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711
마탄의 사수 (711)
“확실히 그의 검은 기품과 위엄이 있습니다.”
“맞아. 지금으로썬 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겠지. 푸른 수염이나 드래곤조차 알아보는 검이었잖아. 아무리 낮게 잡아도 전설급. 그게 아니면…….”
신화급.
정말 신화급 검이라면 그것이 ‘신의 검’일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신의 검’이 애당초 무엇인가?
그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는 이상, 함부로 단언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게 미들 어스니까 말이지.’
세 사람이 다시금 궁리에 빠져 있을 때, 블라우그룬의 손이 어느새 책장의 마지막까지 넘기고 있었다.
“끝이네요.”
일지는 어느덧 끝나 가는지 상당수는 빈 페이지였다.
“이 정도로는 별로 정보도 없는 편 같은데.”
“다크 엘프들의 자료에도 정보가 많을 테니, 그 족장이라는 NPC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있을 겁니다.”
“으음, 그쪽이랑도 조합을 해야 하는 건가.”
실제로 아직 책은 많다.
다만 이하와 키드, 루거가 읽을 수 없는 글자일 뿐.
그것은 다시 국경 없는 땅을 지나 다크 엘프의 숲으로 가 그곳에서 해석을 의뢰해야 할 것이다.
“음, 하이하 님!?”
“네?”
“여, 여기! 마지막 페이지에―”
블라우그룬이 마지막 페이지를 가리켰다. 세 사람의 시선이 다시금 그곳으로 향했다.
더 이상 글을 남길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어떨까. 과연 이 기억도 지울 수 있을까.
나는 신의 힘을 빌려 마의 힘을 피하려 한다. 부디, 마탄의 사수라는 저주의 굴레가 내 대에서 끊기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 없음을 내가 더 잘 알기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렇다면 내가 준비할 것은 하나뿐, 후대의 마탄의 사수에게 이 일지가 전달되기를.
그대는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그리고 내 아들, 카를로스가 부디 애비를 기억해 주기를.
“그리고 이건…… 마법 표식이에요.”
글 아래에 그려진 것은 아주 작은 마법진이었다.
블라우그룬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았다면 이하나 키드, 루거조차 놓쳤을지 모르는 아주, 아주 작은 표식.
“마의 힘을 피하려 한다? 그렇다면 아까 그 누군지 모를 ‘감시자’의 눈을 피해서―”
“겨우 숨겼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흥, 그래도 머리는 제법 돌아가는 놈이었군. 하긴, 그러니 마탄의 사수가 된 건가.”
세 사람은 즉각 무기를 꺼내어 들었다.
탄창을 삽입하고, 노리쇠를 당기며 순식간에 전투 준비 태세에 들어간 모습을 보며 블라우그룬은 당황했다.
“하이하 님? 뭐 하시게요?”
“뭐 하다뇨.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대비하는 거지.”
“이, 이거…… 발동시키시려고요?”
“응?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요? 하핫. 블라우그룬 씨도 혹시 모르니 캐스팅 하고, 옆으로 비켜 계세요.”
“무슨 마법일 줄 알고요!”
“신의 힘을 빌렸다고 본인이 써 놨는데, 설마 무슨 함정 같은 거겠어요? 얼른 비켜요, 시간 없어.”
이하는 블라우그룬을 들어서 옆으로 옮겼다.
마치 장난감처럼 취급을 당했지만 블라우그룬은 반항하지 않았다.
이하의 성격을 그만큼 잘 파악한 파트너는 그저 조심스레 쉴드 마법을 캐스팅 하기 시작했다.
“준비됐지?”
이하는 블랙 베스를 움켜쥐었다.
그의 곁에 크림슨 게코즈를 든 키드와 코발트블루 파이톤을 든 루거가 자리했다.
“당신이나 잘하면 됩니다.”
“오랜만에 키드가 말 한번 잘했군. 그리고 자꾸 대장인 척하는 것도 꼴사나우니까 그만둬라. 아까도 말했지만 삼총사가 된 건 내가 첫 번째―”
“간다!”
이하는 루거의 말을 무시하며 마법진을 클릭했다.
───────────────!
“으악?!”
“큭―”
“모, 몸이―”
그 순간, 강렬한 빛이 세 사람을 휘감았다.
“하, 하이하 님! 하이하 님!”
블라우그룬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으나 이하는 그곳을 바라볼 수 없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흐물거리며 녹아 간다는 감각과 함께 이하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시발, 신성 마법― 여기서도 함정이었냐…….’
미들 어스의 악독한(?) 행위에 다시 한 번 열 받아 하는 이하였다.
