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600)
#재능만렙 플레이어 600화
순식간에 주변이 어두워졌다.
강솜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왜 꺼져?’
순간, 강솜이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느낌은…… 태평양에서 느낀 기운과 비슷해.’
제럴드가 처음 나타났을 때 이런 느낌이었다.
주변은 어두웠다.
해가 진 태백산맥은 어두웠지만, 그보다 더 짙은 어둠이 낮게 내리깔렸다.
‘검은색 안개. 마왕!’
마왕의 하수인이 나타난 것 같았다.
‘어디지?’
강솜이는 촉각을 곤두세웠다.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탐험가 전용 마법 랜턴을 사용해서 주변을 밝혀보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강상구의 마법을 흡수했듯, 이 검은색 안개는 마법 랜턴의 환한 빛조차 먹어버렸다.
‘이럴 바에야 눈을 감자.’
청각과 후각에 집중했다.
‘소리는 들리지 않고.’
무엇인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있었다.
바람처럼 움직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유령형 몬스터의 움직임과도 비슷했다.
‘냄새가 나.’
김선화가 말했던 ‘여자 냄새’는 사실 강솜이도 느꼈었다.
굳이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강솜이 정도되는 탐험가들은 ‘존재’에게서 특별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여자 냄새.’
어떤 향이라고 표현하기는 애매했다.
그냥 맡으면 느껴졌다.
이건 여성 존재값의 냄새였다.
-길드장님. 체력 괜찮아요?
-아직요.
텐트 속, 김혁진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체력회복에 집중했다.
김혁진도 텐트 바깥의 상황을 눈치챘다.
‘어둠을 틈타 급습할 거야.’
그런데 예상이 틀렸다.
급습이 아니었다.
“죽여 버릴 거야.”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자신의 위치를 숨길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김혁진이 눈을 부릅떴다.
‘느껴진다!’
텐트 바깥.
오른쪽 옆 커다란 바위를 지나 무엇인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여자?’
여자였다.
강솜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김혁진의 눈에는 희미한 실루엣이 보였다.
여자는 발을 질질 끌면서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녀가 걸어오는 길가 주변의 식물들이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졌다.
“죽여…… 버릴 거야.”
목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강솜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여름이라고, 납량특집인가요?
-제럴드와 느낌이 다릅니다.
-저도 느껴요.
제럴드와 같은 기운을 다루지만 느낌이 다르다.
-강솜이 씨 판단은 어떻습니까?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이성이 없는 것 같아요.
제럴드는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었고, 자아가 또렷했다.
그런데 지금 나타난 여자는 그런 게 없었다.
-이제 제 눈에도 보여요.
강솜이가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했다.
-저 여자 눈에는 제가 안 보이는 것 같은데요.
강솜이가 침을 꿀꺽 삼켰다.
여자가 점점 더 가까이 왔다.
‘서양인?’
노란색 머리카락에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볼에는 주근깨가 가득했다.
피부는 핏기하나 없이 창백하고 초췌했다.
‘으악!’
강솜이는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았다.
-기, 길드장님! 저 여자 피눈물 흘려요!
한 가지가 더 확실해졌다.
-저 여자한테 저는 안 보이는 것 같아요!
여자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안전지대도 여자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제 안전지대는 기본적으로 저한테 적의가 있는 존재에게 반응하거든요.
그게 생명이든 몬스터든 유령이든 상관없었다.
강솜이가 걸어놓은 설정값은 ‘설정자를 향한 적의’였다.
-아예 반응 자체가 없어요. 저에 대한 적의는 1도 없어요. 오로지 길드장님만 노리는 거예요.
실제로 그랬다.
여자는 강솜이를 스쳐 지나갔다.
강솜이는 입을 틀어막고 쓰러질 뻔했다.
“죽여…… 버릴 거야.”
여자의 목소리에는 강력한 사념이 담겨 있었다.
오싹한 한기가 느껴졌다.
제럴드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제럴드와는 확실히 달라요.
제럴드에게는 원초적인 파괴욕과 더불어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인 감정들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탐욕. 복수욕. 명예욕. 심지어 자기애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아니었다.
-오로지 살의(殺意)밖에 없어요.
-저도 느껴지네요.
최대한 체력을 회복한 김혁진은 몸을 웅크린 뒤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작은 단도로 텐트를 잘라내고 높이 뛰었다.
‘악! 내 마법텐트!’
저거 비싼 건데!
저거 레벨 70대 보스 몬스터의 특수 공격도 한 번은 막아내는 텐트인데!
강솜이는 울상을 지을 뻔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김혁진은 나뭇가지 위에서 여자를 내려다봤다.
안개 때문인지 감각안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아 이름을 알 수 없었다.
