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ine Digger Gutter Slime RAW novel - Chapter 5
5. F 등급 연금술사
본명, 나이, 성별, 얼굴, 국적.
무엇하나 알지 못하는 내 십년지기 친구 마키나.
10년이나 사귀어 놓고 아는 게 너무 없기는 한데 인터넷 친구가 원래 그렇지 뭐.
중학교 시절 게임에서 만난 뒤로 어찌어찌 인연이 계속됐다.
[나 : 돈 때문에 고민 중.마키나 : 방구석 백수가 돈이 왜 필요?
나 : 다짜고짜 스턴기 박냐?]
그리고 나는 백수가 아니다.
대학생이라는 직업이 있···지 않네. 이 꼴로 대학을 어떻게 가.
아니, W튜버라는 직업이 있잖아.
그런데 그거 수익이 안 나잖아.
내 백수인가?
[마키나 : 돈 급함?마키나 : 빌려줄까?]
마키나는 부자다.
화면을 통해 공간을 넘어 부의 향기가 전해지니까.
옛날 온라인게임에서 운빨 터져서 아이템 자랑 좀 했더니 지갑에서 핵을 꺼내 게임에서 터뜨렸다. 그런 게임을 아이템 하나 처분하지 않고 접을 만큼 부자다.
[나 : 아니.나 : 친구 사이에 돈거래 하는 거 아님.]
온라인으로만 만나는 사람과는 돈거래 하는 거 아니다.
마키나는 믿으니까 사기를 걱정하는 건 아니다.
돈이 관련되는 순간 인연의 끈이 점점 얇아진다.
나 : 빌려준다고 하면서 거절하니 좋아하는 거 뭔데.
나 : 낚시하냐?
마키나 : 주기적으로 친구 목록 정리하지 않으면 썩음.
나 : 냉철한 거 보소.]
마키나가 보여준 지갑의 두께를 생각하면 저러는 게 이해가 된다.
말하는 투를 보면 꽤 젊은 것 같은데 돈이 매우 많다.
젊은 사람이 돈이 많으면 쉽게 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다.
그 행운을 자기에게도 내놓기를 강요하는 사람도 많고.
마키나가 몇 번인가 푸념한 게 기억난다.
그런 사람들에게 시달리다 보면 인간이 싫어질 수밖에.
나는 예외.
슬라임이니까.
[마키나 : 그래서 무슨 일?마키나 : 고민 상담은 언제나 환영.]
어떻게 할까.
화면을 사이에 뒀기에 할 수 있는 말도 있다.
가까우면서도 한없이 머니까.
[나 : 연금술사로 각성함.마키나 : 축하축하축하.]
아무리 그래도 슬라임이 됐다는 말은 못 하겠고 살짝 비틀었다.
연금술사라고 총칭해도 세세하게 분류하면 조금씩 차이가 있다. 약 전문, 도구 전문, 소재 전문 등등.
나도 특수한 효과를 지닌 슬라임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마키나 : 효과는 충분?
나 : 꽤 여러 가지 만들 수 있어.
나 : 정확히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마키나 : 그냥 팔면?
마키나 : 어차피 초보 연금술사에게 대단한 기대하는 사람 없어.
나 : 그래도 슬라임인데?
마키나 : 살아 있지 않은데 무슨 상관?
마키나 : 살아 있어도 무슨 상관?
마키나 : 만든 슬라임이 살아 움직여 애착이라도 생김?
나 : 아니. 그건 아닌데.
마키나 : 필요하면 똥이나 돌도 먹는 게 인간.
마키나 : 효과가 좋거나 맛이 있으면 슬라임이든 뭐든 신경 안 씀.
마키나 : 설령 판매자가 슬라임으로 변신해서 몸을 잘라서 판다고 해도 신경 안 씀.]
등골이 서늘했다.
마키나는 가끔 지나치게 예리한 모습을 보인단 말이지.
[나 : 알았어. 해볼게.마키나 : 정보 정리해 보낼게.
나 : 감사
마키나 : 그래서 어디까지 깸?]
화제가 게임으로 바뀌었다.
옛날에는 함께 온라인게임을 하고는 했는데 요즘에는 다르다. 점점 돈도 많고 시간도 넘치는 마키나를 따라가기 버거워졌다. 그렇다고 레벨이 중요하지 않은 게임을 함께하자니 실력 차이가 워낙 많이 난다.
언제부터인가 같은 싱글게임을 하고 그것을 주제로 이야기하게 됐다.
[마키나 : 느려.마키나 : 빨리 안 깨면 스포한다.
마키나 : 사실···.
나 : 야!]
한동안 마키나와 잡담했다.
