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ine Digger Gutter Slime RAW novel - Chapter 122
122. 자각
‘지각이다!’
직장인은 황급히 침대에서 뛰쳐나왔다.
어제 W튜브에서 슈퍼카 시승기를 보다가 너무 늦게 잔 게 문제였다.
수면 시간 자체는 평소보다 짧았어도 덕분에 잠은 푹 잤다.
수면이 부족하면 느껴지는 몸의 삐걱거림은 없었다.
그러나 늦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은 조금 융통성이 없다니까.’
평소에는 충분히 자고 나면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잘 깬다.
그런데 오늘처럼 평소 시각에 일어나면 총 수면이 부족한 날은 이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다.
요즘 잠에서 쉽게 깬다고 알람을 설정하지 않은 게 잘못이다.
직장인은 우선 변기에 앉아 묵직한 것들을 발사했다.
평소라면 이 뒤에 샤워했을 거다.
따스한 물을 맞으면 정신이 말끔해지고 기분도 좋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없으므로 급한 대로 을 입에 던져넣고 으로 몸을 훑었다.
을 얼굴에 붙이고 옷을 걸친 뒤 집에서 뛰쳐나왔다.
다니는 회사가 복장에 보수적인 편이라 은 금지다.
도 금지될 뻔했으나 질병 예방 차원에서 회사 밖에서만 허가됐다.
어차피 마을버스에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면 밖에서 걷는 일은 별로 없으니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아직은 그렇게 덥지 않고.
“아···.”
직장인은 한숨 쉬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가장 먼저 온 버스가 문제였다.
으로 코팅되지 않았다.
게다가 저 버스는 지하철역 앞이 아니라 조금 떨어진 정류장에 멈춘다. 걸어야 하는 거리가 늘어난다.
평소에 타던 버스가 올 때까지 몇 분 남았다.
그 몇 분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직장인은 하는 수 없이 슬라임으로 코팅되지 않은 버스를 탔다.
버스가 출발하며 몸이 확 쏠리는 느낌에 바로 후회했다.
그 후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졌다.
가만히 있어도 치아가 덜덜 떨린다.
과속 방지턱을 넘을 때는 와우.
버스가 ‘Can you feel my beat?’이라고 물으면서 박자를 뼛속 깊이 주입한다.
으로 코팅된 버스와 지하철을 타기 시작하고 얼마나 지났다고.
낯설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전에는 이런 것을 타고 다녔다는 사실이 믿기지를 않는다.
집 앞 정류장에서 멈추는 다른 노선의 마을버스는 죄다 으로 코팅됐는데 이 노선만 으로 코팅되지 않았다.
찾아보니까 역시나.
버스 회사가 달랐다.
‘대체 얼마나 해 먹었으면···.’
연금슬라임이 차량을 으로 코팅해주기 전에 회사 주식을 요구하는 건 유명한 이야기다.
강제로 뜯어내는 것도 아니고 돈을 주고 산다고 한다.
거짓말은 아닐 거다.
‘어벼우’가 올린 정보니까.
세상에는 연금슬라임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찬양하고 보는 사람도 있다.
광신이 섞인 그들의 글은 보고 있으면 재밌을 때도 있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무리인 내용이 많다.
연금슬라임이 100인으로 분신할 수 있다니. 무슨 닌자도 아니고.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을 무조건 믿을 수는 없다.
출처를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으니 믿을 만한 정보를 올리는 사람을 찾는 게 가장 쉽게 정확한 정보를 얻는 길이다.
직장인은 꽤 신뢰가 가는 정보를 올리는 사람을 찾아냈다.
‘어벼우’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사람인데 관계자가 아니라면 얻지 못했을 정보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올리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연금슬라임이 주식을 얻는 이유는 장부를 확인하고 주주총회를 소집할 권한을 얻기 위해서라고 했다.
으로 코팅한 차를 타다가 이렇게 으로 코팅하지 않은 차를 타니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바로 실감하게 됐다.
가격은 똑같은데 승차감에는 이렇게 커다란 차이가 있으니 이용객의 수가 몇 배나 차이가 나는 게 당연하다.
코팅을 받지 않으면 회사가 망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도 주식을 내놓지 않고 버티는 건 장부를 공개할 수 없다는 거지.
‘이런 버스 회사는 망해야 하는데.’
진짜 급하지만 않았어도 타지 않았을 거다.
스마트폰을 얼마나 봤다고 멀미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직장인은 스마트폰을 넣고 벽에 머리를 댔다가 골이 울려 바로 뗐다.
‘차라리 을 빌릴까?’
얼마 전부터 슬라임랜드에서 을 대여해주기 시작했다.
후기를 보면 가격이 조금 비싸지만, 그 값을 한다는 평이 많다.
휴대성이 기존의 자전거와는 비교가 안 된다.
스마트폰 크기로 압축해서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으며.
자물쇠를 채우지 않고 밖에 둬도 도난 방지 시스템이 있어서 자전거가 사라질 걱정도 없고.
반납하지 않아도 마감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사라진다고 한다.
편리함 말고 기능도 뛰어나다는 평이 자자하다.
