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ine Digger Gutter Slime RAW novel - Chapter 58
58. 죽은 땅.
“김 과장. 혹시 이번 주말에 시간 있나?”
“죄송합니다, 부장님. 주말은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해서요.”
둘러대는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아이와 놀기로 약속했다.
“쩝. 다들 가족이랑 시간을 보낸다고 하는구만.”
주말만 오면 소파에 누워 TV를 켜놓고 비몽사몽 보내는 사람은 많이 줄었다.
대신 친구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늘었다.
부장도 그 사실을 알기에 입맛만 다셨다.
“애가 몇 살이었지?”
“8살입니다.”
“어릴 때 잘해야 해. 일 때문에 바쁘다고 외면하면 다 돌아와.”
“슬하에 아드님이 있으셨죠?”
“그래. 사춘기가 세게 와서 나랑은 대화는커녕 눈도 안 마주쳐.”
“아직 늦지 않으셨어요.”
“늦지 않기는 무슨.”
“부장님은 낚시가 취미셨죠? 어마어마한 대물도 자주 낚으신다고 들었어요.”
“그럼~. 내가 말이야―”
김 과장은 부장이 늘어놓는 무용담을 잠시 들었다.
그 이야기가 끝날 무렵.
“낚시를 주제로 아드님과 대화해보는 게 어떨까요?”
“안 돼. 안 돼. 예전에 데리고 갔는데 아주 질색해.”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접근해보는 건 어떨까요?”
김 과장은 부장에게 제안했다.
낚아온 물고기를 자랑하라고.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자부심이 넘치는 표정으로 짧게.
“그걸로 충분할까?”
“네. 그렇다고 방에 쳐들어가서 자랑하지는 마시고요.”
김 과장은 주의사항을 몇 가지 더 전했다.
“복잡하구만.”
“처음에는 분명히 심드렁할 거예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분명히 흥미를 느낄 거예요. 아마 ‘낚시가 그렇게 재밌나요?’ 이런 식으로 말을 걸어오겠죠. 그건 입질이니까 넘어가시면 안 돼요. 아드님이 관심을 가진 건 높은 확률로 ‘낚시’가 아니라 ‘아빠가 좋아하는 것’일 테니까요. 그때는 ‘좋아한다.’ 정도로 넘어가고 물어보세요. ‘너는 무엇을 좋아하니?’ 그리고 들을 때는 괜한 말을 덧붙이지 말고 아드님의 말을 들어주세요. 그렇게 시작하면 돼요.”
“너무 돌아가는 거 아닌가?”
“물고기가 미끼를 툭툭 건드릴 때 확 잡아당기면 어떻게 되죠?”
“놓치고 도망쳐 돌아오지 않지. 그런가. 제대로 물때까지 기다려야지.”
“그리고 또 하나 꼭 지키셔야 하는 철칙이 있어요.”
“무엇인가?”
“부장님께서는 아드님을 낚아 올리시면 안 되고 함께 헤엄쳐야 해요.”
부장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떡였다.
“고맙네.”
부장에게 인사한 뒤 복도를 걸으며 김 과장은 자조했다.
잘난 것처럼 조언했지만, 정작 본인도 그렇게 좋은 부모라는 자신은 없었다.
부장님의 저 모습은 머지않아 자기에게도 찾아왔을 모습이겠지.
해야 하는 일을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주말만 되면 소파나 침대에 누워 TV를 보곤 했다.
몸과 마음이 지쳐 무거우니까.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시간은 행복하지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곤해진다.
주말에 기력을 충전하지 않으면 일에 지장이 간다는 핑계로 시선을 돌렸다.
아내에게 억지로 떠밀려 아이를 데리고 나왔을 때도 최대한 소극적으로 움직였다.
물론 해야 하는 일 자체를 모르는 것보다는 낫지만, 아이가 느끼는 바에는 큰 차이가 없을 거다.
이런 삶이 발밑부터 침대까지 으로 무장한 뒤로는 달라졌다.
숙면하니 몸의 심지까지 완전히 회복됐다.
을 먹고 체내에서 불필요한 것들이 빠져나가며 몸이 가벼워졌다.
아이와 놀아주기에 충분한 체력이 있었고.
주말에 체력을 완전히 소모해도 하룻밤이면 회복돼 일에도 지장이 없었다.
‘또 매진이야? 표를 구하기 너무 어렵잖아.’
이렇게 좋은 에도 단점이 있었으니.
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김 과장만이 아니었다.
어디를 가도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동물원, 놀이동산, 수족관은 물론이고 집 근처 공원까지도 애를 데리고 나온 부모로 가득했다.
‘애를 데리고 갈만한 장소가 있으면 좋겠는데.’
***
[펭귄 대가족.jpg]“푸핫!”
이랑 을 착용한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줄을 선 모습을 누군가가 찍어 올렸다.
벌써 인기를 끌고 있구나. 점점 추워지는 시기이고 이랑 은 꽤 따뜻하니까.
