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469)
#재능만렙 플레이어 469화
김혁진은 잭슨의 반응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연기를 하는 거냐, 진심이냐?’
연기를 하는 것 같기도 했고, 진심같기도 했다. 도대체 뭐가 진짜일까. 타이머를 힐끗보니 아직 40초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조금만 더 알아보기로 했다.
“나프탄이 그렇게 위험한 놈입니까?”
“매우 위험합니다.”
“얼만큼?”
“푸른뇌전의 나팔수가 당신의 몸으로 강림했을 때, 이 세상에 당신을 막을 사람이 존재합니까?”
“없겠죠.”
강림을 받아들인 김혁진의 몸이 붕괴되기 전까지, 김혁진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보다 더 심합니다.”
잭슨은 품 안에서 스크롤 하나를 꺼냈다. 망설이지 않고 주욱-찢었다. 순간, 일시정지권능이 선포됐다.
‘이야.’
일단 대외적으로 플레이어인 잭슨이 스스로 스크롤을 사용하여 일시정지권능을 사용했다. 필드가 필드이니만큼, 이곳에 일시정지권능을 펼치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플레이 중간에 이런 식의 일시정지권능은, 수호자분들께서도 싫어하실텐데요.”
“저는 이곳에서 죽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잭슨은 진심처럼 보였다.
‘내가 나프탄에게 은혜를 입힌 것을 진짜로 모르나?’
천공에 갔을 때.
김혁진은 고래일족의 수장인 나프탄에게 약속을 받았었다.
-검의 맹약자에게 사죄하기 위해. 어떤 것을 대신하여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고래일족이 당신을 도울 것을 맹세합니다.
-저희는 평화를 사랑합니다. 저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검의 맹약자를 위하여 저희의 숨결을 사용하는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나프탄의 언약은 지금도 유효하다.
‘천공에서의 일은 이미 500년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일.’
그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의 줄기로 이어져오고 있다는 소리였다.
이 차원급 퀘스트의 진행이, 천공에서 있었던 일의 연장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보통의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 나프탄은 범접 불가능한 절대자겠지만, 김혁진에게는 아니다.
김혁진이 잭슨을 조금 더 떠보았다.
“당신도 알다시피. 난 미래를 조금 볼 수 있어.”
“압니다.”
“미래 속의 나프탄은 그렇게 강자가 아니었어.”
“그 강함을 읽어내지 못한 겁니다, 김혁진 플레이어.”
격이 아예 다르면 강함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왜 나프탄이 우릴 모두 죽일 거라고 생각하지?”
“그야…….”
잭슨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는 그렇게 태어난 종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태어났다?”
“그는 아주 오래전 모종의 일로 인하여 고향에서 떠나야만 했었습니다.”
김혁진도 아는 내용이다. 수룡에게 보금자리를 빼앗겨 떠나 운해에 정착했었다.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평화를 사랑해서 말이다.
“그는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을 겁니다.”
“왜?”
“일족들이 모두 굶어죽게 생겼으니까요.”
잭슨이 말하는 게 모두 맞다. 딱 하나. 이미 김혁진이 모두 천공으로 돌려보내 놓았다.
“나프탄은 법칙을 어긴자를 심판하는 힘을 가졌습니다.”
“바베룬탑의 꼭대기에 오른 시점에서, 나는 법칙을 어긴 거고?”
“그렇습니다. 왕좌를 선택하지 않으면 [왕의 분노]가 내린다고 표현되어 있지만 그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그러면?”
“[천공의 왕이 내리는 분노]입니다.”
김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나한테 이렇게까지 고급정보를 풀어내도 되는 건가?”
“그러게 말입니다.”
잭슨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토록 많은 정보를 오픈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 ‘그’가 저를 쫓아오겠군요.”
‘그’가 누군지 알 것 같다. 잭슨의 뒤를 쫓고 있는 강력한 존재. 그 존재에 대해 김혁진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강선일.”
“제가 힘을 많이 쓰면 쓸수록, 그 자는 저에게 가까워집니다.”