자전거 자체가 매우 가벼워 페달을 강하게 누르지 않아도 쭉쭉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오르막길을 올라갈 때는 보조해주며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는 속도가 과하게 올라가지 않도록 조절해준다고 한다.
-빌딩 옥상에서 떨어진다면 을 꺼내 올라타 벽에 바퀴를 대라. 안전 속도로 땅에 도착할 수 있을 거다.
감속 효과가 얼마나 대단하면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다.
‘우스갯소리겠지?’
은 안전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넘어진다고 해도 에어백이 작동해 운전자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법을 어기면 이 붉은색으로 변해서 알려준다고 한다.
자전거를 처음 타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매우 좋다고 호평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엉덩이가 아프지 않다고.
속도 제한이 아쉽다는 사람도 있다.
-제한 속도 좀 풀어줘! 내리막길에서는 속도감 좀 느끼고 싶다고!
└안전은 의무입니다.
하지만 출퇴근할 때 과속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그 리뷰도 조금 더 스크롤을 내려보니까 홍보였다.
└의 속도 제한이 아쉬운 분은 슬라임랜드로 가세요. 거기에는 다양한 자전거 서킷이 있습니다. 자전거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슬라임랜드에서는 각종 브랜드의 자전거는 물론이고 속도 제한이 없는 도 대여해주니까요.
└여기 진짜 추천. 사방에 이 깔려 있어서 사고가 나도 다칠 걱정이 없음.
직장인은 슬쩍 배를 만졌다.
간식을 과 으로 바꾸면서 섭취하는 열량은 확실히 줄었다.
하지만 식사하는 양은 그대로고 운동하지 않는 건 여전했기에 복부의 말랑말랑함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이와 함께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점이 다행이었으나 조금 아쉬운 것이 사실.
버스 대신 을 타고 다닌다면 배의 지방이 얇아지지 않을까?
쿵.
“윽.”
앞 의자에 무릎을 찍은 직장인은 다짐했다.
으로 코팅되지 않은 버스는 다시는 타지 않기로.
‘을 빌리자.’
직장인은 일이 끝나는 대로 슬라임랜드에 찾아가 을 빌렸다.
바로 슬라임랜드 내부의 자전거 서킷에서 타봤다.
‘진짜 편하네.’
일반 자전거는 안장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엉덩이가 아프기 마련인데 은 무척 편했다.
페달도 가벼워서 밟을 때마다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오르막길도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었다.
다른 자전거였다면 지구가 몸과 자전거를 끌어당기는 느낌에 다리가 부들거렸을 텐데.
“아···.”
직장인은 내리막길을 내려가며 속도 제한의 의미를 깨달았다.
속도가 천천히 올라간다.
페달을 밟아도 어느 이상 속도가 되면 더는 가속하지 않았고.
‘속도감이 아쉽기는 하네.’
그래도 출퇴근할 때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큰 단점은 아니었다.
직장인은 의 장기 대여를 신청했다.
이왕 온 김에 다른 건 무엇이 있나 훑어보는데.
‘자동차 서킷도 있네. 어?’
직장인의 시선이 하나의 페이지에 고정됐다.
거기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아온 다양한 슈퍼카들이 있었다.
‘마음껏 밟아볼 수 있다고?’
다른 놀이기구와 다르게 이것은 차의 대여로 처리돼 요금을 냈다.
차의 가격을 생각하면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니었으나 취미 생활로 하기에는 부담이 되는 가격.
‘포인트가 있잖아.’
대신 낸 금액의 일부를 포인트로 돌려줬다.
이 포인트는 현금으로 바꿀 수는 없으나 슬라임랜드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도 살 수 있었다.
‘어차피 은 계속 살 테고.’
직장인은 큰마음을 먹고 슈퍼카를 한 대 골랐다.
“와···. 씨···.”
전용 서킷으로 이동하자 슈퍼카가 직장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문을 남기는 것조차 무서울 정도의 가격을 자랑하는 차량이다.
직장인에게 이 통통 다가왔다.
그리고 차량의 이용 방법을 설명했다.
그 설명을 읽은 뒤 직장인은 차에 탔다.
시동을 걸자 마치 짐승이 우는 듯한 울림과 떨림이 전해졌다.
“이거지.”
으로 코팅했다면 죽었을 진동이 감성을 위해서 남겨졌다.
역시 연슬은 남자의 로망을 알았다.
“그럼 간다.”
직장인은 페달을 밟았다.
“와···.”
차가 순식간에 가속했다.
마치 차와 몸이 하나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남자는 페달을 강하게 밟았다.
엔진이 한층 강렬하게 울부짖으며 속도계가 빠르고 올라갔다.
순식간에 시속 300km를 넘겼다.
한국 그 어디에서 이런 속도로 달려볼 수 있을까.
핸들을 돌리자 굉장히 쉽게 방향 전환을 할 수 있었다.
남자는 또 감탄했다.
핸들링이 굉장히 쫀쫀했다.
그야말로 자기 손발처럼 차를 조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자는 평지에서 벗어나 오르막길과 커브가 뒤섞인 서킷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시승 시간이 끝날 때까지 실컷 즐겼다.
