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32
232
모든 정황이 그를 지목하고 있다.
멸신구관은 마야를 끌어들이기 위한 곳이다. 마야를 위한 곳이다. 마야의 재탄생을 이뤄준 곳이다.
오귀와 이약도가 어떤 관계인지는 모른다. 마군과 오귀가 어떤 관계인지도 모른다.
아는 것은 마군, 오귀, 이약도가 합심하여 멸신구관을 만들었다는 추측이다.
이것도 모순점이 있다.
멸신구관은 그가 마군을 만나기 이전에 만들어졌다.
그를 위해서 만들어진 곳은 아니란 뜻이다. 더욱이 마지막 구관에 있었던 석상 무공은 그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멸신구관이 있었고, 그곳에 갈 수 있는 사람을 찾다 보니 마야가 찾아졌다?
아무래도 그쪽이 더 신빙성있다.
마군…… 오귀……
이제는 그들의 저의를 의심해야 한다. 마군이 왜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였는지, 오귀의 절기가 어떤 연유로 해서 자신에게 전해졌는지.
‘한 가지 잊은 게 있어. 그놈의 죽음.’
혈귀대주가 떠올랐다.
놈의 죽음과 멸신구관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마야를 무림에 끌어내기 위한 수단치고는 너무 과하지 않은가.
놈의 죽음부터 멸신구관에 이르기까지, 또 콘의 등장까지 모든 과정을 되짚어봐야 한다.
‘놓친 게 있어. 분명히.’
잔접의 출현도 놓쳤다.
흑조편복이 나타난 순간, 제일 먼저 잔접을 떠올렸어야 하는데 몸이 좋지 않아 흘려버렸다.
사방천마가 남도문에 있는 연유도 캐내야 한다.
모든 것이 아귀가 맞아 움직이고 있을 터인데, 지금은 어떤 연관성도 찾아내지 못하겠다.
‘지금 당장은 콘을 지켜보는 수밖에.’
생각할 시간은 많다. 콘을 뒤따르기만 하면 되니 모든 시간이 생각할 시간이다.
이번 싸움으로 또 한 가지 확실해진 게 있다.
콘과 마야는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 철천지원수지간이나 다름없다.
콘의 태도에서 확실히 알았다.
백일몽까지 깨뜨릴 정도로 강력한 살심이라면 인생의 모든 목표가 오직 마야의 죽음이라고 단정해도 무방할 듯싶다.
강금산은 그렇지 않다. 강금산과도 좋은 인연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 강금산이 아니라 콘이 살심을 품고 있다고 봐야 한다.
‘석상 무공을 지닌 자는 누가 되었든, 강금산이 아니더라도 날 죽이려 했을 것…… 석상 무공을 암기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세뇌된 생각이겠지.’
또 한 가지 할 일이 있다.
콘이 무공을 극성까지 수련할 수 있도록 부단히 도와주는 것이다.
그가 누굴 죽이든, 남무림을 초토화시키든 북무림에서 살육전을 감행하든 상관치 말아야 한다. 그가 무공을 극성으로 수련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봐야 한다. 그것이 설혹 무림의 몰락으로 이어질지라도.
그것은 멸신구관을 지은 사람이 원하는 바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콘이 무공을 극성으로 수련해 내는 날, 암중자의 의중이 나타날 것이고 그가 누구인지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콘과 마야는 개와 원숭이.
끊임없이 자극할 생각이다. 한시도 쉬임없이 건드릴 요량이다.
“윽! 아파!”
“엄살 부리지 마요.”
“나긋나긋한 손길은 다 어디 가고 투박한 손길만 있는 거야.”
“호오, 그래요?”
다담선자는 금창약을 잔뜩 떠서 거칠게 쓰윽 문질렀다.
“윽! 아프다니까.”
“아, 미안해요. 손이 워낙 거칠잖아요.”
다담선자가 생긋 웃었다.
마음은 찢어진다. 상처가 너무 깊어서 신경이 상하지 않았는지 염려스럽다. 하나 얼굴에는 아무런 걱정도 띠지 않았다. 마음 편하게 해주는 길이 웃는 것뿐이라는 걸 알기에 활짝 웃었다.
“그걸 말이라고 해? 손이 거치니 더욱 주의해야지.”
“호오!”
“어찌 말하는 게…… 윽! 아, 아파! 아프다니까!”
“이래서야 어떻게 싸움이나 제대로 하겠어요? 어떻게 매번 싸웠다 하면 피투성이가 되어서 와요.”
“아! 아파. 살살…….”
“정말 엄살 부릴래요!”
소립파는 다담선자의 앙칼진 음성을 들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콘이 어떻게 변할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석상 무공을 극성으로 익힌 결과가 어떤 사단을 일으킬지 미리 재단할 수는 없을까.
이건 꼭 독버섯을 키우는 심정이다.
마당 한가운데에 독버섯을 심어놓고, 완전히 자라서 독가루가 풀풀 날리면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콘을 계속 따라갈 거예요?”
