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628)
#재능만렙 플레이어 628화
적혈 결사대로서 모인 저들의 염원은 그저 ‘구해줘’가 아니었다.
저들은 동기가 어찌 됐든 그 나름대로의 대의명분과 신념을 가지고 이 자리에 모였다.
모두가 적혈 결사대인 것은 아니었지만, 적혈 결사대로서 모인 사람들의 비율이 6할은 넘는 것 같았다.
‘저들의 진짜 염원은…… 자신들의 신념을 배신한 허이촨에게 합당한 벌을 내리는 것.’
화센기업이 지원을 하기는 했지만, 적혈 결사대에게 돈을 주거나 아이템을 후원하지는 않았다.
본격적인 전쟁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고, 적혈 결사대는 그 어떤 대가도 받지 않았다.
다시 말해 저들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발적으로 김혁진을 타도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라는 뜻이었다.
‘그 정도의 신념과 행동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을 오히려 죽여 버리려고 했어.’
허이촨(청일)은 잘못 생각한 것 같았다.
애초에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신념을 배신당한 사람들.’
그 사람들의 분노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서희.”
“알았어요.”
안서희의 붉은 실이 주변으로 뻗어 나갔다.
그것은 마치 곡식을 갉아먹는 메뚜기떼처럼 주변의 모든 폐건물들을 갉아냈다.
이곳이 삽시간에 폐허가 되어 버렸다.
건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공터로 변했다.
“어?”
“뭐, 뭐지?”
건물에 흩어져 분산되어 있던 사람들.
출구 쪽에 모여 있던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페드로는 안서희의 신기한 능력에 눈을 깜빡거렸다.
‘이런 게 된다고?’
이런 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공간의 재구성?’
공간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버린 느낌이었다.
폐건물들이 모조리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렸으니까.
사람들만 존재하는 공터가 되어 버렸다.
“기, 김혁진이다!”
“거신군주?”
사람들은 거신군주를 발견했다.
그들 중 몇몇은 김혁진을 향해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혁진은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나를 적으로 인식한다는 건가?’
저들은 분명 납치당했음을 인지했고 스스로 이용당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김혁진 자신을 적으로 인지한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일백의 염원’을 성취하십시오.]김혁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분들 중 다수가 저를 죽이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스템상 ‘염원을 가진 문무왕의 백성’으로 설정되어 있다.
저들의 마음을 돌리고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찬란한 노란색으로 빛나는 세계가 말해주었다.
반드시 이곳에서 무엇인가를 해내야 했고, 김혁진은 본능적으로 그 방법을 깨닫고 실천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시스템은 여러분들을 제 백성으로 설정하였습니다.”
그 사실은 적혈 결사대를 비롯하여 납치된 사람들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허이촨은 당신들을 이용하고 버리려 하였습니다.”
허이촨은 아니라고 변명하려고 했다.
소리를 내려 했지만, 내지 못했다.
‘억……!’
심장이 쪼그라드는 통증이 느껴졌다.
허이촨의 심장을 감싸고 있는 붉은 실이 허이촨의 심장을 강하게 압박했다.
“당신들의 신념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당신들은 신념을 배신당했습니다.”
김혁진은 허이촨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용서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당신들의 신념을 배신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습니다.”
안서희의 붉은 실이 허이촨을 몸을 꽁꽁 감싸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심장을 제압당한 허이촨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저는 여러분들의 왕이며.”
김혁진은 문무왕이다.
문무왕은 백성들로부터 영웅력을 획득할 수 있는 특별한 칭호이기도 했다.
그리고 김혁진은 그 영웅력을 최대한도로 확보할 수 있도록 연출을 병행했다.
“당신들의 왕은 당신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며 이것은 그 증표입니다.”
허이촨을 군중들 사이에 던져 버렸다.
“여러분의 뜻대로 하십시오.”
* * *
안서희는 담담한 눈으로 허이촨을 최후를 지켜보았다.
‘아쉽네.’
터진 심장을 억지로 구조화하여 연명시키고 있었다.
마지막 피날레는 자신이 장식하고 싶었다.
