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ine Digger Gutter Slime RAW novel - Chapter 59
59. 추수감사절.
무겁고 양이 많아 조리하기 까다롭고.
기름기가 부족하고 특유의 냄새가 나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고기.
통째로 기름통에 넣었다가 불을 내기 일쑤인 재료.
칠면조.
너무 욕만 하는 거 아니냐고?
외국 영화에 나오는 대로 만들려고 통째로 조리할 때의 이야기다.
옛날 통닭과 비슷한 방식으로 몸통과 다리를 펼쳐서 조리하면 한결 쉽다.
아예 분해해서 조리하면 더 쉽고.
가슴살은 몸에도 좋고 맛도 좋다.
그리고 비교 대상이 닭이다 보니 감점이 들어갈 수밖에. 값도 싸고, 기름기도 많고, 조리하기도 편한 닭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조금 그렇지?
쿵.
그래도 칠면조에는 닭이 낼 수 없는 박력이 있다.
털과 내장을 제거한 뒤의 무게가 10kg.
닭은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체격이다.
이걸 산산조각을 내서 요리하면 무슨 재미가 있어.
양파, 레몬, 감자 등을 슬라임에 먹인 뒤 칠면조 안에 밀어 넣었다.
슬라임 안에 손질한 오리를 넣고.
오리 안에 슬라임을 넣고.
슬라임 안에 손질한 닭을 넣고.
닭 안에 슬라임을 넣고.
슬라임 안에 달걀을 넣었다.
칠면조를 통째로 슬라임으로 덮고 오븐에 넣으면 끝.
오늘 영상은 조금 심심하기도 하고, 올리면 따라 한다고 칠면조에 을 넣고 오븐에 굽는 사람이 나올 것 같다. 깔창 슬라임이면 그나마 낫지. 시리즈를 넣고 굽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에 있냐고?
을 회로 만들어 먹는 사람도 있는데 칠면조에 시리즈를 넣는 사람이 없을까. 제 딴에는 훈제하려고 그랬을 수도 있잖아?
게다가 이번 영상의 주된 시청자는 미국 사람들.
코스프레 의상에 ‘이 옷을 입는다고 슈퍼 히어로가 되지 않습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지 마십시오.’ 같은 경고문을 박아야 하는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이번에는 먹방만 올리자.
냠냠냠.
잘 먹었습니다.
즐거운 추수감사절 보내세요.
그러면 안녕~.
***
미국의 소방관은 잘게 자른 빵, 소시지, 사과, 양파, 칠면조 고기 등을 넣어 만든 스터핑 위에 치즈를 깐 요리를 전자레인지에서 꺼냈다.
소방관은 추수감사절에도 일한다.
내일 본가에도 못 가니 추수감사절 기분이라도 내고 싶어서 사 온 음식이다.
식탁에 앉아 숟가락으로 음식을 퍼먹으며 W튜브에 들어갔다.
때마침 SLimelove가 새로운 영상을 올렸다.
SLimelove는 동료들끼리 슈퍼 슬라임이라 부르는 방화복의 제작자.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 슈퍼 슬라임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살아난 목숨에는 자기와 동료의 목숨도 포함돼 있었다.
목숨만을 살려줬을 뿐만이 아니라 자부심도 세워줬다.
슈퍼 슬라임을 입고 변신하는 모습은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의 시선도 사로잡았다.
그러자 변신하는 소방관이 주인공인 슈퍼 히어로 만화가 나왔고, 이 만화는 크게 성공하였고.
그 결과.
소방관이 의사를 제치고 수년 만에 장래 희망 2위를 탈환했다.
부동의 1위인 헌터를 제외하면 사실상 1위나 다름없다.
실제로 소방관이 되는 방법을 묻는 문의는 물론이고 학교 초청이나 소방서 견학도 많이 늘어났다.
어디 그뿐인가.
취미생활 또한 풍족해졌다.
요즘 미식축구는 고대 검투사들의 전투를 방불케 할 만큼 화끈하다.
모든 팀이 을 착용하여 부상의 위험이 적어지자 선수들의 행동에서 망설임이 사라졌다.
전열끼리 충돌했을 때의 그 박력은 보는 것만으로도 살이 떨릴 지경.
