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7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74)
콰륵, 콰직!
돌격해오는 그랑츄 무리가 없어지고, 몇 번의 충돌이 이어진 후에 이전과 다른 폭음과 파괴음이 울렸다. 뒤를 잇는 괴성이 없이 울려 나온 소리는 곧 정적을 불렀고, 지켜보던 눈길들을 한층 더 주의 깊게 모여들게 했다.
그르르…… 크앙! 케에에!
정적을 깨는 짙은 목젖울림은 아주 먼 곳까지 당연하다는 듯이 퍼졌고, 이를 마무리 짓는 듯한 비명과 절규가 누런 털빛의 카프리곤에게서 울려 나왔다.
파팡, 팡!
검은 털빛의 카프리곤이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가 뒤이어 낭랑하게 퍼졌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북소리처럼…….
‘뿔이 부러졌잖아?’
멀리서 출렁거리는 듯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투란은 이 색다른 변화의 원인이 뭔가를 더듬다가 겨우 알아차렸다. 격돌하는 과정이 상당히 빨라지며 벌어진 탓에 잠깐 놓치고 있던 부분이었다.
누런 털빛 카프리곤의 뿔, 그 한쪽이 부러진 채로 덜렁거리고 있었다.
뿔을 감싼 털가닥, 가죽과 엮여 바닥에 뒹굴지는 않았지만 한쪽 뿔이 완연하게 꺾여 카프리곤의 누런 얼굴 옆으로 넘어가 덜렁대고 있었다.
―일단…… 승패는 가려진 것 같군.
‘승패? 이기고 졌다고? 아니, 잡아먹으려는 것 같은데!’
투란은 눈에 들어오는 검은 카프리곤의 움직임에 흠칫하면서 그 의미를 생각해야 했다. 사티르, 혹은 사티로스라고 하는 산양이나 염소 머리를 지녔다는 몬스터는 동족을 잡아먹지 않았다. 한데 카프리곤은 모습이 좀 다르고, 능력은 완전히 딴판인 것을 과시라도 하려는 듯이 지금 뿔을 꺾은 놈이 뿔이 꺾인 놈을 향해 다가가면서 입맛을 다시고 있는 꼴이 보였다.
단순히 서로의 기량을 겨루는 이기고 지는 상황이 아니라, 한쪽이 한쪽을 완전히 잡아먹어야 상황이 끝난다는 듯한 모습이 분명했다.
―과연, 카프리곤은 한 지역에서 두 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더니…….
드라고니아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는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뜻은 투란에게도 명확했다.
만나면 싸우고, 한 놈이 한 놈을 잡아먹는다…… 그렇다면 한 지역에서 두 마리가 보일 리가 없었다. 두 마리가 보인 순간, 저렇게 싸우고 한쪽은 사라질 테니…… 두 마리가 보였다면 그건 지금 투란처럼 싸우는 광경을 봤을 때뿐일 것이다.
‘어라? 저거 뭐 하려는?’
투란은 곧 저편의 이상한 녀석이 카프리곤을 향해 뛰는 꼴을 볼 수 있었다.
카프리곤 둘과의 거리가 수 킬로미터였기 때문에 녀석은 바로 도달하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멀리서 보는데도 휙휙 움직이는 듯이 보이는 꼴이 정말 몇 분 안에 당도하고도 남을 속도였다. 그 특이한 모습은…….
케에엥!
투란의 눈길을 다시 카프리곤이 잡아 끌었다.
투란의 두 눈동자, 이마 위에 솟아난 뿔수리의 눈동자가 모두 제각각 흔들거리면서 투란은 시야가 갈라지고 새롭게 두 곳을 분명하게 보는 자신을 깨달았다.
뿔수리의 눈은 저 먼 곳에서, 흔들거리는 탓에 수십 가닥으로 갈라진 것처럼 보이는 여우 꼬리를 엉덩이에 잔뜩 달고 달려오는 새하얀 녀석에게 시야를 집중했고 사람의 눈은 수백 미터 너머에 있는 두 마리 카프리곤이 벌이는 광경을 담았다.
