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1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07)
“너는…… 세비앙, 너는 어떤 역할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 남겨졌나? 마스터 엘투란께서는 너에게 어떤 의무를 부여했지?”
차분히 과거를 돌아본 듯, 몇 가지 생각을 더듬는 듯하다가 홀시딘이 물었다.
“마스터 엘투란…… 엘투란께서 명령하셨어요. 언젠가…… 홀이 답을 찾아낼 것이라고…… 하지만 그 답이 홀을 파괴할 수도 있다고…… 홀이 찾아낸 답이 홀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라면…… 그걸 내가…… 데스 메이지로서 대행하라 명령하셨어요. 알드바인에 마스터가 비는 날이 없도록 하라고…… 마스터가 부재 시에는…… 데스 메이지가 어둠 속에서, 그림자처럼 움직여 마스터의 역할을…… 마스터 엘투란이 지정한 마스터의 임무를 수행하라고 하셨어요. 언젠가 홀을 대신해서…… 박탈당한 죽음을 되찾을 날까지…… 그날이 올 때까지 악몽 속에서…… 헤매라고.”
세비앙의 대답 속에 자신을 부르는 이름, 홀이라는 옛날의 이름에 홀시딘은 간지러운 듯이 살짝 목을 움츠렸다. 저 이름은 제론과 하펠, 둘과 함께 사라졌었다고 생각했는데…….
“세비앙, 켈브란과 그 일파는 이십오 년 전에 사라졌다. 내가 짊어졌던 고뇌도 지금 없다. 그럼, 너에게 뭐가 남지?”
문득 짚어본다는 듯이 묻는 홀시딘이었다.
세비앙이 일그러져 흐르는 핏물과 고름이 가득한 얼굴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실룩거리면서 무슨 표정을 짓는 듯했지만, 그 얼굴의 상태는 표정으로 뭔가 표현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파나틱 플레임…… 상아탑의 동료를 향해서조차…… 무자비하고 잔혹한 마법을 거침없이 사용하는 자…… 홀, 당신이…… 마스터 홀시딘으로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내가 암살자로서 움직이도록 되어 있었어요. 켈브란과 그 일파를 감시하고…… 그들의 죄가 확정되는 순간, 그들을 심판하는 것…… 데스 메이지가 되고 나서 마스터 엘투란이 내게 처음 내린 명령이었어요. 하지만 어느 날…… 당신은 마스터 홀시딘이 되었고, 마스터 회합에 나가서 그들의 의견을 모조리 짓이겼고…… 그들이 내세우는 모든 명분을 부정했죠. 거기에 대해 불평할 거라면…… 그 일파가 자랑하는 어떤 마법이든, 몇 명이 연계를 하든 상관없다고…… 도발도 했고, 켈브란과 그 일파는 그 도발을 모르는 척할 수가 없었지요. 거기서 자신들의 주장을 포기한다면…… 그걸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니까…… 그래요, 홀이 마스터가 되어…… 홀시딘의 이름으로 나갔던 그 회합에…… 나도 가 있었어요. 마스터 엘투란의 명령에 따라…… 당신에게 닥쳐들 위험을 대신 감당하기 위해서. 하지만 결국 나는…… 데스 메이지이면서도 지켜보기만 했어요. 파니틱 플레임…… 당신의 불꽃 마법은 켈브란 일파의 연계를 이용해서 그들을 모조리…… 영혼까지 불태우듯…… 태워 죽였으니까요.”
물컹거리고 띄엄띄엄 나오는 이상한 목소리 속에 살짝 감정이 배어 들어가는 듯이 울렸다. 마치 오래 전에 봤던 불꽃이 자신의 영혼을 그을리고 짓이기는 중이라고 중얼거리는 것처럼…… 겨우 돌아온 감정에 서 있는 모습에 미묘한 떨림이 일어나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리고 그 감정을 좀 더 음미하려는 듯이 이야기가 멎기도 했다.
이를 지켜보면서 홀시딘이 고요하게 다시 묻는다.
“그 뒤로는? 알드바인에서 너의 모습을 본 적이 없어. 그 뒤로 계속 여기 있었던 거냐? 이제 어떤 목적으로 너는 여기 있는 거지?”
어딘가 흠칫하는 낌새가 핏물과 고름 속의 눈알이 흔들리면서 드러나는 듯했다.
