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5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52)
얼룩 점박이 털이 가득 채워진 몸이었지만, 곳곳에 듬성듬성한 털이 빠진 자리에는 두드러기와 혹이 볼록 솟은 자국이 또렷했다. 두 발로 뛰고 있지만, 본래는 네발짐승이란 것을 알려주는 듯한 몸매였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두 발로 뛰고, 앞발이 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듯…… 닮은 모습인 여러 마리의 쟈칼릭은 벌통 꼭지를 꽉 움켜쥔 채로 미친 듯한 괴성을 지르면서 달려들고 있었다.
꼭지가 잡힌 여러 개의 벌통에는 와글거리는 벌떼가 들러붙은 채였고, 자기네 성채(城砦)를 멋대로 들고 뛰는 쟈칼릭의 팔뚝, 앞다리 위로 옮겨붙으면서 털을 뽑고, 가죽을 긁어내며 속살과 뼈를 부지런히 발라내는 중이기도 했다.
정상적으로 자기 몸 걱정할 줄 아는 경우라면 일찌감치 벌통을 내다 버린 채로 머리를 감싸고 멀어지는 것이 당연할 텐데…… 쟈칼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분명히 고통을 느끼면서도, 눈두덩이에 눈 대신 혹이 채워진 듯한 괴상한 몰골이 괜한 것이 아니라고 과시하는 것처럼 쟈칼릭은 벌통을 쥔 채로 뛰었고, 자신들의 목표를 향해 내던지기 위해 발악했다.
워어엉! 웡, 웡!
선두에 달리던 쟈칼릭이 조금 색다른 외침을 크게 터뜨렸고, 그 순간 함께 달리던 쟈칼릭들이 일제히 벌통을 내던졌다. 이미 뼈만 남은 듯하고 힘줄과 핏줄이 다 날아간 듯한 괴상한 팔이 휘둘러지는 광경은…… 기괴했다.
시알라가 쪼그리고 앉은 투란의 곁을 스치면서 숲을 향해, 미쳐 날뛰는 꼴을 보이는 쟈칼릭의 돌진을 향해 마주 섰다. 그리고 짧게 말한다.
“투란, 저리 가서 쉬고 있어.”
“어? 어…….”
슬그머니 주저앉으면서 한껏 지친 표정을 하고, 숲에서 뛰쳐나올 듯한 쟈칼릭을 구경하던 투란은 오리가 게걸음을 하는 시늉을 하면서 제란드 곁으로 슬슬 자리를 옮겼다. 그런 투란을 흘깃하면서 제란드가 말한다.
“저것들…… 숲에서 나올 수 있는 건가?”
“음…… 글쎄?”
투란은 고개를 갸웃했다.
숲에 진입할 때에 얼핏 지켜본 바로는 한번 이 숲의 역병에 씌워진 놈들은 숲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 진입 전에는 숲속에서 구경만 하던 것들이 발 딛자마자 바로 달려들어서 놀라기도 했었다.
그런 기묘한 특징 탓인지 이 숲 안에는 밖에 알려지지 않은, 알려질 수가 없었던 이상한 것들이 잔뜩 맴돌고 있었고!
“나오긴 어딜 나와!”
시알라의 험악한 중얼거림은 제란드와 투란의 갸웃거림을 싹둑 잘랐다.
설혹 저 자기 몸 아낄 줄 모르는 쟈칼릭이 나오고 싶다 하더라도, 이 자리에서 그 꼴 볼 생각이 전혀 없다는 시알라의 선언이잖은가.
거기에 괜한 소리 덧붙일 필요가 없다!
그리고 시알라는 자신이 한 말이 헛소리가 아닌 것을 증명하겠다는 듯…….
“휠 파이어(Wheel Fire).”
한 손을 내밀며 낮은 소리를 냈다.
내민 손 위로, 부드러운 불의 고리가 생겨났다.
고리의 중심에 불꽃이 엉기면서 구슬이 되었고, 고리와 구슬 사이를 잇는 작은 불길이 피어올랐다. 불의 바퀴는 시알라의 손 위에서 맴돌았다.
