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1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17)
“캐슬링(Castling)!”
세찬 외침과 함께 마법의 지팡이가 땅에 내리꽂혔다.
거친 자갈과 잔돌이 튀어 오르며 마법의 힘에 튕겨나가는 광경, 지팡이가 황금빛 서리에 휩싸인 듯이 반짝이는 모습, 마법사의 몸을 중심으로 금색 안개가 피어오르며 저편으로 이어지며 색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금색 안개의 끈에 당겨진 것처럼, 마법사에게서 멀어져 있는 네 사람이 다시 허공으로 튕겨 올랐다가 금빛 벼락처럼 마법사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화아아!
거센 불길이 황금빛 위로 넘실거렸다.
황금빛은 불길이 자신을 덧칠하는 것을 막으려는 듯이 밀어냈다.
안개와 서리, 황금빛은 두 가지 현상을 만들어내면서 마법사를 중심으로 상자 혹은 길쭉한 석관(石棺)으로 보이는 형태를 이뤄나갔다. 이 형태는 불길이 넘실거리는 풍경 속에서 빠르게 완성되었고, 결국 마법사는 커다란 육면체, 큐브의 형태 속에 숨은 꼴이 되었다.
황금과 회색의 재로 뒤덮인 듯한 커다란 그랑츄의 형상이 이런 마법사 쪽을 노려보는 모습이었는데, 마법사와 그랑츄 사이에는 황금의 조각상처럼 보이는 네 사람이 버티고 선 채였다. 큐브의 한 면에 박힌 듯이 서 있는 네 사람의 황금상(黃金像)은 마치 문을 이룬 듯한 모습으로도 보였다.
그 큐브 속에서, 거친 소리로 마법사 아겔페스가 손을 옆으로 찌르듯이 내밀며 외쳤다.
“젠장! 물병!”
두꺼운 황금빛의 벽에서 네모난 판이 흘러나왔고, 거기에는 투명한 유리병이 놓인 채였다. 마법사의 손이 닿는 순간, 유리병 속에는 찰랑거리는 물이 채워졌다.
아겔페스는 물병을 단숨에 입에 대고 담긴 물을 한껏 들이켰다.
벌컥거리며 목젖이 여러 번 울렸지만, 물은 끊임없이 병에서 흘러나왔다.
거의 물로 배를 채울 것처럼 삼킨 다음, 아겔페스는 거친 동작으로 물병을 등 뒤로 던져버렸다. 바닥과 벽의 황금빛이 날름 병을 낚아채듯이 흘러나왔고, 물병은 사라졌다.
숨을 고른 다음, 부릅뜬 눈으로 아겔페스는 정면을 노려봤다.
시알라 남매가 황금상이 된 채로 등을 보이며 나란히 선 모습, 그 너머로 엘리트 그랑츄가 마법에 묶인 광경이 선명하게 보였다.
‘세란드잖아, 그런데 왜 세란드가 아냐!’
마법사의 생각은 혼란스러웠다.
마법의 힘은 저 엘리트 그랑츄가 분명히 황금매의 문장에서 형성되어 나온 것을 간파하게 해줬다. 그 황금매는 틀림없는 세란드의 몸에 아겔페스가 직접 박아넣은 것이었고…….
그런데 세란드의 정신에서는 결코 느껴질 리가 없는 이상한 낌새 또한 아주 선명하게 아겔페스에게 느껴졌다. 저 녀석은 절대로 세란드가 아니라는, 세란드가 보여야 할 분명한 증오와 확실한 분노가 아예 없는 느낌……. 마법사로서는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경계의 감각이 날을 세우게 해주는 기척이었다.
아겔페스는 자신의 의혹과 혼란을 잠시 정신 한쪽으로 치워두고 황금의 큐브를 살피며 계측했다.
‘외부와의 차단은 괜찮고, 사고(思考) 가속(加速)도 괜찮고…… 치유(治癒) 강화(强化)도 성립되었고…… 긴급 캐슬링이지만, 제대로 되었네.’