으로 색칠해서 각자 개성을 나타낼 수도 있고.
현재 과 은 세 가지 크기로 출시된다. 치수마다 키 50cm 정도는 커버할 수 있는 가변형 옷이라서 신장 50cm부터 2m까지 커버할 수 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입을 수 있다는 뜻.
그나저나 사람 많네.
휴가철이 아닌 11월인데도.
찾아보니까 가족 단위로 외출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는 자료가 있다.
덕분에 체력 회복이 쉬워져 주말을 가족과 함께하는 직장인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어디를 가도 사람이 너무 많아 사고도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장소를 바라는 목소리가 꽤 많다.
“꿈과 촉수로 가득한 슬라임랜드에 어서 오세요!”
이런 말을 하고 싶기는 한데.
놀이동산은 만들려면 장애물이 너무 많단 말이지.
나 혼자서 처리하기에는 만들기 전에도, 만드는 도중에도, 만든 뒤에도 일이 너무 많다.
하루아침에 끝날 프로젝트가 아니라 년 단위의 시간이 필요한 장기 프로젝트.
그렇게 오래 걸려 기껏 만들었는데 의 인기가 식어서 누구도 안 찾아오면 너무 슬프잖아.
우리 비상식량의 첫 소유자가 겪은 아픔을 나도 겪지 말라는 법은 없다.
따르릉.
박태양 상담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대로 인사를 나누고 양재동 쓰레기처리장 이야기로 넘어갔다.
연금센터는 저번에 이야기했던 조건에 판돈을 추가로 베팅했다.
-연금 실험장으로 지정하겠다고 합니다.
“어? 진짜요?”
연금 실험장.
다양한 연금 제품을 개발하고 실험하기 위한 장소.
연금술사는 위험한 몬스터 소재를 다루거나 제조 과정에서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연금 제품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해외에는 군사시설 이상의 보안을 자랑하는 연금 실험장이 꽤 있다.
우리나라에는 그만한 실력자가 없어서 연금센터 소유의 제조소가 연금 실험장으로 지정됐을 뿐이지만. 거기마저도 보안이 그렇게 강력하지는 않고.
건축법을 무시할 권리와 면책 특권을 달라는 내 생떼가 상당히 받아들여진 셈이다.
면책 특권 수준은 아니다.
들어온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이면 당연히 문제가 된다.
하지만 연금 실험장에 무단침입한 사람이 연금 제품에 다치거나 죽어도 이쪽의 책임은 0.
사람이 죽으면 사회적 책임이라는 칼날이 나를 찌르겠지만, 다치는 수준이라면 그냥 무시할 수 있게 된다.
주변에 독성 물질이 살포되지 않는 선이라면 대대적인 실험도 할 수 있게 되고.
대체 그 쓰레기 매립지 상태가 어떻길래 저렇게까지 해서 내게 떠넘기려는 거야?
혹시 남몰래 방사성 폐기물이라도 버렸어?
안 되겠다.
그 쓰레기 매립지에 가 봐야겠다.
대체 거기가 어떤 꼴이기에 이러는 거야?
박태양 상담사와의 통화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었다.
피부가 조금도 드러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가렸다.
벌써 11월 중후반.
옷으로 둘둘 둘러싸도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계절이다.
패션 테러리스트가 되지 않아도 된다.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여 이동하기를 잠시.
청계산 근처에 있는 정거장에 도착했다.
쓰레기장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꽤 잘 돼 있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을 때 튀어나온 몬스터들이 모든 것을 밀어버리며 이동했으니까.
그렇게 생겨난 길 위를 아스팔트로 깔면 그게 도로다.
도로 따라 걸어서 펜스조차 없는 쓰레기 매립지에 도착.
“과연.”
왜 그렇게 내게 쓰레기 매립지를 주려고 안달인지 알겠다.
청계산에 이주형 던전이 있다가 옮겨간 게 대략 20년 전.
여기가 쓰레기 매립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0년 전.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참 열심히 사용했다.
무슨 뜻이냐면.
“여기 슬슬 문 닫아야겠는데?”
쓰레기의 산이 아주 높게 솟았다.
본래 매립 한계치로 정한 것보다 높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면 그렇지. 멀쩡하게 사용할 수 있는 쓰레기 매립지를 내게 줄 리가 없지.
생각해 보니까 쓰레기 매립지를 주고 쓰레기처리장으로 바꾸라는 소리를 하고 있잖아.
여기 쌓인 쓰레기도 처리하라는 뜻이지?
오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 했던 일도 있다.
썩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유기물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음식물이 묻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보이는데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
쓰레기를 썩히는 미생물조차 생존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라는 뜻.
그 이유는 아마도 마나 때문.
송전선이 몽땅 끊긴 도시를 보는 것 같다고 할까.
이 일대에 마나가 없다.
마치 지구가 이쪽으로 공급하는 마나를 끊어버린 것 같다.
던전이 마나세를 못 냈나?
던전은 돈을 내는 대신 도망친 거고?