[마키나 : HowTo연금상점.pdf마키나 : 도움 될 것임.
나 : 감사감사.]
마키나가 보내준 정보를 훑어봤다.
소소한 팁에서 비법까지.
매우 도움이 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마키나가 박식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런 것까지 알 줄이야.
연금술사로 각성한 것도 아닐 텐데 이런 건 대체 언제 왜 알아보고 이런 자료를 작성했을까.
뭐, 오랜 친구의 정체는 묻어두자.
괜히 파고들었다가 우정만 깨질라.
한국에 사는 연금술사가 만든 물건을 파는 가장 간편한 방법
연금상점.
위탁판매 온라인몰이다.
다른 방법도 있기는 한데 연금상점의 편리함을 생각하면 거의 유일하다고 봐도 된다.
연금술 상품과 관련된 수많은 멍청한 정책들의 굴레가 가장 적게 남은 곳이니까.
연금술 상품과 관련된 멍청한 정책은 정말 수도 없이 많다.
대표적인 것을 하나 뽑아보면 옛날에는 연금술 제품을 팔려면 의사, 한의사, 약사 면허 가운데 하나가 있어야 한다는 미친 법안이 통과됐었다.
나처럼 20대에 각성하는 일도 수두룩한데 그때부터 면허를 따라고? 성적이 안 나오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어떻게든 세 가지 학과 가운데 하나에 들어간다고 해도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투자해 면허를 따라고?
그런 개고생을 하느니 번역기를 동원해 해외 제약회사에 메일 하나 보내는 게 훨씬 간편했다.
연금술사 대부분이 한국에서 탈출했고, 연금술 제품 품귀현상이 일어나 따른 가격이 폭등했고, 던전 공략에 차질이 생기면서 헌터 인력까지 빠져나가 난리가 났었다.
지금은 법이 바뀌어서 천만다행이다.
인력 유출을 막을 여러 대책이 시행되며 한국에서 연금술사로 활동하기 꽤 편해졌다.
우선 연금상점에 물건을 팔려면 연금술사 면허가 필요한데.
이건 20시간에 걸친 온라인 교육 후에 온라인 시험을 보면 간단하게 딸 수 있다.
판매는 연금상점을 통하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무엇을 팔지는 교육 영상을 보며 천천히 생각하자.
그 전에 영상을 찍어서 올려야지.
오늘의 먹방은 이것.
우리나라 고유의 것이다 보니 해외에 나갈 때 사람들이 자주 챙겨가는.
다른 반찬 하나 없어도 흰쌀밥에 이것만 있으면 밥 한 끼를 뚝딱 해결할 수 있는.
한국 문화에서 빼낼 수 없으나 생각보다 그 역사가 짧은 식재료.
고추장.
14kg.
그대로 먹기는 불편하므로 커다란 비닐봉지로 짤주머니를 만들어 담았다.
식초보다 많이 끈적거리니까 영상의 길이는 길어질 거다.
매운맛 챌린지처럼 보이기도 하고.
식초보다는 조회수가 나오지 않을까?
아니, 조회수 신경 안 쓰기로 했잖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고추장을 입에 짜 넣었는데.
“···.”
14kg에 3만 원 정도였나.
싼 것에는 이유가 있구나.
***
설탕 영상을 무한히 반복 재생하던 대학원생은 새로운 영상이 올라왔다는 알람에 바로 들어갔다.
고추장 14kg 챌린지.
고추장이라.
식초는 정말 별로였다.
영상을 반복 재생한 만큼 쌓여가는 정으로 참작해도 식초는 별로였다.
통에 식초라고 적혀 있으니 식초라고 알지 화면으로 볼 때는 누런색 물로밖에 안 보였다. 아마 실제로 식초가 아니라 누런색 물이겠지.
소리도 그저 그랬다.
이상하게 하수구에 물이 빨려 들어갈 때 나는 소리가 떠올랐다.
분명히 다른 데도 그랬다.
보고 있으면 왠지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고.
화장실을 표현한 행위예술이었다면 꽤 그럴듯했다고 할 수 있겠지.
슬라임이 고추장을 짰다.
이번에도 영상미는 밑바닥이다.
식초 영상 다음으로 나와서 그런지 뒤쪽에서 나오는 게 떠오른다.
진짜 된장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아니, 그건 운이 좋으면 조회수가 폭등할 것 같기는 한데.
어쨌든 그리 보고 싶지는 않다.
대학원생은 눈을 감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오~.”
끈덕끈덕한 소리.
끈적끈적한 슬라임을 달팽이관으로 어루만지는 느낌.
입술이 저도 모르게 풀리고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듣고 있으면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좋다.
설탕이 10점 만점의 10점이라면 식초는 2점.
