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671
마탄의 사수 (671)
일견 맞는 말이었다.
적어도 그가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있다는 건 기정도 몇 번쯤 관찰했었으니까.
그러나 동시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도망갈 거였으면 그냥 귀환 스크롤을 사용해도 된다. 수정구나 텔레포트 스크롤을 써도 된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언제나 달려서 도망쳤어.’
스크롤을 아끼기 위해서라는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을 믿을 기정이 아니었다.
순진하고 순박한 건 맞지만 적어도 바보는 아니다.
도망친 방향이 언제나 기정 자신이 있는 쪽이라면 의심을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기정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한마디만 더 하면 그때는 둘 중 하나가 죽을 거야.”
기정은 라르크를 향해 검을 뽑았다.
이미 라르크보다 앞서 있던 베르튜르 기사단원 전원도 전투 준비 태세를 갖췄다.
울상을 짓고 있던 라르크의 표정도 순식간에 진지해졌다.
“으음, 근데 한마디를 하면 싸워야 하고. 안 해도 이 상태라면 싸워야 할 텐데…….”
라르크는 자신의 뒤편을 향해 턱짓했다.
그의 뒤에선 여전히 팔레오들이 쫓아오는 상태였다.
그들이 이곳까지 도착하는 것은 1분이 채 걸리지 않으리라.
“그럼 차라리 대화로 푸는 게 낫지 않겠어요, 마스터케이 님? 내가 저것들을 막고 있는다 해도 우리 애들을 1분 안에 정리하시긴 힘들 거 아냐. 방어라면 몰라도 공격이라면 시간이 좀 부족하실 텐데.”
기정이 라르크를 싫어하면서도 경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는 팔레오들에게서 도망칠 때, 언제나 최후미를 담당했다.
‘루비니 님의 지도상에서도 그랬어. 자신이 언제나 맨 뒤였다, 즉, 팔레오들과 가장 거리가 가까운 상태.’
이기적이고 못된 사람이라면 부하들에게 후미를 책임지게 했을 것이다.
팔레오들의 모든 전력이 드러나지 않은 현 상황에선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모르니까.
그러나 라르크는 언제나 본인이 가장 뒤에 섰다.
적어도 두 가지, 리더로서의 자질과 팔레오 전원을 상대해도 일정 시간 이상은 버티다 도망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에게 있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
“방해하지 마세요. 마지막 경고입니다. 다음번에도 저희 근처에 계시면 고의적 방해로 간주하고…… 저희가 먼저 찾아가겠습니다.”
밉다. 방해꾼일 확률이 아주 높다.
그럼에도 명분과 실력, 심지어 리더의 자질을 갖춘 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사람 착한 기정에게 있어 그 점은 무척 결정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겨눈 검은 여전히 내리지 않은 상태였으나 기정의 어투가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라르크는 다시 미소 지었다.
“왕궁의 지시를 받은 우리를 배제하려고 하신다면…… 우리도 그 말을 듣고 그냥 넘길 수는 없겠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 한판 뜰까? 아니면 다음에 왕궁 공문 챙겨 와서 보여 드린 다음에 한판 떠야 하나?”
상대방이 다가오면 물러서고, 물러서면 다가간다.
적절한 거리를 지키며 대상을 도발하고 끌어들이는 능력 하나만큼은 미들 어스의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자가 바로 라르크일 것이다.
웬만한 유저라면 이 시점에서 돌아갔을 것이다.
벌써 팔레오들은 20초 거리까지 다가와 그들의 면면이 보일 지경이었으니까.
‘평소의’ 기정도 마찬가지였다.
선결 과제부터 해결하고, 기왕이면 좋게 좋게 끝내려 했을 것이다.
성격적인 면에서 이하와 꽤나 닮은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이라면 지금의 기정은 ‘평소의’ 기정이 아니라는 점. 순진하고 순박하고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선’은 절대로 넘어선 안 된다.
그것 또한 기정과 이하는 닮아 있었다.
“덤벼, 개새끼야.”
이들 사촌 형제에게 있어서 극과 극으로 섞이지 않는 유저가 바로 라르크였다.
“어…… 엥? 뭐라고요?”
“〈방패 강화〉, 〈수호의 광휘〉, 〈삼중 갑옷〉. 누가 먼저 죽는지 보자.”
화아아앗──────!
순식간에 자체 버프를 마친 기정은 라르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라르크로서도 예상외의 순간이었다.
황급히 검을 꺼내어 들었으나 그도 적절한 상황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와봉―아! 죽여라!”
