 기정이 조금 더 예리하게 정신을 가다듬어야 하기 때문!
세 번 튕기는 화살은 튕길 때마다 폭발을 일으킨다.
────, ────, ────!
목표는 양쪽의 벽에 각 한 번씩 그리고 오염체 그 자신에게 한 번!
[으그어어어…….]오염체를 폭발로 밀어내는 동시에, 좁은 골목의 양측 벽을 무너뜨려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보배의 연계 스킬 사용은 매우 똘똘한 것이었다.
“가요!”
“네, 네!”
보배는 재빨리 기정의 손을 붙잡고 뒤로 달리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뛰는 와중에도 기정의 정신이 집중된 건 오직 한 방향이었다.
―혜인 형님! 이하 형이 기다린다고요! 대답하세요!
혜인은 어째서 답하지 않는가.
그가 로그아웃도 않고 줄곧 연구에만 몰두했다는 건 의 길드 마스터로서 당연히 파악하고 있던 사실 중 하나였다.
그의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또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그 어떤 재촉이나 질문도 하지 않았던 기정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난리가 난 와중에 이하와 자신의 귓속말에 그가 답변하지 않는 이유는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어떻게 됐는지 말해 주세요! 안 되었어도 좋아요!
혜인은 끝끝내 만들지 못한 것이다.
이하가 원한 경지까지 끝끝내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혜인의 섬세함은 기정 또한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가 부담감에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는 것 정도를 추측해 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부담감을 혼자 짊어지려 하지 마시고 저와 나누자고요! 다른 방법이 또 있을 수 있으니! 그걸 같이 찾아내야 하지 않겠어요?
즉, 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기댈 장소.
의 길드 마스터이자 모두의 앞에서 등을 보여 주는 자, 기정이었던 것이다.
―……케이.
―혜인 형님!
마침내 혜인에게 답변이 왔다.
기정이 거의 소리치듯 답한 이후에도 약 2~3분가량 혜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기정은 잠시나마 자신이 헛것을 들었나 싶었지만, 그럴 리 없었다.
혜인은 분명 자신을 불렀다. 울먹거리며 그리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그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 기정의 표정은 차츰 변했다.
“보배 씨, 혜인 형님이 연락을…… 받았어요.”
“……그리고 기정 씨의 얼굴로 보아하니, 역시나 그렇게 된 거고요?”
보배 또한 기정의 말은 반가웠지만 그 표정으로 눈치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2차 전직, 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혜인은 실패한 것이다.
보배의 얼굴도 곧 기정과 같이 되었다.
기정은 밭은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조심스럽게 혜인과 대화를 시도했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형님. 어차피 이하 형이……. 이하 형에게 말을 하면 어떻게든 될 테니까요. 지금까지 그래 왔잖아요? 혜인 형님이 지금까지 이룬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 으음, 저야 어차피 이해를 못 한다지만. 대~충 알려 주고 나면…… 또 이하 형만이 알고 있던 정보나 자료와 조합해서 어떻게 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당신은 쓸모없는 일을 한 게 아니다.
당신은 실패한 게 아니다.
다른 유저였다면 ‘당장 하이하와 연락하세요!’라며 다그치거나 소리를 질렀겠지만 기정은 달랐다.
―아니……. 아냐, 케이. 이건 그럴 수가 없는 거야.
―그럴 수 없다고요?
그의 목소리는 더없이 부드러웠다.
따라서 혜인의 폭발을 일으키는 셈이었다.
―그래…… 그럴 수 없어. 그럴 수 없다고! 로부터 그 을 빼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건 아무리 하이하 씨라도…… 아무리 하이하 씨라도! 운 좋게 만지작 거려서 뭘 끝낼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라고! 시간에 관한 규칙! 규율! 규범! 아무리 게임이라 할지라도 타임 패러독스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서부터! 조사하고 연구해야 할 것은 너무나도 많아! 아마 지금처럼―. 사실상 3일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고 달라붙은 것처럼 미들 어스 시간으로도 최소 6개월은 더 있어야? 아니, 6개월도 나를 너무 과대평가한 걸까? 그렇다면 1년? 적어도 1년 가까이는 모든 것을 찾아봐야 해. 어떤 경우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가설로부터 실증을 어떻게 이끌어 내어 최종적으로 안정화 된―. 하이하 씨가 원하는 것을 ‘안정화시켜서’ 제공할 수 있을지!
혜인의 목소리는 파도처럼 기정의 머릿속으로 몰아쳤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기정은 10%도 미처 못 알아들을 정도였다.
―하핫, 그러니 아무런……. 지금처럼 아무런 정해진 것도 없이 그저 막무가내로 될 게 아니라고! 가 아무리 특성을 흡수한다 한들! 이걸 흡수시켜서 뭘 어떻게 할 게 아니라고! 연구할 것은 너무나 많은데! 연구할 시간은 너무나 적고! 이미 [절망의 미래]는 시작되어 버린 와중에 괜히―. 괜히 나한테 하이하 씨가 신경을 쓰게 만드느니……. 그냥 내가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그 실패 책임을 짊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케이? 차라리 내가 잠수 타는 게! 하이하 씨가 나를 버리고 다른 방법을 찾도록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나를 버리게끔 만들려면 내가 하이하 씨와 연락을 끊어야 하는 게 낫지 않겠니, 케이?
