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430
마탄의 사수 (430)
까가각― 까각―!
쉴드 로브스터들과 어인들은 점점 거리를 좁혀 왔다.
크라켄과는 거리가 제법 있지만 아무리 빨리 도망친다 한들 기다란 녀석의 다리까지 피할 순 없으리라.
사실상의 완전 포위 상황에서 시브림은 죽음을 각오했다.
“하키킷! 마지막 인어! 마지막 인어의 죽음으로 모든 인어를 굴복시킨다!”
하키이이────── 하큐우우─────!
“오라, 불순물들이여! 네 녀석들을―…… 음?”
어인들이 일치단결하며 포효하고 그들을 향해 시브림이 곧장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시브림의 이마에서 이상한 파동이 감지되었다.
“하큣, 전원, 하킷, 돌격―!”
까각, 까가각―!
쉴드 로브스터의 집게 소리와 함께 어인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대군의 돌격을 보면서도 시브림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설마……?!”
인어는 어인보다 탐지 범위가 길다. 시브림을 놀라게 만든 ‘파동’이 어인들에게 닿는 것은 그즈음이었다.
“하키킷, 핰― 핫?”
“큐, 큐큐아? 이, 이건―”
반대로 생각하면 서로 다른 탐지 범위임에도 불구하고 큰 시간차 없이 그들이 탐지했다는 것은?
“빠, 빠른 하킷이― 빠르게 하큣―”
“조, 조종― 조종술사들을 하킷! 빨리! 조종술사들을 하큐웃!”
파동이 엄청나게 빠르다는 뜻!
어인들은 시브림의 예상대로 당황했다.
다가오는 파동이 무엇인가! 그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모습을 보며 해신근위대장은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었다. 저 너머로 다가오는 검은 점과 하얀 점이 점점 확대되고 있었다.
“스발트, 흐빗.”
블랙 서펜트와 화이트 서펜트 사이에서 유려하게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는 새파란 인물, 드레이크의 눈이 번쩍였다.
“전부 정리해.”
싯― 샤아아아──────!
바다뱀 두 마리를 발견하자마자 크라켄은 이미 도망가고 있었다.
서펜트들은 어차피 커다란 오징어 따위에겐 관심도 없었다는 듯, 어인들을 하나, 하나 집어삼키고 물어뜯고, 후려치기 시작했다.
“……도련니이이이임!”
“돌아온 것은 아니니 흥분하지 마, 시브림. 정리부터 하지.”
“알겠,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돌아왔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드레이크의 말뜻을 시브림은 알아들었을까, 적어도 지금 해신근위대장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드레이크는 감격 어린 시브림을 무시하며, 손끝으로 물줄기를 쏘아 어인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던 어인들이었으나 드레이크와 스발트, 흐빗의 파상공세를 막아 낼 순 없었다.
크라켄이나 쉴드 로브스터 등을 길들이고 유도했던 어인 조종술사까지 온다 한들 별다른 수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 하킷― 서펜트가 말을 듣지 않는 하큣―”
“웃기지도 않군. 감히 너희 따위가 서펜트를 탐하다니!”
“그렇습니다, 도련님!”
해신의 아들임을 증명한 드레이크 보다 더 강한 해신의 권능을 보이지 않는 한 서펜트들을 조종할 수는 없다.
물론 그 존재는 유일하게 해신뿐!
신이 난 시브림도 도망가는 어인들을 거침없이 해체하고 갈라냈다. 그리 오랜 시간도 지나지 않았건만 어느새 드레이크와 시브림의 근처로 물고기 떼가 모여들었다.
해양 생태계를 살찌울 훌륭한 먹이들, 어인들의 사체가 해저를 가득 메울 듯 퍼져 있었다.
* * *
시브림은 도망가는 어인 하나를 가볍게 베어 넘기곤 미소 지었다.
작정하고 덤비는 게 아니라면, 이렇게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 어인들이라면, 시브림은 백 마리도 상대할 수 있으리라.
“후우, 도련님! 이제 대강 정리는 끝― 어, 어디 가십니까, 도련님?”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드레이크에게 보고를 올리던 시브림이었으나 정작 드레이크는 그런 것엔 관심이 없었다.
그는 블랙 서펜트와 화이트 서펜트를 거느리고 이동 중이었다.
“어디 가십니까?”
“어인들이 탄생하게 된 이유는 정화조 때문이라고 했지.”
“네, 네, 아! 지금 그곳에 하이하 공이 있습니다.”
“음.”
드레이크가 관심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시브림의 표정이 밝아졌다.