차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켰다.
평생 이런 체험은 못 할 줄 알았는데 하나의 꿈을 이룬 기분이었다.
남자는 팔찌의 화면으로 시선을 내렸다.
아직 타지 못한 슈퍼카는 다양하게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어? 드리프트를 가르쳐주는 곳도 있어?”
심지어 드리프트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장소도 있었다.
직장인은 월급이 통장을 지나 슬라임랜드로 흘러가게 되리라는 예감을 느꼈다.
‘괘, 괜찮아. 포인트로 을 사면 돼···.’
***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서킷을 오픈하면서 속도감을 즐기는 사람들이 슬라임랜드로 들어왔다.
이도아의 「절규 코스」에서도 속도감을 즐길 수 있지만, 그건 자유가 없으니까.
자기가 지배하는 속도와는 느낌이 다르다.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말고도 윙슈트처럼 한층 더 위험한 것도 체험할 수 있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건 좋다.
무료한 일상을 스릴로 덧칠하여 행복해질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래도 이왕이면 안전한 장소에서 하는 게 좋잖아.
슬라임랜드에서는 사고가 날 가능성이 극히 낮다.
마더가 [치유☆]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만큼 사고가 나도 빠르게 치유할 수 있고.
본래 윙슈트를 즐기던 사람들은 위험이 없는데 무슨 익스트림 스포츠냐. VR로 즐기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평가하기도 했는데.
웃긴 것은 그들도 안전을 위해 날아다닐 때 을 비롯한 을 입는다.
장소 타령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쪽이 훨씬 다채로운 장소를 준비해줄 수 있다.
달처럼 환경을 조성해줄 수도 있다고.
뭐, 아드레날린에 뇌가 절인 사람의 사고방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나.
슬라임랜드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잠시 슬라임랜드는 잊고 내 개인적인 일에 집중할 때다.
오늘은 정체불명의 친구 마키나와 노는 날이니까.
[나 : 헬로헬로.] [마키나 : 하이.]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잠시 잡담했다.
[마키나 : 오늘은 이거.나 : 이 게임을 또 하자고?]
마키나가 하자고 한 게임은 예전에 했던 놀이동산 운영 게임이다.
마키나가 탈출 불가의 놀이동산을 만들었던 그 게임.
[마키나 : 응.]뭐, 마키나가 바란다면야.
게임을 시작했다.
전에는 못 느꼈는데 게임이 현실을 못 따라오네.
내가 만든 슬라임랜드가 훨씬 즐겁다.
슬라임랜드와 비교하면 여러모로 한계가 많았지만, 최대한 즐거운 장소로 만들었다.
그리고 서로 만든 놀이동산을 보여주는데.
[나 : 이거 이번에 만든 거 맞아?마키나 : 맞아.]
마키나는 전에 보여줬던 것과 똑같은 놀이동산을 내게 보여줬다.
더는 발전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이 구조가 최적이라는 뜻인가?
그럴 리는 없다.
그건 이미 이 게임을 끝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니까.
내가 하자고 한 게임이라면 일종의 항의라고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
이 게임은 마키나가 하자고 했다.
이미 끝낸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게임을 마키나가 또 하자고 할 리가 없는데.
달리 할만한 게임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세상에는 새로운 게임이 매일 나오니까.
즉, 이건 마키나가 내게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뜻이다.
무언가 내 상태가 이상하다는 뜻이겠지.
내가 이상해지는 건 대체로 저주가 문제다.
대체 뭐가 문제지?
오만의 저주라면 잘 극복하고 있잖아.
타인의 말에도 잘 귀를 기울이고 있고.
내가 지금 진행하는 일들은 대체로 다 회의를 통해 나온 아이디어들이다.
한스를 비롯한 우리 사천왕이 무언가 제의하면 그 일을 무시하지 않는다.
전부 한스가 괜찮다는 판단을 내린 것들이다.
실제로 전부 반응이 괜찮은 상황이고.
그런데도 문제가 된다는 것은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다는 뜻.
오만의 저주와 싸우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뭐가 있지?
···.
지금 내가 싸우고 있는 적이 오만의 저주가 맞아?
오만이 아니다.
지금 내 상태를 볼 때 분노도 아니다.
상대가 변주를 주기도 하고. 칠죄종은 내가 씌운 프레임에 불과하니까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내 안쪽을 향해 [결계☆] 스킬을 사용했다.
묘하게 헛발질하고 있다는 느낌은 사라지고 제대로 적중한 느낌이 들었다.
‘들켰네. 아쉬워라.’
미친.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명확하게 들린다.
‘다음에 또 봐~.’
보기 싫거든!
잠시 기다려도 머릿속 목소리가 확실히 사라졌다.
“다른 저주인 척을 하는 저주라니···.”
아직 차례가 오지 않은 오만의 저주를 상대로 [결계☆] 스킬을 쓰려고 하니까 제대로 적중을 안 하지!
즉시 내가 요즘 저지른 일을 되짚어 봤다.
“뭐야 이게···.”
내가 그동안 저지른 일들은 걱정과 다르게 굉장히 평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