워어엉! 웡, 웡!
쟈칼릭 떼가 포효와 함께 벌통을 내던졌다.
벌떼가 웅웅대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쟈칼릭 몇 마리는 순식간에 벌떼에 휘감긴 채로 엎어지면서 뒹굴었다.
벌떼는 자신들의 성채를 휘감기도 하고, 그 주변을 맴돌면서 닿는 것을 들이박기도 하면서……큰 더미가 되어 날뛰며 날았다. 뭐든 닿는 것은 그냥 두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표현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이 광경과 불꽃이 자아내는 그물이 겹쳐졌다.
이 그물은 시알라의 손아귀에서 맴도는 불꽃의 수레바퀴에서 가늘게 흩어져 나오고 있었고, 그 근원인 불꽃의 수레바퀴는 시알라의 굽은 손가락 끝과 맞닿아 있었다. 그 손가락 끝, 손톱 아래에서 피어난 붉은 핏줄에서 흘러나오는 불티가 불꽃이 일궈내는 그물로 흘러 들어가는 미묘한 광경이 너울거리는 불길 속에 감춰진 듯한데…….
파삭, 파르륵!
화아아앙!
벌통이 순식간에 붉은 섬광을 피워 올렸고, 불티가 되어 사라졌다.
벌떼 무더기 또한 그 섬광에 섞이면서 불티로 변해 흩어졌다.
웡! 워엉! 컹?
벌떼에 뒤덮여 몸의 반 정도가 뼈만 남은 몰골이었지만 뒹굴다가 일어난 쟈칼릭들이 뭔가 환호에 찬 괴성을 지르는 듯하다가 고통에 물든 비명으로 바꿔버린 듯이 울부짖었다.
그런 쟈칼릭의 몸에는 불티가 튀어 있었고, 붉은 섬광은 쟈칼릭을 순식간에 물들이며 삼켜버렸다. 쟈칼릭의 모습은 순식간에 불티로 만들어진 것처럼 변했다가 사라지고 말았다.
벌 떼와 벌통처럼.
사아아! 사악!
불꽃의 그물이 너울거리는 부분에 닿은 숲, 나무와 덤불의 검푸른 색채로부터 이상한 울림이 흘러나왔다. 비비적거리면서 움직일 리가 없는 것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불꽃이 너울대며 불티가 휘날리는 영역으로부터 숲이 꺼지듯이 물러섰다.
그 광경은…….
“타서 없어진 거야? 뒷걸음질 친 거야?”
투란의 중얼거림처럼 쉽게 어느 쪽이라고 단정 짓기 애매했다.
제란드가 곁에서 이에 답하는데…….
“타서 사그라든 셈이기는 한데…… 정말 뒤로 물러선 것처럼 보였어. 우리가 숲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아마 이 숲이 살아서 불을 피했다고 생각했을 거야. 정말 다시 봐도 이상한 숲이라니까.”
살짝 지긋지긋하다는 말투가 잔뜩 배어 있는 소리였다.
페란드는 이런 둘의 말을 듣고 나서, 그 앞쪽에서 불꽃을 휘젓는 시알라를 향해 외친다.
“누나,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이 외침에 시알라가 반응하기 전에 끙끙 소리를 내면서 멜란드가 눕혀졌던 몸을 일으키면서 대꾸한다.
“그래, 그만하라고. 그렇게 세게 때리면…….”
“아직 정신없냐?”
페란드가 돌아보면서 혀를 차는 소리를 냈다.
멜란드는 눈을 껌벅이며 페란드를 바라봤고, 시알라가 불을 휘젓던 손짓을 멈추는 광경을 겨우 알아차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 멜란드의 입술이 삐죽거린다.
“휠 파이어. 나도 저렇게 상상할걸.”
이 소리에 투란이 바로 귀를 쫑긋하면서 슬쩍 돌아봤다.
투란에게는 제란드가 먼저 보였고, 우뚝 선 페란드가 그다음으로, 멜란드가 페란드의 곁을 지나서 땅에 엉덩이를 깔고 다리를 쭉 편 채 머리를 긁적대는 모습이 보였다.