그리고 고추장은 6점.
대학원생은 설탕 먹방 원본을 틀었다.
10점짜리가 있는데 굳이 6점짜리를 볼 이유가 없으니까.
언젠가 설탕이 질리면 심심풀이로 볼 수는 있겠다.
***
원본 조회수 2.5천.
쇼츠는 15만 정도 나왔는데 꽤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현대인의 필수품.
전국 자영업 가운데 취급하는 매장이 가장 많은.
한번 중독되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 어려운 식재료.
커피답다.
이것도 설탕처럼 소리가 좋다는 평가가 많고.
역시 단단한 음식을 먹는 게 소리가 좋은 것 같다.
고추장?
그런 거 먹은 적 없는데?
-왜 피X을 먹는 거야?
-역겨워.
이런 댓글이 잔뜩 달린 영상 따위 올린 적 없는데?
남의 나라 전통 조미료 무시하지 말라는 댓글에서 시작돼 개고기와 푸아그라 싸움까지 간 영상 따위 올린 적 없는데?
아, 무언가 떨어졌다.
-약간 소금기가 도는 슬라임.
냠.
아무것도 안 떨어졌다.
설탕 쇼츠가 드디어 1,000만을 돌파.
무려 1,201만을 찍었고 구독자도 1,007명으로 천 명을 가까스로 넘어 수익 신청 기준을 통과했다.
바로 이메일을 보내서 PIN 번호가 적힌 편지를 기다렸다.
수익을 내려면 이 PIN 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이메일로 보내주면 편한데 왜 굳이 우편으로 보내는지.
옛날에는 몇 주 걸렸는데 지금은 일주일 안에 온단다.
너무 기다리지는 말자.
W튜브는 부수입이고 연금술이 주된 수입이 돼야 하니까.
이틀 연속으로 잠을 안 자고 교육 영상을 봤다.
시험도 치러서 연금술사 면허가 바로 나왔다.
지금부터 나도 F 등급 연금술사!
고민하고 고민해서 판매할 상품을 정했다.
-항균, 탈취, 피부 재생 효과가 있는 슬라임. 신발에 넣고 밟으면 발과 신발의 틈새를 메워준다.
약 종류가 아니라 도구를 팔기로.
F 등급 연금술사의 F는 신용이 눈곱만큼도 없는 초짜 연금술사를 뜻한다.
연금상점에 물건을 보내면 거기서 안전 검사를 실시하기는 한다.
하지만 검사를 통과했다고 해도 그런 초짜가 만든 음식을 먹고 싶을까?
한의사만 해도 너무 젊으면 신뢰가 잘 안 간다고 하는데. 지식도 체계도 없는 초짜 연금술사가 만든 약을 먹으라니. 진짜 미친 듯이 절박한데 주머니를 아무리 털어도 먼지밖에 안 나올 때 아니면 선택 안 하지.
물론 싼 맛에 먹는 사람도 있다고는 한다. 초짜가 만든 약은 연금술사의 실력이 미천한 만큼 독성이 있어도 약하니까. 하지만 그런 괴짜가 많을 리도 없으니 시장이 너무 작다.
그래서 가능한 한 거부감이 적을 물건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먹는 것보다 만지는 게 거부감이 적은 게 당연하다.
거기에 물건과 닿는 부위가 보통 더럽다고 여기며 피부도 튼튼한 발이라면?
나는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항균, 탈취, 피부 재생.
이 효과가 어느 정도 있는지는 모른다.
내 발바닥은 아기가 만지고 깜짝 놀라 질투심을 불태울 만큼 매끈매끈 반들반들하니까.
100개를 상자에 담아 서울중앙연금센터에 착불로 보냈다.
희망 가격은 개당 천 원. 한 쌍에 2천 원.
가장 싼 깔창의 가격을 참고했다.
더 비싸게 쓰고 싶기는 한데 초짜 연금술사 상품은 이익을 생각하고 팔면 안 된다는 팁이 있었다.
빨리 매출 200만 원을 달성해서 E 등급은 찍어야 한다고.
각성 뽕에 취해서 비싼 재료로 물건 만들었다가 안 팔려서 전부 폐기하고 빚만 생기는 게 일반적인 F 등급 연금술사란다.
그래도 첫 한 달은 수수료가 0이니까.
신청하면 무료 컨설팅도 해주고.
참고로 F 등급 연금술사에게서 연금상점이 떼어가는 수수료는 60%.
아무리 모든 물류 관련 업무를 전담해준다고 해도 60%.
E 등급 연금술사는 50%인데 F 등급은 60%.
첫 한 달에 매출 200만 원을 못 찍으면 지옥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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