실제로 잭슨의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식은땀에 가까웠다. 그걸로 김혁진은 확신했다.
‘잭슨은 사실을 모른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김혁진이 천공 관련 시나리오를 진행했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았다.
김혁진이 잭슨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나는 아직도 당신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분이 안 돼.”
“…….”
“그러나 적어도 지금. 당신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건 알겠군.”
씨익 웃었다.
“내가 세니아에게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잭슨도 기억한다. 자신의 플레이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보여준다고 했잖아.”
잭슨이 김혁진을 쳐다봤다. 잭슨은 김혁진의 눈동자에 담긴 자신감을 읽었다. 잭슨이 아는 김혁진은, 무턱대고 만용을 부리는 인간은 절대로 아니었다.
‘뭔가가 있다.’
눈치챘다. 잭슨은 허허-가볍게 웃었다.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군요.”
잭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운명에 걸어보겠습니다.”
“…….”
“당신의 그릇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 될지.”
“…….”
“아니면 이 차원의 플레이가 끝이 날지.”
어느덧, 일시정지 권능이 해제되었다. 김혁진은 두 개의 왕좌 중 단 하나도 선택하지 않았다.
‘보여주십시오. 당신의 플레이를.’
* * *
필드 전체가 어두워졌다.
[왕의 분노가 바베룬 탑을 잠식합니다.]어두운 공간.
묵직한 마나가 가득 들어찼다. 김혁진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천공!’
천공의 마나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바베룬탑의 꼭대기가 천공으로 변했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이 천공의 마나는 단 한 명의 존재가 뿜어내는 마나였다.
존재감 자체가 ‘천공의 마나’에 가까웠다.
강상구가 중얼거렸다.
“젠장.”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들었다. 그것은 은신해 있던 ‘조커’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커의 은신이 풀렸다. 압도적인 존재가 내뿜는 존재감. 그것이 은신을 유지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웅웅-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법칙을 어긴 자가 누구더냐.]파리대참사를 일으켰던 육익천사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묵직한 무게감이었다. 그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모두.]그 엄숙한 목소리가 선포했다.
[무릎을 꿇어라.]털썩.
가장 먼저 무릎을 꿇은 사람은 ‘조커’였다. 다른 이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그의 목소리는 일종의 언령이었다. 언령을 머금은 명령.
신연서는 호흡을 다스리기 위해 애썼다.
‘호흡하기가 힘들어.’
온몸을 옭아매고 있는 이 맑은 마나는 너무 무거웠다. 숨을 쉬기가 곤란했다.
이 마나가 몸을 지배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릎을 꿇고 싶지 않은데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은 단 두 명.
김혁진과 잭슨이었다.
그 사이, 두 개의 왕좌가 바람결에 흩어졌다. 그 아래로, 하얀색 마법진이 생겨났다.
강맹한 마나의 폭풍이 불어닥쳤다. 마법진에 새겨진 수많은 글자와 술식이 회전하며 하나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선화도 무릎을 꿇은 상태로 눈동자만 간신히 돌려 위를 쳐다봤다.
‘엥?’
묵직한 목소리와 너무 다른 존재가 그 곳에 서있었다. 사람의 형태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과 같았다.
‘사람처럼 생겼는데…….’
더 이상 쳐다보지 못했다. 사람처럼 생겼으나 존재의 무게감이 너무 커서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법칙을 어긴 자가 누구더냐.]저벅.
저벅.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곽태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 발자국. 발자국 하나하나에 담긴 힘이 상상을 초월했다.
세계를 충분히 짓밟고도 남을 정도였다. 곽태운은 김혁진을 신뢰하지만, 이번만큼은 두려웠다.
‘혁진형……!’
김혁진은 여태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김혁진조차 저 존재감에 압도된 것일까. 곽태운은 가까스로 눈동자만 돌려 김혁진의 표정을 살폈다.
‘어라?’
그런데 김혁진의 표정이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웃고 계신다?’
김혁진은 이 밀도 높은 마나의 홍수 속에서도 웃고 있었다. 그제야 곽태운은 안도했다. 긴장의 끈이 풀렸다.
