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946
마탄의 사수 (946)
“악! 뭐야, 이거!”
키메라의 소름 끼치는 괴성과 촉수의 공격이 자아내는 파공음은 분명했다. 그러나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와중이 된 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상태 이상이다! 실명인가!?”
“큐어! 힐러드으으을! 리스토어! 리커버리! 큐어! 아무거나 좀― 크악!”
키메라의 공격은 그치지 않았다.
사이사이 공격해 들어오는 맨티코어들 또한 멀쩡하게 공격을 지속하고 있다.
힐러들은 상태 이상으로 추측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갖은 스킬을 써 보았지만 특별히 먹히는 건 없었다.
오히려 불화살이 날아가며 일부 지역을 밝히고, 스킬을 사용할 때 터져 나오는 이펙트들도 여전히 눈에 들어오는 상황!
그제야 유저들은 이 상황이 뜻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상태 이상이 아니야! 단순히 주변이 어두워졌다는 건가?’
상황을 파악한 유저들은 황급히 소리쳤다.
“빛! 빛을 꺼내! 주변을 밝혀!”
주변에서 불규칙적인 점멸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것은 중앙부의 전선에서 조금 북쪽으로 벗어난 지점도 마찬가지였다.
“빛을 원하나.”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전선에 있던 유저 한 명은 재빨리 가방을 뒤적였다.
어둠은 공포심을 자아내는 법.
“당연하지! 제기랄, 램프라도 우선―”
그는 램프에 불을 붙이며 꺼내어 들었다. 그의 눈앞에 나타난 자는 인간과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유독 눈에 띄는 푸른색의 수염만 아니었다면 분명히 유저라고 믿었으리라.
“그래? 미안하게 됐군.”
평소와 다른 거친 복장의 레가 손을 뻗었다. 지팡이는 없었지만 그는 양손으로 검은 줄기들을 붙잡고 있었다.
검은 줄기를 맨손으로 쥐고 있는 그의 손에서 파츠츠츳, 검은 스파크가 튀었다.
그것은 두부를 가르는 식칼처럼, 유저의 상반신을 길게 쪼개 놓았다. 램프를 떨어뜨린 유저는 단말마의 비명조차 없이 사망했다.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 테니.”
푸른 수염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동했다.
애당초 신대륙 동부에 있을 때에도 빛에 연연하지 않았던 마왕의 조각에게 이런 어둠은 아무런 방해 요인도 될 수 없었다.
“끄앗―”
“캬아아아악!”
“뭐야!? 뭐가― 있― 써억!”
그가 지나는 자리마다 비명이 퍼졌다.
아직 키메라와 대치하는 것도 아니고 맨티코어가 여기까지 날아오지도 않았을 텐데 갑자기 무슨 일인가!
푸른 수염은 특별한 분노를 표출하지도, 그렇다고 공격을 멈추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의무처럼 묵묵하고 담담하게 인간과 자이언트, 우드 엘프 등을 쪼개고 가르고 베어 버릴 뿐이었다.
유저와 NPC들의 스킬 이펙트는 간헐적으로 터지고 있었으나 푸른 수염의 신형을 잡아낼 수 없었다.
“불 피워! 불!”
“뭔가 있다! 주변에 뭐가 있어!”
“우, 우리 파티 전멸이야! 뭐야, 이거? 힐러 5인 팟이 어떻게 전멸을 한 거야!”
혼란에 빠진 유저들은 빛의 근처로 모였으나 잠시 위험을 피할 수 있을 뿐이었다.
푸른 수염이 주변을 완전히 밝히거나 제법 범위를 넓게 비추는 횃불과 램프 쪽으론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 있나.”
어둠 속 기습에 더해 양손으로 검은 줄기들을 휘저어 가며 싸우는 레의 눈에서 짙은 청광이 흘러나왔다.
신대륙 중앙부에서 북측으로 레는 계속해서 올라갔다.
베고, 또 베어 가며 문자 그대로 눈에 불을 켜고 사람을 찾고 있었다.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사르며!
자이언트 세 명을 베어 내고 즉각 도약하며 또 다른 자이언트 다섯을 베어 내고 축 이동으로 이동하려는 찰나.
덜컥.
“음?”
푸른 수염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보였다. 그러나 더욱 당황한 것은 푸른 수염을 멈추게 만든 유저였다.
“갑자기 무슨― 아? 푸, 푸른 수염!?”