뿔이 부러진 카프리곤이 머리 한쪽이 일그러져 있었고, 부러진 뿔이 늘어진 어깨가 쇠락(衰落)하듯이 오그라든 모습을 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투란의 눈길을 끌었던 괴성은 쇠약해져 가는 자신을 버티려는 마지막 외침인 듯했고, 어느새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조차 힘겨운 듯이 바들거리면서 누런 털을 찰랑이며 주춤대고 있었다.
검은 카프리곤이 그 앞으로 느릿하게, 그러나 큰 걸음으로 다가서며 목젖을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낮게 넓게 퍼져 나오며 수백 미터를 물들이는 듯이 느껴졌다.
‘아니, 저건 또 뭐야?’
투란에게는 카프리곤 두 마리의 지금 모습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뿔이 꺾였고 충격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어째서 한 마리가 돌연 저렇게 이상한 모습이 될까? 마치 오랫동안 병을 앓아 비실대는, 딱 그런 느낌을 보이고 있다니…….
―아무래도 격돌로 생긴 생체파동의 파괴력을 다 뒤집어쓴 모양이군. 버틸 수 없게 된 순간에 한쪽으로 파괴력이 집중되며 저리 된 모양이다. 물에다가 돌을 던질 때, 큰 돌을 세게 던지면 작은 돌의 파문이 삼켜지는 것처럼…… 패한 녀석에게 이긴 녀석이 뿜어낸 생체파동이 한꺼번에 쳐들어갔다면, 더 이상 버틸 수 없으니 저리 되는 것이 당연할 거야.
드라고니아가 설명하는 말은 그럭저럭 투란의 마음에 와닿았다.
그리고 동시에 투란은 저편의 하얀 녀석에 대한 의문이 더 커지는 것을 느꼈다.
카프리곤의 대결이 끝난 다음에 저게 대체 뭘 하려고 저리 질주하고 있는가?
카프리곤은 저런 게 자신들의 대결 다음을 노리고 다가오는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저 흰 놈은 정말…… 응? 투란!
드라고니아도 투란의 의문에 호응하는 듯이 중얼거리다가 돌연 놀랐다.
뇌리를 울리는 소리에 투란은 바로 공감할 수 있었다.
투란 역시 드라고니아처럼 제대로 놀랄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얀 녀석이 이제까지 보이던 조금 기묘한 질주……, 살랑거리며 휘날리는 여우 꼬리와 길고 가는 듯이 보이지만 두툼하고 굵은 허벅지와 긴 발을 자랑하는 두 다리의 도약, 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앞발―두 팔처럼 보이는 작고 가늘어 보이는 손으로 짧게 짚어 발판을 찾아 내딛는 듯한 움직임의 연계…… 그런 식이었지만 굉장히 빠르던 놈이 아예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편의 풍경에서 하얀 녀석이 없어진 듯한 그 순간, 카프리곤의 가까이에 하얀 얼룩이 불쑥 생겨났다.
수백 미터란 간격에도 불구하고 투란은 명백하게 기시감을 받았고, 바로 떠올릴 수가 있었다.
‘여우!’
―그래, 아빈가의 여우가 지닌 공간 도약이다!
드라고니아도 투란이 떠올린 바에 공감하고 있었다.
완전히 같은 것인지 아닌지는 애매했다.
하지만 저 하얀 녀석이 카프리곤의 근처로 한순간에 다가선 것은 분명히 질주하는 행동을 넘어서는, 저편에서 이편으로 한순간에 이동한 듯한 여우의 도약과 꼭 닮은 능력이었다.
‘꼬리도 여우 꼬리가 맞나?’
투란은 거기에 덧붙여서, 좀 심하게 많기는 하지만 저 크게 갈라지며 찰랑대는 꼬리 역시 여우의 꼬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열두 가닥씩이나 되지만, 여우 꼬리가 커진 모양은 맞는 모양이다.
드라고니아는 이번에도 투란의 생각에 공감했다.
그리고 이런 공감하는 속에서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이 피어올랐다.
‘저 흰 녀석, 대체 카프리곤에게 뭘 하려는 거지?’
―알 수 없다.
그래서 투란은 더욱 눈을 부라렸고, 이번에는 한쪽 풍경을 향해 두 가지 눈길을 집중했다.