잊었던 무엇인가를 기억해내기라도 한 것처럼, 여전히 물컹거리지만 보다 선명한 목소리가 석관 속에서 흘러나온다.
“홀이…… 마스터 홀시딘이 알드바인의 유일한 마스터인 동안…… 그 수명을 다하지 못한 죽음이 찾아들면…… 내가 그 죽음을 가질 수 있어요. 나는 마스터 홀시딘의…….”
“죽음의 대속자(代贖者)?”
듣고 있다가 잠깐 멍한 표정을 짓던 홀시딘이 놀란 소리를 냈다.
케이라가 바로 가벼운 헛기침을 했다.
홀시딘은 그 기침 소리에 퍼뜩 나갈 뻔한 정신을 바로잡은 표정으로, 하지만 아직 어이가 없고 당황한 낌새가 역력한 목소리로 묻는다.
“세비앙, 그 마법은 누가 시킨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 아무리 데스 메이지가 되어 명령을 받았다고 해도……!”
“내게 안식을 부여할 유일한 마법이니까요. 홀, 마스터 홀시딘을 위한 여분의 생명이 되든, 완전한 용서를 받든…… 그게 마스터 엘투란이 내게 짊어지게 한 사명이니까요. 홀, 홀시딘…… 나를 용서할 수 있나요? 완전한 용서를…… 해줄 수 있나요?”
석관 속에서 음울하게 울려 나오는 물음에 홀시딘은 침묵했다.
고요함이 느슨한 빛에 어울리듯이 점차 깊이 맴도는 듯했다.
대답을 기다리는 듯, 석관 속에서도 더 이상 말소리가 나오지 않는 탓이었다.
케이라가 낮은 헛기침 소리를 가볍게 흘려냈다.
제자의 독촉을 느낀 홀시딘이 결국 한숨을 쉬면서 침묵과 고요를 깨고 말한다.
“안 되겠다. 용서할 수가 없어. 입으로 몇 마디 거짓을 내뱉는 것은 쉽겠지만, 그걸로는 부족하지?”
물컹거리는 물결 너머로 낮은 흐느낌이 어린 대답이 나온다.
“진정한 용서…… 위안을 주는 거짓말은 내 사명을 해제하지 못해요.”
홀시딘이 가볍게 혀를 차는 소리를 냈다.
데스 메이지 세비앙이 대답은 전설로 듣던 ‘죽음의 대속자’가 어떤 마법인가를 보다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거짓과 속임수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는 마법, 즉 그 안에는 진실의 매듭과 연계된 구성이 담겨 있다는 뜻이었다. 더불어 누군가의 죽음을 대신한다는, 그 이름 그대로의 의미 속에 담긴 것은 생명을 관측하고 생명활동의 정지를 막는다는 효과이니…….
“죽음의 대속자는 생명을 대상으로 한 마법 중에서도 최상위이고, 나도 아직 접근할 수가 없는 마법이야. 지금 내가 도달한 수준에서도…… 아니, 얼마 전까지 내가 머물던 수준에서도 말이지. 아무튼 그 수준이라도 마스터 엘투란이 닿은 곳까지는 닿은 것 같은데…… 나는 그 마법을 몰라. 한데 마스터 엘투란은 어떻게 그 마법을 너에게 부여했지? 무엇보다, 대체 데스 메이지의 징벌은 또 어떻게 구현해낸 것이냐? 세비앙, 대답해줄 수 있나?”
마음속의 음울함, 답답함을 풀어내기 위해서 홀시딘은 생각한 바를 그대로 토해내고 있었다.
한데 이 중얼거림이 석관 안에 기묘한 동요를 일으켰다.
대답을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망설이는 듯도 하고 뭔가를 기다리는 듯도 한 그 묘한 낌새를 홀시딘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홀시딘이 묻기 전에 케이라의 목소리가 울리니…….
“허락합니다, 마스터 엘투란이 인계한 권한에 의해 케이라가 마스터로서 데스 메이지 세비앙이 마스터 홀시딘의 물음에 모든 대답을 하도록 허락합니다.”
정해진 형식에 맞춰, 명확하게 지정된 인허(認許)였다.