잠깐 세 형제를 보던 투란이 문득 알아차렸다는 듯이 툴툴거리는 웃음을 흘리는데, 작게 시작한 웃음이 곧 밝고 크게 울려 퍼졌다.
시알라가 불꽃이 너울거리는 숲을 등진 채로 다가와 갸웃하면서 묻는다.
“투란, 왜?”
“하하, 아하핫. 재밌잖아! 다들…… 숲을 넘었는데, 이제 차림새도 많이 바뀌었는데…… 아하핫, 왠지 숲에 들어가기 전이랑 닮았어! 아하핫.”
“응?”
시알라는 눈을 한 번 깜박하고서 동생들을 바라봤다.
조금 갸웃하거나 아리송한 표정으로 멀뚱하니 서고 앉은 세 형제…….
기억을 더듬어보니, 확실히 셋의 모습은 시알라에게도 숲에 들어서기 전과는 많이 달랐다. 투란 말처럼 차림새가 바뀌었으니, 당연한 일이기는 한데…….
“흠, 닮았나?”
시알라에게는 투란이 말하는 닮았다는 부분이 아리송했다.
숲을 통과하면서 무장(武裝)하는 방식이 바뀌었고, 새로운 것도 많이 배웠다.
그리고 황금매에 더 익숙해졌고, 더 깊이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 때문에 지금 시알라 자신도 검붉은 갈색의 가죽을 바탕으로 연한 황갈색의 편갑(片甲)을 곳곳에 덧씌운 형태로 방어를 강화했지만 갑옷이라기에는 애매한 옷을 입은 채였고, 어깨에 걸친 것처럼 두른 망토와 후드의 경우에는 붉은 바탕에 특별한 무늬가 가득 채워진 안쪽과 적갈색의 바깥쪽이 누가 봐도 마법이 깃들었다고 의심할 만큼 수상해 보이는 차림새였다.
한데 이런 시알라 곁에 페란드를 놓고 보면 그 수상함은 한층 더해진다!
페란드의 투구에서 시작돼서 발끝까지 감싼 갑주(甲紬)는 숲을 통과하면서 변한 페란드의 체형(體形)…… 허리가 조금 가늘어졌고, 어깨는 더 넓어졌으며 두 다리는 왠지 더 굵고 길어진 느낌이 된 몸매에 맞게 다시 구상해서 맞춘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페란드는 오래전에 보고 탐내던 연금술사의 기계술(機械術) 갑옷을 떠올렸고, 어째서인가 대장간의 불가에서 그런 갑옷을 수선해본 기억을 세심하게 되살려버린 투란의 도움으로 진짜 기계술로 짜인 듯한 금속갑옷을 생성해냈다. 이제는 누가 봐도 페란드의 갑주를 마법이라기보다는 연금술사의 한 계열에서 연구해냈다는 기계술의 작품으로 착각할 지경이다!
그리고 제란드…… 제란드의 경우에는 그나마 숲을 들어서기 전과 닮은 듯하기는 한데, 역시나 페란드처럼 이리저리 계속해서 자신의 장비, 단검띠를 고치고 향상시키는 데 머리를 쓴 탓에 결코 이전과는 같을 수가 없었다. 하물며 지금 제란드는…….
“닮다니? 같은 사람이라고, 같은 사람! 아니, 똑같은 사람을 놓고 닮았네 뭐네 하다니! 투란, 그거 굉장히 이상한 말이라고!”
멜란드가 투덜거렸고, 이는 곧 시알라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한숨을 쉬면서 시알라는 멜란드를 바라봤고, 금세 멜란드 역시도 차림새가 꽤 변한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매일 조금씩 갈아치우는 탓에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투란의 말처럼 저 숲에 진입하기 전을 떠올리면 정말 많이 변해 있었다. 단순히 옷감을 생성해서 두껍게 감싸는 수준을 완전히 벗어나 버린 모습…….