카프리곤은 검은 털가죽을 부풀리면서 다가오는 흰 녀석을 노려봤다.
반쯤 골골하며 죽어가던 누런 털빛의 카프리곤은 그 틈을 노리겠다는 듯이 검은 카프리곤을 향해 주먹을 쥐고 달려들었다. 곧바로 그 목이 시커먼 털이 윤기를 흘리는 손아귀에 붙들리고 말았다.
투란의 귀가 쫑긋했다.
꽤 먼 거리였지만, 가늘게 뼈 부러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소리와 별개로 눈에는 확연하게 누런 카프리곤이 완전히 몸을 축 늘어뜨리는 광경이 보여서 저 상황을 바로 설명해주고 있었다.
검은 카프리곤은 자신의 결투가 끝났음을 선언하듯, 패배자의 목덜미를 잡아당기며 입가로 가져가고 있었다. 이미 투란이 엿본 태도 그대로, 먹어치울 의도를 행동으로 직접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하얀 녀석이 더듬이 같은, 토끼 귀처럼 생긴 부드러운 뿔처럼 보이는 머리에 달린 두 가닥 털뭉치를 흔들거렸고, 그 끝을 검은 카프리곤에게 겨눴다. 곧 허공에 찰랑거리는 회색광택을 뿌리는 검은 얼룩이 길게 그어지며 바로 검은 카프리곤을 향해 뻗어나왔다.
크앙, 크워어어!
괴성과 함께 검은 카프리곤의 한 발이 땅을 긁으며 걷어차 올렸다.
단순히 흙덩이가 튄 것과는 격이 다른, 땅이 집 한 채를 얹은 마당째로 덩어리가 되어 뜯긴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흙더미는 거대한 바위처럼 하얀 녀석과 카프리곤의 사이를 채웠고, 검은 얼룩 위로 짙은 그림자를 덧씌우면서 밀려들었다.
‘뭔 발길질이야, 저게!’
새삼스럽게 투란은 카프리곤의 발목을 바라봤고, 발바닥을 버텨주는 발굽의 각질이 그 발목을 감으며 꼿꼿하게 세워진 뒤꿈치를 타고 정강이의 반 이상을 거슬러 오른 모양을 봤다. 그 위로 굵게 부풀어 오른 허벅지와 윤기 나는 털가죽이 이어졌고…….
―카프리곤은 그 도약능력이 가장 먼저 꼽히는 몬스터니까, 오로지 다리 힘만으로 몬스터 중에서도 정상으로 꼽히는 도약능력이니 그 괴력으로 저 정도 발길질을 하는 것은 당연한 거야.
드라고니아가 침착하게 투란의 뇌리에 소리를 전할 때, 저편에서는 하얀 녀석이 머리의 절반을 열어젖히듯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닌, 온몸에 소름이 돋게 하는 괴상한 음향이 그다음에 바로 터져 나왔다.
투란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고, 그 소리에 대해 대항해야 했다.
흙더미가 순식간에 안개처럼, 달아오른 쇠주전자에서 뿜어져 나온 증기처럼 사라지는 광경과 함께 카프리곤의 검은 몸이 까마득한 저 멀리로 튀어나가는 것이 보였다.
한 손에는 덜렁거리는 패배자를 쥔 채로, 검은 카프리곤은 하얀 녀석에게서 수십 미터 저편…… 거의 백여 미터가 아닐까 싶은 저편으로 단숨에 튀어 멀어진 것이다.
‘와, 정말 멀리 뛰는구나!’
투란이 감탄할 때, 하얀 녀석은 손처럼 보이는 앞발을 가지런히 모았고 그 좌우로 길고 가는 발을 디뎠다. 그리고 다음 순간, 카프리곤을 향해 하얀 궤적이 꼿꼿한 직선으로 그어졌다.
―저게?
드라고니아는 짧게 놀란 소리를 냈다.
투란도 그 놀라움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프리곤의 엄청난 도약은 그래도 살짝 곡선을 남기고 있었다. 하지만 저 하얀 녀석은 그 간격을 단숨에 돌파하려는 듯이 꼿꼿한 직선의 궤적을 잔영으로 남기며 쏘아지듯이 뛰었다!