목소리에서 이미 충분히 묻어 나오고 있었지만 그 내용 자체는 또 얼마나 자기 파괴적인가.
기정은 웃는지, 우는지조차 알 수 없는 기괴한 혜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귓속말을 통해 혜인에게 전달되는 건 아니었다.
“기정 씨! 연락됐어요? 혜인 오빠를 달래려는 건 알겠는데, 우선 빨리 하이하 씨한테 연락이라도 하라고 해요! 하이하 씨가 크툴루인지 나발인지, 저걸 얼른 죽여야―.”
“쉿, 보배 씨. 잠시만요.”
“―으, 응? 잠시만? 또 뭐 하려고요?”
보배는 정신없이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감염체들도 이제 캐슬 데일에 완전히 들어서기 시작하여 상대해야 하는 건 ‘검은 소용돌이’에 의해 변형된 오염체뿐만이 아니건만.
이상하게 침착한 기정의 모습을 보배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뇨. 오히려 그 반대죠.”
“반대라니?”
그럼에도 기정은 서두르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할 거예요. 지금은…… 들어 줄 때니까요.”
그는 알고 있었으니까.
“들어 줄 때……?”
“혜인 형님이 얼마나 많이 쌓여 있는지, 혼자서 얼마나 많은 걸 감당하려 했었던 건지…… 우리도 너무 혜인 형님에게 모든 걸 맡긴다는 식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들어 줘야죠.”
기정은 그 와중에도 을 통해 보배의 사각에서부터 접근하던 오염체 한 기를 벽면으로 밀어내었다.
그러곤 숨 하나 차지 않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혜인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천천히 말씀하세요, 혜인 형님. 다 들어 보겠습니다. 하나하나 전부요.
그 귓속말의 내용은 당연히 보배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기정이 보배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그가 혜인과 어떤 일을 하려는지, 보배는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코 주변으로 찡한 주름이 생기는 것 또한 그것을 알았다는 방증이리라.
―우리가 너무 혜인 형님께― 읍, 읍!?
―……케이?
그러다 갑작스레 숨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포, 포배 씨!? 보배 씨?!”
“……이러니까 안 좋아하려 해도 안 좋아할 수가 없다니까. ‘나머지’는 모든 일이 끝나고. 현실에서 해요.”
“나머지…… 나머지라뇨, 나머지가 뭔지―.”
“그,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나! 얼른! 그럼 기정 씨는 혜인 오빠랑 귓속말해서! 하이하 씨한테 최종적으로 연락되도록 만들어 봐요!”
보배는 괜스레 민망해져 활시위를 당기며 다른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기정은 보배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퍼뜩 정신을 차리곤 혜인에게 다시 귓속말을 보냈다.
―흡,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너무 혜인 형님께만 부담을 드린 것 같으니까요. 말씀해 보세요. 잘 알아듣지는 못해도 한 번 털어 내고 나면 시원해지잖아요? 자, 말씀해 보세요. 힘들었던 거, 답답했던 거, 짜증 났던 거, 모두!
조금 전 ‘숨 막힘’이 갑작스레 보배가 자신에게 키스를 해 와서, 라는 것은 결코 밝힐 수 없는, 가슴 따뜻한 길드 마스터의 배려이기도 할 것이다.
기정이 이하 자신에게 ‘마지막 카드’를 쥐어 줄 수 있는 역할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무렵, 블라우그룬을 타고 ‘검은 소용돌이’를 인적이 드문 곳으로 유인하던 이하는 당황해야 했다.
삐이이이이────────ㅅ!
갑작스레 들려오는 날카롭고 높은 새의 울음소리.
“어, 어? 비예미 씨! 그리고 징겅겅 씨!?”
그 방향에 있던 자들을 알고 있었으니까.
* * *
“뭐 해요!? 비켜요! ‘흡입 기능’도 있어서 자칫 빨려들어 갈 텐데! 비예미 씨!”
이하는 그들을 향해 소리 지르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크툴루의 촉수들은 이하를 집요하게 노려 왔고, 그 공격을 막아 내기 위해 ‘회피’를 하려 하면 ‘검은 소용돌이’ 방향으로 블라우그룬의 머리가 돌아야 했기 때문.
즉, 크툴루는 어떻게든 이하를 감염체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도중이었고 이하는 그것을 피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내려오는 촉수를 모조리 끊어 버릴 기세로 탄환을 쏘아 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갑작스레 검은 소용돌이의 근처로 비예미를 태운 거대한 새가 알짱거리기 시작했으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마 말릴 수 없을 거예요, 하이하 씨라도.
―징겅겅 씨? 아니, 뭘 하려는데요?
―비예미 씨가…… 저 ‘소용돌이’를 막아 보려 하고 있어요. 아직 약품이 남았거든요.