‘얼굴이 낯이 익다.’
김혁진은 짧게 스쳐 지나가면서 본 것이라도 기억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 번에 떠오르지는 않았다.
‘누구더…… 아!’
기억을 더듬어보니 알 것 같았다.
“죽어!”
여자의 눈이 붉게 빛났다.
붉은 안광이 쏘아졌다.
살의가 가득한 안광은 흡사 레이저포처럼 김혁진을 향해 뻗어나왔다.
검림천살검 제1식. 수호.
이센을 부드럽게 원형으로 휘둘렀다.
이센의 검면에 부딪친 안광은 굴절되어 튕겨 나갔다.
‘손목이 저릿하네.’
단순히 파괴력이 강한 것이 아니었다.
‘생기를 잡아먹는 기운이야.’
생명체에게는 극도로 위험한 기운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지금 저 여자도 죽어가는 중이다.
이토록 위험한 기운은 시전자에게도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니까.
“당신 남편을 죽인 것은 내가 아닙니다.”
김혁진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죽어.”
다시금 붉은 안광이 쏘아졌다.
김혁진이 이형환위를 사용하여 붉은 안광을 피해냈다.
‘공격패턴이 다양하지 않다.’
어마어마하게 위험한 능력을 구사하고 있지만 공격패턴이 단순했다.
아무리 위험한 공격이어도 미리 읽을 수만 있다면 위협이 되지 않는다.
‘이건 마왕의 시험이야.’
혼란에 휩싸인 마왕은 시험해 보고 싶었을 것이다.
김혁진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제럴드를 무력화시켰는지.
무력화시킨 힘을 계속해서 운용할 수 있는 건지.
이런 테스트를 통해 변수를 제거하고 싶은 것 같았다.
‘급한 대로…… 새뮤얼 중사의 아내를 유혹하여 타락시킨 거겠지.’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혼한 지 겨우 한 달. 한 달 만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아내.’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했을 거고,
그 틈을 노려 파고 들었겠지.
‘제럴드가 새뮤얼 중사를 죽였고, 새뮤얼 중사를 죽인 사기(死氣)는 마왕이 회수한 뒤 아내에게 적용한 거네.’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을 잃었다.
사랑했던 사람의 존재값은 기적을 일으킨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일반인이었던 저 여자가 이토록 위험한 기운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까닭이었다.
“당신 남편을 죽인 것은 제럴드입니다.”
이성이 남아 있지 않았다.
제럴드와는 달랐다.
제럴드는 스스로 김혁진을 향한 분노를 불태우던 상태였다.
그렇기에 이성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저 힘을 다스릴 수 있었다.
‘이성을 잃게 만들고, 나를 향한 무조건적인 적개심을 심어 넣은 거야. 그래서 공격패턴이 이렇게 단순한 거겠지.’
만약 제럴드와 같은 부류였다면 훨씬 위험할 뻔했다.
스스로 적개심을 가진 상태에서 이성을 가지고 공격했다면 공격패턴도 다양하고 복잡해지니까.
‘마왕은 저 여자를 소모시켜 나를 시험하는 건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신은 이용당하고 있는 겁니다.”
어차피 들리지 않을 것을 알지만, 일부러 여러 번 말했다.
이성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것을 수호자들에게 정확히 알려야 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왕과 적대하는 파벌의 수호자’들에게 알려야 했다.
‘그중에서도 정의로운 명분만 주어진다면,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서라도 나를 도울 수호자들.’
이를테면 ‘저울의 아낙네’ 같은 수호자 말이다.
그래서 여러 번 이성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당신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 여자는 피해자다.
누군가의 싸움에 휘말려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고, 마왕이 정신이 무너진 틈을 파고들었다.
자기 몸이 망가져 가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용만 당하고 있다.
“당신은 약해질 만했어요. 약한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바로 며칠 전 경험해 봐서 알고 있다.
김선화가 제럴드에게 상처 입었을 때, 김혁진은 이성을 잃을 뻔했다.
“나쁜 것은 당신의 연약함을 이용하는 간악한 무리겠지요.”
이를 바드득 갈았다.
연출된 것처럼 보였지만 김혁진은 진심이었다.
‘도무지 용서가 안 돼.’
어떻게 저런 사람까지 이렇게 이용해 먹는단 말인가.
며칠 전에 남편을 잃은 신혼의 아내를 말이다.
“그 비겁함을 저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제게 힘이 주어진다면, 반드시 정의롭고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할 겁니다.”
김혁진은 그 자리에서 영웅력을 소모했다.
영웅력을 사용하면 직접 타격과 공격이 가능해지니까.
‘바로 영웅력을 쓸 줄이야.’
