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1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01)
Chapter 201. 언더섀도우, 예견자
굴 깊은 곳은 어두웠고 고요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깊어졌고 비스듬히 땅 아래로 파고드는 풍경은 얼핏 세상에 지옥을 만들어 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음울한 분위기를 잔뜩 흘려 내고 있었다. 굴의 벽과 바닥에 간간이 튀어나오거나 널려 있는 뼈다귀, 뼛조각은 이런 분위기를 한층 더 짙게 장식해 주는 듯했다.
그 길을 앞장서는 프릿의 뒤를 쫓으면서 투란은 곁에서 걷는 에스탄을 힐끔거렸다.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는 광경을 목격한 다음이었으므로.
“헛소리! 뭐가 남았다야, 남았다는! 수십 년 동안 시도해서 안 된 일이잖아!”
프릿의 위엄이 가득 담긴 설득에 에스탄은 반발했다.
하지만 곧이어 셀리아가 한 말.
“어머? 이번에는 예견자가 보증했는걸.”
그 묘한 웃음이 어린 말에 움찔하면서 에스탄은 ‘진짜냐?’라고 되물었다.
프릿이 거기에 대해 ‘분명히!’라고 호쾌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에스탄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거짓말이면…… 그땐 절대로 나를 쫓지 말고, 잡지도 마. 약속할 수 있어?”
프릿은 연이어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었고, 셀리아도 함께 웃음 지었다.
그리고 가야 할 곳을 향해 서둘러 굴 깊이 들어섰다.
‘어째 낯선 곳인데 낯익은 기분이지?’
어두운 저 너머를 보면서 투란은 갸웃했다.
―이거, 스타폴에서 본 것과 비슷한 구조인데?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기분이 어디서 시작되었는가를 정확하게 짚고 있었다.
‘아, 그 땅속…….’
고속으로 지하를 관통하듯이 이동했잖았나.
셀리아가 멈칫하는 투란을 스쳐 가면서, 에스탄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리며 말한다.
“어정쩡하게 시간 끌 일은 없어. 에스탄이 살짝 자리를 비운 사이에 꽤 여러 가지 일이 있었거든. 그러니까 그 멍청하고 심통 난 얼굴은…….”
“잠깐, 셀리아! 내가 자릴 비운 동안이 며칠이나 된다고! 무슨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는 겁니까?”
에스탄이 표정이 확 바뀌면서, 투란이 보기에는 왠지 심통 났다기보다는 격분한 듯이 더러워진 표정이 되면서 되묻고 있었다.
“음, 가 보면 알아. 아, 다 왔네.”
셀리아는 빙긋 웃음만 흘리는 채로 가볍게 앞장선 프릿까지 지나치면서 뭔가에 다가가고 있었다.
어두운 영역을 관통하는 시력으로 투란은 그것이 알을 반 토막 내놓은 커다란 나무 그릇이라고 파악했다. 안에 의자도 가지런히 박힌 꼴이 올라타고 앉으란 것 같은데, 대체 누구 입에다가 사람을 떠먹이려고 저런 모양인가?
―수레잖아, 이 바보야.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망상을 핀잔했다.
‘야, 스타폴에서는…… 그래도 지붕도 있고 벽도 있었다고! 저건…….’
―확실히 고속 이동을 한다면, 그리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그렇게까지 빠르지 않다고 생각되는군.
‘음…….’
―마법사인 셀리아가 알아서 하잖겠냐?
‘어? 으음.’
투란은 흘깃 에스탄부터 시작해서 프릿, 그 너머에 냉큼 준비된 그릇에 올라 자기 자리를 잡았다는 듯이 앉는 셀리아를 훑어봤다.
생김새로 보자면 에스탄이 가장 할배이고, 프릿이 가장 어려 보였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 주는 관계는 프릿이 제일 놓은 사람이고 에스탄이 제일 낮은 듯한 분위기였다. 셀리아는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한 듯, 그야말로 제멋대로인 낌새가 무럭무럭 흘러나왔고…….
‘언더섀도우에도 무슨 왕국이 있다는 이야기 들은 적 있어?’
―없다. 여긴…… 우리에게 금지된 영역이니까.
‘금지? 그건 또 무슨…… 왜?’
―모른다. 고대의 맹약으로 인해 우리의 인식 범위 밖에 두기로 되어 있었어. 그나마 경계를 벗어난 경우에는 그럭저럭 지켜본 듯하긴 하지만…… 상관하지 말라는 이야기만 경고 삼아 남겨져 있었지.
‘도움이 안 되는구나. 그것도 이제 와서 밝히다니!’
투란은 소리 없이 투덜거렸지만 그사이에 프릿, 에스탄의 뒤를 따라 알처럼 생긴 수레에 올라타서 빈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이제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대한다는 표정을 은근히 꾸미며 지켜보았다.
“곧바로 예견자에게 간다. 셀리아, 부탁해.”
프릿이 엄격한 말투로 속삭였다.