수백 미터 저편의 공중에서 격한 충돌이 낸 소리가 아련하게 투란의 귓가로 스며왔다. 검은 카프리곤의 발길질, 하얀 녀석이 찌르듯이 뻗은 앞발이 부딪힌 광경의 뒤를 잇는 소리였다.
검은 카프리곤은 공중에서 디딤돌을 밟았다는 다시 더 먼 곳으로 뛰었고, 하얀 녀석이 바쁘게 움직인 앞발의 손짓은 붙들린 채로 허우적거리는 꼴이었던 누런 털빛의 카프리곤을 잡으려다가 길게 할퀴며 찢었다.
유혈(流血)의 흔적이 공중에 남겨질 때, 하얀 녀석과 카프리곤의 모습은 저편 언덕 너머로 사라졌다.
‘어?’
투란은 여전히 땅에 납작 붙은 꼴로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갔네?
드라고니아가 뭔가 뚱한 소리를 울렸다.
‘갔지?’
투란의 뇌리에 저절로 그 소리를 되풀이하는 생각이 피어났다.
수백 미터 저편에서 여기까지 쩌렁쩌렁 울려대는 격돌의 굉음을 내던 녀석들이 싹 사라졌다. 수 킬로미터 저편에서 기괴한 질주와 도약을 통해 뛰어온 녀석도 함께 사라졌다.
엉뚱하게 돌격해 들어가던 붉은 그랑츄 무리의 피자국은 엉망진창으로 갈라지고 파여 나간 저곳을 붉은 얼룩처럼 잔뜩 물들인 채로 남아 있는데…….
그저 멀뚱거리는 눈길, 네 개의 눈을 깜박거리면서 투란은 자신이 정말 완벽하게 구경꾼 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쫓고 싶다면…….
느릿하게 운을 떼는 드라고니아의 소리에 투란의 고개가 바로 저어졌다.
‘관둘래. 둘 다 상대할 수도 없지만, 한 놈도 뭔가 까탈스럽게만 느껴져.’
―드레이크와 고르고니아의 힘이라면 질 리는 없어 보인다만?
‘카프리곤이야 그럭저럭 해볼 만한 것 같지만, 하얀 녀석은 모르겠어. 느낌도 별로 좋지 않고 너도 모른다며?’
―너무 이상한 녀석이었다. 형태도 이상하고 드러낸 능력도 그렇고, 그 녀석은 마치…….
드라고니아의 소리가 잦아들었다.
몸에 묻은 흙을 털며 일어서던 투란이 의아해졌다.
‘마치 뭐?’
―몬스터 로드의 변신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생김새만 놓고 본다면 말이야.
‘엥? 몬스터 로드? 저거 몬스터 로드 아니야. 엠블럼의 반향이 전혀 없었어.’
투란은 키린과의 만남을 통해 느끼고 배운 것을 떠올리며 바로 고개를 저었다.
하얀 녀석이 뭔가 이런저런 것이 섞인 모습이기는 했지만, 문장의 형태와 상관없이 느낄 수 있어야 하는 몬스터 엠블럼의 독특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 감각을 통해서 키린은 몬스터와 몬스터 로드 사이에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덕분에 몬스터 로드가 다른 몬스터 로드를 몬스터랑 분별할 수 있다고…….
―외형만 놓고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머리나 꼬리라든가 그 기묘한 앞 손 같은 것이 아니라면, 그냥 짐승을 섞은 모습이었다면 키마이라 계통이라 여겼을 텐데…….
‘키마이라? 아, 전에 말했던 거. 하긴 저놈의 꼬리나 머리통이 이상하게 생기기는 했지. 다리도 그렇고…… 아니, 잠깐. 저놈 뭐 하나 보통인 게 없는 놈이잖아! 에잇,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어.’
하나씩 더듬다 보니, 결론은 진짜 이상하고 좋지 않은 느낌만 가득하다는 것이 하얀 녀석에 대한 감상이 아닌가!
―그렇게 되는군.
약간 쓴웃음을 짓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대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