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ine Digger Gutter Slime RAW novel - Chapter 7
7. 마이 프레셔스
79만.
이 숫자가 무엇인지 묻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요리의 변질을 막기 위해.
요리의 색을 지키기 위해.
단맛과 끈적함, 윤기를 뿌리고 다니는.
요리계의 감초.
물엿.
10kg.
W튜브를 떠도는 이 영상에는.
영문 모를 조회수, 불안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나는 슬라이다라임.
미쳤~넹!
“대체 왜 뜨는 거냐고!!!!”
여섯···. 다섯 개의 영상으로 쌓아온 데이터에 변수가 들어왔다.
분명히 고체를 먹는 영상을 잘 보고 액체류는 잘 안 보는 게 아니었나?
79만.
물론 원본이 아니라 쇼츠 조회수이기는 한데.
설탕을 제외한 나머지 영상의 조회수 총합을 뛰어넘었다.
댓글에 힌트가 있을까 싶어서 보기는 봤는데.
-오 신이시여. 소리가 너무 뜨겁습니다.
소리에서 열감을 느끼며 신을 찾는 괴짜와.
-펭라임 귀여워. 펭라임 귀여워. 펭라임 귀여워. 펭라임 귀여워. 펭(더 보기)
남의 영상에서 누군지 모를 사람이 귀엽다고 울부짖는 이상한 인간과.
-(이모티콘)(이모티콘)(이모티콘)(이모티콘)(더 보기)
온갖 이모티콘으로 도매하는 인간 등등.
광기에 잠식된 공간이 됐기 때문에 대충 훑어보고 포기했다.
저걸 보면 힌트를 얻기는커녕 정신력만 떨어질 것 같다.
십면체 주사위를 두 개 만들어서 던졌다.
.
대실패!
역시 보지 말자.
냠.
주사위를 씹으며 생각을 이어갔다.
물엿은 아까운 돈을 주고 이미 샀으니까 먹는 영상을 찍어서 올렸을 뿐.
심해에 응어리진 채로 떠오르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성공했다.
성공한 원인을 알아내야 다음 성공도 따라오는 법.
물엿은 대체 왜 떴을까?
홀로 2,000만을 바라보는 고고한 설탕 영상과의 공통점이라고는 둘 다 단맛이라는 것밖에 없는데.
“설마?”
인류는 내가 슬라임이 된 이후 귀로 단맛을 느끼도록 진화한 건가!
아니지.
옛날 노래 중에 귀로 사탕 먹는 노래 있잖아.
내가 잘 몰랐을 뿐 인간에게 탑재된 기능일지도!
“그게 말이 되냐.”
대중의 취향은 진자 모르겠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달콤한 액체류가 통한다면 먹을 수 있는 가짓수가 늘어나니까.
초콜릿 시럽이라든가.
물엿 쇼츠가 영문 모를 상승세를 보여주는 가운데 독특한 행보를 보이는 영상이 또 있으니.
2.6만.
청양고추 원본 영상 조회수다.
사실 이게 더 대단하지.
내가 만든 쇼츠는 아무래도 보는 사람이 반복해서 보는 것 같으니까.
원본 영상 조회수는 새롭게 들어오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뜻한다.
구독자도 1,999명으로 뻥튀기됐고.
1,999명이라.
새로고침 하면 2천 명 찍을까?
구독자 2,347명.
“···?”
에러인가?
F5 꾹.
구독자 2,610명.
“···???”
뭐야 이거.
왜 실시간으로 수백씩 뛰어?
조회수가 갑자기 폭등하는 영상은 없는데?
지금 폭증하는 거라고는 구독자와 청양고추 영상의 ‘좋아요’와 댓글.
-펭라임 귀여워. 펭라임 귀여워. 펭라임 귀여워. 펭라임 귀여워. 펭(더 보기)
물엿의 광기가 여기까지!
전염병이냐!
펭라임이 대체 누군데!
왜 여기서 그러는데!
주사위 토스!
.
무서워서 창을 닫았다.
W튜브의 세계는 진짜 모르겠다.
광기는 멀리하고 내가 할 일을 하자.
오늘은 내가 첫 영상을 올리고 일주일이 되는 날.
내가 진짜 큰맘 먹고 준비했다.
평소에는 대용량으로 사서 입에 던져 넣고 끝냈을 텐데.
오늘은 무려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ASMR 먹방러라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반짝반짝 빛나고 알록달록해서 참으로 맛있어 보이는.
의외로 역사가 길어 무협 영화에도 자주 출연하는 음식.
탕후루.
다른 말로 과일 사탕.
녹인 설탕으로 과일을 코팅해서 먹는 음식이다.
산 과일 목록.
수박, 용과, 사과, 방울토마토, 딸기, 체리, 자두.
귤, 오렌지, 복숭아, 배,
망고, 레몬, 파인애플, 바나나,
멜론, 청포도, 아보카도, 키위,
블루베리, 포도.
총중량 15kg.
수박, 멜론, 파인애플 때문에 총중량이 많이 늘었다.