에스탄이 흠칫 놀라 뭐라 하려는 듯했지만, 셀리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입술 너머로 나온 소리는 사람에게 들려주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조금 날카롭고, 귓속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그래도 아프지는 않게 쿡 쑤신 듯한 소리는 수레를 덜컹거리게 하며 곧바로 내달리게 했다. 반 토막 난 알의 아래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바퀴는 길고 어두운 동굴의 바닥에 깔린 바퀴 자국을 따라 구르며 수레를 질주하게 했다.
―궤도차로군, 원래 무슨 광산이었나…….
‘음? 이게? 광산 궤도차란 것이 이렇게 크고 둥글게 생겼어?’
―그건 전혀 아니다만, 보통 인간들의 네모난 손수레 형태일걸? 아무튼 마법이다.
‘뭐? 갑자기 무슨…….’
투란은 눈을 깜박이다가 소리 없이 하던 말을 멈췄다.
질주를 시작한 알 모양 수레는 더욱 사납게 가속하기 시작했고 바퀴가 요동치는 것이 선명하게 의자를 넘어 엉덩이까지 자극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속도에도 불구하고 머리카락 하나 날리지 않았고, 스쳐 가는 풍경의 과격함과 다르게 앉은 자리에서 취한 자세는 전혀 흔들거릴 수가 없이 안정적이었다. 엉덩이에 전해져 오는 바퀴의 사나운 요동이 오히려 희한할 지경인데, 프릿이 투덜거렸다.
“셀리아, 바퀴 진동도 좀 줄일 수 없어?”
셀리아가 유쾌하게 이에 대꾸했다.
“뭔가 탔다는 감각마저 둔해지면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할 때 위험하잖아요. 프릿, 눈과 귀를 열고 사방을 지켜봐요. 내 마법에 밀려나지 않고 덤벼들 정도라면 에스탄이랑 나는 그냥 버티고 구경할 수밖에 없으니까. 손님에게 부탁할 수도 없잖아요? 그러니 순전히 프릿의 몫이라고요.”
“아무 일 없을 거야.”
툴툴거리는 투로 프릿이 말했다.
상당히 의심스러운 말이라고 투란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대로, 고속으로 달리는 궤도 앞을 가로막는 것은 한참 동안 없었다.
깊은 어둠이 간간이 빛을 흘리는 광맥에 밝혀지면서 자연스럽게 뚫린 지하의 풍경이 사나운 형상을 드러낼 뿐이었다.
이 상황에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투란은 그에 대해 묻기보다 자신이 새로 얻은 태엽과 톱니의 눈알을 살피기부터 했다. 갑작스럽게 내밀어서 엉겁결에 받아 챙긴 셈인데, 이 눈알을 눈구멍 속에서 굴리다 보니 꽤 색다른 광경이 보였다.
멀리 한 점을 집중하면 그 한 점이 둥글게 확대되면서 주변과 분리된 듯이 확대되어 보이기도 했고, 그 보이는 바를 시야 이곳저곳으로 옮길 수도 있었으며 한구석에 치워 놓고 다른 것을 볼 수도 있었다. 마치 전혀 다른 눈으로 보는 풍경을 하나의 시야에 겹쳐 놓은 듯한 묘한 것이었다. 게다가 달랑 하나뿐인 눈으로 본다 하기에는 시야가 굉장히 넓었기에 이런 겹쳐진 풍경이 바로 앞의 상황을 보는 일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저것…… 그 특이함을 느끼면서 아무 일 없이 고속으로 질주하는 상황이 심심하기도 했기에 투란은 슬그머니 묻는 말을 꺼내 봤다.
“이 눈, 대체 뭐죠?”
셀리아가 그 물음에 빙그레 웃었다.
마법을 부리는 와중에 너무 여유롭지 않은가 싶은 데다가 왠지 웃음이 너무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투란의 뇌리를 스쳐 가는데, 셀리아는 그 웃음과 함께 착실한 대답도 해 주고 있었다.
“글쎄, 예견자가 준 것이니까 만나서 물어보면 알지 않겠어?”
“뭔지 모르는 건가요?”
조금 실망한 말투, 표정으로 투란은 툴툴거리듯이 웅얼거려 봤다.
프릿이 슬쩍 끼어들면서, 역시 조금 기묘한 웃음을 머금은 채로 말한다.
“그 눈을 써 보고 있으니 좋은가 나쁜가는 알 것 아냐? 해롭다고 느껴져? 아니면 제법 쓸 만하다고 느껴져? 무슨 사연이 있는가 하는 부분이 궁금하다면, 그건 눈을 건네준 예견자에게 묻는 것이 맞는 일이니까 기다려. 곧 도착할 거야.”
투란이 입을 다무는 시늉을 하면서, 좀 더 눈알을 굴리며 시험해 보는 시늉을 하니 에스탄이 불쑥 묻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저 눈, 정말로 괴물…… 그 미친 예견자가 건네준 거요?”
“설마 내가 만들었을까 봐? 셀리아 취향도 아니란 거 알잖아?”
프릿은 히죽 한 겹 더 웃음을 드리운 표정으로 되묻고 있었다.