* * *
=큭큭…… 언제까지 자는 척을 하고 있을 건가, 친구.=
이하는 귓전을 울리는 기분 나쁜 목소리를 들으며 서서히 눈을 떴다.
어딘지 모르게 찌뿌둥한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뭐지, 이건.’
주변은 상당히 어두웠다.
눈꺼풀이 열리는 속도 또한 마음대로 조절이 되지 않는 것처럼 이하의 생각보다 늦었다.
스으으윽, 이하는 갑작스레 몸을 일으켰다.
‘어? 어어? 몸이―’
그러나 그 행위는 이하가 원한 게 아니었다.
강제로 몸이 일으켜지는 기분이라니!?
놀라운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시끄럽다, 자미엘. 자는 척이 아니라 진짜 잠이 든 것뿐이다. 아무래도 피곤한 여정이었으니까.”
‘뭐야, 이 목소리!’
분명히 입이 뻐끔거리는 느낌이 느껴졌다.
하지만 입을 뻐끔거리는 동작도, 그 안에서 나오는 목소리도 이하가 원해서 한 동작이 아니었으며, 이하의 것도 아니었다.
그제야 이하는 알 수 있었다.
주변의 풍경부터 시작해, 내려다보는 발치의 모든 것이 바뀌어 있음을.
‘……내 몸이 아니구나? 그렇다면 아까 그 일지를 건드렸을 때 발동된 마법이라는 게―’
기억을 강제로 전이시키는 마법이었을까?
특정 부분부터 저장하여, 특정 부분까지 플레이하도록 만들어 주는, 일종의 기억 녹화 마법을 막스 헤스콕은 사용한 것일까?
이하는 주변을 둘러보고 싶었으나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현재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은 ‘막스 헤스콕’이라는 NPC 인물의 설정으로만 진행되는 중이었다.
그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허, 참. 이건 게임이 아니라 그냥 VR 영화 보는 느낌이네. 엄청나게 실감 나는 1인칭 영화.’
이하는 동시에 두 사람의 행방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키드와 루거는? 자신과 같은 걸 보고, 듣고 있을까?
‘키드! 루거!’
이하는 그들을 불러 보려(?) 했으나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막스 헤스콕’의 입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으며, 이하의 목소리 또한 딱히 울림이 없었다.
“크윽.”
순간 막스의 몸이 휘청거렸다. 이하는 자신의 머리도 지끈거림을 느꼈다.
‘크으…… 갑자기 웬 두통이…….’
그것은 몸살, 감기 따위의 어지럼증이나 두통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었다.
동화율을 100%까지 맞춰 놓았다지만, 타인의 기억을 재생하는 순간에도 고통을 똑같이 느끼는 것인가.
=큭큭큭…… 벌써 3개월이 넘었어. 자제력 하나만큼은 칭찬해 주지. 하지만 이제는 쏠 때가 된 것 같은데.=
“입 닥쳐, 자미엘. 나는 마탄을 쏘지 않을 거다.”
=쏘지 않으면 네 몸은 바스러질 거야.=
“하, 우습군. 마치 쏘면 내 몸이 정상으로 돌아간다고 말하는 건가? 그럴 리가 없다는 건 네 녀석이 더 잘 알 텐데.”
=이런, 이런. 내 탓을 하는 건가? 나는 그날, 그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았어! 저것을 쥐는 사람은 막스, 자네가 아니라 론다 브라운일 수도 있었고, 존 할리데이일 수도 있었어! 세 사람 중 호기심 가득한 사람은 자네뿐이지 않았나? 안 그런가?=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자미엘〉이라 불린 존재의 목소리는 이하에게도 또렷하게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가 언급한 두 사람의 이름이 들릴 때, 이하는 ‘막스 헤스콕’의 감정 변화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입 닥쳐!”
그것은 분노를 넘어선 완전한 살기였다.
두통은 마치 눈이 뽑힐 것 같고, 관자놀이가 파여 들어가며 양쪽이 관통되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나, 그 와중에도 막스 헤스콕의 동작은 번개처럼 빨랐다.
갑작스레 움직이며 그가 휙, 하고 집어 든 것은 기다란 무언가였다.
그 움직임은 이하의 몸과 완벽하게 싱크로 되어 있었기에, 이하도 알 수 있었다.
‘총이다.’
나무에 기대어 둔 총을 집어 들고, 탄환을 장전한다.
탄창은 이미 끼워져 있던 것일까?
노리쇠를 잡아당기는 것은 이하에게도 느껴졌다.