감히 오빠의 것을 탐냈으니까.
그런 놈이라면 내가 목을 베어버려야 하니까.
그렇지만 안서희가 나설 일은 없었다.
신념을 배신당한 군중들에 의하여 허이촨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끝난 것 같아요.”
“그래.”
“이 공간은 언제까지 유지할까요?”
“조금 더.”
“알겠어요.”
김혁진은 차분하게 다음 알람을 기다렸다.
그가 예상한 것이 맞다면 ‘일백의 염원’을 성취한 것에 대한 다음 알림이 이어질 것이었다.
[‘일백의 염원’이 성취되었습니다.]무려 일백의 염원이 한 자리에서 성취되었다.
순간, 세상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일시 정지 권능이 펼쳐졌다.
중요한 것을 전달할 때에 늘 그렇듯 세니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중요한 전달사항이 있습니다.”
“그래.”
“동일 필드에서 동 시간대에 일백의 염원이 성취되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김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서 그에 해당하는 영웅력을 획득하실 것입니다.”
“다 아는 내용을 전달하려는 건 아닐 테고.”
“이번에 획득하는 영웅력은 매우 특별한 형태의 영웅력입니다. 시스템 설정상, 자신의 정의를 배신당한 백성들의 염원을 이루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의를 배신한 주체가 스스로를 [마왕]이라 주장하는 자 혹은 [마왕의 측근]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앞으로 저는 마왕과 그 세력을 통틀어 [마왕군]이라고 명명하겠습니다.”
마왕군과 대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오늘은 좀 특별한 것 같았다.
마왕에게 배신당한 백성들의 염원.
그것도 무려 히든피스인 일백의 염원을 발동시키고 달성했다.
“만약 오늘 김혁진 플레이어가 일백의 영웅력을 획득하고 특별한 조건을 만족시킨다면, 해당 차원 최후의 시나리오. [심판]을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일시 정지 권능이 끝났다.
정보를 전달한 중간 관리자 세니아는 모습을 감추었다.
‘일단은 영웅력 획득이 우선인가.’
김혁진은 잠시 기다렸다.
본래 1영웅력을 획득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혁진은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김혁진은 기이하리만치 많은 양의 영웅력을 한 번에 획득해 왔으며, 그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리라 짐작했다.
[1 영웅력을 획득하였습니다.] [2 영웅력을 획득하였습니다.]알림이 이어졌다.
……
……
……
[98 영웅력을 획득하였습니다.]그런데 영웅력이 더 이상 상승하지 않았다.
‘여기까지만 해도 기적이기는 한데.’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멈출 거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다행히 김혁진에게는 영웅력을 높일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존재했다.
김혁진은 더 늦기 전에 인벤토리에서 김밥을 꺼냈다.
상황에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악스럽게 김밥을 입속에 욱여넣었다.
[99 영웅력을 획득하였습니다.]영웅력 획득이 멈추는가 싶었지만 결국 ‘일백의 영웅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100 영웅력을 획득하였습니다.] [101 영웅력을 획득하였습니다.]아예 1영웅력을 초과해서 무려 101에 달하는 영웅력을 획득해버렸다.
이 정도면 아영표 김밥을 먹지 않았어도 100 영웅력을 획득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백의 영웅력’을 소모하여 최후의 시나리오 ‘심판’을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단, 조건이 존재합니다.]세니아도 특별한 조건을 달성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 조건의 내용이 전달되었다.
김혁진의 머릿속에 쉴 새 없이 정보가 밀려들었다.
정보가 거대한 해일이 되어 온몸을 덮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찔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저도 모르게 의식을 잃을 것만 같았다.
‘똑바로 정신만 차리면 돼.’
여러 번 기절하면서 기절에도 감이 생겼다.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 정도면 기절은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심판’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문무왕의 위엄’이 필요합니다.]김혁진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요약하자면 최후의 시나리오인 심판을 제대로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문무왕으로서의 자질을 평가받고 시스템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를 위협하고 감히 내게 불손한 마음을 품은 저들을 소거하라……인가.’