잠깐 마법사의 얼굴 위로 마음을 놓는 기색이 스쳐 갔다.
그리고 곧바로 불만스럽고 짜증 난 기색이 그 얼굴로 번져간다.
‘아케인 포트리스(Arcane Fortress)만 쓸 수 있었어도.’
순간적으로 단순한 구조, 육면체라는 아주 뻔한 형태의 마법 장벽으로 이뤄진 안전구역을 만들어내는 주문 캐슬링은 원래 ‘아케인 포트리스’의 전주(前奏)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캐슬링은 ‘메자이 캐빈’의 상위 주문이기도 했다. 마력만 공급된다면, 결코 부서질 리가 없는 마법의 장벽 속에 마법사를 보조하는 주문과 물품을 잔뜩 갖춰놓을 수 있는 왕성(王城)을 이뤄주는 것이니…….
아겔페스는 떠오르는 불만을 억누르기 위해 잠시 숨을 멈췄다.
오직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서 잠시 눈을 감기도 했다.
곧 다시 부릅뜬 눈으로 마법사는 앞을 똑바로 봤다.
저 엘리트 그랑츄의 실체가 세란드인가 아닌가는 여전히 모호했다.
그러나 분명히 저 황금매가 아겔페스가 심어놓은 것이며, 완성된 채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서서히 숨을 고르면서 아겔페스는 강력한 주문을 준비하기로 했다.
캐슬링의 큐브 속에서 안전하게 외울 수 있는 주문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으로!
‘잡아놓고, 황금매를 수확하고 나서…… 그 때도 문제가 된다면, 그때 알아내주마.’
결국 아겔페스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정한 셈이었다.
완성된 황금매의 수확, 그거야말로 아겔페스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열매를 따는 일이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앞설 수밖에 없는, 당장 해야 할 일이었다!
시작의 첫마디가 아겔페스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메, 도미네…… 아우룸 아쿨리아(Me, Domine…… Aurum Aquila)!”
황금의 마력이 세차게 요동치며 육면체를 울리면서 네 사람의 황금상을 통해 3미터에 조금 모자라 보이는 엘리트 그랑츄를 향해 뭉클거리며 흘러갔다.
* * *
―내가 주(主)이니…… 황금매여!
‘응?’
투란은 느닷없이 전해져오는 강렬한 ‘언어(言語)’에 놀랐다.
문장의 입구에서 회색으로 물든 격자가 으스러질 듯이 울리면서 전해져오는 ‘언어’가 황금의 풍경을 쩌렁쩌렁 울린다!
그리고 곧바로 투란은 하얀 괴물과 망령이 합창하는 소리를 들었다.
“스펠 앵커(Spell Anchor)! 놈이 종속 주문을 시작했다! 어서 죽여야 해! 저 주문이 끝나면 황금매가 놈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여기 있는 모든 황금매의 문장을 저놈에게 빼앗기고…… 전부 죽어!”
‘세란드’의 말에 담긴 의미를 투란은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저 전부라는 한마디에는 시알라 남매와 투란이 모두 담겨 있다.
그리고 ‘세란드’는 예전에 저 주문을 겪은 적이 있다.
‘그땐 어떻게 했지?’
곧 희미한 풍경을 엿보듯, 투란은 ‘세란드’가 겪었던 일을 엿볼 수가 있었다.
그 순간이 바로 ‘세란드’가 사람인 자신을 내던지고 마법사를 죽였을 때였다.
즉, ‘세란드’는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투란을 위한 말을 하는 셈이었다.
물론 시알라 남매에 살짝 덧붙여진 덤인 듯하기는 했지만!
투란도 ‘세란드’처럼 저 마법의 장막을 찢어발기고 마법사를 갈기갈기 짓이겨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저 주문이 완성되기 전에 그래야 한다는 것도 분명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세란드’처럼 황금매의 문장에 매달려야 할 때의 일!
“옥좌라니, 돌아보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투란에게는 먼저 확인해야 할 이야기가 있잖은가!
