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리허설
“그래서, 그냥 ‘레몬티’라고? ‘차일드’ 빼고?”
“아… 우리 막내가 서른하나라서…….”
“하긴, 외국 나가면 너네 ‘차일드 애플’ 짝퉁인 줄 알겠다.”
“하… 우리가 십 년이나 빨랐는데…….”
“어쩌겠냐. 인기가 깡패지. 그래서 팀명에 차일드 같은 단어는 붙이는 거 아니야.”
“차일드 애플도 몇 년 뒤엔 그냥 애플 될걸요?”
“키킥. 그럴 수도 있겠다.”
“다들 조용. 시작한다.”
키득대던 테일과 창명이 임도유의 핀잔에 스튜디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이크를 잡은 황지선이 싱긋 웃으며 그들을 바라봤다.
이번 월드 뮤직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 한국에게 배정된 스테이지에 오를 팀들의 첫 리허설.
그 첫 번째 팀이 준비를 마쳤다.
“안녕하세요. ‘그린내’의 보컬을 맡은 황지선입니다.”
스튜디오에 꽉 들어찬 뮤지션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그린내’ 순우리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들이 해 왔던 양주 호수공원의 공연에선 키보드인 그룹의 리더 안상정이 보컬까지 소화했었다.
한국 최고의 여성 보컬의 합류로 그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황지선이 상정과 눈을 맞췄다.
서로 살짝 고개를 숙인 뒤.
통통 튀는 발랄한 멜로디가 상정의 손끝에서 피어올랐다.
* * *
“와. 그린내도 월뮤페 무대에 오른대!”
“그린내?”
“그때 옥정 호수공원에서 자기랑 처음 만난 날 그 밴드.”
“아… 거기서 버스킹하던? 이름이 그린내야?”
“응. ‘연인’을 뜻한대.”
“음악이랑 진짜 잘 어울린다.”
“그날 그 밴드 아니었으면 우리 만나지도 못했을걸?”
“맞아. 난 우리 해피 산책시키고 들어가는 길이었고, 넌 막 조깅하러 나온 거였으니까.”
“진짜 달달했는데.”
“그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 둘이 눈이 마주쳤으니.”
두 연인이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그날 공연 끝나고 우리 말고도 다들 분위기가 묘했어.”
“어… 그랬나?”
“응. 자긴 못 봤어? 서로 번호 따고 그러던데…….”
“아, 난 그때 너만 보여서…….”
“뭐래…….”
여자가 옆구리를 찌르자 남자가 피식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밴드 잘됐으면 좋겠다.”
“응. 노래는 평범했는데, 음악이 진짜 좋았어.”
앳된 멤버들에 비해 나이가 좀 들어 보이던 키보디스트가 떠올랐다.
그렇게 잘 부르는 건 아니었는데, 심장을 간질거리던 그 멜로디는 아직도 귓가에 맴돌았다.
관객이라고는 열 명이 조금 넘었던, 호수공원 작은 분수대 앞의 봄 내음이 떠오르자 두 연인의 몸은 더욱 가까워졌다.
* * *
“어… 와…….”
곡은 끝났고, 한참 이어지던 환호와 박수가 잦아들자 그제야 탄성이 튀어나왔다.
“저 누나는 나이를 거꾸로 먹나?”
테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치 소녀가 된 듯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부추기는 사랑은 남자들만 가득한 스튜디오 전체를 핑크빛으로 물들였다.
“진짜 연애하고 싶게 만드네.”
“곡 진짜 좋은데요?”
“저 형님도 생각보다 대단한데?”
“아… 저분이 작곡이랑 작사 다 하신 거죠?”
“응.”
테일의 대답에, 창명이 머쓱하게 웃고 있는 키보디스트를 바라봤다.
달달한 키보드 록이라니…….
사실 대한민국 최고의 여성 보컬 황지선이라는 카드만이 반짝였을 뿐, 음악에 대한 기대는 크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린내’의 리더인 저 키보디스트를 잊고 있었다.
그 역시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인간 밴드’의 일원이었다.
절대 평범할 리 없었다.
창명의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 * *
[야. 근데 ‘담장 너머’ 밴드는 실력이 좀 있던데?]└영상 다 내려가서 보지도 못하는데 뭔 소리임?
└난 정선에서 직접 봄. 꽤 괜찮음.
└블루스 밴드랬나?
└끈적끈적하겠네?
└뭔가 울림이 있었음.
└맞음. 나도 한번 봤는데, 흥겹기도 하고 심장도 울렁거리고, 아무튼 하위 레벨은 아니었음. 가끔 나오는 베이스 솔로도 미쳤음. 치유의 거리에서 직접 봤음.
└가운데 트럼펫 부는 남자 귀여움.