즉 이 대답은…… 마스터 엘투란이 홀시딘에게 일부러 감추려 했다는 뜻이 아닌가! 권한까지 케이라에게 인계해서 홀시딘이 대답을 듣기 위해서는 제자의 승인까지 받게 하다니!
홀시딘은 어이가 없어서 케이라를 돌아봐야 했고, 그사이에 석관의 목소리가 보다 선명하게 흘러나온다.
“홀…… 홀이 홀시딘이란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은…… 동료들, 친구들의 죽음을 자신에게 보다 깊이 각인한 채로 삶을 이어간다는 뜻…… 그 마음의 흉터는 스승이신 마스터 엘투란에게 권한을 부여해요. 상처입은 홀시딘을 완전한 직계의 제자로 거둔 까닭은 그 권한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홀시딘이 몰튼노트를…… 불타는 평야의 완전한 해결을 찾기 위해 생명의 불꽃을 이용할 경우를 막을 수 있는…… 스승으로서 제약을 남겨 둘 수 있게 했지요. 그래서…… 죽음의 대속자와 연계된 모든 지식, 생명을 다루는 상아탑의 상위 마법을 홀시딘이 마스터 랭크에 들어선 다음에도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두실 수 있었어요. 언젠가…… 홀이 내게 물어올 때까지, 마스터 엘투란의 권한을 인계받은 또 다른 마스터…… 홀시딘의 직계 제자가 승인할 때까지…… 모두 마스터 홀시딘이 자신의 생명까지 소모해서 불타는 평야를 제압하려 하는, 가능성이 희박한 자해(自害)로 판단되는 행동을 막기 위한 마스터 엘투란의 배려였어요.”
“생명의 불꽃이 뭐야?”
홀시딘은 짧은 시간 사이에 길게 흘러나온 이야기 속의 한마디를 짚었다.
오러 마크를 다루기 위해서는 생명을 다루는 마법을 알아야 했다. 하지만 홀시딘이 아는 지식의 범위 내에서 ‘생명의 불꽃’이란 특정한 항목이 없었다. 몰튼노트를 때려잡기 위해 사용 가능한 생명 계통의 지식인 듯한데, 홀시딘은 전혀 듣도 보도 못했다!
“화염(火焰) 속에서 태어나 불을 먹고 자라고, 불꽃 속에서 불멸(不滅)의 생명력을 지닌다는 신조(神鳥)…… 피닉스의 불꽃을 일컬어요. 상아탑의 고대마법, 그중에서도 최상위계층 마법으로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해서 그 불길을 불러내는 극단적인 비술로서 구현되지요.”
“그거, 붉은 드레이크의 심장에서 뽑아낸 핏방울, 화룡의 심장혈이 없어도 되는 거였냐?”
곧바로 홀시딘이 놀란 소리로 파헤치려는 듯이 물었다.
이에 대해 지체 없이 케이라의 목소리가 예민하게, 날카롭게 울린다.
“스승님?”
한마디였지만 거기 담긴 말투는 ‘몇 대 맞아보실래요?’라는 의미가 철철 넘쳐나고 있었다! 때문에 홀시딘은 빠르게 변명해야 했다.
“타, 탐구심! 내가 마법사잖니? 그냥 탐구심에 물어보는 것뿐이라고! 그, 그래서! 그러니까 순수하게 촉매 없이, 아니, 아니! 마법사의 생명만으로도 피닉스 소환이 가능하다는 거야?”
“짧은 동안, 그 생명과 마력이 고갈되는 시간 동안만 그 불꽃의 힘만을 소환할 수 있어요. 불타는 평야를 모두 정리할 시간은 전혀 아니죠. 화룡의 심장혈은 그 시간을 더 길게, 피닉스를 실체화해서 더 오랫동안 유지시켜 줄 뿐이에요. 어떤 경우이든…… 마법사는 죽거나, 죽음에 필적하는 피해를 입지요. 마음의 흉터가 깊은 홀시딘이라면, 분명히 자해에 불과한 짓이라도 할지 모른다고…… 스스로 해결할 방법이 없을 경우로 결론이 나면, 제자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시간 벌기를 위해서라도 거기 손댈 거라고 마스터 엘투란은 판단했어요. 그래서…… 홀시딘이 마스터가 된 후에라도 제약이 유지되는 범위를 상정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상아탑은 마스터 랭크의 마법사에게 축적해온 모든 지식을 제공하도록 되어 있으니까, 모든 것을 찾아 헤매다 보면 홀시딘은 기어코 피닉스에 관련된 지식을 얻고, 생명의 불꽃에 대해 모르는 채로라도 소환술에 손댈 수 있다고 여겼기에…… 대속자로서 내 역할이 필요할 순간이 올 수 있다고 하셨어요.”