‘세란드’가 괴물과 망령의 소리를 함께 뒤섞은 채로 초조함과 불안함이 가득한 대답을 한다.
“그건 나중에 자세히 검토할 수 있다고! 놈의 주문이 완성되면…….”
“저건 잠시 치워두지.”
투란은 날카롭게 ‘세란드’의 말을 끊었다.
이는 바로 ‘세란드’를 섬뜩하게 했으니, 괴물과 망령이 한걸음 물러서며 흠칫하는 몸짓을 보이게 했다. 그리고 의혹을 토해내게도 했다.
“뭐? 치우다니? 무슨…….”
투란의 정신은 ‘세란드’의 영역에서 벗어나, 고리 너머의 하늘로 옮겨갔다.
고리 안쪽에서 보이는 황금의 반구 안쪽은 얼핏 봐도 뒤죽박죽이었다.
황금이 물결치면서 회색이 빠르게 번져가는 풍경…… 녹아내릴 듯이 흔들거리고 요동치는 황금이 반구의 안쪽을 더듬으며 회색을 뿌리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 황금의 광채를 가늠하며 투란은 선명하게 느꼈다.
여러 갈래로 흘러온 황금의 마력이 서로 공명하며,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를 버텨주는 느낌…… 몬스터 엠블럼의 ‘심연’이 공명하는 것과 닮았으면서도 달랐다. 그리고 그 위로 덧씌워지는 회색은 오로지 황금 위에 올라타기만 하려 할 뿐이었고, 전혀 함께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저게 떠드는 거지.’
회색으로부터 반복되어 튀어나오는 ‘언어’를 다시 듣고 느끼면서, 투란은 알 수 있었다. 저 회색이 아니면 이 풍경을 유지하는 황금의 마력은 흔들림 없이 투란의 의지에 따른다. 외부에서 흘러온 황금의 마력 또한 저렇게 투란의 풍경을 뒤틀려 하지 않을 터였다.
회색은 마력의 황금을 지배하고 있었고, 투란의 풍경 또한 그 지배영역 속에 담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투란이 당장 할 일은 아주 간단했다.
‘저걸 치우면 어떻게 되겠지.’
곧바로 고리 너머로 투란의 의지가 전해졌고, 풍경이 반응했다.
먼저 투란이 황금매를 통해 삼킨 몬스터들이 차례대로 으르렁거림을 토해냈고, 그 포효로부터 생성된 힘이 새로운 궤적을 만들며 반구의 안쪽 황금을 세차게 뒤틀었다. 그 궤적을 따라 회색이 흐르기 시작했고…… 고리를 넘어와 아득하고 넓은 하늘로 흩어져 갔다.
‘아겔페스?’
투란은 하늘에서 자신이 맴도는 듯한 감각 속으로 회색이 끼어드는 것을 느꼈고, 그 회색으로부터 마법사를 느낄 수가 있었다. 명확하게 그 이름을 되뇌는 순간, 투란은 아겔페스가 어떻게 이 회색으로 황금의 마력에 간섭하는가를 알 수 있었다.
‘아, 이 회색을 정련해서 다른 사람에게 부여하는 형태로 가다듬은 황금이었군. 그러니까…… 원래 아겔페스의 마력이었고, 그걸 바탕으로 황금매가 마력을 축적하니까…… 결국 아겔페스의 의지가 주문으로 강화되어 들어오면 꼼짝없이 당하는 거군.’
보다 복잡하고 섬세한 여러 가지 단계가 있는 듯했지만, 투란은 그냥 소박하고 간단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황금의 근원이 저 회색이고, 색으로 보이는 저 마력은 결국 자신을 낳은 최초의 의지에 복종하려 한다. 황금매를 품은 자, 몬스터 로드가 아무리 열심히 황금을 쌓아 올리고 키워도 저 주문을 통해 다시 한 번 황금은 회색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려 하고, 그 의지에 합류하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회색을 지워버리게 된다면, 황금매를 품은 자가 다시 한 번 황금의 주인이 된다. 또다시 저 회색이 흘러오지 않는다면…….