└빠박이? 덩실덩실?
└조명 독차지하고 신나서 어쩔 줄 몰라 함.
└그러고 보니 베이스 치는 사람은 키가 엄청 크던데?
└아무튼 블루스 장르는 생소했는데, 상당히 좋았음.
└야. 여기 링크 가 봐.
└뭐임?
└도박 중독자들 모인 카페임. 거기 ‘담장 너머’ 얘기 있음.
└응? 거기서 왜?
└치유의 거리 원조가 ‘담장 너머’라는 썰이 있음.
└오. 진짜?
└아무튼, 듣보잡이라고 까일 수준은 아님.
└다행이다. 레몬티 형아들 말고 한 팀이라도 실력자가 있어서.
└아무리 그래도 미국 본토에서 블루스라니.
└하긴 그렇긴 하다.
* * *
“저… 목소리 반칙 아니야?”
“와, 테일이 블루스 미쳤다.”
황지선과 임도유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기대하긴 했지만.
이건 기대 이상이었다.
끈적끈적한 리듬을 담백하게 툭툭 내뱉는 목소리로 뽀송뽀송하게 만들어 버렸다.
“어떻게 저런 조합이 가능하지?”
“‘중독’이라…….”
“아… 테일이 2집 냈을 때 대마초로 빵 갔다 왔지? 그래서 저런 감정이 나오나?”
“에이. 말 좀 가려서…….”
“아차.”
황지선이 급히 입을 막았지만, 테일의 싸늘한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
“아… 귀는 밝아서… 쏘리!”
“트럼펫도 제법인데? 잘 다듬었어.”
서둘러 빠박이에게 관심을 돌렸다.
말실수에 대한 면피용이었지만, 반은 진심이었다.
아마추어였다고 들었는데, 수준 높은 리듬들과 어울리는 소리가 상당히 듣기 좋았다.
정신없이 빠져든 실수.
후회.
반성.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있어야 할 곳으로.
다시.
세상 모든 이들이 몇 번이고 겪어 봤을 ‘중독’에 대한 이야기였다.
예전 치유의 거리에서 장하와 충기가 연주하는 이 곡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리듬뿐이었던 곡에 트럼펫이 더해졌고, 다듬고 다듬어져 테일의 목소리가 입혀졌다.
그리고 확연히 드러나는 감정들은 심장을 울려 댔다.
임도유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자신은 아직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의 방향도 찾지 못했는데, 이들은 이미 평탄화에 아스팔트 포장이 끝나 있었다.
‘창조적 사고는 타고나야 한다.’
어떤 유명한 디자이너의 말이 떠올랐다.
“와. 진짜 열심히 했네. 쟤네들도…….”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임도유의 고개가 돌아갔다.
‘재능’이 넘치는 인간들 사이에서 노력으로 바둥바둥 버텨 온 키보디스트가 해맑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의 노력은 결국 자신의 길을 찾아낸 것이었다.
“아야! 왜요, 형님…….”
“그냥. 샘 나서.”
“우리 리더 괴롭히지 마라!”
갑작스럽게 등을 맞은 상정이 임도유를 멍하니 바라봤고, 황지선이 주먹으로 복수를 해 줬다.
“나도 찾을 거다!”
“뭐래! 한 대 더 맞아! 어디 감히 우리 상정이를!”
“아! 그만 때려!”
두 최고령자들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새까만 까까머리 청년이 등을 보이고 섰다.
그리고.
그 옆 해맑게 웃는 그가 통기타를 고쳐 메자 스튜디오 안이 고요해졌다.
“안녕하세요! 도… 동해 소… 소년의 저… 정희철입니다!”
덜덜 떨고 있는 까까머리 뒤통수에서 나온 목소리였다.
‘쟤는 여기서도 뒤돌아 있네?’
‘쉿!’
곧, 통기타에 손가락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며.
모두가 고대하던 무대가 시작되었다.
* * *
“야! 거렁뱅이! 그걸 참냐?”
저택에서 걸어 나오던 제니스가 피식 웃으며 멈춰 섰다.
“위스키 잔에 들어 있는 얼음 그대로 들이붓는 줄 알고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는데…….”
멈춰 선 계단에 그대로 앉은 제니스가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탁탁 쳤다.
타박타박 소리가 가까워졌고 제니스가 고개를 돌렸다.
“자기들이 뭘 안다고…….”
“유리, 그래서 더 재밌지 않아?”
“와… 제니스 성질 진짜 많이 죽었네?”
유레이시가 뾰루퉁한 얼굴로 제니스를 노려봤다.
“네가 가길래 구경만 했더니… 내가 먼저 끼어들었어야 했어.”
“그랬으면?”
“얼마 남지 않은 머리털을 확…….”