“끄응! 마스터 엘투란은 대체 날 어디까지 막나가는 놈으로 여기신 거야. 내가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제론과 하펠은 나한테 살라고 했다니까!”
홀시딘은 슬쩍 케이라를 외면하면서 ‘나, 그런 사람 아냐!’라는 듯이 소리 냈다.
하지만 눈길을 외면한 채로 얼굴도 저쪽을 향하면서 내놓는 스승의 몇 마디를 케이라는 완벽하게 변명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흐흥, 그러세요?”
언젠가 루케인이 ‘파나틱 플레임이라고 불리시는 걸 조금은 부끄럽게 여기시라고요!’라고 퍼부어대던 잔소리랑 어쩐지 비슷한 말투였다.
어쩔 수 없이 홀시딘은 보다 빠르게 화제를 옮길 필요를 느꼈고, 바로 찾아냈다.
“어, 그런데 얼굴이 많이 나아지고 있다? 이건 어떻게 된 거지?”
석관 안에 서 있다는 점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지만, 어느 틈엔가 핏물과 고름이 엉겨 붙어 줄줄 흐를 듯하던 세비앙의 얼굴이 원형을 찾아가듯이 부분부분 복구되며 멀쩡해지고 있었다. 눈동자 또한 눈알 속에 제대로 그 윤곽을 갖춘 채로 동공(瞳孔)이 보이는 듯하잖나.
“홀의 앞이니까…… 마스터 홀시딘 앞에서 이야기하고, 내 존재를 보다 명확히 밝혀 보일 수 있으니까. 그 생명의 향기를 느끼면 썩고 으스러지는 고통에서 벗어나…… 다시 한 번 살아있는 몸을 갖추고 느낄 수 있게 된다고 했어요.”
“에, 설마…… 내 생명력을 갈취하는 거냐!”
“그럴 리가 없잖아요!”
홀시딘이 버럭 놀란 듯한 소리를 질렀고, 곧바로 케이라가 버럭 성난 소리를 냈다.
“응? 그런 거 아니냐?”
슬그머니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늉을 하면서 홀시딘은 케이라를 돌아보면서, 그 눈치를 살피며 짧게 물었다.
훌륭하게 화제를 돌린 스승이 얄밉다는 듯이 눈을 흘기면서도 케이라는 대답을 한다.
“데스 메이지의 몸은 붕괴(崩壞)와 재생(再生)을 반복해요. 거기에 특정한 조건을 부여해서 붕괴를 막고, 재생을 일정시점에 고정시킬 수 있어요. 세비앙의 경우에는 스승님이 인지(認知)하고, 대면(對面)해주는 것이 그 조건으로 상정되어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용서를 시작하는 행위라고 인정해서 말이죠.”
홀시딘은 눈살을 찌푸린 채로 석관 속의 데스 메이지를 바라봤다.
곧바로, 조금 전과 달리 부드럽고 선명한 소리로 데스 메이지 세비앙이 말한다.
“용서보다는 귀찮아서…… 다시 보기 싫으니까 눈앞에서 그저 치우고 싶어 한다면…… 나의 징벌은 끝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이렇게 앞에 두고 바라봐주고 있다면…… 그래도 조금은 용서받을 기회가 있는 거니, 징벌이 가벼워진다고 하셨지요. 홀, 내가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는…… 그 기회가 허용된 시간은 정해져 있어요. 그리 길다고는 못할 거예요.”
“얼마 동안?”
홀시딘은 짧게 물었다.
정말로 귀찮고 다시 보기 싫어서 얼른 치우고 싶다는 듯한 말투였다.
미묘한 한숨과 함께 세비앙이 대답한다.
“홀이 살아있는 동안…… 용서받지 못한다면 나는 영원히 상아탑의 마물로 남게 돼요.”
“뭐? 아, 이런!”
인상을 구기며, 홀시딘은 자신이 아주 귀찮은 짐을 떠맡았다는 듯이 으르렁거렸다.