‘역시 마법사를 죽여야 하기는 하네.’
아겔페스가 살아 있는 한, 그가 저 회색의 마력을 품고 있는 한 황금의 마력은 아무리 깊이 단련되고 축적된다 해도 결국은 근원을 거스르지 못하는 채로 아겔페스의 의지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빌려준 황금에 대해 몇 십 배, 몇 백 배의 이자를 붙여서 채간다고 할 수 있었다.
‘악질이네, 아겔페스.’
투란은 몬스터 사냥에 나선 이에게 좋은 장비를 살 돈을 빌려주고 결국 사냥한 몬스터까지 다 뺏어 가던 이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대금(代金) 상인이라고 불리는 그들은 샤오콴 마을에 나타나면 샤오덴 할배에게 일단 잡혀가서 감금당한 채로 자기소개를 해야 했다. 그들에게 빌린 돈으로 장비를 구한 몬스터 헌터들은 가능한 한 그들이 묶여 있는 사이에 돈을 갚으려 했고…… 샤오콴 마을을 벗어난 채로 그 돈을 갚으려 하다가는 한 푼도 남김없이 다 뺏기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어린 투란에게 대금 상인은 몬스터만큼이나 사람을 뜯어먹는, 사람의 껍질을 뒤집어쓴 몬스터처럼 무섭게 보였었다. 물론 샤오덴 할배는 그런 투란을 향해 아주 씁쓸한 웃음과 함께 말하기는 했다.
“전부 나쁜 놈인 거는 아냐. 나쁜 놈들이 많아서 그렇지만…….”
그리고 언젠가 좋은 대금 상인도 볼 기회가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샤오콴 마을에서 투란은 좋은 대금 상인을 본 적이 없었다.
겨우 서너 번 나타났던 대금 상인은 하나같이 지독하게만 보였었는데…….
“돈 갚지 않으려고 여기까지 온 놈들도 꽤 있거든.”
샤오덴 할배는 그들의 지독한 모습에 대해 이렇게도 말했다.
애초에 갚을 수 있는 돈을 떼먹기 위해 도망친 녀석들을 잡으러 온 상황이니 좋은 모습 보일 리가 없다고 말이다.
아겔페스는 투란에게 그 시절에 얼핏 봤던 대금 상인의 모습을 바로 떠올리게 했다. 진짜 금전이 아니라 마력을 빌려준다는 점이 달랐고, 이모저모로 섬세하고 강력한 마법을 곁들인다는 점도 특이하지만…… 어쨌든 과거 자신이 흘려보냈던 마력이 성장하고 강력해질 때를 기다려 몽땅 빼가려는 모습은 대금 상인에게서 봤던 흉악함이 그대로 담긴 듯하잖나.
상관없는 투란에게 저러는 꼴을 보니, 아겔페스는 그저 악질일 뿐이고 좋은 면을 기대할 수가 없다!
‘놀랐나…… 뭐, 그렇게 놀라고 있으라고.’
문장의 풍경 속에서 회색을 싹 걷어내고, 다시 순수한 황금만으로 가득 채워진 꼴을 만들면서 투란은 ‘세란드’가 말한 것을 찾아보려 했다.
고리를 넘어와 하늘에서 흩어지는 회색을 통해 아겔페스가 당황하는 꼴이 느껴졌지만…… 투란에게는 별 상관없는 일이다!
* * *
“이런…… 이런 일이…….”
아겔페스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은 곧 아겔페스의 마력을 위험하게 흔들었고…… 황금의 육면체가 즉각 반응해서 정신을 안정화하는 주문을 흘려내게 했다. 덕분에 아겔페스는 금방 냉정함을 되찾기는 했지만, 충격은 여전히 냉정해진 아겔페스의 정신을 파헤치고 있었다.
‘마력 소실(消失)이라니! 어째서? 어떻게!’
그랑츄를 중심으로 일정한 영역에서 아겔페스의 마력이 지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