“그럴까 봐 내가 먼저 간 거야. 바비 살리려고.”
“흠…….”
“영국 왕실의 체면도 살리고.”
“흠, 흠.”
뭐가 그리 재밌는지 싱글거리는 제니스의 얼굴을 바라보던 유레이시가 주먹을 쥐었다.
“확!”
“열 낼 필요 없어.”
“뭐? 아까 무시하는 말들 다 듣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유리, 결론은 나와 있어.”
“당연하지!”
“맞아. 당연히 그의 음악은 최고야.”
“근데! 활동을 안 하잖아!”
“이번 축제… 아니다.”
제니스의 광대가 실룩였고, 유레이시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설마……?”
“아니야. 몰라 나는.”
“온대?”
“아니… 몰…….”
유레이시가 벌떡 일어나 제니스의 앞에 섰다.
그리고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자꾸만 실룩이는 광대와 살짝 떨리는 입술 그리고 흔들리는 초점.
“오케이!”
“뭐가 오케이야?”
“근데 분명히 한국 스테이지 밴드들 다 살폈는데…….”
“난 모른다고 했다.”
“아니라곤 안 했지.”
“흠…….”
“레몬티? 아니야 걔들은 원래 활동하던 밴드들이고, 다른 밴드들은 영상도 없으니 확인할 수도 없고… 동해 소년? 아니지. 그 어설픈…….”
제니스의 표정을 살피던 유레이시가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그 엉망진창 어쿠스틱?”
“난 모른다.”
화들짝 놀란 유레이시가 제니스의 어깨를 짚었다.
“맞아? 진짜 그 애송이랑?”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유레이시를 속이기란 불가능했다.
제니스가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뭐가 됐든 상관없어. 와… 진짜 그가 오는구나. 그래서 네가 그렇게 태연했구나. 이번 축제 대박인데?”
“흠…….”
“마지막 날이었나? 한국 스테이지?”
유레이시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예열이 좀 필요하겠는데?”
“아서라. 헨리한테 들어 보니까 요새 왕실 분위기도 별로라던데… 얌전히…….”
“그래? 난 모르겠던데?”
“아무튼 난 얘기 안 한 거다.”
‘그의 음악이 미국에서도 통할까?’라는 의심 따위는 품지도 않았다.
이번 월드 뮤직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 그 마이너 무대일 것이 당연한 결과였다.
“나도 낄 거야.”
“나는 모르는 일이야. 괜히 사고 치지…….”
“알았어. 헨리 오빠한테는 비밀로 할게. 네가 윈저성에 초대받는 일은 없을 거야.”
“후…….”
유레이시가 방긋 웃었고, 제니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이렇게 긴장하며 노래한 적이 언제였던가.
창명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좌중을 바라봤다.
허울뿐이지만 한국의 대표가 되는 바람에 리허설 마지막 순서가 되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그 ‘갓끼’ 님의 다음 순서가 될 줄이야.
박수 소리가 쏟아졌지만, 분위기는 묘했다.
“이번 곡 좋은데?”
“오… 창명이 칼 제대로 갈았네?”
“역시 한국 대표다!”
칭찬들이 이어졌지만, 창명의 표정은 살짝 굳어 있었다.
사실 지금 좌중의 분위기가 이해되기는 했다.
그만큼 바로 전에 있었던 무대는 정말로 충격적이었으니까.
고개 숙여 의례적인 칭찬에 화답한 창명이 시선을 홱 돌렸다.
구석에서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까까머리가 보였고, 애꿎은 그 머리통을 노려봤다.
‘그린내’의 곡은 기대 이상이었고, ‘담장 너머’의 음악은 블루스의 판도를 흔들 정도였다.
그 두 무대가 끝날 무렵 창명의 심장은 마구 뛰었다.
그 세계 최고의 축제 마지막 날 한국 스테이지는 엄청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하지만.
곧 이어진 통기타 소리는.
그 굉장한 무대들을 한순간에 잊어버리도록 만들 정도의 충격을 안겨 줬다.
“자! 이제 한 바퀴 돌았으니까. 회의부터 하자.”
“그… 그래! 이거 심도 깊은 대화가 필요하겠는데?”
“일단 세트 리스트부터 서로 뽑고…….”
“야. 좀 쉬었다가…….”
“지금 쉴 시간이 어디…….”
“쟤 진정 좀 되면…….”
“아…….”
모두의 시선이 구석으로 향했다.
가장 구석.
책장에 걸리는 바람에 형광등 불빛도 살짝 빗겨 가서 가장 어두운 공간.
그 어두움을 더욱 무겁게 만드는 까까머리가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깨가 살짝 들썩거리는 것도 같았다.
“야… 쟤 운다.”
“쉿.”
들썩이는 어깨가 조금 더 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