에스탄은 주름진 얼굴에 한층 더 고랑을 파내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다물었다. 이모저모로 더 물어봐야 소용없어 포기한 듯, 혹은 프릿의 말을 믿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애매하게 드러내면서.
덕분에 잠시 침묵이 맴돌았고, 고속으로 질주하며 스쳐 가는 풍경만이 선명했다.
그리고 이는 예고했던 대로 오래 이어진 여행은 아니었다.
궤도가 위로 향하기 시작했고 지하의 천장을 향한 비탈길에 올라섰다.
그 비탈 끝에 천장의 갈라진 틈새가 어둠처럼 드리워져 있는데, 꼭꼭 눌러 박힌 궤도는 그 어둠을 향해 스며들고 있었다. 궤도를 따라 질주하는 반 토막 알은 금방 그 틈새, 어둠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두꺼운 돌벽을 한동안 스쳐 지나서 바깥의 바람결에 닿았을 때, 투란은 살짝 당혹스러웠다. 세상이 아직 캄캄한 것이 여전히 지하 궤도를 질주하는 중이 아닌가 싶었으니…….
“저기야, 예견자의 정원.”
프릿이 명랑하게 말할 때 궤도차가 급작스럽게 맴돌면서 섰다.
하지만 그 맴돌며 서는 격렬한 움직임은 투란에게 자신이 타서 앉은 자리가 돈다기보다는 세상이 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법?’
―마법이다, 상당히 세련된…….
드라고니아가 미묘하게 감탄해 주고 있었다.
셀리아의 유쾌한 듯한 목소리가 금방 울려 퍼졌다.
“이제 걸어가야 해. 수레가 시끄러운 것도 싫어하고 누가 요란하게 달려오는 것도 싫어하니까, 조용히 걸어서 정원에 들어가야 하거든.”
흘깃 투란이 바라보니 에스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셀리아의 말이 맞다고 알려 주는 모습이었다. 프릿은 이미 껑충 뛰어내려 성큼성큼 걷는데, 조용히 걷고자 하는 의도는 없어도 소리는 내지 않는 모습이 보는 쪽을 살짝 놀라게 했다.
―고양이 같군.
드라고니아가 프릿의 걸음을 이렇게 평했다.
투란은 곧 에스탄이 어찌하는가 살폈고, 그런 투란의 눈치를 알아챈 듯이 에스탄은 묵직하게 내려서서 당당하게 걷는 모습을 보였다. 딱히 조용히 하는 시늉은 없었지만 발로 바닥을 가능한 한 가볍게 딛는 태도가 그 정도면 충분하다 기준을 정해 주는 듯했다.
그리고 셀리아는 드라고니아가 투덜거리게 했다.
―발로 땅을 딛지를 않는군? 이것 참, 차라리 홀시딘처럼 드러낼 것이니 대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군.
‘발이 안 닿아? 닿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냥 발자국 없이 걷는 것 아닌가?’
―아니다. 걷는 시늉을 할 뿐이고, 사실은 부양(浮揚) 중이야.
‘그래? 흐흠…… 동굴에서 걸을 때는 안 그랬잖아? 여기 정말 조용히 해야…….’
처벅처벅, 억센 발소리가 투란의 생각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돌아선 에스탄의 조금 노골적인 목소리.
“너무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가능한 한 가볍게 걷는다고 생각해. 어차피 인간의 청력이 아니니까.”
조금 전까지 보였던 태도는 사실 투란이 오해한 것이라 알려 주기라도 하는 말이었다. 그 때문에 앞서가던 프릿이 돌아서서 한마디 할 정도였다.
“에스탄, 그렇다고 대놓고 발소리 내지는 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심술부리는 짓은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잖아!”
“심술은 무슨! 날개 뜯긴 파리가 걷는 소리도 듣는다는데 우리가 굳이 어렵게 걸을 필요가 없는 것뿐이잖아!”
에스탄은 심술부리고 있었다.
그리고 투란은 곧 그 심술부리는 까닭을 직접 볼 수 있었으니…….
돌기둥이 제멋대로 솟아나며 벽 없는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촘촘하게 맞물린 것도 아니고 그저 아무렇게나 솟아난 돌기둥 무리, 어찌 보면 숲의 흉내라도 내는 중인가 생각하기 딱 좋았다.
어둠이 가득한 풍경 속에서 돌기둥 무리가 흘리는 여린 빛은 등불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 등불을 받아 돌기둥 사이를 흐느적거리고 맴도는 붉은 얼룩…… 가죽처럼 보이다가 안개처럼 흐느적거리기도 하는 붉은 무엇인가는 한없이 불길하고 음험한 분위기를 머금은 채였다.
그 풍경을 놓고 프릿이 불쑥 말했다.
“응, 여기서부터는 투란 혼자 들어오라고 했어. 투란이랑 이야기가 끝나면 그다음이 우리랑 이야기할 거라고 말이야.”
이 소리가 투란에게는 ‘널 먹잇감으로 던져 주면 우리에게 대가를 지불한다고 했어!’라는 말로 들리잖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