“레드 고트! 인간들의 씨를 말려라!”
“블랙──── 크레인!”
파아아아아────────……!
뒤에선 팔레오들이 변신하기 시작했고, 앞에선 미친 멧돼지처럼 기정이 달려드는 상황!
“자, 잠깐만! 잠깐― 〈허리케인―”
슈우우우우………… 팡!
“―블― 음?”
“응?”
라르크가 스킬을 시전하려는 순간, 먼 곳에서 불꽃이 터졌다.
폭죽과는 다른, 순수한 불덩어리는 하늘에서 방사형으로 퍼졌다.
아름답거나 놀랍다는 감상보다는 섬뜩한 감상이 먼저 드는 그것을 보며, 팔레오들은 진격을 멈췄다.
“……빌어먹을 인간 놈들, 목숨 하루 늘린 줄 알아라.”
“와봉, 와봉― 돌아간다, 와봉―!”
라르크의 코앞까지 발톱을 들이댔던 팔레오들은 모두 등을 돌렸다.
베르튜르 기사단원과 첫 번째 합을 나눈 기정도 더 이상 검을 움직일 수 없었다.
“돌아가……?”
“지금?”
팔레오들이 어째서 이곳 근처에 있었는지는 라르크와 기정 모두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유를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째서 그들이 돌아갔는가? 갑자기 터져 버린 불꽃은 무엇인가?
“다 모였군.”
“여, 영물들이― 영물들이 다 모여서―”
“캬하…… 아쉽네. 마스터케이 님 실력 좀 보려고 했더니만. 그럼 우리는 돌아가겠습니다. 몸조심하시고!”
라르크는 웃으며 귀환 스크롤을 찢었다.
어느새 기정에게서 거리를 벌린 베르튜르 기사단원도 전원 그와 타이밍을 맞췄다.
“기정 씨!”
“케이! 무슨 일이야?”
“모두 즈마 시티로 돌아가죠.”
기정은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키킷, 갑자기? 아직 몬스터가 좀 남았는데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우선…… 즈마 시티를 막아야 하니까. 아니, 막아야 한다는 게 결국…… 후우.”
기정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여간 복잡한 사안이 아니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아니, 애초에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왜요? 왜?”
보배의 물음에 기정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영물들이 모두 모였어요. 팔레오들이 전부 돌아갔습니다. 아마도 내일, 즈마 시티로 진격할 거예요.”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남은 것은 전쟁뿐이었다.
원주민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하위 계급으로 전락해 버리기 일보 직전인 팔레오들과, 구대륙에서 각종 지원을 등에 업고 ‘신의 이름으로’ 힘을 기를 의무가 있는 유저들의 충돌.
어쩌면 신대륙 원정대원이 처음 이곳에 상륙했을 때부터 정해진 운명인지도 몰랐다.
아무런 협의도 없이 두 개의 문명이 공존하는 것은 인류 문명의 흐름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꿈에 불과하니까.
* * *
“정말로 싸울 생각이 있는 거예요, 알렉산더 씨?”
신나라는 양팔까지 벌리며 격정적으로 설득했다.
하루 전, 팔레오들의 성대한 ‘집결 완료 표식’은 신대륙 곳곳에 있던 유저들이 모두 보았다.
팔레오 부락들이 하나, 둘 비워지기 시작한 것은 벌써 나흘 전이었고 그때부터 돌던 소문이 마침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즉, 오늘, 팔레오들이 즈마 시티에 총공격을 감행한다는 것은 신대륙에 있는 거의 모든 유저들에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따라서 이른 아침의 즈마 시티는 수없이 많은 유저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선 이것 또한 ‘웨이브’와 다름없는 이벤트처럼 느껴졌으니까.
오히려 웨이브보다 더 나은 환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때는 단순한 유저들의 집합체였으나 현재는 구대륙에서 파견된 온갖 종류의 기사단까지 포함된 상태다.
즉, ‘꽁으로’ 레벨 업 하기에 더욱 좋은 상태란 말이다.
어느새 방어 진형을 갖춘 무리의 선두에 선 알렉산더에게 신나라는 끊임없이 따라붙었다.
현 상황에서 상호 간의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은 오직 그밖에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 일의 정의는 우리에게 없다. 과욕에서 비롯된 인간들의 우행愚行이 초래한 결과다. 나는 끼어들고 싶지 않다.”
[나 또한 마찬가지.]“그, 그러면! 그럼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어야―”
“허나, 더 큰 정의를 위해 즈마 시티를 수호하는 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저들을 향해 선제공격을 가할 마음은 없으나, 나와 나의 교우는 즈마 시티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결국 싸우겠다는 거잖아요!”
