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400
마탄의 사수 (400)
‘그다음 문제는 미들 어스에 집중해야 할 기간의 증가인가…….’
현재 운영하는 로그아웃 로테이션은 효율적이고 또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건 60일의 항행을 기준으로 할 때일 뿐이지 않던가.
현실 시간을 12일가량 걸린다는 가정 하에 참가한 유저 모두 스케쥴 정리를 하고 미들 어스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100일이 넘어가고, 120일이 넘어가고, 아예 그 끝조차 알 수 없게 된다면? 현실 시간으로 20일, 30일 이상 늘어나게 된다면?
‘집중력은 흐트러질 수밖에 없어. 집중력뿐 아니라 현실의 다른 스케쥴 때문에 접속 자체를 못하게 될 유저도 생기겠지. 그렇게 한 명, 두 명 로테이션에 구멍이 나면 그걸 메워야 하는 유저들의 피로는 누적되고 결과적으로 전체 유저들이 흔들리게 된다.’
커다란 댐에 하나만 구멍이 나도 균열은 순식간에 전체로 번지게 되는 것이니까.
‘차라리 끝이 확정이라도 되었으면 나으련만……. 신대륙까지 150일 걸린다! 하면 아예 계획이라도 새로 짤 텐데.’
인간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불안감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미들 어스는 유저들의 공포와 불안을 적절히 이용해 가며 게임의 난이도를 올려 버린 셈이다.
“아으으으! 젠장! 갑자기 또 무슨―”
“뭘 또 그렇게 혼자 고민하고 그러세요?”
“―아, 나라 씨.”
이하가 현재 있는 곳은 청새치 호. 퓌비엘 감찰관 직책으로 원정대에 참가한 신나라가 있는 선박이었다.
* * *
“일정 때문에 그래요?”
“네. 페르낭 씨도 이만저만 패닉에 빠진 게 아니라…… 누구 한 명이라도 움직여야죠.”
“꼭 이럴 때 앞장서서 나서더라. 다른 누군가가 할지도 모르잖아요.”
신나라가 입을 비죽이며 이하에게 핀잔을 주었다.
왜 굳이 나서서 짐을 지냐, 라고 묻는 말투.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결코 그런 게 아니었다.
이하는 신나라의 얼굴을 마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런 성격이 아니라는 거 잘 아시잖아요.”
“헷, 맞아요. 그래서 이하 씨가―…… 이하 크흠, 콜록, 콜록.”
저 천진난만한 미소. 하마터면 뒷말까지 튀어나올 뻔한 신나라가 가까스로 말을 삼켰다.
“제가? 뭐가요?”
“아니, 아뇨. 아무것도 아녜요. 다 좋은데 눈치가 코치라니까.”
“응?”
“그, 그래서! 어떻게 하실지 생각은 하셨어요?”
조그맣게 중얼거린 신나라는 허겁지겁 말을 돌렸다.
이하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다 신나라의 물음에 다시 표정이 진지해졌다.
문제가 무엇인지 인식은 했다. 그러나 해결방법은?
‘지금은 없어.’
단언할 수 있을 정도였다.
현재 상황에 이 난관을 타개할 방법 따위는 ‘없다’라는 결론. 따라서 이하는 오히려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계속 나아가야죠.”
“계속 간다고요?”
“네. 한 걸음씩. 천천히. 말하자면 우리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평행대 위를 걷는 셈이거든요. 이 평행대가 얼마나 더 이어질지도 모르고, 자칫 잘못하면 평행대 밑으로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이 상황에서 최선은 결국 천천히, 나아가는 것뿐이에요.”
이하의 목소리는 결연했다.
신나라는 동그란 토끼눈이 되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맞아요. 잘 아시네요.”
“엥? 잘 안다고요?”
“이하 씨 펜싱 경기는 보셨죠?”
“무, 물론이죠! 룰도 외웠어요.”
“외워요?”
“아, 아니, 룰도 알아요!”
신나라와의 관계가 진척되며 가까스로 외운 걸 티낼 뻔한 이하. 신나라는 이미 이하가 숨기려한 것을 알아차렸는지 풋, 하며 가볍게 웃었다.
“펜싱만큼 좁은 경기장에서 하는 스포츠도 없을 거예요. 극도로 제한된 폭에서 서로 칼을 겨눠야만 하는 경기…… 상대의 실력은 언제나 확대되어 보이고 나는 언제나 불안하죠. 메달을 따도 마찬가지더라고요.”
“그래요? 안 그래 보이시던데.”
“제 경기 찾아보셨어요?”
“그, 그냥― 뭐…….”