자, 그러면 탕후루를 만들어볼까.
설탕에 물을 약간 넣고 끓여서 그걸로 과일을 코팅하면 된다.
그전에 껍질을···. 굳이 깎을 필요가 있을까?
과일은 껍질까지 먹는 게 좋다고 하잖아.
아, 그렇지.
파인애플을 통째로 입에 넣은 뒤 몸을 흔들었다.
그리고 손에서 파인애플을 꺼냈다.
몸속에서 껍데기만 깔끔하게 분해, 흡수됐다.
편리하네.
다른 과일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했다.
물론 사과와 포도는 제외. 그것들은 껍질을 함께 먹는 게 더 보기 좋으니까.
W튜브를 보면 작게 조각내 설탕으로 코팅하는데 나는 귀찮으니까 그냥 기다란 막대 모양으로 잘랐다. 자를 필요 없는 건 통째로 코팅할 거고.
꼬치도 귀찮으니까 생략.
설탕에 물을 약간 넣어 끓였다.
대략 15kg 정도 되는 양의 과일을 코팅하면 된다.
“···너무 귀찮잖아.”
만들다가 오늘 하루 다 가겠다.
하는 수 없지.
꼼수를 사용하는 수밖에.
꿀꺽.
몸에 들어온 사과를 흡수하는 대신 손끝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주변의 슬라임을 변질시킨 뒤 분리.
-내용물에 따라 맛이 다른 달콤한 슬라임. 씹는 소리가 일품.
와···. 보석 같다. 설탕으로는 이런 색감과 모양을 내기 어렵지 않나?
역시 슬라임은 만능이다.
반복하자 무지개처럼 알록달록한 식탁 완성.
준비 끝!
***
새로 올라온 영상의 섬네일을 본 대학원생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 라임아. 네가 드디어 영상미의 중요성을 깨달았구나.”
라임이가 올리는 영상의 소리는 일품.
그러나 영상은 솔직히 별로였다.
몸을 흔들며 고추 먹는 영상은 조금 귀여웠지만.
붉은색 보석 같은 사과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인형 탈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대학원생은 잠시 영상을 멈추고 저속으로 재생했다.
날아가는 사과를 집중해서 봤다.
천천히 돌아가며 조명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는 사과.
예상대로 상당히 매력적인 장면이 나왔다.
이 예쁜 장면을 저렇게 허무하게 보내 버리다니.
역시 영상 쪽은 아직 미숙하다.
그래도 라임이에게는 소리라는 최강의 무기가 있으니까.
원래 속도로 바꿔 재생했다.
와그작. 와그작.
“이거지!”
스트레스를 박살 내는 호쾌한 소리.
다른 ASMR 방송에서는 듣기 어려운 강렬함이다.
굳은 설탕은 위험하니까.
잘못 먹으면 입을 다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먹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라임이는 다칠 걱정 따위 없다는 듯이 거침없이 씹었다.
다른 W튜버가 같은 시도를 했다가는 잇몸과 입천장이 엉망진창이 될 거다.
실제로는 먹지 않으니까 가능한 일이겠지.
물론 호쾌함만 있는 건 아니다.
정확히 무엇인지 표현을 할 수는 없으나 라임이의 영상에서만 느껴지는 독특함.
어떻게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 저런 소리가 나지? 싶은 특별함이 있다.
폴리 아티스트라고 영화에 들어가는 소리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
아마 라임이도 그쪽 종사자겠지.
아니면 폴리 아티스트를 고용했거나.
으드득.
“라임아. 호쾌한 건 좋은데 씨는 뱉는 게 좋지 않겠니?”
영상을 끝까지 본 대학원생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점수를 매기자면 10점 만점에 9점.
평소 집중할 때 볼 영상으로는 절대 강자 설탕을 이길 수 없지만, 이건 달리 용도가 있다.
교수님을 씹어버리고 싶을 때 보면 딱 좋겠다.
발표 때 트집만 잡아대는 녀석을 박살 내고 싶을 때도.
밖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학부생들을 한 대 때리고 싶을 때도.
‘좋아요’를 누르고 잘 봤다는 댓글을 쓰려는데.
-펭라임 귀여워. 펭라임 귀여워. 펭라임 귀여워. 펭라임 귀여워. 펭(더 보기)
이것들은 뭐야?
***
이민규는 서울중앙연금센터로 향했다.
오늘은 토요일이고 휴일이지만, 아침에 발의 상태를 보고 나니 새로운 깔창을 얻으러 갈 수밖에 없었다.
확실하게 나아졌으니까.
평소에는 가려움에 잠에서 깨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어제는 한 번도 깨는 일 없이 푹 잤다.
이불을 걷었을 때 올라오는 냄새 또한 평소보다 약했고.
맨눈으로 봐도 발바닥의 상태가 개선됐다.
약은 효과가 있으면 제대로 사용해 문제의 근원까지 제거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원래대로 되돌아가거나 더 악화하기도 한다.