카렐린은 무의식중에 손을 놓으며 뒤로 물러섰다.
그는 어둠이 퍼지자마자 즉각 ‘가장 밝게 타오르는 빛’을 향해 달리던 중이었다.
그곳은 물론 중앙부, 드래곤들의 전쟁터였다.
브레스와 스킬이 뒤엉킨 그곳은 유저들의 스킬 몇 개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밝은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키메라를 막아 내는 임무는 아문센 삼형제와 거대 장갑차로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그는 티아마트와 관련된 일에 자신의 힘을 보태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은 철저한 우연이었다.
무차별 도륙을 진행하던 푸른 수염과, 신대륙 중앙을 움직이던 카렐린은 지근거리에서 마주쳤고, 그런 푸른 수염의 ‘도약’을 하나의 공격 행위로 인식한 카렐린의 〈절대 방어〉가 발동될 확률이라니!
“어떻게 여기에 푸른 수염이― 가짜인가?”
“노출증에 걸리기라도 한 모양이군. 그런 추한 옷차림은 긴 마왕의 조각 생에서도 처음 볼 정도야.”
물러서는 카렐린을 보며 푸른 수염은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러나 웃음은 곧장 사라졌다.
“아니,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아. 네놈…… 어떻게 나를 잡았지.”
푸른 수염은 파랗게 타오르는 눈동자로 카렐린을 보았다.
카렐린의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레슬링으로 다져진 육체에, 실제로 눈앞에 있는 마왕의 조각은 ‘자이언트 종족’보다 훨씬 더 작은 체구이건만, 이 위압감은 대체 뭔가?
‘이런 압박은…… 게임 시작하고 처음이야. 이게 가짜일 리가 없어!’
파앗―!
푸른 수염이 카렐린을 향해 곧장 뛰어들었다. 그는 자신의 양손에 쥔 검은 줄기를 휘두르려 했다.
어둠 속에서부터 뻗어 나오는 공격은 보고 피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푸른 수염의 팔이 카렐린에게 잡히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또?”
“크, 으읏―! 이건 진짜잖아!”
카렐린은 자기도 인지하지 못하는 시간의 틈에서 푸른 수염의 팔을 잡았다. 휘두름을 강제로 멈추게 만든 후에야 그는 황급히 손을 떼고 뒤로 물러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고작 두 번.
그의 공격에 반응한 건 두 번뿐이다.
하물며 두 번 모두 푸른 수염이 들고 있는 ‘무기’를 잡아낸 게 아니라 푸른 수염의 본체를 잡았건만 시야가 점점 검붉어지고 있었다.
‘HP 감소가 장난 아니잖아.’
캐릭터 창을 빠르게 여닫으며 HP를 회복하는 기술은 근접 직업군에게 특별한 일도 아니었으므로 카렐린은 잘 알 수 있었다.
고작 두 번 만에 시야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푸른 수염의 제대로 된 공격도 아닌 걸 한 번 포함해서 절반이라면, 아마 앞으로 한 번 정도가 한계일 가능성이 높았다.
‘한 번 더 막으면― 빈사 상태가 되겠는데?’
카렐린은 레를 보았다.
푸른 수염은 이제 치아를 드러내고 있었다.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지만 쩍 벌어지는 그의 아가리를 보는 순간 카렐린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하이하를 찾아 찢어 버리는 건 조금 미뤄도 되겠군. 아주 재미있는 녀석이 있었어.”
“하이하?”
“끌끌, 그렇군! 변태 자이언트, 네 녀석도 하이하를 알고 있는 건가. 그럼 더욱 잘됐지.”
푸른 수염은 왼손에 있던 검은 줄기 하나를 없앴다.
“하이하는 지금 어디 있나.”
“모른다. 설령 안다 해도 알려 줄 리가 없지만.”
“다행이야. 내 특기가 모른다는 사람에게서 안다는 대답을 듣는 거거든.”
푸른 수염은 혀를 날름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카렐린 정도의 랭커도 그에게 있어선 한 입 거리밖에 여겨지지 않는다는 뜻일까.
프라이드 높은 레슬러가 그런 걸 두고만 볼 리 없었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카렐린이 물러서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덤벼, 노망난 노인네.”
“크흐흣, 좋아. 미치광이 노출광이 할 말은 아니지만…… 즐겨 볼―”
“주목! 주목! 카렐린이 전파한다!”