선박 위에서 울며불며 사정했어도 돌아오지 않겠다던 그가 돌아와, 이렇게 묻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제…… 용궁으로 돌아오시는 겁니까. 다시, 다시 그때의― 해신님의 아들로 그 의무를 다 하시려는 뜻을 세우신 겁니까.”
시브림이 조심스레 물었으나 드레이크는 답하지 않았다.
서펜트들과 함께 주변을 경계하며 정화조 입구로 향하는 속도를 조금 더 올렸을 뿐이다.
“도련님……?”
시브림이 다시 한 번 드레이크를 불렀으나 그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단순히 드레이크의 성격이 과묵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드레이크와 시브림 모두 NPC이며, 현재 주변엔 그 어떤 유저도 없기 때문이었다.
미들 어스는 유저들을 철저히 괴롭히는 게임이다.
그러나 언제나 한 가지 원칙만은 지키고 있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일지라도 빠져나갈 힌트는 준다는 것.
NPC들은 유저들이 없어도 일상적인 상호 교류 등의 대화는 주고받지만 ‘힌트’에 관한한 유저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을 시, 대화하지 않는다.
유저들을 철저하게 괴롭힌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유저들을 빈틈없이 관찰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분명히 그러실 거라 믿습니다. 용궁을 구하기 위해, 해신님의 후계자로서 바다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오셨다는 걸 저는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브림이 이런 이야기를 하며 드레이크의 감정을 건드리려 해도 드레이크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이다.
수다스러워진 해신근위대장과 더욱 과묵해진 해신의 아들은, 묘하고 또 무안한 상황을 연출하며 정화조 입구에 다다랐다.
“하이하가 들어간 건 언제쯤이지.”
“이제 한…… 1시간이 약간 못 됐을 겁니다.”
“안데르송과 함께 갔다면 정화조에 거의 도착했을 시간이다.”
드레이크의 표정이 약간 굳었다. 시브림도 덩달아 진지해졌다.
“그렇습니까? 정화조는 저 또한 실제로 가 본 적이 없어 그 깊이를 알 수 없었습니다만―”
“아버지는 어디 계신지 알고 있나?”
“……죄송합니다, 도련님. 해신님이 어디 계신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어인 몇 놈에게 정보를 캐내려 했지만 녀석들도…….”
드레이크보다 덩치가 큰 시브림.
이하나 안데르송과 함께 있을 때는 근엄한 그였지만 드레이크 앞에선 꼼짝도 못했다.
“……적어도 해신근위대장의 교체는 꼭 건의해야겠군.”
드레이크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시브림이 어떤 노력을 얼마나 했을지 모르는 드레이크가 아니다. 이미 설정된 그들의 기억은 촘촘했기에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셈이었다.
“네, 네?! 도련님?”
“직접 확인토록 하지. 아버지는 아마도 이곳에―”
……!
“―음?”
시샤아아앗───!
서펜트들이 몸을 꿈틀대며 조금 물러섰다. 정화조의 새카만 어둠 저 멀리서 붉은빛이 반짝인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도련님, 방금―”
“나도 봤다. 붉은빛이라니. 아버지가 사용하는 기술 중에 그런 것은 없을― 웃!?”
──────────────────!
이번엔 드레이크조차 움찔 했다.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백색의 빛, 그 엄청난 광량은 인어의 속도로 한 시간 이상 헤엄쳐 내려가야 하는 정화조의 짙은 어둠을 전부 걷어 내며 올라올 정도였다.
“무, 무슨 빛이 이렇게…….”
“이런, 설마 아버지가 하이하를― 아니면…… 하이하가 아버지를?!”
드레이크에게 있어 전자는 안타깝고 후자라면 말도 안 되는 상황. 뭐가 됐든 좋을 리가 없었다.
“가자, 시브림!”
“알겠습니다, 도련님!”
드레이크와 시브림은 정화조의 입구에서 빠르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블랙 서펜트와 화이트 서펜트 또한 그들의 뒤를 따랐다.
“〈워터드롭 라이트〉.”
화아───!
정화조의 깊은 어둠도 드레이크들을 저지할 수 없었다. 드레이크가 만들어 낸 커다란 물방울은 마치 전등처럼 빛을 내었다.
“이렇게 크고 깊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겠지. 아버지는 이곳의 출입을 금하셨으니까.”
“그건 지금도 그렇습니다.”
“정화조 오염에 대한 다른 정보는 있나?”
“없습니다. 어느 날부터 어인이 발생했다는 것 외에는……. 해신님께선 무언가 아시는 것 같았지만…….”
이미 밝혀졌던 정보들에 대한 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계속해서 헤엄쳐 내려가는 인어들. 빛이 있고, 해신의 아들이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NPC다.