신나라의 말에 알렉산더는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
‘컨셉충’을 향해 분노가 일었으나, 그녀는 더 이상 알렉산더에게 따지고 들 수 없었다.
“네?”
[나를 비롯해, 마魔의 공격을 막아 낸 자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저들이 이곳을 공격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보았나.]“……아뇨.”
[결사의 각오다. 그 정도로 강력하게 의지를 표출하고 있는 것. 알렉산더나 내가 몇 마디 한다고 물러설 것이었으면 저들은 이곳에 오지도 않았겠지. 무엇보다…… 저들의 전력도 결코 약하지 않다.]신나라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베일리푸스로서도 가능한 한 친절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친밀도가 제로에 가까운 타 유저였다면 감히 에인션트 골드 드래곤에게 이런 식의 조언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
일반 유저였다면 베일리푸스의 발톱과 브레스의 강함을 온몸으로 체감하면서 자신의 건방짐을 후회하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무엇보다 베일리푸스는 틀린 말을 하는 게 아니었기에, 신나라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영물들의 강함, 그 점에 대해서 잘 아는 유저가 또 있었기 때문이다.
“골──든 도마뱀의 말은 인정하는 각이고요. 그냥 존버나 하고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굳이 모습을 드러내다니. 흑우가 따로 없지.”
“이지원 씨……. 퓌비엘의 일원으로서 부탁드립니다. 지금 팔레오들과 싸우는 건 이득 될 게 하나도 없어요. 당신이라도―”
“놉. 신 여사님의 부탁이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나 하나 빠지는 건 상관없지만, 골──든 도마뱀의 말처럼 저쪽도 만만치 않아서. 나, 컨셉충, 페이우 셋 중 하나라도 빠지면 즈마 시티 떡락 각 뜰 듯.”
이지원은 자신의 〈뇌운雷雲〉에 엎드려 누워 있었다.
말투는 가벼웠지만 그 역시 다가올 전투에 제법 긴장한 상태였다.
랭킹 1위의 알렉산더나 랭킹 2위의 이지원 랭킹 4위의 페이우. 셋 중 한 사람이라도 이번 방어선에서 빠진다면? 즈마 시티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알렉산더나 이지원이 내키지 않음에도 이곳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들과 다르게 즈마 시티 외곽의 곳곳에서는 그저 축제의 장이 벌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와, 영물이 열일곱 마리나 되네. 난 다섯 마리밖에 못 봤는데.”
“어덜트 드래곤급의 전력이 열일곱이라……. 개꿀잼이겠는데. 녹화 켰다.”
“머임? 그럼 드래곤 레이드 17연탕? 조졌네.”
“이런 거 참석 안 할 거면 미들 어스 접어야지.”
“안녕하세요, 형님들! 시키면 한다! 오늘은 〈레벨 100 소서러로 영물 웨이브 살아남기〉입니다!”
랭커들의 고충이나 마魔와 팔레오 그리고 유저들과의 관계 따위와는 일절 관계없는 사람들은 흥분 상태로 현재를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선택이나 결정, 행동이 미들 어스의 세계관에 영향을 끼친 경험도 없을 뿐더러,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기 때문일까.
“……어쩌면 저게 당연한 거겠죠?”
“그렇지. 우리가 심각한 거지.”
“하아아…… 미치겠네. 루비니 님, 팔레오들은요?”
“아직 움직이진 않고 있어요. 하지만 영물 열일곱은 모두 모여 있고, 팔레오들의 수는 저번보다 더 불어났어요. 마魔의 근거지로 따진다면 최소 네 개 이상의 근거지를 합한 전력 정도 될 거예요.”
“영물들의 힘은? 다 합하면 토온급?”
“글쎄요. 저들이 정말로 합을 잘 맞춘다면 토온 이상일지도.”
루비니의 지도는 개별 몬스터들이 갖고 있는 ‘힘’도 측정할 수 있다.
언젠가 마魔의 근원지에서 토온이 나타났을 때, 그 거대한 점의 크기로 모든 유저가 놀랐던 것처럼.
현재 그녀의 홀로그램 지도에 보이는 영물들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점은 팔레오들은 대체로 부락별 소규모 행동만 했었다는 점.
이 정도의 단체전의 경험은 없을 거라 기정은 생각했다.
‘하지만 위기 상황이 되면 어찌 될지 모르지. 방심할 여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