어딘가 페란드랑 비교하면 소박해 보이기는 하지만, 저 작고 하찮아 보이는 변화는 멜란드의 온갖 잔머리의 결실이잖은가!
시알라가 막내의 이제까지 모습을 떠올리면서 살짝 입술을 깨물고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저 숲을 지나기 전의 우리랑 지금 우리가 똑같냐? 뻔한 얘기도 못 알아들어?”
페란드가 멜란드를 타박했다.
멜란드는 입술을 삐죽거렸고, 제란드가 투란에게 묻는다.
“투란, 눈가가 더 붉어졌어. 눈 아래쪽도 꽤 부풀었고, 거뭇하기는 한데…… 꼬마의 실핏줄이 엿보여. 불씨가 제대로 튀는 것 같은데? 예정보다 빨리 나온 것도 있고 한데…… 다시 들어가서 하루 정도 머물다 갈까?”
“응? 저길 왜 또 들어가! 아오옷! 싫어! 발 헛디뎠다고 구덩이에서 살 발라먹는 벌떼가 나오는 거, 지겹다고!”
투란은 바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제란드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듯이 눈길을 돌리면서 말을 잇는다.
“하지만 이 근처는…… 이미 숲에서 벗어났다고. 시야가 탁 트여서 보고 싶은 녀석들은 어디서든 우리를 볼 수 있어. 우리가 뭘 하는지도 훤히 볼 것 같은데?”
페란드가 이 말을 받는다.
“사람의 눈길은 없잖아?”
제란드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우리가 세운 계획대로 하자면…….”
“괜찮아! 어차피 사흘은 더 숲을 지날 셈이었잖아. 여기서부터 라비엔까지가 대강 하루 이틀이면 되는 거 아니었어?”
투란이 씩씩거리면서 제란드의 말을 끊고 물었다.
제란드는 머리를 긁적였고, 페란드가 대신 대답한다.
“사나흘. 하루 모자라, 투란.”
“조금 걸음을 빨리하면?”
투란은 끙끙거리는 소리로 물었다.
이번에는 제란드가 대답한다.
“그럼, 눈에 띌 거야. 특히나 경계망루 쪽에서 바로 알아차릴 수밖에 없지. 거긴 사람이 머물고 있다가 이상하게 움직이는 거는…… 빠르거나 느리거나 뭐든 바로 포착해서 라비엔에 알리는 역할을 하니까. 아웃포스트라고 했던가? 마법사들이 그렇게 부르면서 경계 망루에 영문 모를 마법을 걸어둔 것도 있다고 하니까…… 우리 움직임이 들키지 않는 게 어렵다고. 정말 쉬지 않아도 되겠어? 하루 정도 더 배 속을 비울 수가 없을 텐데?”
“견딜 수 있어! 그럼, 견디고말고!”
투란의 대답은 꽤 고집스러웠다.
멜란드가 멀뚱히 보고 듣다가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연다.
“저기, 투란…… 아무리 황금이 좋기는 하지만 말이야…… 너무 욕심이 지나치…… 크엑?”
머리통에 떨어진 단단한 페란드의 주먹이 바로 멜란드의 말을 끊었다.
제란드가 혀를 차면서 오히려 멜란드에게 한마디 한다.
“황금 위에서 자겠다고 설쳐대는 녀석이 할 말이냐, 그게?”
“자고 간다고, 난! 그저 한번 자는 경험을 해보고 싶은 거였잖아! 좋은 추억이 되는 거잖아! 투란은…… 아무리 할 수 있다고 해도,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고! 앞으로 사흘이라니…… 투란, 속이 메슥거리지 않아? 너무 먹어서 배 속을 꽉 채워놓으면 오히려 토하는 거라니까! 그냥 뱉고 적당히 뜯어가자고!”
멜란드는 머리를 문지르면서, 옆으로 굴렀다가 짐을 들고 일어서면서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투란은 히죽 웃으며 대꾸한다.
“괜찮아, 다 왔잖아!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지!”
요새 도시 라비엔을 향했다는 훤한 들판을 바라보면서, 투란의 투지가 활활 타오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