거기서 더 악화하다니. 상상만으로 끔찍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혼자 일하는 부서로 발령 날지도 모른다.
발 냄새 때문에 좌천이라니.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말도 못 한다.
“안녕하세요.”
연금 제품에는 택배로 보내기에 부적합한 물건도 있기에 각지에 있는 연금센터는 오프라인 매점도 운영한다. 다행히 365일 운영하기 때문에 월요일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안전성 검사만 통과하면 바로 재고로 등록되기 때문에 온라인 연금상점에 아직 등록되지 않은 상품이라도 여기서는 살 수 있다.
비치된 단말기에 주문을 넣고 결제하면 바로 물건을 가져다준다.
‘. 찾았다. 재고가 25개?’
분명히 100개가 들어왔다고 설명서에 적혀 있었다.
안전성 검사로 30개가 폐기돼 남는 건 70개.
한 쌍씩 파니까 제품은 35개.
그가 하나 사용했으니까 34개.
9개가 빈다.
이민규는 몰랐다.
그의 발이 지옥에서도 가장 더러운 곳과 연결된 게 분명하다는 악명이 얼마나 넓게 퍼졌는지.
제 몸을 바쳐 지옥으로 이어지는 게이트를 닫은 슬라임의 희생이 얼마나 화제가 됐는지.
물론 소문이란 퍼지면 퍼질수록 제 몸을 부풀리기 마련.
소문을 온전히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발 냄새로 고생하는 사람은 이민규만이 아니었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은 2,000원.
시험 삼아 하나씩 산 사람이 9명 있었다.
‘이건 전부 사야 해!’
이민규는 즉각 25개를 전부 주문했다.
사재기하다가 걸리면 경위서로 안 끝난다. 최악에는 퇴직에 벌금까지 문다.
하지만 그는 그런 걸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이건 사재기가 아니다.
생존하려는 발악이지.
그는 직원이 가져다준 25쌍이 담긴 상자를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가려는데.
“어? 품절이잖아.”
무심코 목소리가 들린 쪽을 봤고 눈이 마주쳤다.
어디선가 얼굴을 본 듯한 남자가 있었다.
“이민규 주무관님?”
“아닙니다.”
남자는 민규의 얼굴과 상자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설마 깔창 다 사신 거 아니죠?”
“아닙니다.”
“아니, 사셨잖아요!”
“아니라고요!”
“사용해 보니까 좋던데 나눠서 써요!”
“안 돼요!”
“역시 다 사셨잖아요!”
민규는 상자를 꼭 끌어안고 재빨리 도망쳤다.
마이 프레셔스!
***
이메일이 왔다.
내 이 품절이라고.
“품절?”
이게 무슨 소리야.
물건이 연금상점에 등록도 안 됐는데.
연금상점에 접속해서 을 찾아도 검색 건수는 여전히 0이다.
배송 도중에 사고라도 났나?
그런데 70,000원이 월요일에 입금된다는 안내가 있다.
가능한 한 빨리 재고를 채워줬으면 한다는 요청도 있고.
“???”
판매한 적이 없는데 다 팔렸다.
이게 무슨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 소리야?
“이상하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세상이 너무 좁았나?
W튜브에 세계도 그렇더니 이번에는 연금상점의 세계까지.
조금만 벗어나도 이해가 안 되는 일로 가득하다.
뭐, 만드는 거야 어렵지 않다.
양쪽 발 발가락이 내 발과 합쳐졌다.
크기를 조금 줄이고 두께를 얇게 하자 발이 뚝 떨어져 나갔다.
이걸 50번 반복하면 끝.
포장해서 운송장을 붙이고 현관 앞에 뒀다.
택배 배송을 신청해두면 나중에 알아서 가져갈 거다.
자, 그러면 게임을 계속해 볼까.
오늘은 밤샘 게임이다.
며칠 뒤에 마키나가 또 연락해올 텐데 게으름 피우면 스포일러 당한다.
얼마 전만 해도 잠을 잘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겼는데 벌써 잠을 잘 시간도 없네.
띠링!
[SSS급헌터 : 나 휴가 나왔다.SSS급헌터 : 나와라.
SSS급헌터 : 어차피 할 일 없잖아.]
친구라는 것들은 왜 선빵을 날려서 치명타를 터뜨리지?
[나 : 못 가.SSS급헌터 : 왜.]
나가기는 무슨 지금 내 꼴이···.
몸이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 잊고 있었지?
아니, 이유야 안다.
각성해서 슬라임이 된다는 미친 현상 때문에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게 한계였다.
도저히 그 밖을 볼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잊고 있었다.
내 친구 서기수.
우리 기수 참 좋은 아이지.
평소에는 성격도 좋고 온화하지만, 특정 스위치만 들어가면 발작하는 녀석.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몬스터만 보면 눈이 돌아간다.
기수는 몬스터에 아버지를 잃었다.
그 뒤로 종류 불문 모든 몬스터를 증오한다.
그런데 이거 봐라?
친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슬라임이 있네?
들키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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