그 경기들을 인터넷에서 보기 위해 룰도 외웠는걸요, 라는 말을 하는 게 좋았을까. 그러나 괜스레 부끄러운 이하는 그냥 얼버무리며 말을 말았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신나라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후훗, 하여튼 하도 불안해하니까 코치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고. 그게 뭔지 아세요?”
“으음…… 휘둘러라?”
“아! 거의 비슷했는데. 땡!”
“거의 비슷했으면 딩동댕 아니에요?”
“저격수가 목표물 못 맞추면 땡이죠? 근처에 맞았다고 적중은 아니잖아요?”
“윽…… 팩트 폭격을…….”
이하가 가슴을 쥐며 연기하자 신나라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 들뜬 분위기가 다소간 차분해졌을 때, 신나라는 다시 입을 열었다.
“‘불안할 때 뛰는 건 호구고, 멈추는 건 멍청이고, 돌아가는 건 겁쟁이다’ 이렇게 배워요.”
“뛴다……?”
“네. 불안하다고 무작정 상대에게 달려드는 것은 호구나 하는 짓이죠. 그 때만큼 맞추기 쉬운 때가 없거든요.”
“멈추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가요?”
“네. 멈춰 있으면 빈틈이 많이 보일 수밖에 없어요. 돌아가는 건? 말 할 가치도 없고요.”
“흐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하는 신나라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이하를 격려하고 힘을 주고자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천천히 내딛는 수밖에 없어요. 그 느긋함이 여유로 포장되어 오히려 상대를 짓누르고, 상대방이 되려 뛰쳐나오게 만드니까. 이하 씨는 호구, 멍청이, 겁쟁이 아니죠?”
직접적으로 힘내라, 기운 내라! 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겪었던 상황에 빗대어 말해 주는 것.
말솜씨가 아주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그 의도가 뻔히 드러나는 대화였지만 그녀의 진심과 따뜻함만은 이하에게도 잘 와닿았다.
“역시 나라 씨네요.”
“뭐가요?”
“올림픽 메달리스트다운 말이라고요.”
“그, 그게 무슨 소리에요? 욕인가? 기껏 힘내라고 얘기해 줬더니!”
“낄낄, 힘 됐습니다! 그냥 고마워서 하는 말이죠.”
서슴없이 장난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
이하는 신나라와의 대화로 다시 한 번 자신의 선택을 확신하며 유저들을 설득할 힘을 얻게 되었다.
* * *
의견이 분분했던 신대륙 항행에 대한 건은 결국 현 상태 유지라는 임시 결론 하에 움직이게 되었다.
페르낭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무너진 지금, 이하의 적극적인 설득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도 있었지만 다른 유저들의 불안을 잠재운 것은 알렉산더의 한 마디였다.
[간다.]랭킹 1위, 절대 지존의 패기 넘치는 한 마디에 담긴 많은 뜻.
이지원을 비롯한 다른 랭커들 또한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기에, 불안감은 다시금 자신감으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이다.
분위기 반전 이후 다시 맞이하는 아침은 정확하게 크라벤 해안에서 출발한 지 30일이 되는 날, 쨍한 아침 햇살에서 ‘그것’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뉴-서펜트 호의 보배였다.
“어머, 저게 뭐지? 새?”
“새요?”
“저, 저거! 저거 새 아니에요? 하늘에 움직이는 거!”
보배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기정도 손으로 차양을 만들며 노려보았다.
푸른 하늘에 있는 검은 점 하나는 느린 속도였지만 확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 대박! 진짜네?!”
“새가 있다는 건 근처에 육지가― 아니, 신대륙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섬이라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갈매기 같은 거는 육지 근처에서만 날아다니잖아요!”
“그런 섬에 들르면 식량도 보급할 수 있겠죠?”
“응, 응! 마나 중계탑에 대한 것도 다시 한 번 검토할 수 있을 거고! 여명의 바다 중간뿐 아니라 또 다른 중계 지점이 있으면 더 안전하지 않겠어요?”
원정대의 항해 계속 결정에 알렉산더의 자신만만한 태도만 영향을 미쳤던 것은 아니다.
이하의 논리 정연하고 합리적인 설득은 물론, 공간 마법사 중 최고봉인 혜인이 내놓았던 또 다른 가설 또한 유저들의 마음을 안심시켰음엔 틀림이 없었다.
‘여명의 바다 중간이 아니더라도, 마나 중계탑을 하나 더 세울 다른 섬이라도 발견한다면 목숨을 건질 기회는 한 번 더 생긴다.’