철컥, 하며 걸리는 탄환의 느낌 또한 명백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련의 동작은 이하조차 감탄스러울 정도로 부드러웠다.
손에 느껴지는 감각이나 총기의 무게 중심, 어색할 정도로 긴 형태 등으로 보아 다루기에 매우 까다로운 게 분명하건만 이토록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니!
이하의 감탄이 미처 끝나기도 전, 이미 막스는 견착을 끝낸 상태였다.
“언젠가 경고했을 텐데. 그 이름들을 한 번만 더 입에 올리면…… 자미엘, 너라도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미안하게 됐군. 정말로. 진심이야.=
막스의 눈과 완벽하게 동화된 이하로서도 안타까운 점이라면 〈자미엘〉이라는 존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쳇, 보고 싶었는데. 아마도 저 자미엘이라는 게 일지에 나오던 감시자…… 같은 것이겠지.’
자미엘의 진심 어린 사과를 막스는 받아들인 것일까.
들끓던 분노가 가라앉는 게 이하에게도 느껴질 때쯤 막스는 견착을 떼어 냈고, 그때 이하의 눈에 막스가 들었던 총기가 완전히 보였다.
그 순간, 이하는 자미엘이 보이지 않았던 아쉬움 따위는 모조리 잊게 되었다.
이하의 눈에 보였던 것.
아마 그 자리에 루거가 있었다면, 루거는 다시 한 번 이하에게 달려들었을 테니까.
‘어, 어어어, 어! 이― 이거! 이 총?!’
막스 헤스콕이 들고 있던 총기의 총신은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달빛마저 빨아들이는 새카만 총신은 분명히 이하가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미스 엘리자베스……. 아니, 엘리자베스 헤스콕이 들고 있던 그거잖아!’
혈통은 이어지는 것일까.
그러나 마탄의 사수가 혈통을 따르는 게 아님을 이하는 이미 알고 있다.
무엇보다, 엘리자베스는 마탄의 사수가 아니란 것도 말이다.
* * *
‘엘리자베스의 총이 어떻게― 아니, 엘리자베스의 총이 마탄의 사수의 총이란 말이야?’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었으나 이하는 곧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명중]의 후계자로서, 신세대 삼총사 중 가장 많이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 그럴 리 없어. 마탄의 사수는 분명히 카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엘리자베스가 마탄의 사수의 총기를 사용할 수 있는 거지? 혈통이었기 때문에? 막스 헤스콕과 같은 핏줄이어서 그 총기를 쓸 수 있다? 아니, 그건 말도 안 되잖아!’
그렇다면 미들 어스에서 마탄의 사수가 될 수 있는 것은 헤스콕의 핏줄뿐이어야 한다.
만약 그런 설정이라면 애당초 유저는 마탄의 사수가 될 수 없다는 뜻 아닌가.
즉, 그럴 리 없다는 게 타당한 가정이었다.
‘신기하군. 자미엘의 말도 그렇고, 아까 마탄의 사수 일지를 봐도 그렇고. 정황상 저 총기가 마탄의 사수로 전직하는 아이템임은 틀림없어.’
이하도 막스의 입장에서 자미엘의 말은 들을 수 있었기에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세 사람.
론다 브라운과 존 할리데이 그리고 막스 헤스콕.
세 사람 중 호기심 가득한 막스 헤스콕이 ‘이 총’을 잡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 모든 고통을 받고 있다……라는 것처럼 말했다. 아마 여기까지는 틀림없을 거야.’
이하는 다시금 엘리자베스와 카일의 관계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마탄의 사수의 총기를 마탄의 사수가 아닌 자가 사용할 수 있는 건가?
‘나, 참. 황당하네. 근데 그런 총이었으면 진작 말 좀 해 주지! 블랙 베스보다 훨씬 좋은 거였잖아! 아니, 아니, 커브 샷 배울 때 그냥 모르는 척하고 스윽, 잡아나 볼걸!’
그러면 마탄의 사수로 전직이 되었을까?
이하가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을 때, 막스 헤스콕의 몸은 어느덧 어둠을 가로지르며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주변에 보이는 풍경은 이하에게 있어서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면서 낯선 곳이었다.
=다크 엘프의 숲이라고 해서 좋을 건 없을 텐데=
“훗, 네 녀석의 목소리가 떨리는 걸 내가 모를 줄 아는가.”
이하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다크 엘프의 숲!
‘그렇군. 주변 지형이 조금 바뀌긴 했지만…… 그들은 이때도 숨어서 살았던 건가. 근데 이 막스라는 사람도 자미엘이라는 것과 오래 붙어 있긴 했나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