즉, 정화조의 깊은 구멍을 내려감에 별다른 시간 지체가 없다는 뜻이었지만, 그럼에도 안데르송이 이하를 끌어안고 하강했던 속도와 엇비슷했다.
시브림이 감탄했던 대로 안데르송의 속도 하나만큼은 인어 중에서도 수준급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어둠 너머의 미약한 빛을 발견하기 위해선 약 1시간여가 필요했다.
그것은 분명 해신의 크라운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아버지!”
“해, 해신님! 오오, 왕이시여!”
무중력 상태에서 부유하듯, 수중에 엎어진 자세의 해신에게 드레이크와 시브림이 빠르게 다가갔다.
“촉수…… 게다가 이 체구라니.”
해신의 변한 모습은 아들인 드레이크조차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다.
시브림 또한 덜덜 떨며 해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어인화가 되었든 어쨌든 해신의 죽음만큼은 시브림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왕이시여, 나의 왕이시여, 괜찮으시나이까. 오오, 오오오!”
“호들갑 떨지 말게, 시브림. 아버지의 목숨은 괜찮으니.”
“어찌 그리 태연하실 수 있습니까, 도련― 우와아아앗!”
파아아아아────────────!
해신의 몸에서 갑작스레 빛이 뿜어져 나왔다.
시브림이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서고, 드레이크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반격을 준비했으나, 그들이 걱정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아니, 그것은 오히려 그들이 알게 모르게 기대하던 상황이었다.
“……이럴 수가.”
“촉수가…… 사라졌다.”
해신의 허리춤에 치마 자락처럼 둘러졌던 촉수는 모두 사라졌다.
말도 안 되게 비대해진 체구 또한 원상복구 되었다. 그래도 시브림보다 큰 것은 여전했지만.
“설마 하이하 공이―”
“하하하하! 역시…… 이 정돈 해 줘야지.”
그의 왕관의 빛이 점차 밝아지기 시작한 것까지 본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드레이크는 아직 전부 밝혀지지 않은 발아래의 어둠을 보며 웃었다.
* * *
‘정화조라더니 이건 무슨……. 심장 같잖아.’
마침내 해저까지 도달한 이하의 첫 감상이었다.
자체적으로 옅은 붉은빛을 내고 있는 그것은 일정한 리듬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두근, 두근!
인간의 심장처럼 제법 빠른 박동이었다.
‘질감도 그래. 뭔가 딱딱한 보석이나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했더니만, 으으. 징그럽다.’
블라우그룬과 안데르송은 조금 떨어진 곳에 띄워(?) 놓은 후, 이하는 정화조의 주변을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크기는 커다란 바위에 가까웠지만 말미잘의 머리 부분처럼 반투명한 질감으로 붉은빛까지 내는 정화조는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아, 아!? 저거―’
꿈틀대는 정화조를 반 바퀴 넘게 돌던 시점에 이하의 눈에 묘한 것이 들어왔다.
정화조의 미끈거릴 것 같은 외피에 박혀 있는 것!
그것이 이번 퀘스트의 제거 목적물인 ‘오염물질’이라는 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모자…… 잖아…….’
검은 중절모의 형태, 라고 생각한 것은 정말로 검은 중절모였다.
바다에서도 가장 깊은 이곳에, 심지어 인어들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정화조에 뜬금없이 검은 모자?
정말 여기까지 온 건가?
이하는 보자마자 그 모자의 주인을 떠올릴 수 있었다.
‘푸른 수염……. 예전에 루거가 보여 줬던 그런 건가?’
상징이자 상징이 아닌 것.
모자라면 언제든 만들어 내서 쓴다는 걸 이하는 알고 있었다.
루거가 발견했던 모자를 에즈웬의 교황청에 다시 보관해 놨음에도, 크롤랑을 비롯해 그가 모습을 나타낼 땐 언제나 모자를 쓴 모습이었다.
‘맞아. 그때부터 뭔가 이상했어. 푸른 수염이 의상실에서 모자를 샀을 리가 없잖아.’
그렇다면 마나로 모자의 형태를 갖추는 것일까? 이하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어찌 되었든 지금 이 시점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뿌그륵!”
이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전기 충격기를 다시 꺼내었다.
직접 손으로 대었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배관공 마 씨도 거북이 등껍질이나 불꽃으로 보스를 때려잡았지, 맨손으로는 안 잡았다고. 휴우우, 이번엔 방어막 칠 것도 없고 그냥―’
부그르륵!
이하는 기포를 내뱉었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모양은 뚜렷하게 보였다.
“간다! ON!”
정화조 외피에 박힌 모자에 닿기 직전, 스위치가 딸칵,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