여차하면 모두 그곳으로 텔레포트를 하면 되니까.
배를 버리고 도망쳐야 할 정도가 된다면, 퀘스트는 어차피 실패 직전의 상황이라는 뜻.
그 엄청난 퀘스트 실패 페널티를 피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사망 페널티만큼은 피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혜인의 가설이 주는 힘이었다.
“키킷, 이쪽으로 날아오는 것 같은데…… 엄청 느린가 보네요.”
기정과 보배가 호들갑을 떨자 근처에 있던 비예미와 징겅겅도 그들에게 다가가 함께 고개를 올렸다.
“느리다고요?”
“벌써 대충 모양이 보여야 하지 않았겠어요? 갈매기가 됐든 뭐가 됐든. 키킷, 근데 아직도 형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니, 얼마나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건지―”
웃으며 얘기하던 비예미의 표정이 점차 굳기 시작했다.
그 굳은 얼굴이 차차 돌아간 곳에 있는 사람은 징겅겅. 자이언트 드루이드의 표정도 다소 굳어 있었다.
“왜들 그래요?”
“하― 하이하이 님! 하이하이 님 불러와요! 빨리―”
비예미가 난리를 쳤다.
여전히 보배와 기정은 고개만 갸웃거렸을 뿐이었지만, 비예미와 징겅겅은 즉각 알 수 있었다.
비행체의 속도가 느리다고? 새가? 그럴 리 없다! 그러나 아직도 느릿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은?
‘엄청난― 엄청난 상공에서부터 내려오고 있다는 뜻!’
즉, 거리가 멀다는 의미가 된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그러나 그렇게 거리가 멂에도 녀석은 엄지손톱 정도의 크기였다.
엄지손톱으로 가릴 수 있을 정도로 작다는 게 아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속도가 느리게 느껴질 정도로 높은 곳에 있는 녀석이― 엄지손톱 크기로 보일 정도라는 의미?!’
그렇다면 배의 머리 위에 있을 때는 대체 크기가 얼마나 된다는 것인가! 비예미와 징겅겅은 그 점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비― 비사아아앙―! 비사아아아앙―! 공중에서 거대 괴생물체 출현! 본 선박들을 향해 급격 강하 중! 전부 일어나세요! 〈폴리모프: 베어〉.”
쉬이이익, 가뜩이나 거대한 자이언트가 곰으로 변하니 더욱 커졌다. 징겅겅이 곰으로의 변신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꾸워어어어어어―――――――!
말하자면 그것은 비상벨이나 다름없었다. 뉴―서펜트 호와 청새치 호의 유저들이 순식간에 갑판으로 뛰쳐나왔다.
* * *
“우히히힛! 재미있군! 이놈의 바다는 매일 매일이 서프라이즈인가? 아주 즐거워!”
“그런 소리 할 때가 아니라고요, 삐뜨르 님! 내 ‘매’가 겁을 먹고 비행을 거부할 정도라니까!”
청새치 호 갑판의 삐뜨르가 낄낄대자 옆에 있던 ‘헌터’ 유저가 투덜거렸다.
미니스의 토너먼트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며 원정대에 참가, 징겅겅의 폴리모프와 그의 매는 지금껏 정찰조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었다.
그렇게 용기 충천한 그의 매가 지금, 그의 팔뚝 위에 앉아 부르르 떨고 있는 것이다.
다른 유저들이 몬스터의 크기와 속도에 대해 예측하고 있을 때, 그 방비에 관해 논의할 때도 별다른 긴장이 없는 유저들도 몇몇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삐뜨르와 함께 청새치 호에 타고 있는 치요.
“흐응, 과연…… 저런 몬스터인가. 저런 거 몇 개만 길들일 수 있으면 우리도 편할 텐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용용?”
그녀는 살랑, 살랑 허리를 흔들며 걸어가 ‘테이머’ 유저의 팔뚝을 끌어안았다.
“그, 저기― 치, 치요 님의 뜻은 알겠지만 테이머가 길들이려면 우선 몬스터와의 친밀도가 우선이라서요……. 저, 저 녀석을 제가 길들일 수 있을지―”
“아잉, 그런 미지근한 대답 말고. 길들일 수 있죠? 하나만 길들여서 나 선물해 주면 좋겠는데에. 나중에 우리 가게로 오면 잘 해 줄게요.”
그녀의 애교는 마치 잘 익은 복숭아와 같았다.
그녀의 곁에 있기만 해도 퍼지는 달콤한 향은 물론, 전투 복장이 즐비한 미들 어스에서 보이는 한줄기 꽃과 같은 움직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