거칠면서도 강력한 전술이 쉴 틈 없이 튀어나와 경기의 행방은 예측 불가. 언더독의 승리도 자주 일어나기에 매 경기 손에 땀을 쥐게 된다.
현재 미국은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피 없는 혈전에 광란하고 있다.
지금도 이런데 슈퍼볼이 열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덕분에 직업 만족도와 사생활 만족도가 최고로 올라간 지금.
소방관은 SLimelove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웃는 얼굴로 영상을 재생했다.
화면에 떠오른 음식을 보고 입꼬리가 내려갔다.
뒤늦게 제목을 확인했다.
그리고 절규했다.
“No! Slime. No!”
하필이면 칠면조라니!
슬라임이 자국의 문화를 존중해주는 건 기쁘다.
하지만!
이 나라는, 마당에 드럼통을 가져다 놓고 안에 기름을 끓인 뒤 냉동 칠면조를 통째로 던져 넣는 인간들이 사는 나라라고!
소방관의 절규는 아랑곳하지 않고 펭귄 슬라임은 칠면조 가슴살을 쭉 찢었다.
음식을 던지거나 호들갑을 떠는 대신 차분하게 살점을 높게 들어 올려 입에 쏙 떨어뜨렸다.
바삭바삭.
우물우물.
들려오는 소리에서 껍질의 바삭바삭함과 내부의 촉촉함이 절로 전해진다.
몸을 천천히 좌우로 흔들며 즐겁게 먹는 모습을 보니 절로 침이 나온다.
꿀꺽.
삼키는 소리에 소방관도 침을 삼켰다.
‘왜 저렇게 맛있게 먹는 거야!’
이런 조각난 칠면조가 아니라 저렇게 통째로 요리된 칠면조를 먹고 싶다는 욕망이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안 된다.
이 마음을 다른 사람들도 품으면 안 된다.
칠면조는 제대로 조리하기 매우 어려운 재료. 특히 저렇게 통째로 조리하여 먹음직스러운 모양이 나오게 하는 것은 고난도 작업이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시도했다가는 실패하거나 사고 난다.
차라리 추수감사절 당일에 올렸으면 가게들이 문을 닫아 사람들이 칠면조를 구할 수 없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전날에 올려서!
칠면조 고기가 점점 줄어들고 안에 숨어 있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터덕킨!’
터키 안에 오리를 넣고 그 안에 닭까지 넣은 음식.
제대로 요리만 한다면 가족 전체의 취향을 충족할 수 있는 요리.
그리고 영상 속 터덕킨은 매우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왜 오늘따라 저렇게 차분하게 먹는 거야!’
장난치지 않고 문화를 존중해준다는 느낌은 좋았으나, 너무 좋아서 문제였다.
평소보다 더 음식에 집중됐다.
음식에 집중될수록 더 먹고 싶어졌고.
오리도 빠르게 사라지고 아래서 잘 구워진 닭이 나왔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게 맛있어 보이게 구울 수 있을까.
고기를 전부 먹고 마무리로 달걀까지 먹은 슬라임은 뼈로 짧은 문장을 만들었다.
[Happy Thanksgiving]의자에 몸을 맡긴 소방관은 희망 회로를 돌렸다.
‘전통적인 칠면조 구이가 아니라 터덕킨이라면 직접 만드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까?’
칠면조는 대충 기름에 던져 넣으면 될 것 같지만, 저건 어려워 보이지 않는가.
심리적 장벽이 조금 더 높다.
멍청한 짓을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지 않을까?
—
‘그럴 리가.’
소방관은 활활 타오르는 칠면조와 기름통을 향해 소화기를 발사했다.
***
[의 오남용. 정말 괜찮은가?]“현재 극에 달한 의 오남용. 이대로 둬도 괜찮을까요? 저희 제작진은 들어온 제보에 따라 현재 이뤄지는 의 오남용 실태를 재현해 보았습니다.”
—
치익. 꿀꺽꿀꺽.
“캬!”
시원한 맥주를 한 캔 뜯어 한 모금 마시고.
바사삭.
기름친 닭튀김을 물어뜯고.
꿀꺽.
기름기를 맥주로 싹 씻어 내린다.
이게 인생이지.