“왜?”
“콘은 싸워서 강해지는 게 아니라 마성(魔性)이 짙어져서 강해지는 것 같으니까 하는 말예요. 그럴 것 같으면 굳이 상처까지 입으면서 싸울 필요가 없잖아요.”
“후후! 콘은 나만 보면 잡아먹지 못해서 으르렁거려. 성질을 더럽게 하는 데는 나만한 미끼도 없어. 나만 보면 마성이 촉발될 테고……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악마가 되는 기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을 거야.”
“그전에 죽지나 마요.”
정말 그게 걱정이다.
콘의 무공이 이토록 강해졌으니 앞으로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하루하루가 몰라보게 달라지니 내일은 더 강해져 있으리라. 이러다가 일초지적도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래도 소립파는 자신있었다.
콘이 무신의 경지를 뛰어넘어 지상 최고의 무인이 된다고 해도 그와 동귀어진(同歸於盡)할 수 있는 비장의 수를 지니고 있다.
나중에, 정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 동귀어진할 생각이다. 그때까지 자신을 둘러싼 의문점들이 해소되면 다행이고, 해소되지 않아도 아쉽지만 그 선에서 마무리하련다.
“됐어요. 이따 저녁에 약탕(藥湯) 준비해요?”
“그래 주면 좋고.”
“준비할게요.”
목욕물 대신 약초즙을 우려놓은 약탕에 몸을 담고 영매술을 시전하면 상처가 무척 빠르게 아문다.
깊은 상처지만 사나흘 정도 쉬면 될 게다.
소립파는 눈을 감고 차분한 심정으로 오늘의 싸움을 되짚어봤다.
***
그는 눈을 감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무림인에게는 금기시되는 진기(眞氣) 역행(逆行)까지 시도했다.
피가 솟구치고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렇게 해서라도 버틸 필요가 있었다. 이대로 눈을 감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명을 받은 지 겨우 하루가 지났다.
수삼 년 동안 절기를 갈고닦기만 하다가 무림에 나온 게 겨우 하루 전이다.
하루 동안 펼쳐 본 무공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신법 좀 펼쳐 봤고, 은신술 좀 사용해 봤다. 그것뿐이다. 손이 부르트도록 갈고닦은 무기들은 손도 대보지 못했다.
‘빌어먹을!’
죽어라 애를 써보기는 하지만 심장이 뚝 떨어진 듯 묵직한 울림이 생긴다. 그와 동시에 머리카락을 쭈뼛 세우는 극통도 치민다. 혈류(血流)가 제 역할을 못하는 데 따른 신체 반응이다.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침도 고이지 않는다. 목구멍에서는 단내가 풍기고, 입술을 빠짝 타 들어가는데 축축이 적셔줄 침도 없다.
‘하루…… 빌어먹을! 하루 만에 죽을 운명이라니!’
사천제일룡은 호채마의 접근을 막기 위해 독을 뿌렸을지 모르지만 숨어 있던 그에게는 목숨을 빼앗기는 절명독이 되었다. 이걸 두고 장난 삼아 던진 돌팔매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고 하는 겐가.
‘끄으윽! 크윽!’
심장의 움직임이 둔화되고 있다. 더불어서 그의 죽음도 한결 빨리 다가온다.
‘이제는…… 이제는 더 못 참겠…….’
그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혈취를 쳐다봤다.
추인 한 명에 혈취 한 마리다. 그가 죽으면 혈취도 소용가치가 없어진다. 그래서 추인이 자리바꿈을 할 때는 인정을 베푼다는 의미로 혈취부터 죽이는 것으로 수련받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혈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파공음이 일어나며 오성표(五星?)가 머리에 틀어박혀야 되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는…… 이제는 도저히…….’
콘과 그의 일행들은 한 시진 전에 움직였지만 너무 흔적을 많이 남겨서 쉽게 추적할 게다.
제길! 저승사자가 데리러 와도 다음 추인을 만난 다음에야 따라갈 수 있다는 추인들의 불문율까지 깨고 말았다. 무림에 나선 지 단 하루 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그는 눈을 감았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저주하게 만드는 곳이 있다. 아니다. 남도문 제이무신가에 일신을 의탁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 뼈저리게 절감하는 곳이 있다.
무저부(無底府)다.
문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한 소문을 빌리자면, 무저부에 배정받은 무인들 중 팔구 할이 시신이 되어 나온다고 했다.
시신이라도 볼 수 있다면 다행이다. 무저부는 시신조차도 내뱉지 않는다.
들어간 사람은 많은데 나온 사람은 없어서 끝을 알 수 없는 곳, 무저부라는 명칭이 생긴 유례다.
소문은 맞다.
무저부에 들어선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수련 과정에서 죽는다. 그들의 시신은 화장되고, 뼛가루는 시냇물에 흘려보낸다.
죽은 사람은 무저부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절대로.