털썩.
마나에 민감한 마법사인 곽태운과 강상구는 기절해버렸다.
잭슨의 심장이 쿵쾅 거렸다.
‘과연…….’
잭슨 역시 이 상황이 두려웠다. 나프탄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의외였다. 그러나 저 여자가 고래일족의 한 명이라는 사실은 틀림없었다.
고래일족이 아니고서야, 이토록 짙은 천공의 냄새를 흘릴 수는 없으니까.
‘김혁진. 왕의 자격을 갖춘 이여. 어떻게 하시렵니까?’
왕의 자격을 갖춘 이. 김혁진이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무게를 잡아?”
발걸음이 멈추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내가 하늘새로부터 너 구해주던 때. 잊었어?”
“…….”
“배고파서 징징댈 때. 내가 밥 준거. 몰라?”
“…….”
“너네, 언약의 일족인 거. 몰라?”
“…….”
“너, 나랑 헤어질 때 뭐라고 인사했어?”
정적을 깬 것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뿜고 있던 소녀. 나탈리였다.
“안뇽. 나중에 봐요. 어린 오빠…… 라고 했어요.”
순간 잭슨이 눈을 크게 떴다. 잭슨은 혼란스러웠다. 김혁진에게 어떤 방법이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이런 방식일 줄은 몰랐다.
저 소녀는 분명 나프탄의 딸일 것이다. 훗날, 고래일족을 이끌게 될 고래일족의 왕.
‘어떻게……?’
어떻게 저렇게 장성했지. 지금 내뿜는 존재감은 고래일족의 성체들이 내뿜는 정도의 존재감이다.
‘운해로 유배된 이들이다.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을 텐데?’
어떻게 그 딸이, 아버지 대신 이 자리에 있단 말인가.
김혁진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란 말인가. 게다가 왜 김혁진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는가. 지구차원에서 처음으로 있는 패닉이었다. 위대한 탐험가 잭슨조차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너네 아빠가. 나한테 뭐라고 그랬어?”
“오빠한테 시집가라고요.”
김혁진이 순간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순간, 저도 모르게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이사벨이 이 자리에 없는 게 다행이었다.
“그거 말고.”
“음.”
나탈리는 검지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배배꼬면서 생각나지 않는 척했다.
“저를 포함한 모든 고래일족이 당신을 도울 것을 맹세합니다. 그렇게 얘기했어, 안 했어?”
“그, 글쎄요?”
김혁진이 씨익 웃었다.
“너희. 언약의 종족 아니었어?”
“…….”
나탈리가 은색계단에 주저앉았다.
“아…….”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첫 번째 임무인데. 오빠 때문에 망했어요. 아빠가 많이 실망하실 거예요.”
“그건 내 사정이 아니고.”
“왜 그렇게 화가 났어요? 오빠 다정한 사람이었잖아요.”
“주위를 봐. 내가 화가 안 나게 생겼나.”
“으잉?”
그제야 나탈리는 주변을 둘러봤다.
나탈리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최강에 근접한 존재로 태어나,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존재들. 그저 살아난 김에 살아가는 강력한 존재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탈리는 주변을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처음에는 김혁진의 존재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 임무에만 신경 쓰느라 전혀 몰랐어요. 목소리 톤도 신경 쓰느라고…….”
나탈리는 흐읍! 하고 무엇인가를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자 강상구와 곽태운도 정신을 차렸다. 무릎 꿇고 있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빠 친구들인 줄은 몰랐어요.”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어쨌든 ‘천공의 왕이 내리는 분노’는 모두 감당한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린 강상구가 두 눈을 비비며 물었다.
“이건 도대체 뭔 상황이다냐……?”
“나도 몰라.”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나탈리의 팔을 잘라냈다.
푸악!
피분수가 솟구쳤다.
강대한 고래일족.
그녀의 팔이 잘려 나갔다.
“방심하면 쓰나.”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나탈리의 심장을 노리며 뻗어나갔다. 어두운 불꽃. 암염이 나탈리의 몸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