확실히 이건 죽었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땅이다.
유해가스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죽은 땅은 쓰레기 매립지로 가치가 높을지도?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이곳에 있는 쓰레기는 썩지 않는다. 마나가 다시 공급되지 않으면 영원히 그대로다.
흙으로 뒤덮어도 식물이 못 자라니 그 흙이 바람에 쓸려나가고 비에 씻겨 나가면 쓰레기 산이 다시 드러날 뿐이다.
게다가 여기는 공사 자체가 어려운 환경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여기에 오래 머무는 것만으로 이상 증세를 호소할 거다.
이 위에 공원과 발전소를 만들 수 없을 테니 높은 확률로 이대로 방치될 테고.
영원히 유지되는 쓰레기 산 완성이다.
상황을 보니 여기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더 뜯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 조건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질문.
여기를 살릴 수 있는가?
답.
지구의 태도에 따라 다르다.
일시적으로 생물의 생존에 필요한 만큼의 마나를 공급할 수 있다.
대량의 을 동원해 쓰레기와 태양 에너지를 마나로 바꿔 주변에 흩뿌리면 된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쓰레기가 바닥이 난 뒤에도 지구가 마나 공급을 재개해주지 않는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질문.
쓰레기처리장으로는 이용할 수는 있는가?
답.
있다.
이곳의 꼴을 보니까 의 도난을 막는 것도 간단하고.
회수해서 사용하는 것을 포기하면 된다.
포기하는 게 아니라 이 땅에 마나를 공급하는 거로 생각하면 아깝지도 않고.
쓰레기 산 위에 을 몇 개 던져 놓았다.
알아서 아래로 파고 들어갈 거다.
이 쓰레기 산에 숨은 을 찾아낼 수 있으면 찾아내 보든가.
***
미국에서 택배가 왔다.
뜯으니까 안에는 Sole Alchemy의 메가 히트 상품인 포션이 있다.
헌터 시장에서는 그야말로 코X콜라 수준의 점유율을 자랑하는 포션이다.
그것과 거미 모양 장난감?
장난감에 손대자 팡! 터지고 HAHAHA 모양으로 끈적끈적한 흔적을 남겼다.
장난감의 잔해를 살피니 말라붙은 이 있다.
그 을 삼켰다.
역시 내 예상대로네.
내 의 보안이 뚫렸다.
연금술로 만든 물건이 아닌데 이걸 뚫네.
과연 세계 제일은 세계 제일인가.
내 의 재현은 실패했을 거다. 성공했다면 굳이 내게 대가를 치르며 을 살 리가 없으니까. 설령 성공했어도 채산성에서 답이 안 나오겠지.
대신 에서 마나를 추출하는 방법은 찾아냈다.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일이었다.
창조보다 파괴가 쉬운 법.
인간이 석유를 만들어낼 수는 없어도 불태우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이 장난감 거미와 의 상태를 볼 때 효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석유를 불태우는 것과 석유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크나큰 격차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
그래도 쓰레기를 청정에너지로 바꾸는 기술이다.
괜히 귀중하기 짝이 없는 을 주겠다고 한 게 아니다.
그럴만한 가치가 과 저쪽이 개발한 에너지 추출기의 조합에 있다.
나는 을 받고, 저쪽은 을 이용한 쓰레기 재활용 산업을 시작한다.
이렇게 끝날 이야기였다.
갑자기 저쪽이 을 두 개 보내며 시비를 걸어왔다.
뭐, 시비보다는 시험에 가까웠겠지만, 내 기분이 나빴으니까 시비다.
저쪽이 한 말은 이거다.
‘네 슬라임 쩔더라? 억울해? 억울하면 너도 내 것 뚫어보든가.
한 번으로는 실패할 게 뻔하니까 특별히 한 번 기회를 더 줄게.’
저쪽이 알아듣기 어려운 방식으로 시비를 걸어왔길래 나도 알아보기 어려운 방식으로 되돌려줬다.
‘odiso mitzaeng baginia(어디서 밑장 빼기)냐? 너희가 내 에서 에너지 추출하는 기술 개발했다는 거 알거든?’
메시지 카드와.
‘내 은 이 수준이지만, 어차피 너희 에너지 추출기도 이 수준이잖아?’
2개에 덤으로 ‘엿’기름도 한 봉지 넣어줬다.
그 대답이 이거다.
‘우리는 이렇게 헌터 시장에서 잘나가는데 네가 출시한 은 폭삭 망했네? ㅋㅋㅋ.’
그야 ‘엿’기름이 기분이 나빴을 수는 있다.
세계 정상에 있는 사람이 언제 ‘엿’기름 같은 것을 받아보겠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계속 시비를 건다고?
오냐. 받아주마.
***
[특성 : 슬라임☆☆의 레벨이 25로 올랐습니다.] [새로운 스킬이 생성됐습니다.]응?
새로운 스킬?
어?
레벨 25 때 스킬을···.
안 받았네?
어라?
상태창 버그 났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