옛날에는 치킨에 맥주를 먹어대면 통풍을 걱정해야 했지만, 요즘은 그런 걱정도 없다. 한 번 먹어주면 체내의 요산이 싹 쓸려나가니까.
독젤슬이 통풍에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돈 뒤로 치맥 매출이 야금야금 올라가더니 지금은 한 달 전과 비교해서 두 배로 뛰었다는 기사도 나왔다.
뱃살 걱정도 없다. 을 먹으면 혈액에서 불필요한 당분과 지방이 쓸려나가니까.
야식도 괜찮다.
속 쓰림도 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
—
“야. 내가 주는 술 못 마시겠다는 거냐.”
“부장님. 애를 너무 괴롭히시는 거 아닙니까?”
“요즘은 이 정도 마셔도 돼! 쓰러지면 이랑 먹으면 되잖아!”
“5차 가자! 5차!”
“너무 달리시는 거 아닙니까?”
“괜찮아! 이랑 먹으면 돼!”
—
아침은 설탕을 듬뿍 넣고, 메이플 시럽을 듬뿍 뿌리고, 큼지막한 버터를 올려놓은 핫케이크.
함께 마시는 커피에도 시럽을 듬뿍 넣는다.
출근하는 길에 달콤한 캐러멜 마키아토를 사서 올라간다.
휴게실에서 주전부리를 챙겨서 입에 던져 넣으면서 일한다.
점심시간.
요즘 쌀쌀해졌으니까 점심은 얼큰한 칼국수 한 사발.
바닐라 라테를 한 잔 사서 올라간다.
일하는 와중 이것저것 우물거렸지만, 그래 봐야 간식. 저녁이 들어갈 배는 충분히 남아 있었다.
오늘은 조금 매콤한 게 당기니까 양념치킨과 맥주.
맛있게 먹고 집에 가다가 편의점에 들러서 육포를 산다.
우물거리면서 드라마를 보다가 자기 전에 라면 한 사발 먹으며 끝.
괜찮다.
치아 건강은 으로 챙기고.
혈관 건강은 과 로 챙기니까.
—
용기가 있네.
지금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을 공격하고.
자극적으로 만들려고 과장한 점은 있어도 요즘 사람들의 생활상을 반영했겠지.
내가 이래서 본격적인 연금약 출시를 망설이는 거다.
애초에 약으로 사용하라고 만든 이 아닌데도 사람들의 삶을 이렇게도 바꿨다.
더 강력한 연금약을 만들어 돌이킬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섭다.
나는 꽤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댓글은 꽤 공격적이네.
-옜다 관심.
-과장 ㅈㄴ 심하네. 실제로 저렇게 행동하는 사람 없음.
-간식은 로 충분하거든? 먹다 보면 설탕은 너무 달고 느글느글해서 못 먹거든?
-5차 ㅇㅈㄹ. 요즘 부장님들 운동하느라 바쁘셔서 회식도 잘 안 한다.
└김 과장. 이번 주말에 시간 되나?
└회식 vs 등산.
└차라리 죽여줘···.
-요즘 주말에 애들 데리고 나온 아저씨들 진짜 많아졌음
└ㅇㄱㄹㅇ. 어디를 가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불편.
└놀이동산 가지 마라. 줄만 서다가 돌아온다.
└동물원에 가면 펭귄밖에 안 보임.
└수족관이겠지.
└.
└아 ㅋㅋㅋㅋ.
댓글이 나를 지켜주기는 하는데 이걸 얼마나 믿어도 될지 잘 모르겠다.
내가 볼 때는 영상이 꽤 그럴듯하니까. 실제로 저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자제해야 할까?
“···흔들리지 말자.”
목숨 걸고 질병 제비뽑기하겠다는 사람을 내가 일일이 다 막을 수는 없다.
포기할 건 포기해야지.
모든 것을 챙겨갈 수는 없으니까.
그것보다는 애들이 놀 장소가 없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걸린다.
놀 장소 잘 만들 자신 있는데.
한 번 들어오면 나가기 싫어지는 장소 만들 자신 있는데.
마침 30만 평이나 되는 땅이 생길 것 같다.
지하에 쓰레기처리장을 만들고 위쪽은 슬라임랜드를 세우는 거다.