텐트에서 미리 섭취해 두었던 아영의 음식이 빛을 발했다.
태백산맥으로 떠나는 동생을 향한 걱정 어린 마음이 진심이었는지 샌드위치를 하나 먹었을 뿐인데 무려 1영웅력이 차올랐다.
‘누나, 고마워.’
영웅력이 없었다면 일이 어려워질 뻔했다.
“미안하지만 잠시 제압하겠습니다.”
김혁진은 다시금 붉은 안광을 피해 거리를 좁혔다.
“죽어!”
여자가 검붉게 물든 손톱을 휘둘렀다.
파악!
손톱이 김혁진의 등을 파고들었다.
파스스!
김혁진의 등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프네, 이거.’
살의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 여자가 내포한 사기(死氣)는 생명을 갉아먹는 힘.
그 본질을 알고 있는 강솜이가 눈을 크게 떴다.
‘길드장님!’
이건 방어력과 무관했다.
방어력과 상관없이, 일단 닿으면 생명력이 고갈된다.
주변에 말라비틀어진 수많은 나무와 풀처럼.
‘음? 멀쩡하시네?’
그런데 연기가 멈췄다.
여자가 손톱으로 김혁진의 등을 마구 할퀴었지만 그뿐이었다.
김혁진은 여자를 꽉 안았다.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정화한다.’
여태까지 그렇게 해왔듯 사기를 정화 시켰다.
“으아아아악!”
여자는 한참을 발버둥 치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주, 죽었어요?”
“아뇨. 괜찮을 겁니다.”
김혁진이 말을 이었다.
“마왕의 행보를 싫어하시는 다수의 수호자분들이 계시다고 알고 있습니다.”
강솜이는 입을 다물었다.
플레이어들이 어지간해서는 지양하는 플레이가 펼쳐졌다.
‘수호자들을 직접 언급하셨네.’
리스크가 너무 높은 플레이 방법이다.
강솜이는 잠자코 김혁진을 말을 들었다.
“그와 저는 서로 대치되는 플레이를 진행 중이고, 서로가 서로의 앞길을 막을 수밖에 없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는 그의 길을 가고, 저는 저의 길을 가야 합니다.”
서로 부딪치는 것 자체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가족을 잃어본 김혁진이다.
그래서 마음을 너무나 잘 안다.
그 마음을 이토록 더럽게 이용해 먹다니.
“죄가 있다면, 남편을 너무 사랑했던 죄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왕은 그것을 간악하게 이용하여 더러운 플레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플레이방식이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방식입니다.”
얼마 후.
여자가 정신을 차렸다.
여자는 자기가 왜 이곳에 있는지도 몰랐다.
엉엉 울면서 새뮤얼을 찾았다.
그 모습을 보며 김혁진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자초지종을 알게 된 그녀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녀의 이름은 엘라라고 했다.
“죄송해요.”
“괜찮아요. 나쁜 건 당신이 아닙니다.”
엘라는 김혁진이 전하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신도 가족을 잃어보았나요?”
네. 잃어봤습니다.
회귀 전에요.
그렇게 답할 수는 없었다.
“잃어보지 않았어도 그 슬픔에 공감할 수는 있어요.”
날이 밝으면 미국으로 돌려 보내주기로 했다.
밤이 깊었다.
달이 크게 떴다.
강솜이가 다시 마법 모닥불을 피웠다.
“여기. 따뜻한 보리차예요. 마셔봐요.”
그리고 또 한참이 흘렀다.
그녀는 모닥불을 바라보다 울었다가, 웃었다가, 새뮤얼의 사진을 보았다가,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았다가를 반복했다.
김혁진은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했다.
김혁진이 입을 열었다.
“제게 도와달라고 말하세요.”
“……네?”
진심이었다.
“제가 당신을 도와드릴게요.”
엘라의 몸에서 희미한 노란빛이 새어 나왔다가 사그라들었다.
“저, 저를 어떻게…….”
“그냥 말만 하세요. 도와달라고.”
“그게…….”
다시 노란빛이 새어 나왔다.
아까보다 훨씬 밝았다.
“말만 하면 돼요.”
모든 상황은 완성되었다.
염치없다고 느꼈는지 여자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러는 사이, 노란빛이 점점 더 밝아졌다.
말만 해라.
도와주겠다.
공수표 같은 저 말이 어찌나 위로와 힘이 되는지.
신기한 일이었다.
“당신이 도와달라고 말을 하면, 제가 도울 것이고.”
김혁진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이 상황에 분노하시는 수호자분들도 동참하실 겁니다.”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행했다면 굉장히 위험한 연출이었다.
그와 동시에 여자의 몸에서 강렬한 노란빛이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