샤즈라시안의 대통령 직속 요인이자 이고르와 달리 자이언트들의 선망의 대상인 카렐린이 소리쳤다.
카렐린은 주변 환경을 이용하는 걸 수치스러워하지 않았다.
“푸른 수염이 이곳에 있다아아아아아아! 내가 놈을 잡을 동안 모두 집중해서 단 한 번에 공격해라! 내가 놈을 잡는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마!”
그는 주목이란 말과 자신의 정체를 밝히자마자 곧장 소리쳤다.
“카렐린 님이다!”
“푸, 푸른 수염! 진짜 레야!”
“시벌! 한 방이라도 치면 경험치 분배 먹는 건가!?”
샤즈라시안에서 카렐린의 외침을 무시하는 유저는 없었다.
“자신만만한 태도치곤 비겁하지 않나.”
“비겁? 뭔가 착각하는 모양이야, 레. 독 안에 든 쥐라는 말을 알려나 모르겠군.”
카렐린은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아직 전투가 개시된 지 40여 분밖에 흐르지 않았다.
상대해야 할 키메라도 많았으나 그것은 분명 남은 자들이 알아서 해 주리라.
푸른 수염과 함께 죽을 수 있다면, 얼마간의 지휘 공백이나 얼마간의 전력 손실은 충분히 메꾸고도 남을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같이 죽자.
같이 죽으면 된다.
자신이 레를 잡는 순간이라면 분명 어떠한 스킬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주변을 향해 반격할 수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미 슬금슬금 레를 둘러싸기 시작한 자이언트들의 수는 이미 수십에 달한다. 전방위에서 몰아칠 도끼 중 두 개만 놈의 두개골에 닿아도 마왕의 조각을 쪼개 버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 모든 것을 위해서.
‘죽는다.’
카렐린은 죽음을 각오했다.
레도 그런 카렐린의 표정을 보고 있었다. 그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확실히 ‘평소’의 레와는 다른 행동이었다.
자신이 잡히든 말든, 그는 주변의 모든 자이언트들을 1초도 채 걸리지 않는 사이에 두 배의 숫자로 불려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의 상반신과 하반신을 분리시키는 방법으로.
“쩝, 이런 머저리들을 상대하면서 흥분해야 하다니. 하이하 놈에게 더욱 열 받는군. 그것만 있었어도…….”
지팡이가 없어 허한 손을 바라보며 그는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물러서진 않았다.
푸른 수염이 카렐린에게 달려드는 순간 전투는 시작될 것이다.
주변의 유저들은 푸른 수염과는 적당히 거리를 둔 채, 그러나 언제든 달려들 수 있는 교묘한 위치를 잡고 있었다.
어둠은 여전히 가시지 않은 채였다.
푸른 수염이 나타나고 유저들이 그에게 집중하며 전선에선 혼란이 가중되어 갔다.
그리고 갑자기 빛이 생겼다.
“잡앗―”
“아, 아냐! 푸른 수염이 움직인 게 아니야!”
더 이상 램프 빛이 필요 없을 정도의 갑작스러운 빛이었다.
그것을 푸른 수염의 움직임이라고 착각한 몇몇 유저들이 먼저 발을 내디뎠다.
“다음에 보도록 하지. 노출광.”
“내가 널 잡―”
카렐린이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 푸른 수염은 자신을 향해 몇 발자국 다가온 자이언트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굳건한 무게중심을 지키던 포위막이 흔들리자마자 그는 빈틈을 찾아 탈출한 것이었다. 그가 자이언트들을 지나치는 것과 베는 것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지…… 못한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레는 사라졌다.
순식간에 빠져나간 푸른 수염이 서 있던 자리를 보며 카렐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죽음을 각오했다 해도 살아남았을 때의 안도가 없는 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손바닥을 보았다. 카렐린 또한 푸른 수염의 그간 행보에 대해 모르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그와 검격을 나눈 자는 극히 드물다. 그럴 수 없는 대표적인 이유가 바로…….’
터무니없을 정도의 몸놀림.
유저들을 농락해 버릴 정도로 빠른 몸놀림을 따라갈 자가 없기 때문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자신은?
찡한 느낌의 손바닥을 보며 그는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만약 내가 푸른 수염을 잡아 놓을 수 있다면?’
그러나 생각은 오래지 않았다.
다시금 환하게 모든 전장이 밝혀진 상태에서 그 무엇보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존재가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