물론 지금 이대로는 이 계획을 진행할 수 없다.
”죽음과 촉수가 가득한 슬라임랜드에 어서 오세요!“
이런 꼴이 될 테니까.
하지만 어떻게든 땅을 되살리는 것에 성공한다면?
그 쓰레기 매립지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기반만 잘 닦아두면 충분히 놀이동산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쪽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대체 어떻게 기반을 깔아둬야 나중에 태클이 들어오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연금 실험장에 손님을 들일 때 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도 잘 모르겠고.
맡길 사람이 있으면 좋겠는데···.
[저장+ 스킬의 레벨이 28로 올랐습니다.] [특성 : 슬라임☆☆의 레벨이 25로 올랐습니다.] [새로운 스킬이 생성됐습니다.]응?
새로운 스킬?
어?
레벨 25 때 스킬을···.
안 받았네?
어라?
상태창 버그 났어?
내가 레벨 15 때 공돌이를 분열했고, 다시 레벨 15를 찍었을 때는 [변환] 스킬을 얻었다.
레벨 20 때 첫 저주를 토해냈고, 다시 레벨 20을 찍었을 때는 [증식] 스킬을 얻었다.
스킬 선택권을 얻은 레벨에서 [특수 분열]을 선택하면 다시 그 레벨까지 올렸을 때 자동으로 새로운 스킬을 얻을 수 있다.
해당 레벨에 세 번째 도달하면 스킬을 얻는 대신 스킬 레벨이 오른다.
공순이를 분열한 레벨은 25.
규칙대로라면 25까지 다시 올렸을 때 새로운 스킬을 얻었어야 했다.
스킬을 얻는 규칙은 내가 귀납법으로 알아낸 규칙이니까 틀렸을 수도 있다.
상태창 어디에도 설명서는 없으니까.
아니면 시스템이 내 상항을 읽고 적절히 대응했다거나?
[특성 : 슬라임 ☆☆]의 레벨은 스킬 레벨의 평균으로 정해진다. 새로운 스킬을 얻어도 특성 레벨이 떨어지지는 않지만, 다음 레벨까지 올리려면 훨씬 긴 시간이 걸린다.레벨 25 때는 하루라도 빨리 특성 레벨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지.
만약 그때 새로운 스킬을 얻었다면 특성 레벨이 올라가는 속도가 상당히 느려졌을 거다.
정말 배려해준 걸까?
이번에 무슨 스킬을 얻느냐에 따라 배려인지 버그인지 알 수 있을 같은데.
“상태창.”
스킬:
―
가속 Lv. 1.] [가속 Lv. 1.
-모든 행동이 빨라진다.]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스킬.
대규모 토목작업을 앞둔 내게 꼭 필요한 스킬이기도 했다.
배려였다!
상태창 미안!
그것도 모르고 버그 난 줄 알았어!
***
애쉬는 도착한 택배를 열었다.
안에는 촉수가 마구 뒤엉킨 듯한 슬라임이 들어 있었다.
관찰하니 금방 구조를 알 수 있었다.
실처럼 얽힌 에너지의 흐름을 몇 군데 끊어지면 촉수가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고 풀린다.
순서대로 차근차근 풀어가던 애쉬는 멈췄다.
설계의 결함을 발견했다.
순서를 지킬 필요 없이 한 곳에서만 에너지를 추출하면 슬라임이 붕괴한다.
‘실수라면 실망이고 실수가 아니라면 내가 연금슬라임을 너무 높게 산 건가.’
애쉬는 거침없이 에너지를 추출했고.
팡!
“찐~ 뿜뿜뿜뿜.”
마치 비웃는 듯한 소리와 함께 슬라임이 터졌다.
한 장의 종이가 날아올랐다가 팔랑팔랑 떨어졌다.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촉수 슬라임 안쪽에 숨어 있던 또 하나의 촉수 슬라임이 몸집을 부풀렸다.
“찐~뿜!”
“Fxck!!!”
애쉬는 이를 드러낸 사나운 표정으로 다시 슬라임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가능한 한 빨리 해체하고 답장을 준비해야 했다.
애쉬 본인은 자각이 없었으나 눈이 즐겁다는 듯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마치 처음으로 라이벌이 생긴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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