그것이 마치 문무왕의 지상명령인 것처럼 다가왔다.
정보의 홍수와 해일 속에서 김혁진은 몸이 휩쓸리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김혁진은 어지러운 와중에도 씨익 웃었다.
‘시스템이 어지간히 안달이 난 것 같네.’
시스템은 강요하고 있었다.
저들을 모두 죽여버리라고.
그것도 상당히 구체화된 방법까지 제시해주었다.
‘거인왕 카툴루의 능력. [안식의 번개]를 사용하여 영원한 안식을 내려라라.’
시스템이 이렇게 친절하게 모든 내용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다니.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군.’
그래서 김혁진은 안식의 번개를 사용하지 않았다.
혼자서 중얼거렸다.
독백이기는 했지만, 시스템에는 그 뜻이 분명히 전달될 터였다.
“저들은 나의 백성이고, 나는 내 백성을 외면하지 않는다고 공언했다. 한 번 신념을 배신당한 이들을 또다시 배신한다면, 그것이 과연 왕이라고 할 수 있나?”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선일이 히죽 웃었다.
“저놈의 연출병은.”
조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조커는 지금의 상황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왜 김혁진은 자신과 강선일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김혁진의 기감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말이다.
강선일이 씨익 웃으면서 계속 말했다.
“수호자 놈들 발광하고 있겠군.”
수호자 놈들…… 이요?
수호자를 일컬어 저렇게 대놓고 ‘놈’이라고 표현하는 플레이어는 처음 봤다.
‘아니. 애초에 플레이어가 아닌가?’
강선일의 정체를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강선일이 가까이 다가와 조커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오늘은 운이 좋구나.”
“…….”
“내 기분이 좋으니 살려주마.”
조커는 대꾸하지 못했다.
강선일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최후의 시나리오가 활성화될 것이 확실해졌으니 이제는 되었다라는 목소리만 바람결에 흩어졌다.
* * *
[최후의 시나리오 ‘심판’이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최후의 시나리오 ‘심판’의 활성화가 보류됩니다.]김혁진은 당황하거나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않았다.
‘이곳은 [심판]을 활성화하기에 좋은 곳이 아니야.’
시스템은 마치 이곳이 가장 좋은 곳인 것처럼 정보를 쏟아부으며 김혁진을 몰아붙였지만, 김혁진은 그것에 넘어가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신념을 배신당한 저들을 위로하는 것.
문무왕으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하고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페드로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 페드로가 도와줄 차례가 된 것 같군요.”
“섬김의 명인. 준비 됐습니다.”
일부러 이 곳에 페드로를 데려왔다.
마왕이 이 쪽을 사냥하기 위해 두 가지 안배를 준비했다면, 김혁진은 ‘섬김의 명인’을 준비했다.
“근데 길드장님. 이게 진짜 될까요?”
페드로는 ‘은안’의 권능을 다루는 것을 연습 중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시간’과 관련된 힘을 연습 중이었다.
페드로의 힘만으로는 부족했지만, 부파파의 걸작인 ‘은성 회중시계’의 도움이 있으면 어느 정도 은안의 힘을 다스릴 수 있었다.
“모릅니다. 해보죠.”
김혁진이 제안한 것의 내용 자체는 간단했다.
김혁진이 얼핏 다룰 수 있게 된 ‘청안의 권능’ 과 페드로가 가진 ‘은안의 권능’을 융합하여 사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것을 융합하면 상대의 과거 기억을 읽어내고 염탐하여 진실을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김혁진의 생각이었다.
‘허이촨의 과거 기록을 끄집어낸다라……. 그게 말이 쉽지.’
은안의 권능 하나만 다루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청안의 권능까지 함께 다룬다니?
‘그게 돼?’
심지어 김혁진에게는 청안이 없다.
은안을 다루게 된 페드로는 안다. 이 특별한 눈을 다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청안을 가진 것도 아닌데, 어떻게 청안의 권능을 사용하겠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손해 볼 건 없겠지.’
페드로는 반신반의하며 눈을 감았다.
‘섬김’으로 연결되어 있는 김혁진에게 몸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