―약? 아! 그래, 람화정 씨한테 들었는데. 뭐 치료도 하고 감염도 하고 그런다면서―. 할 수 있는 거예요? 지금 그 약을 뭐, 어떻게―. 집어 던지려고 거기로 가는 거예요? 몇 병이나 있길래?
그리고 마침내 이하도 그들의 계획을 알 수 있었다.
‘검은 소용돌이’만 없애 주어도 충분하다.
크툴루의 촉수는 여전히 공격을 해 올지 모르지만, 적어도 ‘오염체’를 상대하는 캐슬 데일의 랭커와 기타 유저들 그리고 팔레오들은 모조리 ‘감염체’들을 향해 그 검을 겨눌 수 있지 않은가.
여전히 힘겨운 싸움이 되겠지만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거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으므로 이하는 빠르게 물었다.
―한 병…… 남았다고 했어요.
―한―. 한 병? 그거 한 병이면 막 효과가 어마어마한 거예요? 희석해서 어떻게…… 물이라도 타 가지고 소용돌이에 던지면 효과가 난다거나―.
―아뇨, 그럴 리가. 한 사람분의 ‘씨앗’을……. 그것도 조금 느린 속도로 치유시키는 정도밖에 안 되죠. 강력한 ‘씨앗’의 경우 치유까지도 불가능하고 그저 감염 속도를 좀 느리게 만드는 정도니까요.
―엥? 근데 왜? 그, 그럼 뭐 하러 거길 가고 있는 건데요?
이하는 다시 한 번 구름을 찢고 내려오는 촉수를 향해 을 쏘았다.
데미지만큼은 흠잡을 데 없는데다 쿨타임이 없어 사실상 ‘데미지 누적’을 위한 최강의 스킬이지만 소모되는 마나도 결코 만만치 않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사용할 수 있을지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힘겹건만.
‘검은 소용돌이’ 주변부를 비행하는 비예미와 징겅겅조차 자신에게 신경을 쓰이게끔 만든단 말인가.
참다못한 이하는 징겅겅과 대화를 끊고 곧장 비예미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비예미 씨! 뭐 해요? 징겅겅 씨한테 들어 보니까 꼴랑 한 병 남았다면서! 당신 잘난 거 알았으니까, 우선 뒤로 빠져요. 빠져서―.
―킷킷킷킷! 꼴랑 한 병 남았으니 온 건데. 하이하이 씨도 가끔 보면 참~ 맹하다니까.
―예?
―한 병을 가지고 하이하이 씨 앞에 나타났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당신이 갖고 있는 스킬 중 어떤 게, 어떤 효과를 내는지. 얼른 생각해 봐요.
―갑자기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그러나 돌아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말뿐이었다.
‘내가 어떤 스킬을 가지고 있고…… 그 스킬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 생각해 봐라? 이제 와서 무슨 문제를 내려는 건가? 헛소……리…….’
짜증을 내려던 이하의 머릿속에 번쩍, 무언가가 떠올랐다.
어떤 스킬을 가지고 있는가.
그 스킬이 어떤 효과를 내는가.
지금 비예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슨 뜻인가.
―비예미 씨, 설마―.
―쉿. 키킷, 떠올렸으면. 그것이 최선의 방법임을 인지했다면. 쏴요.
―자, 잠깐만요! 아니, 얼추 무슨 얘기 하는지는 알 것 같은데! 지금까지 그런 방식으로는―.
―하이하 씨.
이하는 말을 멈춰야 했다.
리자디아 특유의 킥킥거리는 소리도 없다.
하물며 거의 처음 만났을 시절부터 단 한 번도 이하 자신을 제대로 된 닉네임으로 부른 적이 없는 유저가 바로 비예미 아닌가.
그는 더 이상 자신을 ‘하이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당신이 미들 어스를 플레이 함에 있어서…… ‘남들이 지금까지 했던 방식’ 같은 걸 참조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당신이 한 번이라도 해 봤던 패턴’으로만 해 왔습니까?
누구도 도전하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게 당신의 스타일이 아니었느냐.
‘하이하’라고 부른 비예미의 말은 정론이었다.
지금까지 미들 어스를 해 왔던 이하의 플레이 스타일을 정확하게 찌르고 들어가는, 여전히 날카롭게 비판하는 그 목소리가 이하의 머릿속에 들렸을 때.
이하도 각오를 다져야 했다.
비예미에게 답변도 않은 채, 이하는 철컥, 노리쇠를 잡아당겼다.
그러곤 비예미를 바라보았다.
비예미는 ‘검은 소용돌이’를 등진 채, 징겅겅의 위에 탄 상태에서 이하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고마워요, 비예미 씨.
―키킷, 고맙기는. 캔들 캐슬에서부터 함께한 사이끼리.
자신이 만든 마지막 시약 한 병을 손에 쥐고, 그것을 우뚝 들어 올린 채로.
“후우우우우…….”
[하이하 님, 촉수가 옵니다! 대응하실 게 아니라면 제가 회피를―.]“하아아아아…….”
이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를 겨눴다.
블라우그룬의 말에도 답하지 않고 곧 회피 기동을 실시하려는 그 흔들림에도 반응하지 않고.
그저 스킬을 사용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
투콰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