산 사람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추인이라는 별호 아닌 별호가 붙으며, 평생을 음지에서 사람 뒤나 쫓다가 생을 마친다.
차마 사람 할 짓이 못 되지만, 무저부 추인들은 남무림의 정의를 위해서 기꺼이 한목숨 내놓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과감히 음지의 삶을 선택했고, 죽는 순간까지도 후회하지 않는다.
무저부에 십팔 추인이 탄생했다.
이백 명을 선발하여 딱 열여덟 명이 탄생했으니 생존 가능성이 일 할도 채 못 되는 지독한 수련이다.
그들이 떠난 무저부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들이 있었어도 음지의 생활을 하는지라 조용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양지차다.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고, 그들이 떠난 자리가 유독 커 보인다.
“다음 애들은 언제쯤 소집하실 생각이십니까?”
“애들이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우리도 좀 쉬세. 다음 애들을 불러들이면 또 한동안은 피 냄새에 절어 살아야 되는데, 다만 며칠이라도 편히 좀 지내자고.”
“일을 하다가 편히 쉬려니 좀이 쑤셔서 그렇습니다.”
굳이 직책을 논하자면 무저부주와 부부주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두 사람에게 직책 따위는 안중에서 벗어나 있었다.
“사람도 참…… 좀 쉬면 어떻다고. 양광(陽光)이 참 따스하이.”
말을 하는 노인은 구순(九旬) 가까이 되어 보였다.
뼈 위에 가죽을 씌워놓은 듯 바짝 마른 체형이다. 피부는 주름살로 가득 뒤덮였다.
옆에 있는 노인은 육순(六旬)쯤 되어 보였다. 구순 노인보다는 키도 머리 하나는 컸고, 형체도 좋았으며, 피부에 불그스름한 광채도 맴도는 게 딱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회랑(回廊)에 쪼그려 앉아 따스한 햇볕을 쬐며 수다를 이어나갔다.
“잘하고 있겠죠?”
“죽은 자식 불알 만지고 있는가?”
“하하! 떠난 자식은 잊어야겠지만 그게 어디 쉽습니까. 매번 만들어내고 떠나보내지만 항상 아쉬움이 남습니다.”
“인생이란 게 그런 거지.”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무저부주와 부부주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누가 봐도 양광을 쬐러 나온 노인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나 그들의 잡담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한 사내가 중문(中門)을 밀치고 들어서는 순간, 두 노인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아버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들 앞에 다가온 중년인이 정중하게 포권지례(抱拳之禮)를 취했다.
쉰 정도 되어 보이는 건장한 사내다. 머리는 벗겨져 반질거렸고, 적당히 붙은 살은 그를 철인(鐵人)처럼 다부진 모습으로 바꿔놓았다.
그렇다. 그를 본 첫 느낌은 ‘단단하다’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모른다. 하나 제이무신가 사람들은 그를 구통부주(鳩通府主)라고 부르며, 중원의 모든 소식을 전해 듣는다.
확실한 것이 아니면 말하지 않는 구통부의 전례를 생각하면 남도문에서 거둬들인 정보보다 더 믿을 수 있다.
그가 찾아왔다.
“벌써? 벌써 말인가?”
육순 노인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회회 저으며 말했다.
“불행히도 맞습니다.”
“누군가?”
구순 노인이 침착한 음성으로 물었다.
“콘에게 붙은 추인 여섯 명이 동시에 당했습니다.”
“여, 여섯 명이 일시에!”
“내부에 간세가 있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일이!”
두 노인은 거의 동시에 말했다.
정녕 믿을 수 없는 말이다. 어떻게 양성한 놈들인데 여섯 명이 일시에 죽는단 말인가.
믿을 수 없다. 하나 믿어야 한다. 소식을 전해온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구통부주 본인이니까.
“누구 솜씨인지는 알아봤는가?”
“한 명은 사천제일룡의 독에 중독되어 죽었고.”
육순 노인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추적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독이다. 사람을 미행하는 중에 독을 만나면 피할 방도가 여간 마뜩치 않다. 미행을 포기하면 간단하겠지만, 죽어서도 미행만은 성공시켜야 하니…… 그런 경우, 추인들은 과감히 독에 뛰어든다. 자신은 중독되어 죽더라도 다음 추인이 미행을 계속할 테니까.
그렇게 가르쳤다. 독에 중독되어 죽었다면 믿을 수 있다.
“다른 다섯 명은 세 명에게 당했습니다.”
“세 명? 누군가?”
“동방천마, 서방천마, 남방천마.”
“사방천마!”
“그놈들이 왜 우리 아이들을 건드렸는가? 이유가 있을 터.”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본 가(本家)에 등을 돌린 거지요.”
“유계의 주공이란 놈, 간덩이가 부었군. 감히 가주님에게 등을 돌리다니. 그럼 우리 아이들을 죽인 건 일종의 시위라는 건가? 이제 관계를 끊었다는? 끌끌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